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와 환경변화에 대비한 노동조합의 역할(2)
기후와 환경변화에 대비한 노동조합의 역할(2)
  • 참여와혁신
  • 승인 2020.12.10 00:19
  • 수정 2020.12.10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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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권재석 전국공공산업노동조합연맹 상임부위원장
권재석 전국공공산업노동조합연맹 상임부위원장 kwonjs@ex.co.kr
권재석 공공노련 상임부위원장
kwonjs@ex.co.kr

우리는 각자의 위치에서
환경운동을 하고 있다

20년 전의 일이 생각난다. 그 당시 나는 ○○고속도로 건설현장 본부에서 품질관리부서 감독으로 근무했다. 고속도로 건설은 용지보상, 공정관리, 품질관리가 중요한 공정이다. 본부 품질관리부서에서는 품질관리 점검계획을 수립하여 매 분기 현장 점검을 통해 공사시방서·도면과 다르게 시공한 부분에 대해서 재시공, 보완 등의 지적과 함께 부실벌점을 부여했다. 부실벌점을 받은 시공사 및 협력업체는 공사입찰 자격이 제한되었고 현장 책임자는 대기발령, 임금삭감 등의 처벌을 받았다. 강화된 환경영향평가에 따라 품질관리부서에서 환경관리도 맡아 분기마다 환경점검을 하게 됐다. 당시만 해도 시공사 및 협력업체에는 환경담당자가 없었고 환경영향평가에 대한 이해 역시 부족했다. 초기 단계는 강한 처벌보다 환경에 대한 인식개선 및 재발 방지를 위한 지도와 예방이 필요했다. 환경관리는 수질, 폐기물, 대기 질(비산먼지) 등을 확인해야 하므로 건설 현장과 현장 진·출입로, 인근 하천, 장비 주기장까지 도보로 점검했다. 점검을 마치면 지적사항에 대해 시공사, 협력업체 그리고 장비 기사들까지 불러서 환경관리교육을 했다. 예방 차원의 환경관리를 위해, 환경지적사항을 감면하는 조건으로 지역 환경운동연합을 후원하도록 했다. 후원회에 가입하면 환경운동연합에서 제공하는 월간지를 받아볼 수 있고 현장에서 환경에 대한 인식을 바꿀 수 있는 계기가 되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환경문제에 대한 노동조합의 역할은 어디까지인가?

노동조합은 ‘노동자가 주체가 되어 자주적으로 단결하여 근로조건의 유지·개선과 노동자의 경제적·사회적 지위의 향상을 도모함을 목적으로 조직하는 단체 또는 그 연합단체’를 말한다. 노동단체의 역할과 단체협약의 범위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과 조례에 규범적 근로조건으로 명시돼 있다. 근로자참여 및 협력증진에 관한 법률(근참법)에는 노사협의회가 안전, 보건, 그 밖의 작업환경 개선과 노동자의 건강증진을 협의하게 돼 있다.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에는 사업장의 안전 및 보건에 관한 주요한 사항을 심의·의결하기 위해 근로자위원과 사용자위원이 같은 수로 구성되는 산업안전보건위원회를 구성·운영하도록 하고 있다. 산업안전보건위원회에서는 작업환경 측정 등 작업환경의 점검 및 개선사항도 포함돼 있다. 환경에 관련된 사항 중 근로조건 및 근로환경에 밀접하게 관련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단체교섭을 요구할 수 있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의 《미래전략보고서》(2001)를 보면 미래노동사회비전은 “노동이 존중되는 평등복지 통일국가”다. 기후변화를 주요한 환경변화로 인식해 7대 목표에는 ‘녹색공동체’가 포함됐다. 최근 들어 USR(Union Social Responsibility, 노동조합의 사회적 책임)이 활성화되면서 노동조합의 역할이 노동자를 대변하는 이익단체를 넘어, 사회적 변화의 중요한 구심점으로 확장되고 있다. 내가 속해있는 전국공공산업노동조합연맹의 5대 전략목표에는 ‘새로운 노동운동과 사회공공성 강화’가 있다. 현재 노동단체에서 환경에 대한 정책은 선언적이거나 미래 노동에 미치는 영향분석 정도다. 그러나 노조법 제정의 목적이 “산업평화의 유지와 국민경제 발전에 이바지한다”는 것임을 고려할 때, 노동조합은 일자리와 고용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는 기후와 환경변화에 대해서도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노동단체는 이제 이익단체를 넘어 사회적 책임과 역할을 해야 하는 시대적 사명이 있다는 의미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제 1조 【목적】 이 법은 헌법에 의한 근로자의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보장하여 근로조건의 유지·개선과 근로자의 경제적·사회적 지위의 향상을 도모하고, 노동관계를 공정하게 조정하여 노동쟁의를 예방·해결함으로써 산업평화의 유지와 국민경제의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기후변화는 노동과 가장 직결된 문제지만
철저히 배제되고 있다

많은 학자가 멀지 않은 장래에는 기후와 환경변화가 4차 산업혁명과 코로나19와 같은 질환보다 더 심각하게 고용에 영향을 미치리라 예측한다. 코로나19도 기후와 환경변화의 결과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기후변화는 경기 악화, 고용불안, 기후난민, 식량, 자원 문제 등 모든분야에 영향을 미친다. 기후변화는 지역과 국경을 초월하는 전 지구적 담론이다. 기후변화 대응의 핵심은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에너지 전환 정책으로, 발전사의 노동자들은 미래에 대한 고용불안을 겪고 있다. 기후변화에 대응하고 이산화탄소(CO₂) 저감에 대한 국제적인 압박과 규제가 시행되면 모든 산업이 영향을 받을 것이다. 친환경 자동차가 상용화된다면 자동차 생산 및 부품 산업과 해당 서비스 산업에서의 종사자들은 일자리를 잃고 고용불안에 직면할 것이다.

2019년 4월 출범한 대통령 직속 범국가기구인 국가기후환경회의는 미세먼지 문제에 대한 범국가적 대책 마련을 위해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하고 마련한 대책을 정부에 제안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 회의는 해당 정부 부처와 각계각층의 인사들이 위원으로 참가하고 있지만, 미세먼지에 국한돼 있다. 2007년 발족한 국회 기후변화포럼은 기후변화 거버넌스를 실현하기 위해 국회, 정부, 산업체, 시민, 학계 등 각계 전문가 200명으로 운영되고 있다.

최근 발표된 한국판 그린뉴딜은 ‘급격한 온실가스 감축’ 등 주요목표가 불분명하고 ‘정의로운 전환’의 검토 역시 미흡하다. 기후와 환경변화에 가장 영향을 많이 받는 노동자는 정책 결정 과정에서 배제돼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 정부와 국회만 탓할 수는 없다. 노동조합 스스로 조합원의 일자리와 미래 환경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고 그것을 노동조합의 정책과 사업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기후변화로 인한 ‘정의로운 전환’에 대한
논의가 시급하다

2018년 말 노동조합의 전체 조합원 수는 233만 명이며 전체 노동조합 조직률(조합원 수를 노조 가입이 가능한 노동자 수로 나눠 나온 수치)은 11.8%이다. 현재의 노동조합은 가입하지 않은 90%를 대신해 그들의 고용과 근로환경을 향상시켜야 한다. 한국의 노동단체는 크게 3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산별노조가 모인 총연맹, 기업별 노조가 모인 산업별노동조합(산별), 기업별 노조(단위노조, 직장협의회)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의 경우, 매년 2월 전국대의원대회를 통해 사업계획을 확정·추진하고 각종 정부위원회에 참가해 주요 사회적 아젠다를 논의하고 결정한다. 산별은 대의원대회를 통해 사업을 확정하고, 주요 산업정책에 대해 정부와의 간담회를 통해 노동계의 입장을 건의하고 있다. 단위노조(또는 직장협의회)에서도 노동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사안에 대해서는 단체협약과 노사협의회를 통해 협의하고 있다. 노동조합은 한국에서 가장 큰 단체로서 조직별 결의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수 있는 특성이 있다. 총연맹, 산별, 단위노조(또는 직장협의회)는 각자의 위치에서 기후와 환경변화에 대한 역할이 필요하다.

총연맹은 기후와 환경변화로 인한 고용불안을 해소하고 ‘정의로운 전환’을 만들기 위한 사회적 합의와 제도개선에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또한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조직개편과 사업을 만들어야 한다. 2018년 11월 발족한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에서는 일자리와 노동문제를 넘어 산업과 경제, 복지 등 사회정책으로의 대화의 범위를 확장하기로 했다. 의제별 위원회, 업종별 위원회, 특별위원회, 계층별 위원회가 운영되고 있지만, 기후와 환경변화로 인한 ‘정의로운 전환’과 관련한 위원회는 없다. 경사노위 본위원회에서 ‘기후와 환경변화 대응 정의로운 전환 위원회(가칭)’ 신설을 논의하고 만들어야 한다. 근참법과 산안법 개정을 통해 사업장 내에서 기후와 환경변화에 따른 대응이 노사협의회와 산업안전보건위원회 안건으로 포함되도록 해야 한다. 또한 기후변화와 환경담당 직제를 신설하고 정책개발 및 교육 훈련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아울러 기후와 환경변화가 일자리와 노동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고 대응해야 한다.

우리나라 산별은 외국의 산별에 비해 산업별 현안 발생 시 대응 능력이 부족하다. 산별이라고는 하나 무늬만 산별이고 같은 업종에 중복되는 산별이 있어 조직 규모가 작고 정책 역량 역시 부족하다. 대부분의 산별에서 예산의 한계로 인해 사업계획에 기후와 환경변화에 대비한 조사연구 또는 대응을 위한 용역을 포함하기 어렵다. 따라서 같은 업종의 산별들이 기후변화로 인한 ‘정의로운 전환’에 대한 대응을 공동으로 해야 한다. 업종별로 산별들이 공동 TF를 구성하고 기후와 환경변화에 대한 연구용역이 필요하다. 또한, 산별의 회의와 간부교육에는 기후와 환경 관련 전문가를 초빙해 인식 제고를 위한 지속적인 교육을 시행해야 한다. 아울러 기후와 환경 관련 시민사회와 교류 및 협력을 통해 앞으로 있을 ‘정의로운 전환’ 관련 거버넌스 구축과 법·제도 개선에 우호적인 분위기를 형성하는 것도 필요하다.

내가 속해있는 한국노총 전국공공산업노동조합연맹에는 기후변화에 따른 CO₂ 감소정책에 직·간접인 영향을 받는 발전사 및 협력업체 노동자가 있다. 2021년 9년차 사업계획에 기후변화에 따른 ‘정의로운 전환’에 대한 인식 제고와 대응을 위해 연구용역 및 토론회를 계획하고 예산을 반영했다. 또한 사회연대위원회를 발족해 외부시민단체와의 교류와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단위노조(또는 직장협의회)는 그동안 USR 차원으로 지역사회와 함께 환경보호 활동을 전개해 왔다. 행사 시 기념품은 텀블러와 에코백 등 환경 용품으로 대체하고, 환경보호 캠페인 등을 해왔다. 이제는 수동적인 역할에서 벗어나 노사 간의 협약과 전 직원의 실천 활동 등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지구를 살리고 환경을 보호하는 실천 활동은 가장 작은 단위에서 가장 잘 할 수 있다. 노사가 함께할 수 있는 실천과제를 선정하고 우수사례에 대해서는 포상과 홍보로 활성화해야 한다. 지역에 있는 시민단체와 교류를 통한 공동대응 역시 필요하다.

기후와 환경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실천과제(예시)

개인 차원 : 대중교통 이용, 친환경 자동차 운전, 플라스틱 줄이기 등

가정 차원 : 채식 생활화, 일회용품 사용 금지, 분리수거, 친환경 제품 사용, 에코백 사용, 음식물쓰레기 줄이기, 실내온도 1℃ 줄이기, 용기 재활용 등

사무실 차원 : 전등 끄기, 텀블러 사용, 재활용 용지 사용, 양면 복사, 모아찍기, 이면지 사용, 전자결재, e-mail 장려 등

회사 차원 : 환경인증업체 계약 및 구매, 기후와 환경 관련 지침마련, 포상제도 마련 등

지금부터 기후와 환경변화 대응을 위해 실천하자!

지구는 살아있는 거대한 생명체다. 기후변화는 지구가 아프므로 발생하는 현상이다. 그동안 인간은 자신이 좀 더 편안해지기 위해 자연을 무분별하게 파괴하고 방치했다. 죽어가는 지구를 적기에 치료하지 않으면 그 결과는 고스란히 인간에게 돌아온다. 사람도 피곤하고 아프면 몸에서 신호를 주는데, 그 신호를 무시하면 큰 병을 얻고 결국은 회복하지 못한다. 지구도 마찬가지다. 기후와 환경변화는 지구가 인간의 변화를 요구하는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

아일랜드의 극작가 겸 소설가인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의 묘비명에는 “내 인생, 우물쭈물하다가 이렇게 끝날 줄 알았다(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고 적혀 있다. ‘무엇이든 지금 당장 하라’, ‘당장 실천하고 그 목표를 향해 걸어가라’는 뜻이다.

기후변화 대응은 범국민적인 참여와 실천이 있을 때 가능하다. 기후변화에 가장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노동자가, 노동단체가 ‘정의로운 전환’을 위해 이제 각자의 위치에서 앞장서야 한다. 노동조합의 새로운 역할과 사회적 가치실현을 다시 한번 명심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