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와 미래환경에 대비한 노동조합의 역할(1)
기후변화와 미래환경에 대비한 노동조합의 역할(1)
  • 참여와혁신
  • 승인 2020.10.10 00:00
  • 수정 2020.10.08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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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권재석 전국공공산업노동조합연맹 상임부위원장
권재석 전국공공산업노동조합연맹 상임부위원장 kwonjs@ex.co.kr
권재석 전국공공산업노동조합연맹 상임부위원장 kwonjs@ex.co.kr

기후변화는 새로운 것이 아닌 일상이 됐다

지구온난화로 올해 우리나라에서는 54일 간의 기록적인 장마가 지속됐다. 연이은 태풍으로 인한 인명피해, 농작물 및 시설물피해 역시 심각한 수준이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중국 역시 집중호우로 수천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고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서는 산불로 서울 면적의 23배에 해당하는 땅이 탔다. 이상기후로 인한 환경변화는 예측하기 어렵고 매년 새로운 기록을 써내려가고 있다.

지구온난화가 야기한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산업혁명 이전 대비 전 지구 온도 1.5℃ 상승을 억제해야 한다. IPCC(UN 산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는 이를 위해 전 세계가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45% 줄이고, 205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 제로달성을 권고했다.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이 중요하고 시급한 과제인 것은 알고 있지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기후위기는 전체 산업을 포함해 우리 일상생활에 아주 복잡하게 얽혀 있다. 이 복잡한 실타래를 풀지 않으면, 기후위기로 인해 우리의 삶의 질은 떨어질 것이다. 특히 기후위기는 취약계층과 노동자에게 더 심각한 피해를 야기할 것이다. 일자리 감소와 해고로 인한 생존권까지 위협받을 수 있다. 우리 후대에 큰 재앙을 물려줄 수도 있다.

기후변화협약은 강제성이 부족하고
정부 정책은 지속가능하지 않았다

UN은 1992년, 기후 변화에 관한 유엔 기본 협약(기후변화협약)을 채택했다. 1997년에는 후속합의인 기후 변화에 관한 국제 연합 규약의 교토 의정서(교토 의정서)를 통해 선진국에 대해 법적 구속력을 가진 온실가스 감축을 결정했다. 그러나 미국이 비준을 거부했다. 개발도상국 역시 온실가스배출규제를 받지 않았으며 이후에도 구속력 있는 협정 도달에 실패했다.

2012년 ILO(국제노동기구)는 제102차 총회에서 ‘녹색 100주년 기획’을 제안했다. 가이 라이더 ILO 사무총장은 2017년 제106차 총회에서 그간의 논의를 종합해 ‘변화하는 기후 속에서의 노동 : 그린 이니셔티브(Work in a changing climate: The Green Initiative)’라는 보고서를 제출했다. 가이 라이더 사무총장은 해당 보고서를 통해 기후변화가 노동에 미치는 영향 및 기후변화 대응을 통한 기회를 논의하면서 정의로운 전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우리나라의 에너지·기후 정책은 이명박 정부에서 2010년에 제정한 ‘저탄소녹색성장기본법’을 근거로 한다. 이 법에 따라 각 분야에서 다양한 에너지·기후 정책 관련 계획이 마련됐다. 그러나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기후 정책은 변화했지만, 지속되지는 못했다.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이명박 정부는 4대강 사업을, 박근혜 정부는 창조경제를 공약으로 내세웠지만, 이러한 정책은 고용변화에 대한 세밀한 검토 없이 추진됐다.

문재인 정부는 탈원전을 공약으로 내세우고 공론화 과정을 거쳤다. 그러나 전 국민의 공감대를 얻지는 못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코로나19로 인한 경기침체 극복과 구조적인 대전환을 위해 올해 7월, 한국판 뉴딜을 발표했다. 고용안전망 강화를 바탕으로 한 디지털 뉴딜과 그린 뉴딜을 주요 정책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일자리와 관련된 정의로운 전환 부분에 있어서는 과제로 남았다는 평가다.

한국노총, 기후변화대응에
국제사회와 정부의 역할을 요구하다

한국노총은 2011년 미래전략보고서에서 지구온난화를 21세기 인류가 직면한 가장 큰 위협이자 국가를 초월해 해결해야 하는 지구적 문제로 인식하기로 했다. 또 ‘친환경 녹색’을 사회개혁 7대목표 중 하나로 선정하기도 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정부와 자본 차원에서 진행하고 있는 기후변화대책에 적극 개입해 친환경 대체고용 요구 및 이에 수반되는 보상, 교육, 재훈련 프로그램 마련 ▲제조업 중심의 고용 및 성장구조를 그린산업으로 전환하기 위한 유도방법, 전문인력 육성, 기술개발, 촉진지원 등 구체적인 대안을 시급히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명시했다.

2017년 김주영 당시 한국노총 위원장이 제106차 ILO(국제노동기구) 총회에 참석해 연설하고 있다. ⓒ 한국노총
2017년 김주영 당시 한국노총 위원장이 제106차 ILO(국제노동기구) 총회에 참석해 연설하고 있다. ⓒ 한국노총

2017년 6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제106차 ILO총회에 참석한 김주영 당시 한국노총 위원장은 ‘그린 이니셔티브-기후변화와 노동’에 대해 연설했다. 김주영 당시 위원장은 “기후변화는 노동자에게 피해를 집중시킬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정의로운 전환을 위해서는 항상 노동이 중심에 있어야 한다”며 “열악한 노동자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기후변화 정책수립에 노동조합이 동등한 발언을 갖고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12월에는 ‘20-30년 중장기 전망 및 한국노총 정책방향과 과제’를 통해 기후위기에 대한 국가대응 체계구축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를 위해 기후위기 대응 국가 거버넌스 구축과 산업·일자리 정책 강화, 지원체계 마련 등을 제시하기도 했다.

기후변화 대응에 대한
패러다임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한국노총이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중장기 차원의 정책 방향과 실천과제를 제시했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지금까지 정부는 기후변화정책 수립과정에서 사회적인 공감대를 이끌어내지 못했고 정의로운 전환에 대한 노동계와의 대화채널 역시 만들지 못했다. 한국노총 역시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국가차원의 대응체계 구축을 요구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노동조합 조직률이 10%에 불과하기 때문에 한국노총은 90%에 달하는 미조직 노동자의 고용 및 사회안전망을 대변해야 한다. 한국노총은 문재인 대통령이 노동존중사회 실현을 위해 공약한 ILO 기본협약 비준, 최저임금 1만 원 달성, 노동악법 철폐 등을 위한 협상과 투쟁을 지속해오고 있다. 특히 올해는 코로나19로 어려움에 직면한 취약계층 노동자의 고용안정과 사회 이중구조 개선을 위해 매진하고 있다. ‘먹고사는 문제’라는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는 것이 시급하기 때문에 노동조합에서 기후변화에 대응할 시간과 인력은 절대적으로 부족한 실정이다.

그러나 기후변화로 인해 산업 환경에서의 급격한 변화가 예측된다. 정부의 기후변화정책에 대한 대전환과 노동계의 역할이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기후변화 대응방안에 대한 몇 가지 제안

첫째, 법정 사회적 대화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내에 기후변화 대응협의체를 구성해야 한다. 이 대응협의체에는 전문가와 이해당사자 모두가 참여해야 한다. 기후변화에 대한 과제를 논의하고 구체적인 실천방안을 함께 만들어야 한다. 지금까지 노·사·정은 몇 차례의 합의안을 도출해냈지만, 기후변화에 대한 합의안을 도출해낸 적은 없다.

2018년 새롭게 출범한 경사노위는 노동문제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회적 의제를 다루기로 했다. 단기간의 처방이 아닌, 100년 후를 내다보며 후손들에게 건강한 지구와 안정된 일자리를 물려주기 위해 기후변화대응에 대한 대타협이 필요하다. 노동자는 여기에서 당연히 주체로 참여해야 한다.

둘째, 고용영향평가제도를 강화해야 한다. 4차 산업혁명 못지않게 기후변화로 인한 산업 환경의 변화는 일자리와 고용형태의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2011년부터 우리나라는 고용에 미치는 영향이 큰 법·제도·규제개선정책·주요 재정지출 사업에 대해 의무적으로 고용영향평가를 하도록 하고 있다. 따라서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정부 정책에 대해서는 고용영향평가를 강화해 정의로운 전환이 될 수 있도록 정책 시행 전에 충분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방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중요한 사회적 현안을 대응할 때 정부가 정책을 수립하고 경영계와 노동계가 이행하는 Top-Down방식을 사용했다. 그러나 기후변화와 환경에 대한 문제는 국민 인식전환과 자발적인 실천이 병행돼야 한다. CO₂ 감소를 위해서는 국민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노동계를 비롯한 이해당사자와 기후변화 및 환경에 대한 거버넌스를 구축해야 한다.

기후변화는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기후변화로 인한 산업체계 개편은 일자리와 고용형태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누구 하나의 문제가 아닌, 노동을 하고 있는 모두의 문제이자 과제다. 인인유책(人人有責)은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는 뜻이다. 공동의 문제에 대해 누군가 해줄 것이라 믿고 방관해서는 안 된다. 기후변화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모두의 중대한 과제다. 기후변화 대응이 정의로운 전환이 되기 위해서는 노동조합, 노동자의 역할이 중요한 때다.

정의로운 전환 : 어떤 지역이나 업종에서 급속한 산업구조 변화가 일어나게 될 때 그 과정과 결과가 모두 정의로워야 한다는 개념을 말한다. 유해하거나 지속가능하지 않은 산업과 공정을 친환경적으로 전환하면서 이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경제적·사회적 희생이나 지역사회의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교육훈련과 재정적 지원을 보장한다는 원칙, 그리고 이를 뒷받침할 일련의 정책프로그램을 말하기도 한다.

2010년 국제노총 제2차 총회에서는 ‘정의로운 전환’이 기후변화에 맞서 싸우는 특별한 접근이라고 선언했다. 현재 국제노총을 비롯한 세계 여러 노동조합이 이를 채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