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박싱] 이 주의 인물 : 하효열
[언박싱] 이 주의 인물 : 하효열
  • 이동희 기자
  • 승인 2020.08.15 00:00
  • 수정 2020.08.14 23: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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힌트 : #심리치유 #중대재해기업처벌법 #통통톡 #활동가건강권

언박싱(unboxing)은 말 그대로 ‘상자를 열어’ 구매한 제품의 개봉 과정을 보여주는 것을 말합니다. 언박싱 과정을 지켜보면서 어떤 제품이 나올지 기대하고 궁금증을 해소하는 재미를 얻습니다. <참여와혁신>이 선정한 이 주의 인물을 소개합니다.

이 주의 인물: 하효열(사회활동가와 노동자 심리치유 네트워크 통통톡 운영위원장)

지난 12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린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위한 연속 행동 두 번째―산재사망·재난참사 피해자 증언 기자회견’에서 하효열 ‘사회활동가와 노동자 심리치유 네트워크 통통톡’ 운영위원장을 만났습니다.

이날 하효열 운영위원장은 ‘왜 책임자 처벌이 치유인가’라는 제목으로 책임자 처벌이 중대재해 피해자와 그 가족들에게 치유가 될 수 있는 이유에 대해 발언했는데요. 하효열 운영위원장에게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12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린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위한 연속 행동 두 번째―산재사망·재난참사 피해자 증언 기자회견’이 열렸다. ⓒ 참여와혁신 임동우 기자 dwlim@laborplus.co.kr

- 먼저 통통톡 소개를 먼저 부탁드립니다.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의 심리치유센터 ‘와락’이 지금은 해산했지만, 와락 안에서 심리상담과 심리치유 전문가들이 모여 활동했던 와락 치유단은 임의 단체로 남아있습니다. 와락 치유단을 모태로 영등포산업선교회 쉼힐링센터, 향린교회 사회적협동조합 길목, 민주노총 노동안전실, 천주교 서울노동사목·인천노동사목, 충남 심리치유센터 두리공감, 조계사 노동사회위원회 등 심리치유와 관련해서 독자적으로 활동했던 여러 단체들이 모여 네트워크를 만들었어요. 그전까지는 개별적으로 사업을 진행했는데 이를 통합해서 서로 정보도 공유하고 인적자원도 지원하고 연구도 하자는 목적으로 2016년 7월 1일 만들어졌습니다.

이후 시민사회단체 및 노동조합 활동가와 노동자들의 심리치유를 하고 있습니다. 가장 첫 사업은 강원도 삼척에 있는 동양시멘트(현 삼표시멘트)에서 해고된 노동자들을 개인상담하고 심리치유하는 일이었어요.

가장 최근에는 6개월째 임금이 체불된 이스타항공 해고노동자들을 만났고요. 쿠팡 부천물류센터에서 집단감염 피해를 입은 노동자들도 만나 상담을 진행했습니다. 그 외에 목동 파인텍 해고노동자 굴뚝 고공농성할 때도 세 번 정도 의료진과 함께 굴뚝에 올라가기도 했고요. 쌍용차, 유성기업, 톨게이트 등 각종 투쟁 현장에는 다 갔다 왔다고 보시면 됩니다.

- 통통톡이라는 단체명에 뜻이 있나요?

첫 번째 통은 통할 통(通)을 쓰고, 두 번째 통은 합치다는 뜻을 지닌 통(統)을 사용해요. ‘말하다’의 뜻을 지닌 영어단어 Talk(톡)를 붙여서 통통톡(通統Talk)입니다.

서로 소통해서 뜻을 합치자, 모으자는 뜻이죠. 우리 시민사회 활동가와 노동조합 활동가들은 잘 아시겠지만, 연대가 가장 중요하잖아요. 사람들이 뜻을 모아 함께 해야 하는 건데 소통이 안 되면 안 되는 거잖아요. 그런 것들을 해소해보자,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 않고 뜻한 바를 이룰 수 있도록 지원하자는 의미를 담았어요.

- 노동자뿐만 아니라 활동가를 치유한다는 게 인상적인 것 같습니다.

시민사회·노동조합 활동가는 누가 치유해줄까요? 세상의 구조를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활동가들은 세상을 치유하려고 하는 사람들이죠. 그분들이 힘들 때는 누가 치유해줄 것인가가 핵심입니다. 활동가들이 심리적으로 어려울 때 이야기를 들어주고 용기 낼 수 있도록 보듬어줄 사람이 필요한 거죠.

일반 상담사들은 왜 활동가들이 이런 일을 하는지, 돈도 안 되는 일을 왜 하는 건지 등등 공감을 잘 못 하더라고요. 예전에 금속노조 유성기업지회 활동가 심리치유를 한 적이 있어요. 근데 서울에서 유성기업까지 가는 길이 두 시간 반이 걸려서 왔다갔다하기가 너무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잠시 동안만 지역에 있는 상담사를 찾아가는 게 어떠냐고 권유를 했었어요. 그래서 지역에서 상담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거기 다녀온 활동가들이 ‘상담사들이 말귀를 못 알아먹는다’고 하더라고요. 말을 이해를 못 하는 건 아닌데 왜 그들이 투쟁하는지 공감을 못 하는 문제가 생기더라고요. 우리는 다르게 접근을 하죠. 그들이 투쟁해야 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얼마나 폭력적인가, 그리고 그 폭력에 노출되면 마음이 얼마나 망가지는지를 생각하는 상담사가 모여서 상담을 하면 된다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금 통통톡 안에는 주기적으로 교류하는 전문 상담사까지 합하면 20~30명 정도가 있고요. 통통톡 사업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활동가까지 합하면 50명 정도가 함께 활동하고 있습니다.

- 시민사회·노동조합 활동가의 경우 세상을 바꾸는 일에 자발적으로 뛰어드신 분들이 많다 보니 자신들을 치유한다는 것에 대한 인식이 무딘 것 같습니다. 보통 상담을 하면 활동가들이 어떤 이야기를 많이 하시던가요?

처음에는 본인 마음이 약해질 것 같아서 말을 아끼시는 경우가 많아요. 활동가들은 세상을 바꾸고 부조리와 싸우기 위해서 활동하시잖아요? 싸움을 할 때 약한 소리를 하거나 아프다는 소리를 하면 자기 마음이 약해진다고 느끼시는 것 같아요. 특히, 나이 있는 남성 활동가분들이 그런 경우가 많죠. 혹시라도 마음이 약해질까 그걸 외부인에게 표현하는 것도 꺼리시는 거죠. 사실 그렇게 약해진 마음을 보듬어 안으면서 단단해져야 하는데 그걸 외면하고 싶은 마음도 있는 거죠. 그런 모습을 보면 안타깝습니다.

- 최근 ‘활동가 건강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이유가 따로 있을까요?

‘힐링’이라는 말이 유행하고 세상에 퍼진 게 10년 전이에요. 시민사회·노동조합 활동가들에게 힐링이 침투되기까지 10년이 걸린 거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이제 이야기할 때가 된 겁니다. 심리치유가 필요하다는 공감대도 생긴 거고요. 코로나19 터지고 나서는 심리치유 의뢰가 급격히 늘었어요. 저희가 당황스러운 정도에요.

- 12일 중대재해기업처벌법 기자회견에서 ‘왜 책임자 처벌이 치유인가?’라는 제목의 발언을 하셨습니다.

중대재해를 겪으면 트라우마 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이게 다시 재발하지 않을까? 이걸로 인해서 내 삶이 급변하지 않을까? 두려움이 생기는 거죠. 긴장하고 화도 나고 서럽고 온갖 감정을 느끼게 돼요.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어쩔 수 없다’며 포기하시는 분과 ‘왜 이런 일이 생겼지? 세상을 바꿔야겠어’라고 싸우시는 분 이렇게 두 부류로 나뉩니다. 그중에서도 통통톡이 주목하는 건 후자입니다. 세상을 바꾸겠다고 하시는 분들이 시간이 흘러 사회의 벽에 부딪히고 경우가 많아요. 그러다가 우울증에 빠지시고요.

결국 사과, 진상규명, 대책마련 이 세 가지가 핵심이 될 수밖에 없어요. 세 개가 다 어렵다면 이 중에 두 개라도, 아니면 한 개라도 제대로 이루어지면 피해자들이 심리적으로 무너지는 일이 없어요.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외상 후 성장’이라는 걸 경험해요. ‘나와 비슷한 트라우마 상태에 빠진 사람들을 도와야겠다’고 생각하는 거죠. 대표적인 인물이 우리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인 이소선 어머니입니다. 트라우마를 겪은 당사자가 이와 비슷한 노동자들을 내가 안아야겠다고 결심하면서 외상을 통한 성장을 하신 거죠.

트라우마를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위 세 가지를 강제할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가 필요해요. 이 장치가 있으면 사람이 망가지지 않는 거죠. 길을 이상하게 만들어 놓은 사람이 그 길에서 사고당한 사람한테 ‘너는 그 길을 조심히 갔어야지, 왜 사고를 당해? 네 잘못이야’라고 하면 안 돼요. 애초에 길을 잘 만들어놓으면 사고가 나지 않죠. 만약에 사고가 났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곳에서 사고가 났군요. 정말 죄송합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이렇게 해줘야지 트라우마로 이어지지 않아요. 그걸 법적으로 강제했을 때 효과가 훨씬 더 크죠. 그렇게 하면 사람들은 ‘우리가 법률적으로 보호받고 있구나’라고 느껴요. 그리고 법률적으로 보호받는다는 것은 국가로부터 보호받고 있다는 말과 같아요.

- <참여와혁신> 독자들에게 통통톡을 만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세요.

홍윤경 사무국장(010-7502-2767)에게 전화주시면 통통톡의 심리치유 안내를 받으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