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성차 외투기업 3사, ‘철수’의 굴레를 어떻게 멈출 것인가
완성차 외투기업 3사, ‘철수’의 굴레를 어떻게 멈출 것인가
  • 이동희 기자
  • 승인 2021.02.08 00:05
  • 수정 2021.02.07 22: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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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자 전환과 경영정상화, “글로벌 본사 경영 전략 없인 불가능”
​​​​​​​정부 지원을 통한 회생, “위기는 또다시 되풀이… 근본 해결책 아냐

[리포트]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완성차 외투기업②

ⓒ 클립아트코리아

한국지엠, 쌍용자동차, 르노삼성자동차의 미래에 최악의 시나리오인 ‘글로벌 본사의 한국 철수’를 뺀다면 선택해야 하는 시나리오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흑자 전환을 통해 경영정상화를 실현하는 최상의 시나리오. 나머지 하나는 정부의 지원을 통해 회생하는 차선의 시나리오다.

#최상의 시나리오
흑자 전환과 경영정상화

흑자 전환을 위해서는 앞서 제기한 문제들이 해결돼야 하는데, 우선 △적자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부당한 비용구조 개선 △장기적 계획에 따른 연구개발 및 설비 투자 등이 필요하다.

글로벌 본사와의 부당한 거래 관계를 끊고 한국 법인의 지적재산권을 확보하는 단계를 밟아야 수익은 모기업이, 비용은 자회사가 가져가는 비용구조를 개선할 수 있다. 대가 없는 연구개발비 지출도 막아야 한다.

한국지엠의 경우 지적재산권을 완전히 가져오지 못하면 장기 사용권이라도 확보해야 한다. GM이 한국에서 철수하는 최악의 사태를 맞이한다고 가정했을 때 한국지엠이 지금과 같이 어떤 지적재산권도 보유하지 못한 상황이라면 미래는 더욱 불투명하다. GM이 한국지엠을 매각하게 된다면 중국이나 신흥국 기업 외에는 인수자를 찾기 어려운 상황일 텐데(낮은 가능성으로 산업은행 또는 한국 기업이 인수한다고 하더라도), 이때 GM은 기술 유출 방지와 중국 시장 점유율 유지를 위해 GM이 보유한 브랜드의 사용을 막을 것이다. 이는 한국지엠을 매각하는 데 결정적인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다.

또 장기적인 관점에서 바라본 연구개발 및 설비 투자도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이미 완성차 외투기업 3사는 경쟁 기업인 다른 완성차 기업과 비교했을 때 이 부분에서 상당히 뒤처져 있기 때문에 따라잡으려면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그래야 국내법인이 하나의 생산공장처럼 취급받는 것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러나 위에서 설명한 것들이 이루어지려면 글로벌 본사가 한국 법인을 계속 유지하겠다는 ‘의지’가 명확해야 하고, 그 의지가 ‘경영 전략’에 담겨야 한다. 본사 입장에서 지금 한국의 위치가 글로벌 전략에서 의미 없다고 판단되면 언제든 떠날 수 있다. 때문에 현재로선 최상의 시나리오를 주체적으로 실현할 수도, 그렇다고 강제할 수도 없다. 또한, 만에 하나 글로벌 본사가 국내법인 흑자 전환과 경영정상화를 마음먹고 이에 대한 경영 전략을 발표한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전략이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아 높은 판매량 달성으로 이어질 것인지는 불투명하다.

#차선의 시나리오
정부 지원을 통한 회생

차선의 시나리오는 현재 상황에서 정부의 지원을 통해 어떻게든 ‘살아남는’ 선택지다. 실제 그동안 정부는 외투기업이 일으키는 각종 부작용을 마주할 때마다 이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해 왔다. 이 과정에서 일부 대기업에 대해서는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정부 지원을 통한 회생은 당장의 대규모 실직 사태를 막을 수는 있겠지만, 위기가 또다시 되풀이될 수 있다는 허점이 있다. 때문에 급한 불은 끌 수 있으나 한국지엠, 쌍용차, 르노삼성자동차의 경영정상화를 위한 근본적인 해결책은 될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대표적으로 지난 2018년 한국지엠 군산공장 폐쇄, 이른바 한국지엠 사태를 떠올려보자. 당시 정부는 GM이 정부에 지원을 요청하자 초기에는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기획재정부)며 단호한 입장을 보였지만, 최종적으로는 종사자들의 일자리와 산업 생태계를 유지하기 위해 8,100억 원의 혈세를 지원하기로 했다. GM이 한국지엠 부도처리도 불사하겠다는 강수를 뒀기에 정부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GM 입장에서는 ‘손해 보지 않는 장사’로 남았다. ‘10년 공장 유지’를 내걸고 한국 정부와 노조에 받아낼 수 있는 최대한의 지원과 양보를 받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정부의 지원으로 일단락되는 듯 보였던 한국지엠 사태는 같은 해 GM이 단일법인인 생산공장과 연구개발(R&D) 기능을 2개 법인으로 분리하겠다는 ‘법인분리’를 발표하면서 2차전이 시작됐다. GM-산업은행이 체결한 합의서에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벌어진 일이었다.

한국지엠은 법인분리에 대해 “한국지엠 연구개발 부문 글로벌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경영정상화 지침”이라고 밝혔지만, 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는 “법인분리가 철수를 위한 사전 포석”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법인을 분리한 뒤 필요에 따라 생산법인을 폐쇄할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라는 게 당시 노조의 주장이었다. 제2의 공장폐쇄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이어졌지만, 결국 한국지엠은 주주총회를 통해 연구개발 법인 지엠테크니컬센터코리아(GMTCK) 설립 안건을 통과시켰다.

당시 산업은행은 국민 혈세로 자금 지원을 했음에도 법인분리로 인한 ‘철수설’을 막지 못했다며 질타를 받았다. 2018년 10월 산업은행을 대상으로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는 “산업은행 패싱”, “정부와 산업은행을 호구로 봤다” 등의 발언이 쏟아졌고, 여야 의원들은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에게 법인분리에 대한 책임을 물었다. 여기에 법인분리 징후가 충분히 있었음에도 이를 막지 못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공분은 더욱 커졌다. 당시 “8,100억 원 투자 계약 당시 법인분리를 예상하지 못했냐”는 지상욱 바른미래당 의원의 질문에 이동걸 회장이 “마지막 협상 말미에 GM 측에서 제기했지만, 최초 제시한 경영정상화안에 포함되지 않은 사안이기에 거절했다”고 답변했기 때문이다. GM이 한국에 생산시설 10년 유지를 약속한 시점에서 ‘법인분리=먹튀’로 판단하는 것은 섣부를 수도 있지만, GM이 법인분리를 사전에 인지하고 있었고 이를 준비하고 있었다는 것은 확인됐다.

대다수의 전문가들은 외투기업에 대한 정부 지원에 회의적이다. 정부의 지원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고, 본사가 국내법인에 대한 미래 전망을 갖지 않는다면 정부가 얼마를 지원해도 소용이 없다는 목소리다.

한국지엠 사태 당시 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은 <참여와혁신>과의 인터뷰에서 “정부의 지원이 있어도 GM은 또다시 정부의 지원을 요구할 것”이라며 “아무런 준비가 안 돼 있다면 또다시 외통수에 몰릴 것”이라고 경고했다. 김현철 군산대 교수 역시 “정부에서 지원해주면 GM 본사는 또다시 지원을 요구할 것”이라며 “정부 지원을 하는 것은 절대 안 되며 GM 본사에서 자구노력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한국지엠 사태를 되돌아봤을 때 같은 일이 반복되는 걸 막기 위한 정부의 역할은 더욱 명확해졌다. 정부가 지원할 것인가, 아닌가를 떠나 혹시나 발생할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 글로벌 본사가 한국에서 철수하는 시나리오를 미리 준비해야 한다는 것. 다시 말해 철수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대량의 실업 사태에 대한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다.

노조의 역할도 필요하다. 상시적인 감시 역할은 노조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장기적인 전망을 요구하고 다양한 정보를 획득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어 노조 역시 문제 당사자라는 걸 잊지 말고 협상 과정에 참여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앞서 한국지엠 사태 때 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는 GM 경영 실사에 노조 측 전문가가 참여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구했지만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매각 협상이 진행되고 있는 쌍용차는 물론, 르노그룹의 새로운 경영 전략 아래 불안함을 느끼고 있는 르노삼성자동차에서도 노조가 당사자로서 참여할 수 있는 통로가 마련돼야 한다. 매각이나 구조조정을 결정한 후에 노조에 통보만 한다면 2009년의 쌍용차 사태, 2018년의 한국지엠 사태의 반복을 피하기 어렵다. 지난 11년간 무쟁의를 이어오던 쌍용차노조에 향후 무쟁의 선언을 해야 지원을 하겠다는 조건을 내세우기 전에, 당사자인 노조의 목소리에 얼마나 귀 기울였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