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여운 아이들의 천국을 누가 망치나?
귀여운 아이들의 천국을 누가 망치나?
  • 박완순 기자
  • 승인 2020.08.14 00:00
  • 수정 2020.08.13 06:2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응답 보육교사 95%, "직장 내 괴롭힘, 아이 돌봄에 악영향"
대표적인 직장 내 괴롭힘 가해자는 '원장 등 대표'

올해 4월 함미영 공공운수노조 보육지부 지부장과 전화 통화를 했다. 6년 동안 보육교사로 영유아를 돌본 베테랑이다. 코로나19 확산세가 급증할 때였고, 대면 노동을 해야 하는 보육교사의 상황을 듣기 위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함미영 지부장이 맨 처음 꺼낸 말을 옮긴다.

"어린이집 교사라고 하면 귀여운 아이들하고 뛰어 놀고 즐겁게 일할 것이라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처우나 노동환경에 대해서 알게 되면 경악해요. 휴게 시간 중 노동 강요, 페이백(임금 반납과 같은) 등 불법적 행위들이 당연하게 이뤄지는 곳이 어린이집이에요."

지난 7월 20일 공공운수노조 보육지부가 '2020년 상반기 보육교사 노동실태조사'를 발표하고 있다. ⓒ 공공운수노조
지난 7월 20일 공공운수노조 보육지부가 '2020년 상반기 보육교사 노동실태조사'를 발표하고 있다. ⓒ 공공운수노조

1,060명 보육교사
자신들의 노동실태를 말하다


지난 7월 20일 공공운수노조 보육지부가 '2020년 상반기 보육교사 노동실태조사'를 발표했다. 7월 7~13일, 8일 동안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직장갑질119 직종별 온라인 모임인 '어린이집 갑질 근절! 보육교사 119모임' 가입자를 중심으로 불특정 보육교사 대상의 설문조사였다. 설문조사에는 1,060명의 보육교사가 참여했다.

보육지부는 "이번 조사는 최근 시행 1년을 맞은 '직장내괴롭힘금지법', 정부가 '보육지원체계 개편을 통해 도입한 연장보육'과 관련해 보육교사의 노동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진행했다"고 밝혔다. 한편 정부가 3년마다 '전국보육실태조사'를 실시하지만 원장 응답을 중심으로 진행하기 때문에 보육지부는 현장 실태를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서 보육교사의 응답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가장 눈에 띄는 결과는 '보육교사의 스트레스'와 '아이 돌봄의 질'과의 상관관계다. 응답자 95%가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한 보육교사의 스트레스가 아이들 돌봄의 질에 악영향을 준다고 응답했다. 모든 노동에서 노동자의 육체적·정신적 건강 상태가 노동의 질을 좌우하지만, 특히 대인 서비스인 돌봄 노동은 서비스 이용자에게 직접적 영향을 즉각적으로 미친다는 점이 다시 한 번 확인된 셈이다.

그렇다면 보육교사의 업무상 스트레스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스트레스 원인으로 '원장과의 관계'에 응답자 72.92%가 응답했다. 이어서 34%대로 '학부모와 관계', '동료교사와 관계'가 2~3순위였다. 직접적인 보육업무와 연관된 '아이들과의 관계'는 11.6%였다.

또한 지난 1년 동안 직장 내 괴롭힘을 경험하거나 목격한 비율은 70.28%였다. 보육교사 10명 중 7명은 직접적인 괴롭힘 피해자거나 괴롭힘을 목격하는 등 2차 피해자였던 것이다. 이들 중 직장 내 괴롭힘 가해자 1순위로 꼽은 인물은 '원장 또는 이사장 등 어린이집 대표'였다. 수치로는 78.26%에 달했다. 원장과의 관계가 보육교사들에게 스트레스인 이유로 원장의 보육교사들에게 행하는 직장 내 괴롭힘 때문임을 추론해볼 수 있다. 추론을 좀 더 확장해본다면 원장의 괴롭힘에 영유아 돌봄서비스 질은 현격하게 낮아진다는 알고리즘을 완성할 수 있다.

설문조사를 통해 알 수 있었던 보육교사들이 경험한 직장 내 괴롭힘 유형 TOP5는 ▲CCTV 감시 ▲폭언·모욕 ▲부당 업무 지시 ▲이간질 ▲차별·따돌림 등이었다. TOP5 유형의 직장 내 괴롭힘의 생생한 증언은 올해 초 실태조사에서 들을 수 있었다.

"감사 나온 거 네가 찔렀지?"
그리고 감금당했다

7월 '2020년 상반기 보육교사 노동실태조사'를 발표하기 전 이미 올해 초 직장갑질119와 공공운수노조 보육지부는 보육교사 처우개선을 위한 실태조사(2019년 12월 조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올해 초에 발표한 결과는 7월 발표와 큰 차이점은 없었지만, 실제 사례증언이 있어 보육교사의 열악한 노동현실을 날 것 그대로 알 수 있었다.

사례증언① 감사 제보 의심하더니 감금까지
서울시 국공립어린이집 사례

"원장이 개원 준비과정에서 횡령을 한다는 위탁업체 제보로 구청 감사가 들어왔습니다. 감사 과정에서 원장은 누가 제보를 했는지 알아보고 다녔고, 위탁업체 이사님이 주임교사인 제가 이야기했다는 말을 흘렸습니다. (중략) 시말서를 쓰라고 했습니다. 제가 이야기한 게 아니어서 쓰지 않겠다고 하자 저를 교실에서 못 나오도록 감금하고 같은 반 교사에게 저의 행동을 감시하라고 시켰습니다. 저는 하루 종일 교실에 있었고 결국 무서움으로 다음날 출근하지 못했습니다."

사례증언② CCTV 일거수일투족 감시
울산시 국공립어린이집 사례

"원장님이 본인 책상에 모니터 두 대를 놓고 한 대를 CCTV 감시용으로 쓰고 있습니다. 모니터에 교사가 안 보이면 즉시 이름을 부르며 ‘어디 있냐, 없는 것 같은데?’라고 하고, (중략) 실시간으로 보육교사 일거수일투족을 모니터링합니다. 여러 번 힘들다고 호소했지만 원장은 ‘내가 아동학대로 끌려가는 것보다 CCTV로 감시하다가 잡혀가는 게 낫다’며 멈추질 않습니다."

사례증언③ 모욕과 사생활 비난
경기도 법인어린이집 사례

"보육교사가 짧은 옷이나 조금 비치는 옷을 입고 오면 ‘남들 보라고 입고 오는 거냐’며 핀잔을 주고 카톡 프로필에 남자친구와 여행 간 사진을 올린 교사에 대해 다른 교사들에게 ‘그 선생님 천박하게 뭐하는 짓이냐’고 했습니다."

사례증언④ 협박 및 부당노동행위
경기도 국공립어린이집 사례

"원장이 '요즘 노조 냄새 나는 교사들 왜 이렇게 많냐'며 '선생님들 노조 가입하면 어린이집으로 서류 다 날아오니까 가입 할 생각 말라'고 합니다."

사례증언⑤ 과도한 사생활 통제
경남 국공립어린이집 사례

"원장님이 교사들 핸드폰 진동소리가 시끄럽다며 아침에 출근해 모든 보육교사가 핸드폰을 원장실에 두게 합니다. 아침마다 제출이 다 됐는지 핸드폰 개수를 손으로 탁탁 치면서 세고, 전원이 꺼져 있는지 확인하겠다며 핸드폰을 함부로 만지기도 합니다."

ⓒ 공공운수노조
ⓒ 공공운수노조

보육교사 직장 내 괴롭힘은 왜?

응답자 1,060명 중 지난 1년 동안 직장 내 괴롭힘을 경험했거나 목격했다고 응답한 745명(70.28%)에게 직장 내 괴롭힘 발생 주요 원인을 물어본 결과 ‘비민주적 운영’의 응답자가 67.10%(복수 응답 가능)로 가장 많았다. 원장 등 어린이집 대표의 권력이 견제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것은 추론이 아니라 보육교사의 직접 선택 결과이다. 설문지 응답 문항이 다음과 같이 구성됐었기 때문이다.

문13. 선생님께서는 어린이집에서 직장 내 괴롭힘이 발생 하는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보기 중 최다 2개 선택) ① (근무환경 특성) 다른 직장에 비해 규모가 작아 직원 간 의 관계가 긴밀해 사생활 침해나 소문 등이 쉽게 발생함 ② (직업 이미지) 보육교사는 봉사하고 헌신하는 직업이라 는 이미지 때문에 부당한 대우를 참아야 한다는 분위기가 조성됨 ③ (관리감독 구조) 위탁기관, 시설장, 지자체, 보건복지부 등 관리운영 주체가 많아 도리어 관리감독이 부실함 ④ (비민주적 운영) 문제를 제기한 자에게 불이익한 처우 (블랙리스트, 해고 등)를 하는 직장 내의 권력자를 견제할 수 없음 ⑤ (시정에 대한 낮은 신뢰) 신고를 해도 제대로 조사를 할 것이라는 기대가 없어 괴롭힘 가-피해자가 더 쉽게 발생함 ⑥ 기타(                    )

어린이집에서 발생하는 보육교사에 대한 직장 내 괴롭힘이 사적 감정에 의한 육체적·정신적 폭력을 넘어 구조적 폭력의 모양새를 띄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구조적 폭력은 직장 내 괴롭힘을 보육교사 스스로가 감내하게 하는 구조를 만들기도 했다. 지난 1년 동안 직장 내 괴롭힘을 경험했거나 목격했다고 응답한 보육교사 745명 중 괴롭힘 사례를 신고한 적 있는 사람은 77명(10.34%)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10명 중 9명은 그냥 견뎠다. 대응을 해도 상황이 개선되지 않을 것 같거나(65.70%, 745명에게 설문), 대응 이후 괴롭힘이 더 심해지거나 불이익 처우가 우려되기 때문(64.80%, 745명에게 설문)이었다. 게다가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해도 별다른 개선이 없었다.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했다는 77명은 고용노동부·원장·지방정부 순으로 신고기관을 선택했는데, 조사가 원활히 이뤄졌는지 물어보는 설문에 77명 중 64명(83.12%)이 '그렇지 않다'고 응답했다.

돌봄의 사회화,
사회서비스원이 필요해

민간 운영 구조로는 직장 내 괴롭힘 등 보육교사의 노동환경을 개선하기 어렵다는 게 함미영 지부장의 주장이다. 민간 운영이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영유아 돌봄 서비스를 공공모델로 사회화하자는 뜻이다. 지난 7월 22일 ‘사회서비스원 출범 1년 맞이 토론회’에서 함미영 지부장은 "사회서비스원에서는 어린이집 원장 역시 보육교사와 마찬가지로 기관의 채용절차를 거쳐 임용되고 월급을 받는 직원이기 때문에, 만약 원장이 비위행위나 괴롭힘 해위를 하는 경우 그 행위자인 원장이 기관 내규에 따라 징계를 받을 수 있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민간 운영 구조에서는 원장과 대표자의 불법·부당 행위를 규제할 제도적 장치가 없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함미영 지부장은 "사회서비스원에서는 민주적인 내규 운영으로 해결될 수 있을 것이고, 그 사실만으로도 원장의 자기통제 역시 강해질 것으로 기대한다"며 "원장과 보육교사의 관계가 대등학고 협력적이고 원활해질 수 있는 요건이 형성될 것"이라고 봤다.

2019년 11월 기준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전체 어린이집은 3만 7,351개이다. 그중 국공립 어린이집은 4,229개로 11.3%뿐이다. 어린이집 재직 보육교사는 2018년 12월 기준 24만 명에 달한다. 상당히 많은 보육 노동자들이 민간 운영 어린이집에 고용돼 있다. 그리고 원장 등 어린이집 대표자의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달고 살고 있다. 바꿔 말하면 우리 주변의 어린이들 대부분이 그러한 민간 운영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