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혜의 온기] 착각의 늪
[최은혜의 온기] 착각의 늪
  • 최은혜 기자
  • 승인 2020.08.26 11:06
  • 수정 2020.08.26 11: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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溫記 따뜻한 글. 언제나 따뜻한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 참여와혁신 최은혜 기자 ehchoi@laborplus.co.kr
ⓒ 참여와혁신 최은혜 기자 ehchoi@laborplus.co.kr

최근 코로나19가 수도권을 중심으로 전국에서 다시 확산하고 있다. 올해 2월~3월, 대구·경북을 중심으로 확산했을 때보다 확산 속도가 빠르다는 기사도 쏟아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여권을 중심으로 2차 재난지원금 지급을 위한 4차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25일 밤에 진행된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후보 토론회에서도 2차 재난지원금 지급을 둘러싼 토론이 이어졌다.

2차 재난지원금 지급 논의에서 가장 중요한 지점은 재원마련이다. 이런 상황에서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은 21일, '2차 재난기본소득을 위해 공무원 월급을 삭감합시다'라는 제목의 글을 자신의 SNS 계정에 올렸다. “국가적 위기 상황에도 국회와 정부의 공무원, 공공기관 근로자의 월급은 그야말로 ‘1’도 줄지 않았다”며 “고통분담을 통해 위기를 함께 극복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렇기에 2차 재난지원금 지급을 위해서 9월부터 12월까지 4개월간 공무원 임금의 20%를 삭감하자고 제안했다.

반응은 뜨거웠다. “왜 박봉의 공무원 임금을 삭감하느냐”, “국회의원 임금 먼저 삭감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등의 댓글이 이어졌다. 그러자 조정훈 의원은 다음날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사회 공동체가 조금씩 양보하고 희생하는 행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일용직 노동자, 플랫폼 노동자, 자영업자 등 세금을 내고 싶어도 수입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 모두가 조금씩 나눠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그 시작이 정치권과 공공부문이 돼야 하며 앞서 언급한 20%는 정부와 공공기관 전체를 기준으로 한 것이고 고위직과 하위직의 분담 정도에 차이를 두는 것은 당연하다고 한 발 물러서기도 했다.

25일, 양대 공무원노조인 전국공무원노조와 공노총은 성명을 통해 조정훈 의원을 비판했다. 공무원노동계는 “하위직 공무원노동자가 한 달 월급으로 어떻게 가족을 부양하고, 얼마나 힘들게 삶을 꾸려가고 있는지 살펴본 적이 있느냐”면서 “공무원 임금삭감은 공무원 노동의 가치, 재난상황의 국가의 역할을 무시하는 동시에 민간부문 노동자들에게도 임금삭감 압박수단으로 악용될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동안 공무원은 늘 개혁의 대상으로 취급받았다. 우리 사회는 공무원을 “매일 칼퇴근하면서 내 세금으로 월급을 받는 집단”으로 바라봤고, 공무원연금은 세금을 축내는 ‘밑 빠진 독’이었다. 그러나 이번 코로나19를 겪으면서 공무원이 우리 사회에서 얼마나 많은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지가 새삼 드러났다. 그래서 참여와혁신은 코로나19 위기 상황에서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해온 공무원노동자들을 만나보는 기획시리즈 취재를 어제부터 시작했다.

사실 이런 전제도 필요 없는 일이다. 공무원이 감염병 위기 상황에서 공적 역할이 크니까 임금을 삭감하는 것은 안 된다고 이유를 댈 필요도 없다. 공무원도 노동자이기 때문에 해당 주장의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이다. 공무원의 임금은 공무원노동자가 자신의 노동의 대가로 받는 것이다. 2차 재난지원금 재원마련을 위해 공무원 임금을 삭감하자는 주장은 ‘착각의 늪’에 빠진 주장일 뿐이라고 확신한다. 공무원 임금삭감은 공무원노동계가 지적한 것처럼 공적 영역에서 노동의 가치를 평가절하 하는 일임과 동시에 모범 사용자의 역할을 해야 하는 국가에게 제 역할을 하지 말라고 하는 억지에 불과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코로나19로 곤경에 빠진 많은 이들을 위해서 2차 재난지원금을 지급하겠다는 발상은 환영할 일이다. 1차 재난지원금의 효과가 여러 통계에서 입증되고 있고, 실제로 코로나19를 이유로 임금감소가 없었던 나 역시 재난지원금으로 숨통이 트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수의 숨통을 틔우기 위해 누군가의 목을 조르는 일은 없어야 한다. 아랫돌을 빼서 윗돌을 괴는 것은 지속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지금 해야 할 일은 누군가의 목을 조르지 않고 모두의 숨통을 틔우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