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가 기업을 살리는 시대라는 화두를 던져라"
"노조가 기업을 살리는 시대라는 화두를 던져라"
  • 손광모 기자
  • 승인 2020.07.13 00:00
  • 수정 2020.07.12 13: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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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년 노동운동 지역노동계 '큰 손'…"기존 노동운동의 방식 바뀌어야"

[인터뷰] 황인석 전국화학노동조합연맹 위원장

황인석 위원장과 참여와혁신의 인연은 깊다. 참여와혁신은 2006년 7월호에서 조선내화의 노사관계를 다룬 바 있다(2006년 7월 12일 <서로를 고객으로 모시는 노사>).

당시 조선내화노동조합의 8대 위원장이었던 황인석 위원장은 인터뷰에서 “상황 봐가면서 임기응변으로 대처할 것이 아니라 노사관계의 룰을 만들고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로부터 14년이 지난 지금, 황인석 위원장이 조선내화 안에서 추구했던 노사관계의 틀은 거의 완성된 듯하다.

이제 황인석 위원장은 단위 사업장과 지역노동계를 넘어 전국 화학사업장의 노사관계를 새롭게 하고자 한다. 지난 5월 26일 치러진 제22대 화학노련 위원장 선거에서 황인석 위원장이 당선된 것이다. 전태일 열사의 ‘해적판’ 수기를 접하고 근로기준법과 노동운동에 눈을 떴다는 황인석 위원장은 1988년 조선내화노조를 설립하면서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32년의 내공을 자랑하는 황인석 위원장에게 향후 화학노련의 3년을 어떻게 이끌어 나갈 것인지 물어봤다.

*인터뷰는 5월 17일 오후 3시 전국화학노동조합연맹 위원장실에서 진행됐다.

황인석 전국화학노동조합연맹 위원장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황인석 전국화학노동조합연맹 위원장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화려한 시작, '노조 깃발과 회사 깃발'을 나란히

Q. 어떻게 노동운동에 뛰어들게 됐나?

1986년도에 조선내화라는 중견기업에 생산직으로 입사했다. 1988년도에 노조 설립 당시 참여했다. 그 당시 28살로 설립 멤버 7명 중에 가장 어렸다. 설립 멤버로 참여해서 사무국장과 상집간부를 거쳤다. 1998년 제5대 위원장으로 취임해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노조 설립 당시만 해도 군사독재 시절이고 자본의 횡포가 서슬 퍼렇던 때다. 노동자는 그저 공돌이, 공순이였다. 1987년 6.29 선언 이후에 우연치 않게 친구로부터 전태일 열사의 수기인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는 책을 접하게 됐다. 당시에 읽으면서 눈물을 굉장히 많이 흘렸다. 이후 의식 있는 친구들과 직장 내에서 변화를 추구하는 활동을 하다가 1988년 노조를 설립했다.

Q. 당시 사측의 공세가 만만치 않았을 것 같다.

말할 수 없이 어려웠다. 그런데 한편으로 그때는 사회적 분위기 자체가 노조를 인정해주지 않으면 안 되는 흐름이 있었다. 어떤 면에서 지금보다 그때가 더 쉬웠을 수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다만 조선내화 노사관계에 특별한 점이 있다. 1988년 7월 1일 노조를 설립한 후 단체협약 체결 전에 노조 깃발과 회사 깃발을 같이 공동게양 해달라고 요구했다. 회사에게 노동조합을 정식 파트너로 인정해달라는 것이다.

당시 회사는 선진적으로 응했다. 전 세계적으로도 노동조합기가 함께 걸려있는 회사는 드물다. 노조 깃발 공동게양에는 노사가 대등해야 공동 발전할 수 있다는 기조가 깔려 있다. 노조 깃발이 내려오는 날이 곧 회사 문을 닫는 날이라는 의미다.

지역노동계의 큰 손, 중앙에 나서다

Q. 위원장은 지난 2011년 제19대 화학노련 위원장 선거에 나왔다가 아쉬운 차이로 낙선한 적이 있다. 그 이후 10여 년간 지역 노동계에 투신한 것으로 안다. 10년 후 이번 선거에 출마한 계기는 무엇인가.

지방 사람이 서울에 와서 중앙노동운동에 뛰어들기에는 제약이 많다. 낯설기도 하고 인프라나 생활권도 없다. 그렇지만 19대 선거에 출마한 이유는 중앙노동운동이 변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낙선 이후에는 지역에서부터 변화를 만들어보자고 생각해서 한국노총 포항지역지부 의장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올해 1월에 김동명 위원장이 한국노총 위원장으로 당선됐다.

솔직히 근 10년이 지났는데 굳이 다시 출마해서 뭘 하겠느냐는 생각도 있었다. 그런데 10년 전에 설계했던 정책들이 아직도 현실에 접목되지 못하고 있었다. 이걸 한 번 해보고 떠나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만약 출마하지 않고 지역노동계에서 은퇴하면 두고두고 후회할 것 같았다.

Q. 상당히 오랫동안 고민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당시 중앙노동운동에 느꼈던 문제의식은 무엇인가?

1987년 6.29 선언 이후 우리의 노동운동 방식은 말 그대로 '머리띠 두르고, 조끼 입고, 투쟁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노동운동이 바뀌어야 한다. 초창기에는 모여서 투쟁하면 정부와 사용자들이 노조의 의견을 들어줬다. 그러나 시대가 지나면서 정부와 사용자들의 대응전략이 바뀌었다. 그걸 노동운동이 못 따라가고 있다. 미력하나마 지방에서부터 해왔던 노동운동의 방식을 중앙에 접목해보자고 생각했다.

Q. 가령 어떤 방식인가?

포항지역지부 의장으로 활동하던 당시 공식적으로 '왜 우리는 1년에 한 번씩 서울에서 모여서 대정부 집회투쟁을 하느냐'고 문제를 제기한 적이 있다. 늘 10만 명 조직한다고 하지만 정작 5만 명 정도 모인다. 그리고 5만 명도 지역에서 다 동원된다. 그냥 소모전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노총이 주관을 하되 전국 동시다발적인 투쟁을 하자고 당시에 제안했다. 한국노총 52개 지역지부가 같은 날 동시에 노동청 앞에서 집회하는 것이다. 그때 각 지역에서는 현안 문제도 함께 요구할 수 있다.

분명 처음에는 힘들다. 하지만 총론으로 보면 서울에서 집회를 하는 것보다 참가자 수도 훨씬 많아진다. 그런 방식으로 집회문화와 지역과 중앙노동운동의 새로운 변화를 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Q. 화학노련과 한국노총의 공조가 중요한 것 같다.

공조관계가 당연히 이뤄져야 한다. 특히 한국노총의 정책지침이 결정되면 산별연맹들이 이유 불문하고 따라가야 한다고 본다. 내부 혼란과 격론을 겪더라도 총연맹이 주관해서 산별연맹의 결의가 이루어지면 모든 산별연맹은 찬성했든 반대했든 결론에 대해서 일사불란하게 따라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런 연대가 없으면 노동계는 정부나 사용자의 상대가 안 된다. 뒷받침돼줘야 문제 해결의 단초가 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황인석 전국화학노동조합연맹 위원장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황인석 전국화학노동조합연맹 위원장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주요공약 : 진리성에서 산별 통합까지

Q. 선거 과정에서 진정성 있고 투명한 ‘소통’을 강조했다. 여기서 평소 노동운동 철학이 나타난 것 같다.

기본적으로 위원장, 조직의 리더가 자기 기득권을 주장하면 시스템은 절대 안 돌아간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리더의 역할은 무엇이냐. 자기 조직 구성원의 일을 도와주고 지원해주는 사람이다. 그런 관점에서 소통을 할 때 진리성, 진실성, 정당성 세 조건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독일의 사회철학자 하버마스가 한 이야기다. 지금까지 조선내화노조 위원장을 하면서 여기에 충실했다고 본다. 화학노련도 이러한 리더십으로 접근해가면 조합원들이 잘 따라 주지 않을까 생각한다.

Q. 산별 통합 공약이 눈에 띈다. 하루아침에 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단계적 접근이 필요할 텐데 첫 초석으로 어떤 활동을 염두에 두고 있는가?

산별 통합은 사실 한국노총 차원의 주도성이 필요하다고 본다. 유사산별이 많기 때문이다. 특히 식품노련이나 고무노련은 과거에 화학노련 소속이었다. 불행히도 경선 후 패자가 지지 세력을 이끌고 나가버렸다. 물론 승자가 포용하지 못한 점도 있긴 하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아니라고 본다.

이 문제는 상대성이 있기 때문에 남북통일만큼 어렵다고 생각한다. 크게는 집나간 며느리를 불러들이기 위해 전어를 구워야겠다는 생각이다. 전어를 굽는 방식으로 현재 위원장의 기득권을 다 내려놓자고 생각하고 있다. 화학노련, 식품노련, 고무노련 3개 연맹의 공동위원장직을 함께 맡자는 것이다.

사실 조직이 나눠져서 득 될 것이 없다. 하나로 만들어서 더 큰 힘을 만들자는 것이고, 그 총대를 한 번 매보겠다는 것이다. 사실 이 문제는 해묵은 문제다. 분명 9년 전 김동명 위원장도 시도를 했을 것이다. 그런데 하나도 좁혀지는 사항이 없다보니 그만큼 어렵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래도 좀 더 드러내 공론화시키고 직접 만나서 어떤 방법이 좋겠냐고 구체적으로 논의해 나갈 계획을 가지고 있다.

위기의 제조업, 위기의 화학사업장

Q. 다음은 현안 문제다. 코로나19가 현재 진행 중이다. 최근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가 진행 중이다. 대표자회의에서 논의를 했을 것인데, 화학노련에서는 이에 어떻게 대응하려고 하는가?

사회적 대화는 당연히 해야 한다고 본다. 그렇지만 사실 코로나19 이전에도 제조업은 어려웠다. 기업하기 어려우면 노조하기는 더 어렵다. 그 와중에 코로나19까지 겹치니 고용은 완전히 무너져 버린 것이다. 기업이 임금을 올릴 여력이 없고, 그러다보니까 임금이 삭감되고 소비할 여력도 없어진다. 이것이 연쇄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노사관계는 학문적으로 접근될 수 없다고 본다. 경험과 환경적 요인에 따라서 정답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어느 한쪽이 명분도 가져가고 실리도 가져갈 수는 없다고 본다. 한쪽이 실리를 취하면 다른 한쪽은 명분을 주는 식이다. 현재 사회적 대화에서 노동계의 제안을 정부나 경영계에서 공감하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획기적인 제안이 필요하다. 가령 경제활동을 위해 법적인 잣대를 약간 풀어주도록 정부가 도와줘야 한다는 식이다. 이는 실리를 가져가기 위한 한 가지 포석이다.

사실 이런 제안을 한다고 검찰이 법 집행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제안을 하면 정부나 경영계에서 오히려 적극적으로 나올 것이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리를 내놓지 않는다면 그때 사회적 대화를 파기하면 된다. 국민들도 노동계에서 저렇게까지 우호적으로 협조하는데 경영계에서는 임금도 삭감하려고 하고 고용불안을 느끼게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상적일지 모르겠지만 그런 분위기가 만들어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큰 틀에서 사회적 대화를 통한 해결 방법은 화학노련보다는 한국노총이 대응책을 찾아줘야 한다. 이후 한국노총과 정책적 협약을 통해 어려운 난국을 슬기롭게 잘 견뎌낼 수 있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바람직한 노사관계의 상은 '나눔'

Q. 위원장이 생각하는 바람직한 노사관계 상이 있다면 말해 달라.

바람직한 노사관계는 서로 나눔을 주려고 하는 마음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본다. 상대의 마음을 읽으려고 하고 상대에게 파트너십을 발휘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본다. 지금은 노조가 기업을 살리는 시대라는 화두를 던져야 한다고 본다. 그러면 회사가 절대로 노동조합을 하대하지 않는다. 사람은 모두 자기 자존심이나 자긍심을 무너뜨리면 방호벽을 친다. 그런 관점에서 바람직한 노사관계는 상호 신뢰의 법칙이 기본 모델이라고 생각한다.

Q. 조합원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우리 화학노련 조합원들이 막중한 책임감을 맡겨 주셨다. 그만큼 해결해 나가야 할 문제들에 부담을 느끼기도 한다. 노동운동이 어렵지 않은 시기가 없었지만 최근 경제사회적으로 큰 타격을 받으면서 조합원들이 힘들어하고 있다. 조합원들과 연맹이 함께 위기를 극복할 돌파구를 찾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