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가 말하는 2020년, 바라는 2021년
노동자가 말하는 2020년, 바라는 2021년
  • 정다솜 기자
  • 승인 2021.01.05 00:00
  • 수정 2021.02.15 21: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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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2020년은 저물었지만 여전히 투쟁 중인 노동자들이 있습니다. 지난해가 어땠냐고 묻자 한숨을 먼저 내쉬던 이들은 ‘코로나19’라는 단어를 빠짐없이 꺼냈으며, 싸움이 끝나고 하루빨리 일터와 일상으로 돌아가기를 소망했습니다. 노동자들이 말하는 2020년, 바라는 2021년을 들어봤습니다.

 

ⓒ 참여와혁신 정다솜 기자 dsjeong@laborplus.co.kr
ⓒ 참여와혁신 정다솜 기자 dsjeong@laborplus.co.kr

진경호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 집행위원장

2020년
택배노동자 16명이 과로로 숨진 현실 앞에 참담한 마음이다. 이들의 죽음으로 택배노동자의 노동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정부와 택배사들이 여러 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사회적 합의기구 출범 등 유의미한 진전이 있었지만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고 택배현장에선 과로사 대책이 구체적으로 이행되지 못하고 있다. 택배노동자 과로사 문제가 현재 진행 중인 거다. 살아남은 자들이 회한을 느낄 수밖에 없는 한 해였다.

2021년
찔끔찔끔 던져지는, 소나기만 피하자는 식의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을 단호히 거부할 것이다. 죽지 않고 일하는 현장을 만들기 위해 강력한 투쟁을 통해 쟁취하겠다는 결심을 세웠다. 새해 벽두부터 택배노동자들의 불벼락 같은 투쟁이 전개될 것이다.

 

ⓒ 참여와혁신 강민석 기자 mskang@laborplus.co.kr
ⓒ 참여와혁신 강민석 기자 mskang@laborplus.co.kr

박소영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LG트윈타워분회 분회장

2020년
앞만 보고, 뒤돌아볼 수 없는, 투쟁 외에는 생각할 겨를이 없는 한 해였다. 12월 31일자로 통보받은 집단해고는 생계와 직결된 문제이기에 투쟁에만 집중했다. 살림도 엉망이 됐다. 심적으로 너무 불안하고 여유가 없었다.

2021년
올해도 LG트윈타워에서 일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게 가장 큰 바람이다. 말하자면 일터는 내게 생명의 젖줄이다. 나는 친구들과 차 한 잔 마실 시간 없이 일만 하면서 살았으니까 일 외에는 새해 계획이 없다.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박옥경 한국노총 금속노련 성암산업노조 위원장

2020년
하청업체인 성암산업을 분사하고 매각하기로 대기업 포스코와 사측이 결정한 상황에서 노조는 불가항력이었다. 투쟁하는 동안 동지들도 많이 떠났다. 또한 협상을 하다 보니 많은 내용을 문서로 남기기도 하고 구두약속도 했는데 역시 사용자는 구두약속은 지키지 않았다. 노조는 협상 내용을 무조건 문서화해야 한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2018년 촛불집회로 새로운 세상이 탄생한 것처럼 보였지만 노동자가 하루를 살아가려면 투쟁 구호를 외쳐야만, 강한 정신력으로 무장해야만 권리를 지키고 살아남을 수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하게 된 한 해였다.

2021년
올해는 5개로 쪼개진 회사를 8월 1일 전까지 분사 이전으로 되돌리겠다는 사측의 약속이 무탈하게 지켜지길 소망한다. 광양제철소 협력업체 노동자들의 처우도 개선됐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2~3년 정도 임금, 복지가 개선되다가 원위치 된 상황이다. 특히 포스코는 준(準)공기업이나 다름없다.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인 공정임금제 실현이 협력업체들에게도 적용되길 희망한다.

 

ⓒ 참여와혁신 포토DB
ⓒ 참여와혁신 포토DB

박재우 민주노총 금속노조 부산양산지부 대우버스지회 지회장

2020년
악몽 같은 한 해였다. 앞이 깜깜하다. 대우버스 노동자들은 회사가 코로나19를 핑계로 울산공장 폐쇄와 해외공장 이전을 계획한 4월부터 고용불안을 안고 일했고, 지금은 해고자가 됐다. 2020년은 생애 첫 해고자가 된 해이기도 하다. 막막하다.

2021년
고용 재난 상황에서 하루빨리 일터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다. 출근도 하고, 퇴근도 하고 싶다. 일상으로 돌아가 가족과 시간도 많이 보낼 수 있길 바란다.

 

ⓒ 금속노조
ⓒ 금속노조

채붕석 민주노총 금속노조 대구지부 한국게이츠지회 지회장

2020년
힘들었다. 갑작스런 회사의 폐업 통보로 정신없었다. 조합원들뿐 아니라 그 가족까지 힘들었다. 이제 정신을 차리고 보니 공장 폐업은 된 상태고, 새로운 준비를 할 시점이다. 지난 6개월간 투쟁을 평가하고 연대투쟁 등을 통해 다시 투쟁을 확장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2021년
우리 같은 사업장이 안 생기길 바란다. 나아가 갑작스러운 폐업 등으로 노동자들이 쉽게 해고되지 않는 법과 제도가 만들어져야 한다. 우리도 잘 싸워서 한국게이츠 공장이 정상화돼야 한다. 개인적으론 가장 가슴 아픈 점인데, 동지들이 하루빨리 가족과 웃으며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길 소망한다.

 

ⓒ 참여와혁신 정다솜 기자 dsjeong@laborplus.co.kr
ⓒ 참여와혁신 정다솜 기자 dsjeong@laborplus.co.kr

김주환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대리운전노조 위원장

2020년
정신없는 한 해였다. 상반기엔 코로나19로 인한 대리운전노동자들의 생계 위기 대책을 마련하느라 정신없었다. 하반기엔 7월부터 세 달간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천막농성 투쟁을 했다. 코로나19로 열악한 노동환경이 더욱 드러난 비정규직, 특수고용노동자를 위한 사회·제도적 개선방안을 현실화시키기 위해 1년 내내 싸웠던 것 같다. 지금은 국회 앞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며 단식농성 중인데, 이 투쟁이 제대로 되어서 모두 힘들지만, 더 힘들었던 비정규직에게 희망의 불씨를 살렸으면 한다.

2021년
상식적인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 노동자가 위험과 죽음에 내몰리지 않고도 일할 수 있고, 열심히 일하면 최소한 자신의 생존과 생계는 보장받을 수 있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

 

ⓒ 참여와혁신 박완순 기자 wspark@laborplus.co.kr
ⓒ 이스타항공조종사노조

박이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이스타항공조종사노조 위원장

2020년
이스타항공 노동자들뿐만 아니라 나 역시도 만신창이가 된 한 해였다. 그래도 이렇게 버텨올 수 있었던 힘은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갈 수 있을 거란 희망 때문이다.

2021년
투쟁해온 과정이 성과를 이뤄서 일터로 돌아가길 바란다. 그리고 노동자가 대접받고 해고가 없는 세상을 조금이나마 이룰 수 있으면 좋겠다. 나 역시도 다시 하늘을 날 수 있길 소망한다.

 

ⓒ 참여와혁신 박완순 기자 wspark@laborplus.co.kr
ⓒ 참여와혁신 박완순 기자 wspark@laborplus.co.kr

김정남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아시아나KO지부 지부장

2020년
코로나19 상황에서 3월 말부터 정리해고를 막고자 했다. 하지만 5월 11일 자로 정리해고 돼 200일 넘게 천막농성 중이다. 최근 중앙노동위원회도 아시아나KO의 해고가 부당해고라고 판정했지만 회사에선 복직에 대한 말이 없어 여전히 거리 위에 있다.

2021년
1월엔 해고자 6명 전원이 원직복직 돼서 현장으로 돌아가는 것이 가장 바라는 점이다. 나는 정년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복직으로 명예를 되찾고 정년을 맞이하는 것도 중요한 바람이다.

 

ⓒ 노동과세계
ⓒ 노동과세계

김성원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백화점면세점노조 면세점업종 본부장

2020년
코로나19로 면세점이 직격탄을 맞은 해였다. 시간이 흐를수록 IMF 이후 무너진 사회안전망과 더욱 공고해진 양극화가 그 민낯을 드러낸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청 대기업 면세점들은 죽는다는 소리를 했지만 정작 죽어나간 노동자는 하청인 협력업체 노동자들이었다. 협력업체 노동자들의 노동조합인 우리는 아무런 방어책도 없는 이들에게 뭐라도, 지푸라기라도 되어주고 싶은 심정으로 뛴 것 같다.

2021년
내년엔 완벽한 백신이 개발됐다는 소식을 꼭 듣고 싶다. 그리고 다시 면세점이 활기를 찾고 북적북적해져 떠나갔던 1만 2,000여 명의 노동자들과 함께 일할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다. 올해는 소의 해인데 소처럼 우직하게 일하는 것도 좋지만 노동자들이 그만큼의 대접도, 대우도, 존경도 받는 세상이 되길 소망한다. 참, 면세점 협력업체들이 특별고용지원업종에 겨우 신청할 수 있게 됐는데 특별고용지원의 기간 연장이 꼭 되길 바란다.

 

ⓒ 참여와혁신 포토DB
ⓒ 참여와혁신 포토DB

김정임 여성노조 서울지부 지부장

2020년
투쟁을 해도 참 바뀌지 않는 세상이었다. 시간제 돌봄전담사들이 지자체 이관을 반대하며 지금도 피케팅하고 있는데 교육부에서 주최하는 돌봄협의체에선 지자체 이관을 추진하고 있다. 또한 한 사업장 내에서 같은 퇴직금 제도를 적용하라고 서울교육청 앞에서 학교 비정규직이 단식해서 마음이 아프다. 코로나19로 투쟁도 어렵고 정신없는 한 해였다.

2021년
평화를 바란다. 노동자들이 투쟁하는 이유는 차별이다. 정규직-비정규직, 전일제-시간제 사이의 차별만 해소돼도 갈등이 많이 줄어들 것이다. 노동자들이 뭐가 억울하고 차별이라고 말하는지 정부가 적극적으로 들어줬으면 한다. 모두가 건강하고 평화롭길 기도한다.

 

ⓒ 참여와혁신 정다솜 기자 dsjeong@laborplus.co.kr
ⓒ 참여와혁신 정다솜 기자 dsjeong@laborplus.co.kr

서재유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철도노조 코레일네트웍스지부 지부장

2020년
성과는 아직 없지만 조합원들과 열심히 투쟁해서 뜻깊기도 하고 약속을 지키지 않는 정부, 회사, 원청 때문에 분통이 터지는 한 해이기도 했다.

2021년
투쟁하다 보면 언제나 돈과 시간은 노동자가 아닌 자본 편이더라. 이를 극복하기 위해 더 많은 노동자들이 손잡고 갔으면 좋겠다. 지난해에는 많이 외로운 투쟁을 했다. 1,000명의 조합원이 함께했지만 제도와 구조를 바꾸기 위한 투쟁인 만큼 더 많은 사람들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지난해 총파업에 공공기관 자회사 단위노조들도 함께하기로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우리는 많이 고립되는 상황에 직면했다. 내년엔 좀 더 많은 노동자들이 함께할 수 있길 바란다.

 

ⓒ 참여와혁신 강한님 기자 hnkang@laborplus.co.kr
ⓒ 참여와혁신 강한님 기자 hnkang@laborplus.co.kr

신정욱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대학원생노조지부 지부장

2020년
코로나19로 대학 풍경도 바뀌었다. 비대면 강의 활성화 등 전반적으로 변화에 적응하는 과정이었다. 노조는 경북대 화학관 폭발사고 피해 학생에게 치료비 지급과 산업재해 인정 등 대학원생 기본권 보장을 요구하며 10월 6일부터 75일간 국회 앞에서 투쟁했다. 결국 학생연구원에게 산재보험을 적용하자는 산재보험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했다. 매우 아쉽고, 노조가 해야 할 역할들이 많이 남아 있다.

2021년
국회 앞 투쟁 때 슬로건은 ‘안전한 대학’이었다. 노조는 실험실 안전, 성폭력으로부터 안전을 외쳤는데 올해도 유효한 구호다. 산재보험법 개정 등 대학원생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법안이 꼭 통과됐으면 좋겠다. 노조도 대학사회에 잘 알려져서 조합원들이 더 많이 모였으면 한다. 그래서 우리도 모이면 대학을 바꾸고,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이 커지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