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시국 졸업한 관광전공 학생들의 ‘말말말’
코로나19 시국 졸업한 관광전공 학생들의 ‘말말말’
  • 강한님 기자
  • 승인 2021.02.08 00:10
  • 수정 2021.02.07 22: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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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우 나쁜 것 알아도 ‘하고 싶어’ 공부했는데… 이젠 뽑지도 않는다
​​​​​​​“버티다 몸값 오르면 이직해야죠” 질 낮은 일자리만 넘쳐

[리포트] 관광산업 어렵다고 하던데 졸업하면 어디 가나요?

빈 호텔방 ⓒ 클립아트코리아
빈 호텔방 ⓒ 클립아트코리아

‘배워도 써먹을 데가 없다’ 요즘 관광을 공부한 학생들이 체감하는 말이다. ‘관광’ 키워드가 들어가는 대학 학과들은 코로나19로 덩달아 몸살을 앓고 있다. 전공자는 여럿이고, 졸업도 하는데 취업 문턱은 높다. 그나마 있는 일자리를 살펴보면 취업해도 고생할 게 눈에 훤하다. 대기업이 아니라면 대부분 박봉에 처우가 좋지 않은 건 알고 있었지만 이건 너무 심하다. 수많은 관광학과 학생들은 이 시국에 어디로 가야 할까. 졸업을 목전에 뒀거나, 취직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호텔경영학과 학생 세 명의 목소리를 들었다. 학생들의 의사에 따라 실명은 밝히지 않는다.

일단 관광객이 절반으로 줄어들었다니까…

호텔에서 일한다면 재밌을 것 같았다. 호텔경영학과 졸업예정자인 A씨(24)가 가장 흥미를 느꼈던 과목도 ‘호텔마케팅’이었다. 사람들과 같이 호흡하며 일할 수 있는 게 멋져 보였다. 워낙 발로 뛰는 걸 좋아하는 성격도 한몫했다. 대학에 입학하기 전 친척 언니를 통해 호텔에서 일하는 한 지인을 소개받았다. 그때만 해도 호텔에 어떤 업무가 있는지 자세히 몰랐다. 막연하게 ‘프론트(손님을 호텔 로비에서 응대·관리하는 직무)’를 생각했다.

그러나 2월 졸업을 앞둔 A씨는 걱정이 태산이다. 호텔에서의 일이 적성엔 맞을 것 같은데 처우는 또 안 좋을 것 같다. 호텔에 취업하지 않고 전공과 관련 없는 자격증을 준비할까 싶기도 하다. 학과 동기의 진로도 제각각이다. 호텔에서 일하는 선배도 있지만, 진로를 다른 곳으로 잡는 졸업생들도 많다.

“호텔에 취업하고 싶어서, 손님들이랑 소통하는 게 저랑 잘 맞을 것 같아서 입학했어요. 지금은 호텔에 취업할 수 있을지…. 다른 자격증을 준비해서 아예 전공과 무관한 곳으로 전향할지 고민하고 있어요. 일단 여행사는 아예 배제해야 하는 게 문제죠. 관광객이 절반으로 줄어들었다고 하잖아요. 호텔들도 관광지를 제외하고는 사람을 안 뽑으니까 제주도 같은 곳으로 몰리는 거죠.”

“그래도 졸업하고 바로 취업하지 않으면 전공을 못 살려요. 일단 취업하고 이직을 하면서 몸값을 올리거나, 계속 호텔에 있을지 다른 거 할지 고민해요. 직책이 오를수록 돈을 더 받는 거 같기는 한데, 박봉이잖아요. 거의 최저시급이죠.”

우리나라의 관광 관련 학과는 정부가 호텔 허가를 쉽게 내주는 등 관광산업을 육성한다는 기조를 내세우면서 하나둘 늘어나기 시작했다. 한준호 더불어 민주당 의원실이 교육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8년도 기준 ‘관광’, ‘호텔경영’, ‘외식’, ‘항공’ 키워드가 들어가는 학과 수는 무려 704개다. 그중 A씨가 나온 ‘호텔경영’이 들어가는 학과는 56개 정도다. 이 통계는 2018년 관광 관련 학과에서 공부하는 재학생 수를 5만 4,848명으로 집계한다.

재학 중 실습이나 인턴 등을 통해 관광 분야에서 일을 하더라도, 학생들이 실제로 어디에 취업하는지는 확인하기 어렵다. 관광산업의 이직률이 높은 수준이라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서울상공회의소에 설치된 서울지역 인적자원개발위원회는 코로나19로 도소매·숙박음식업 고용이 1만 1,000명 정도 줄어들었다고 본다. 서울 관할지역에 밀접한 여행업과 호텔업에서 휴직·휴업에 의한 고용불안이 심화됐다는 것이다. 관광산업의 일자리들이 빠르게 사라지는 현실은 불완전한 통계에 의존하지 않더라도 예상할 수 있다.

평생직장 삼기는 좀 그렇죠

코로나19로 “취업을 하고 싶어도 못 하는 상황”에서 B씨(26)의 동기, 선후배들은 다시 학교로 돌아오기도 한다. B씨의 후배는 한 여행사에 취직했지만, 여행사가 문을 닫으면서 갈 곳을 잃었다. 결국 실업급여를 받다 대학 조교로 일하게 됐다.

‘괜찮은’ 일자리가 없는 환경은 B씨가 자꾸 다른 곳으로 눈길을 돌리게 된 원인이다. 코로나19 시국에도 어떤 호텔들은 계속 사람을 뽑는다. ‘사람인’, ‘잡코리아’ 등 구직 사이트에 ‘호텔’을 넣어 검색하면 생각보다 많은 일자리가 보인다. 하지만 근무조건을 보면 “여기서 취업한다고 해도 내가 얼마나 일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열악하다.

“아무래도 프론트는 사람이 자주 빠지거든요. 너무 힘드니까. 노가다라고 말을 하죠. 정신적인 고통도 크다고 하더라고요. 저도 일을 찾고 있는데, 사실 채용공고 낸 호텔은 많거든요. 근데 제가 하고 싶은 일은 잘 안 나와요. 체제가 제대로 잡혀있지 않은 호텔은 학생들에게 인기가 없는 편이에요. 관광지에는 대기업 호텔들이 많잖아요. 경쟁률이 세다고 하더라고요. 기숙이 가능한 조건을 가진 호텔이 인기가 많죠.”

“정규직이라고 해도 호텔업계에서는 오래 못 버텨요. 어차피 그만둘 걸 아는 사장들도 많아요. 평생직장으로 삼기는 좀 그렇죠. 저는 호텔이 안 맞는 거 같아요. ‘호텔에 무조건 취업하리라’는 생각은 없어요. 바로 취업하고는 싶은데 다른 영업직 같은 거 있으면 그거 할 거예요.”

B씨가 처음부터 호텔과 안 맞았던 건 아니다. B씨는 이벤트 준비를 잘했다. 호텔경영학과에 들어오게 된 것도 이벤트를 통해 고객을 응대하는 일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호텔에 취업하게 된다면 국내보다는 해외에 자리를 잡는 것이 괜찮은 선택지라는 생각도 해 봤다. 지금 B씨에게 국내호텔은 ‘경력’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최종적으로는 B씨만의 회사를 차려서 그만의 영업을 하는 게 꿈이다. 그 과정에서 호텔 취업은 그냥 지나가는 일 중 하나일 뿐이다.

이런 상황이 교수도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전공이 모든 걸 결정하지는 않는다지만, 양질의 일자리가 없다는 이유로 학생들이 관광산업에 발을 들이지 않는 현실은 씁쓸하다. 서울 소재 한 관광학부 교수는 “자신이 의지를 가지고 처음부터 진로를 잡는 학생 외에는 관광업체에 잘 취업하지 않으려고 한다. 관광업계는 일반 기업체보다 보수도 적고 처우도 안 좋으니까 학생들이 기피한다”며 “관광산업에서 양질의 일자리를 어떻게 만들 것인지가 관건이다. 해결할 문제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 클립아트코리아

관광 일하는 사람 삶의 질이 올라가야 할 것 같아요

C씨(26)는 호텔에 취업한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았다. C씨가 일하게 된 호텔은 관광지에 위치해 있다. 사실 호텔경영학과에 입학하게 된 계기는 단순했다. “있어 보여서”다. 호텔이라고 하면 뭔가 남들이 쉽게 접할 수 없고, 교양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사실 C씨는 실패의 경험이 있다. 학교에 다닐 때도 꾸준히 식음료 업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해 왔던 그였지만, 실습에서 좌절을 겪었다. 학교와 업체가 연계해서 실습을 나가는 ‘일학습병행제’에서 C씨는 중도에 포기했다. 고객·동료에게 받는 스트레스가 중첩되면서 지치고 만 것이다. 하지만 막상 호텔에 취업해보니 힘들지만 뿌듯함이 더 컸다.

“재밌어요. 일하다 보면 저한테 웃어주는 분도, 화내시는 분도 있어요. 그런데 웃어주는 분 한 분만 있어도 보람찬 거 같고 그래요.”

C씨는 앞으로도 ‘호텔리어’로 살고 싶다. 하지만 이 호텔에서 오래 일할 생각은 없다. 일한 지는 얼마 안 됐지만, 얼른 다른 호텔로 이직하고 싶다. C씨는 프론트 뿐 아니라 호텔 내 다양한 부서에서 일해 보는 게 목표다. 지금 다니고 있는 호텔의 처우가 좋지 않기 때문이다.

“어떻게 말씀드려야 할지 모르겠는데…. 친구들도 그렇고 이쪽 계열로는 많이 안 와요. 돈도 안 되고 사회에 처음 나오는 우리는 ‘하는 일은 많은데 돈은 이거밖에 못 받아?’ 하는 생각이 드는 거죠. 감정노동도 계속되니까 포기를 많이 해요.”

“호텔은 휴식 시간도 잘 안 지켜져요. 부서에 따라 좀 달라지지만, 프론트는 특히 더 그렇거든요. 인원의 한계는 있지, 고객은 계속 오지 우리는 그 자리를 지켜야 하니까요. 임금까지는 솔직히 바라지도 않아요. 그렇다는 거 알고 왔으니까. 그런데 복지 하나하나에 조금 더 오래 일할 수 있고 없고가 갈리는 거죠. 제가 느끼기에 제일 중요한 건 관광 일하는 사람들의 삶의 질이 올라가야 할 것 같아요.”

관광산업 핵심은 ‘사람’이라는데…
사람도 환경도 없다

세 사람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들은 모두 인터뷰 중 ‘사람’과 ‘소통’을 말했다.

“제가 좀 사람들이랑 소통하고 이야기하는 거 좋아하고, 발로 뛰는 걸 좋아했단 말이에요.”(A씨)

“공부를 그렇게 잘하지는 않았어도 사람 상대하고 소통하는 게 재밌어서 호텔경영학과에 들어오게 됐어요.”(B씨)

“배울 때부터 고객들이랑 같이 소통을 하는 게 좋았거든요.”(C씨)

다른 진로를 고민하고 있는 A씨도, ‘꼭 호텔이 아니어도 된다’던 B씨도, 호텔리어로 성장하고 싶은 C씨도 애초에 관광을 공부하게 된 이유는 사람에 있었다. 그러나 코로나19의 여파로 공부해도 써먹지 못하는 현실에 부딪혔다.

이들은 관광업계에서 평생 일하는 것에 대해선 거부감을 내비쳤다. 관광산업의 일자리는 학생들에게 ‘원래 처우가 안 좋다’고 평가받는다. 사람이 좋아서 관광을 공부하게 됐지만 정작 관광에서 일하게 될 ‘사람’들은 회의감을 느낀다. 관광을 공부하는 학생들의 생각은 관광산업의 내일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관광산업의 일자리가 이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올 환경을 갖춰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