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광주공장, 노동자 산재신청 은폐 의혹
삼성전자 광주공장, 노동자 산재신청 은폐 의혹
  • 손광모 기자
  • 승인 2020.08.01 15:38
  • 수정 2020.08.01 15: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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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노조 실태조사 실시 … “산재 신청은 곧 승진 포기”
“10여 년 성실하게 일한 대가는 성치 못한 몸”
2019년 11월 16일 한국노총에서 진행된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 출범식 현장.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2019년 11월 16일 한국노총에서 진행된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 출범식 현장.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그동안 삼성에서 산재를 신청한다는 건 승진을 포기한다는 말과도 같았다. 용기 내어 산재를 신청해도 작업환경 증거 수집이 힘들고 증인 역할을 해야 할 동료들도 회사의 해코지를 두려워해 도움을 주지 않는 것이 현실이어서 결국 산재승인은 하늘의 별따기가 될 수밖에 없다."

진윤석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 위원장의 말이다. 지난해 11월 출범한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이 건강하게 일할 권리를 위한 투쟁을 시작했다. 노조는 그동안 ‘회사의 눈치’ 때문에 산업재해 신청을 할 수 없었던 현실을 실태조사를 통해 폭로했다.

전국금속노동조합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이하 노조)은 31일 삼성전자 가전(광주)사업장 산재은폐 의혹을 제기했다. 삼성전자 광주사업장은 가전제품을 생산하는 공장으로 주로 에어컨, 냉장고, 세탁기 등 백색가전이 주요 생산품목이다. 약 5,000여 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다.

노조는 5월 27일부터 6월 6일까지 9일간 삼성전자 광주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 53명을 대상으로 건강관리 실태조사를 진행했다. 광주공장 직원 수가 총 5,000여 명인데 설문에 참여한 노동자가 53명에 지나지 않는 것에 대해서 노조는 “비밀 유지를 위해 일대일로 실태조사를 진행하여 조사대상이 많지 않았다”고 밝혔다.

설문에 참여한 53명의 노동자는 평균 근속이 14년, 노조에 가입한 노동자는 22명(41.5%), 가입하지 않은 노동자는 30명(56.6%, 무응답 1명)이었다.

근골격계 질환 호소하는데
산재 인정은 10년에 ‘15건’

설문은 근골격계 질환과 소음성 난청으로 겪는 불편이 없는지 집중적으로 물었다. 삼성전자 광주공장 노동자는 소음성 난청 보다는 근골격계 질환으로 인한 불편을 주로 토로했다.

49명의 노동자(92.5%)가 ‘업무와 관련하여 목, 어께, 허리, 팔, 손목, 다리, 발목, 발바닥 등 입사 후 현재까지 병원에서 한 번이라도 진료 또는 치료 받은 적이 있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했다. ‘현재에도 계속 요양치료 중에 있다’는 답변을 한 노동자도 28명(52.8%)에 달했다.

▲요추(26명, 53.1%) ▲어깨(17명, 34.7%) ▲경추(12명, 24.5%) ▲손가락, 손목 등(12명, 24.5%) ▲다리, 무릎, 발 등(11명, 22.4%) ▲기타(4명, 8.2%) 순서였다.(중복응답 가능)

하지만 이러한 실태조사 결과와 달리 산재인정은 미미했다.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삼성전자 광주공장에서 2011년 이후 산업재해 보고 건 수는 15건에 지나지 않았다. 그 중에서도 13건은 사고로 분류된다. 2건은 근골격계 질환 보고였지만, 1명의 노동자가 2019년 2회 신청해 인정받은 것이다.

더욱이 산재 신청 자체도 저조하다. 2011년 이후 현재까지 질병과 관련된 산재신청은 단 9건에 지나지 않았다.(근골격계 6건, 뇌심혈관계 2건, 정신질환 1건)

일하다 아파도 눈치부터

설문조사는 통계와 실태의 괴리에 대해 한 가지 답을 준다.

‘근·골격계질병 및 소음성 난청 외에 기타 업무와 관련한 상병과 관련하여 회사 혹은 근로복지공단에 산재신청 한 적 있나’라는 질문에 설문조사에 참여한 노동자 전원이 없다고 답했다.

그 이유로는 ▲인사상 불이익이 우려(34명, 64.2%) ▲산재처리에 대해 잘 몰라서(32명, 60.4%) ▲상사 및 담당부서의 공상처리에 대한 회유와 압박 때문에(11명, 20.8%) ▲본인이 산재처리보다 공상처리를 원해서(2명, 3.8%) ▲기타(5명, 9.4%) ▲무응답(7명, 13%) 순으로 답했다.

삼성전자 광주공장 노동자들이 인사상 불이익을 우려해 산재신청 대신 공상처리를 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공상과 산재는 건강보험급여를 적용받는지 아니면 산재보험급여를 적용받는지에 따라 차이가 난다. 일반적인 경우 기업들은 산재보다 공상 처리를 선호한다. 그 이유는 산재 처리 시 ▲산재보험료 증가 ▲기업 이미지 타격 ▲근로감독 가능성 등 때문이다.

이원일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 광주지부장은 “10여년 성실하게 일한 대가는 어디 하나 성치 못한 몸”이라며 “수많은 삼성전자의 젊은 노동자들이 문제제기 한번 제대로 못해보고 쓰러져갔다”고 밝혔다.

한편, 노조는 “삼성전자 전체 사업장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전수조사를 실시하고, 근골격계는 물론이고 화학물질에 의한 질병, 사무직의 우울증 등 산업재해관련 집단 요양신청으로 투쟁을 이어나갈 것”이라고 향후 계획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