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과로예방법’과 함께 가야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과로예방법’과 함께 가야
  • 손광모 기자
  • 승인 2020.07.16 15:34
  • 수정 2020.07.16 15: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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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1주년 … 현 실태는?
규모 있는 유노조 사업장과 소규모 사업장 차이 심해
16일 오전 10시 국회의원회관 제9간담회에서 열린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1년 맞이 병원 현장 실태 증언 및 대안 모색’ 토론회 현장. 본격적인 토론회에 앞서 참가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된 지 꼬박 1년이 흘렀다. 그동안 직장 내 괴롭힘이 다소 줄었다는 보고가 나오지만 보완점은 남아있었다. 또한 근본적으로 ‘건강한 일터’를 조성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의당 노동본부와 강은미 정의당 의원실,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는 16일 오전 10시 국회의원회관에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1년 맞이 병원 현장 실태 증언 및 대안 모색’ 토론회를 개최했다.

시행 1년,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처음 국회에 발의된 건 2013년이다. 이후 수년간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그러던 2018년 7월 ‘양진호 한국미래기술 회장’의 직장 갑질 사건이 사회적으로 공분을 얻자 법 제정에 급물살을 탔다. 양진호 사건이 있고 난 후 약 반 년 만에 법이 제정됐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은 ‘직장 내 괴롭힘’이 무엇인지 정의하고(근로기준법 제76조의2) 발생 시 사용자와 노동자가 어떠한 조치를 취해야 하는지 규정한다(제76조의3).

주요 내용으로 ▲직장 내 괴롭힘(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어 다른 노동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의) 금지 ▲사용자의 직장 내 괴롭힘 사건 조사 의무 ▲신고자 및 피해자에 대해 불이익 처우 시 형사처벌 등이 있다.

덧붙여 취업규칙 필수 기재 사항으로 ‘직장 내 괴롭힘 예방 및 발생 시 조치 등에 관한 사항’을 추가해 법의 실효성을 높였다.

자율적 해결의 한계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은 ‘사업장 내 자율적 문제 해결’을 도모한다. 법적으로 ‘괴롭힘’이 규율하기가 상당히 까다롭기 때문이다.

가령 부하직원의 고충을 상사가 아예 공감하지 못할 때가 있다. 이 경우에도 ‘형사처벌’의 대상이 되는 건 과도한 처벌이라는 것이다. 또한, 정당한 업무 지시와 괴롭힘의 경계도 모호하다. 괴롭힘 문제를 사건별로 주의 깊게 판단할 필요성이 있다.

그러나 이종희 공공운수노조 법률원 변호사는 자율적 해결을 도모하는 현행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의 한계점도 분명하다고 지적했다.

이종희 변호사는 “직장 내 괴롭힘 행위에 대해 바로 형사처벌을 규정하는 것은 좋은 방향이 아닐 수 있다. 형사처벌을 규정할 경우 직장 내 괴롭힘이 엄격하게, 즉 좁게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라면서, “그러나 사용자에게 각종 의무를 규정하면서도 행정적인 조치(과태료)조차 규정하고 있지 않아 근로감독관의 개입 범위와 권한에서 한계가 뚜렷하다”고 밝혔다.

해당 사업장에서 직장 내 괴롭힘 문제를 해결하고 근절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을 때는 현행법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직장 내 괴롭힘 방지를 위한 사용자의 의무가 '요식 행위'로 귀결되거나 현행법이 '악의적인 의도를 가진 사용자'를 적절히 처벌할 수 없는 문제도 있다. 

이민화 행동하는 간호사회 활동가도 “관리자에 의한 괴롭힘일 경우 공론화하기가 쉽지 않고 직장 내 괴롭힘 피해자에 대한 비밀유지도 잘 지켜지지 않는다”면서, “노동조합이 있고 비교적 규모가 큰 병원에서는 단체협약으로 직장 내 괴롭힘 금지 세부지침까지 마련돼 있지만, 그 외 병원들은 어떤 절차로 신고하는지 등에 대해서도 전혀 알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행동하는 간호사회는 ▲직장 내 괴롭힘 사건에 대한 독립적인 처리기관 필요성 ▲예방교육 법제화 ▲직장 내 괴롭힘 해결 사례 공유 ▲피해 당사자가 지지받을 수 있는 환경 조성 등이 제도적으로 보완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과로사예방법’ 통해
총체적 관리 필요해

한인임 일과건강 사무처장은 직장 내 괴롭힘 문제를 적절히 처리하는 것뿐만 아니라 발생 자체를 줄일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괴롭힘이 일어나지 않는 노동환경을 만드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한인임 사무처장은 한국사회에서 만연한 ‘장시간 노동’을 줄여나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재 정부는 노동시간 단축을 위해 2018년 7월 1일부터 주52시간 상한제가 사업장 규모별 시차를 두고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광범위한 특례업종 ▲5인 미만 사업장과 자영업자 적용 제외 등으로 사각지대가 크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인임 사무처장은 “한국사회에서 노동자 건강을 훼손하는 ‘고통스러운 노동’이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죽도록 일하는 장시간 노동”이라면서, “장기적으로 장시간 노동과 직무 스트레스, 감정노동, 직장 내 괴롭힘 문제는 과로 영역으로 포괄할 필요가 있다. 직장을 가지고 있는 사망자들의 사망원인에 있어 직업과의 관련성이 단 1%도 없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한인임 사무처장은 ‘과로사예방법’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한인임 사무처장은 “노동자 과로사망(뇌심질환, 정실질환 사망) 감소율 관리에 대한 장기 계획을 세우고 각 부처의 실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면서, “직장 내 괴롭힘 문화는 법 한 조항 바꾼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지속적이고 전략적인 관리 감독을 위해 과로사예방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강은미 정의당 의원은 토론회 인사말을 통해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 시행 이후로 괴롭힘이 조금 줄었다는 의미 있는 결과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도의 부족한 부분을 어떻게 보완할 것인지 생각해야 한다”면서, “민주주의가 직장 앞에서 멈춘다고 하는데 이 토론회 자리가 변화를 위한 또 한 번의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