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실상부 택배산업 산별노조로 거듭난다”
“명실상부 택배산업 산별노조로 거듭난다”
  • 정다솜 기자
  • 승인 2020.12.24 13:30
  • 수정 2020.12.24 17: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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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김태완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 위원장
“5만 택배노동자의 10% 조직률 달성”

택배연대노조와 택배노조가 조직을 통합했다. 두 노조는 22~23일 조합원 총투표를 통해 합병을 결정했다. 상급단체가 없던 택배노조가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택배연대노조로 결합하면서 조직 규모가 5,000명을 넘어섰다. 이제 택배연대노조는 전체 택배노동자 5만 명 중 10%의 조직률을 갖춘 노조로 거듭났다.

“더 많은 택배노동자들이 용기 내서 노동조합과 함께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밝힌 김태완 택배연대노조 위원장을 만나 조직 통합의 배경과 의미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 올해 택배노동자 과로사 투쟁, 택배법 제정, 택배사와 교섭 등 현안도 함께 물어봤다. 인터뷰는 지난 22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택배연대노조 사무실에서 진행했다. 

김태완 택배연대노조 위원장 ⓒ 참여와혁신 강민석 기자 mskang@laborplus.co.kr
김태완 택배연대노조 위원장 ⓒ 참여와혁신 강민석 기자 mskang@laborplus.co.kr

“전 택배사 아우르는 산별노조 돼”

- 택배연대노조와 택배노조가 조직 통합을 결정한 배경은? 

노동조합은 단결한 만큼 힘을 발휘한다는 당위가 컸다. 특히 올해 택배노동자 과로사 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되면서 하루빨리 더 많은 택배노동자들이 단결해야 한다는 데 상호 공감이 있었다. 

- 두 노조의 조직 통합 결정까지 어떤 장면들이 있었나? 

2018년 택배연대노조가 CJ대한통운과 본격적으로 교섭 투쟁을 하는 과정에서 택배노조에 공동 투쟁을 제안했다. 택배노조가 이에 화답한 이후 꾸준히 조직 통합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그러다 2019년에 통합 방식 등에서 이견으로 잠시 논의가 중단됐다가 올해 택배노동자 과로사 투쟁을 계기로 전격 추진하게 됐다.

- 조직 통합의 의미는? (*우체국택배 관련 내용은 윤중현 택배연대노조 우체국본부 본부장이 함께 답했다.)

(김태완 위원장) 택배연대노조는 명실상부한 택배산업 산별노조로 거듭나게 된다. 택배연대노조 조합원 약 4,800명에 택배노조 조합원 약 430명을 더하면 5,000명이 넘는다. 전체 5만 택배노동자의 10% 조직률을 달성한 것이다. 특히 택배연대노조엔 우체국택배와 CJ대한통운 조직률이 높은데, 로젠택배 조직률이 높은 택배노조가 함께하면서 전 택배사를 아우르는 산별노조가 됐다.

(윤중현 본부장) 두 노조의 통합이 우체국본부에도 긍정적 영향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 지금 우체국본부는 두 번째 단체협약 체결을 위한 교섭 국면이다. 노조의 힘은 당연히 조합원 수에 영향을 받기에 우체국본부의 교섭력 확보에도 도움될 것이다. 또한 조합원 수가 해당 산업 종사자의 10%를 넘기면 노조 조직률 증가 속도가 빨라지는 경향을 보이는데, 이번에 조직률 10%라는 분기점을 넘겼다는 상징적 의미도 크다.

- 조직 통합 이후 어떤 2021년을 상상해볼 수 있나? 

주목해야 할 건 이번 임시국회에서 처리될 가능성이 높은 택배법(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 이하 생활물류법) 제정과 사회적 대화 과정이다. 이달 초 출범한 택배노동자 과로사를 막기 위한 사회적 합의기구에서는 분류작업 명확화, 작업조건 개선 등에 관한 문제가 다뤄지며, 합의된 내용이 정부 시행령으로 내년 상반기에 들어가게 된다. 이러한 사회적 논의 과정에서 택배연대노조가 더 힘 있게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우체국택배, CJ대한통운, 한진택배와 노조 간 교섭에서 내년 초에는 쟁점이 대부분 정리될 예정이다. 이 과정에서 생활물류법과 사회적 합의 결과를 노사 단협에 반영하려 한다. 하나 된 노조가 내년 상반기에 이 흐름을 잘 만들어나가는 것이 중요한 과제다. 


택배노동자 과로사 투쟁의 성과
“법·제도적 변화의 문 열었다” 

- 올해 택배노동자 과로사 문제가 크게 주목받은 배경엔 노조의 투쟁이 있었다. 

말 그대로 정신없이 달려왔다. 현장 조합원뿐만 아니라 여러 택배노동자들이 자기 권리를 찾기 위해 힘을 모아낸 과정이 기억에 남는다. 무엇보다 국민이 택배노동자들의 투쟁에 호응해준 점도 뜻깊다. 

- 진행 중인 사안이지만 택배노동자 과로사 투쟁의 가장 큰 성과를 꼽자면?

택배노동자의 연이은 과로사 배경엔 분류작업, 택배 거래구조 등 택배산업의 구조적 문제가 있었다. 이런 문제들을 다 짚어내고 택배사의 공식 사과와 과로사 대책 발표, 나아가 사회적 합의기구 출범 등 법·제도적 변화로 이어질 수 있는 문을 연 것이 가장 큰 성과라고 생각한다. 이런 과정을 보면서 택배노동자들이 노조로 단결하면 우리의 권리를 찾을 수 있겠단 확신을 갖게 된 점도 중요한 변화다.

- 남은 과제는?

아직 실무적인 측면이 마무리되지 않았다.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들이 온전하게 만들어질 수 있도록 힘을 쏟는 것이 과제다. 또한 생활물류법이 국회에서 통과되면 법안에서 부족한 내용을 보완하며 법이 개정될 수 있도록 택배연대노조가 이끌어가야 한다. 


생활물류법 제정의 핵심 
“노조의 산업 개입력 확대”

- 지난 6월 재발의된 생활물류법에선 종사자 구분(택배운전종사자, 택배분류종사자)을 통해 분류작업은 택배노동자의 몫이 아니라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런데 10월 수정발의된 법안에는 종사자 구분이 빠지고 택배노동자를 “화물의 집화, 배송 등 업무에 종사하는 사람”으로 정의하는 수준으로 정리됐다. ‘등’에 분류작업 포함 여부를 두고 노사 간 갈등이 지속될 거란 전망도 나온다.

원칙적으로 따지면 동의할 수 없는 내용이지만 택배연대노조가 전략적으로 판단한 부분이다. 중요한 지점은 생활물류법의 존폐였다. 어쨌든 택배사의 동의 없이는 법을 만들 수는 없다. 택배사가 강하게 거부하는 분류작업의 책임 주체 명시 문제를 두고 날을 세워서 법 자체를 몇 년 뒤로 미룰 건지, 아니면 중립적 표현으로 대체해서 일단 법을 만들 건지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노조의 판단은 후자였다. 

다만 분류작업 문제는 택배노동자 과로사 투쟁에서 싸울 문제로 분리했다. 그 결과 지난 10월 CJ대한통운을 비롯해 택배사에 분류인력 투입 대책을 끌어냈다. CJ대한통운 박근희 대표이사는 분류작업에 택배노동자를 투입하지 않고, 분류인력 비용도 택배노동자에게 전가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택배업계에서 분류작업은 택배노동자의 몫이 아니라고 천명한 것으로 봐야 한다. 게다가 사회적 논의기구에서 해당 내용을 다루고 있다. 현시점에서 따지자면 분류작업이 택배노동자의 일이 아니라는 내용을 생활물류법에 반드시 넣는 것이 필수 쟁점이 아니게 된 것이다.

- 택배연대노조가 생활물류법 제정을 서두르는 배경은? 

생활물류법은 노조가 해당 산업에 개입력을 높이는 차원으로 봐야 한다. 택배연대노조는 노동자들이 권리를 주장하고 법의 보호를 받으려면 기본적으로 산업 자체를 양성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고, 해당 산업법을 만드는 과정에 개입했다. 생활물류법은 노동법이 아닌 산업법이다. 그래서 법안에 산업 주체들의 권리와 의무가 최소한으로 담긴 것이다.

김태완 택배연대노조 위원장 ⓒ 참여와혁신 강민석 기자 mskang@laborplus.co.kr
김태완 택배연대노조 위원장 ⓒ 참여와혁신 강민석 기자 mskang@laborplus.co.kr

원청 사용자성 문제, 세 축으로 투쟁
‘노사교섭-사회적 대화-법적 판단’ 

- 올해 4월 <참여와혁신>과 인터뷰에서 “택배노동자의 ‘노동자성’ 판단은 끝났다. 이제 중요한 건 ‘사용자성’ 문제”라고 했다. 올해는 택배사와 교섭해나가는 과정이 핵심이 될 거라고 했는데, CJ대한통운 대리점과 교섭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우리의 요구는 노조 인정, 고용안정, 배송구역 보장, 장시간 노동 근절, 수수료 인상 등이다. 대부분 원청인 택배사가 결정해야 하는 문제라 대리점 차원에서 논의를 진행해도 결론을 내기 어렵다. 그래서 우리가 고민한 것이 사회적 대화 테이블이다. 택배연대노조는 이 테이블에 원청이 들어오게 해서 현장 개입력, 사용자성은 대리점이 아닌 원청에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고자 했다. 지난 7월부터 노조가 요구해온 택배노동자 과로사를 막기 위한 사회적 논의기구에 원청은 결국 들어온 상황이다.

아울러 현재 CJ대한통운 직계약 기사들도 교섭을 진행 중인데, 교섭 결과가 같은 현장에서 일하는 대리점 계약 택배노동자들에게도 적용되도록 투쟁할 계획이다. 원청이 교섭에 나올 의무가 있다는 점을 따지기 위한 법적 다툼도 다른 한 축으로 가져갈 예정이다.


“민간에 영향 미치는 
우체국택배 단협 결과 주목해야“

- 우체국본부의 단체교섭도 진행 중인데. 

(김태완 위원장) 우체국본부의 단협을 주목해야 한다. 우체국이 공공기관이다 보니 민간보다 더 높은 수준에서 이야기가 되고, 그 내용이 다른 택배사에 영향을 준다. 대표적 예가 택배노동자 여름휴가 문제였다. 2019년 초 우체국본부가 처음으로 체결한 단협에는 여름휴가 보장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를 계기로 그해 여름 노조가 민간 택배사 노동자들도 쉴 수 있도록 ‘택배없는 날’ 캠페인을 시작했다. 이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커지면서 올해 택배노동자들이 함께 여름휴가를 보낼 수 있었다. 

(윤중현 본부장) 올해 단체교섭에서 우체국본부의 목적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내용과 형식 측면에서 모두 실질적인 교섭을 하자는 것이다. 2년 전에는 특수고용노동자들의 첫 단협이다 보니 협약 체결 자체가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이번엔 단협에 포함해야 할 노동조건 관련 쟁점이 훨씬 방대한 상황이다. 둘째는 생활물류법과 사회적 합의기구 논의 결과가 단협에 반영되도록 하는 것이다. 택배노동자 처우 개선 관련 공론화 과정을 우체국택배의 단협으로 완성하겠단 뜻이다. 이번 우체국택배 단협이 민간 택배사 교섭에서도 하나의 표본이 되길 바란다.
 

“더 많은 택배노동자가 함께해야” 

- 마지막으로 택배노동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올해 열악한 택배 현장 문제가 크게 주목받아서 택배노동자들도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중요한 건 자신의 권리는 스스로 찾아야 한다는 점이다. 스스로 권리를 찾겠다는 택배노동자들이 노동조합으로 뭉쳤을 때, 보다 실질적이고 효과적으로 현장을 바꿀 수 있다. 그동안 택배 현장에서 자기 권리를 주장하는 일은 해고와 직결되는 문제라 금기시됐다. 이젠 상황이 다르다. 많은 국민이 지켜보고 있고, 전국 곳곳에서 조합원들이 버티고 있다. 더 많은 택배노동자들이 용기 내서 노동조합과 함께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