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빛PD 4주기..."활활 타오르지 않아도 따듯한 온기 지녀"
이한빛PD 4주기..."활활 타오르지 않아도 따듯한 온기 지녀"
  • 백승윤 기자
  • 승인 2020.10.25 16:39
  • 수정 2020.10.25 16: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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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이한빛 미디어노동인권상'에 고 이재학PD와 유지은 아나운서
이용관 이사장 "한빛센터가 손 잡아줘야 할분들 너무 많아, 더 많은 도움 필요"
24일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에서 열린 이한빛 PD 4주기 추모제 ⓒ 참여와혁신 백승윤 기자 sybaik@laborplus.co.kr
24일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에서 열린 이한빛 PD 4주기 추모제 ⓒ 참여와혁신 백승윤 기자 sybaik@laborplus.co.kr

열악한 방송 노동 환경에 맞서다 세상을 떠난 고 이한빛PD를 기리기 위한 4주기 추모제 '한빛의 친구들'이 24일 서울 마포구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에서 열렸다. 

고 이한빛PD는 2016년 CJ ENM의 채널 tvN에 입사했다. 과중한 업무와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 목소리를 냈다는 이유로 직장 내에서 따돌림을 당했고, 2016년 10월 26일 세상을 떠났다.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는 고인의 뜻을 이어가기 위해 2018년 1월 출범했다. 이후 미디어 노동자 권익 향상을 위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고 이한빛PD의 아버지인 이용관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이사장은 "이곳 상암동 DMC에 오면 어디선가 한빛이 '아빠!'하고 튀어나올 것 같은 환상에 빠지곤 한다. 그러나 저는 지난 3년간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에 아픔을 감내하면서 열심히 활동했다. 그래서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가 미디어 노동자의 노동인권 지킴이로서 자리 잡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온전히 한빛의 친구가 되어준 수많은 분의 지원과 응원 덕분이었다"며 함께 해준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을 전했다.

아울러 방송계 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더 많은 도움이 있길 바란다고 전했다. 이용관 이사장은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가 손을 잡아줘야 할 분들이 너무 많은데, 솔직히 말씀드려서 지금 후원 회원 수준으로는 한 명 활동가의 인건비만 충당할 수 있을 정도"라며 "지금 소원은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가 재정적으로 자활해서 안정적 운영이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더 많은 분이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의 후원자가 되어주시길 간곡히 부탁한다"고 전했다.

추모제에서는 '제1회 이한빛 미디어노동인권상 시상식'과 '방송현장 개선 우수사례 공모전 시상식'이 진행됐다.

'제1회 이한빛 미디어노동인권상'은 CJB청주방송 고 이재학PD와 유지은 대전MBC 아나운서가 공동 수상했다. 고 이재학PD는 열악한 CJB청주방송 비정규 노동자의 현실을 알리기 위해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을 냈지만, 사측의 방해와 압박으로 1심 재판에서 패소한 후 억울하다는 유서를 남기고 사망했다. 유지은 아나운서는 정규직 아나운서 중 여성의 비율이 유독 낮은 대전MBC의 현실을 고발하며 ‘채용 성차별’을 공론화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고 이재학PD 동생 이대로 씨와 유지은 대전MBC 아나운서가 '이한빛 미디어노동인권상' 수상 소감을 말하고 있다.  ⓒ 참여와혁신 백승윤 기자 sybaik@laborplus.co.kr
고 이재학PD 동생 이대로 씨와 유지은 대전MBC 아나운서가 '이한빛 미디어노동인권상' 수상 소감을 말하고 있다. ⓒ 참여와혁신 백승윤 기자 sybaik@laborplus.co.kr

고 이재학PD의 대리 수상자로 나선 동생 이대로 씨는 "(이재학PD는) 동생이 봐왔던 형 이재학보다는 강인하고 멋진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또 "(사태를 방관한) 동료들이 솔직히 이해는 안 된다”면서도 "앞으로 형 이재학PD와 이한빛PD의 뜻을 잘 이어가고 방송현장을 개선하라는 뜻으로 알고 여기 계신 분들보다 앞장서서 함께 하겠다"는 심정을 밝혔다.

유지은 대전MBC 아나운서는 "어떻게 싸움을 이어가고 버텨야 하는지 힘들어하던 상황에서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의 문을 두드렸는데 다행히 손을 잡아주셨고 이야기를 잘 들어주셨다"며 고마움을 전했다. 또 "함께 목소리 내주신 분들이 받는 상이라는 생각이 든다"며 "부당함에 당하고 계신 분들이 많다는 걸 잊지 않고 더 겸손하게 활동하겠다"는 수상 소감을 밝혔다. '무늬만 프리랜서'인 유지은 아나운서는 11월 초에 정규직으로 전환될 예정이다. 앞서 국가인권위원회는 유지은 아나운서를 다른 정규직 아나운서와 다름 없는 대전MBC 소속 노동자로 보아야 한다며 정규직 전환을 권고한 바 있다.

'방송현장 개선 우수사례 공모전’은 영상과 수기 두 부문으로 나뉘어 시상식을 진행했다. 영상부문에선 대구MBC 비정규직 노동조합 다온분회가 대상을, 드라마스태프 조명팀에서 일한 전승현 씨가 우수상을 받았다. 수기 부문 대상은 수습 3개월간 해고부터 복직까지 이야기를 다룬 댕댕이(필명), 최우수상은 고아영과 붉은달(필명), 우수상은 방청 및 엑스트라 아르바이트 이야기를 쓴 김민경 씨가 수상했다. 

이날 추모제에서는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의 도움을 받은 방송계 노동자들과 후원자, 연대 활동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추모 발언을 이어갔다.

현장에서 경험한 여러 부조리를 알린 김하나 노동자는 "뒤통수를 툭툭 치거나 듣고 싶지 않은 음담패설 등 문제를 지적하면 예민한 사람으로 취급받는다. 그런 현실에 괴로워하다가 목소리 내기를 멈추는 일이 더 많을 것 같다"며 "좋은 게 좋은 거니까, 관행이니까, 그리고 괜찮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없었다면 현장의 문제는 좀 더 빠르게 해결됐을 것이다. 4주기를 맞이해서 제보자를 비난하는 사람, 가해자를 옹호하는 사람, 방관하는 사람도 자신을 돌아보시길 바란다"고 지적했다.

이채은 청년유니온 위원장은 "이한빛PD의 사건은 다른 어떤 사건보다 사람들에게 많은 반향을 일으켰다고 본다"며 "여느 투쟁처럼 활활 타오르지는 않더라도 따듯한 온기를 가지고 있다. 그 온기가 식지 않도록 항상 품겠다"고 말했다.

오정훈 언론노조 위원장은 "이한빛PD가 돌아가신지 4년이 지났지만 방송현장에서 비정규직이 고통 받고 있는 상황이 크게 개선되지는 않고 있다”며 “이한빛PD의 뜻을 이어받아 비정규직과 노조 미조직 사업장 조직화에 힘껏 나서겠다"고 전했다.

4주기 추모제는 김정희 국악 작곡가가 지은 이한빛 추모가 '한 줄기 빛처럼'과 가수 시와의 노래 공연으로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