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박싱] 이 주의 질문 : 노동자가 말하는 제주 4·3항쟁은?
[언박싱] 이 주의 질문 : 노동자가 말하는 제주 4·3항쟁은?
  • 정다솜 기자
  • 승인 2021.04.03 22:58
  • 수정 2021.04.05 17: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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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꽃 #73주기

올해로 제주 4.3항쟁이 73주년을 맞았습니다.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는 ‘1947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1948년 4월 3일 발생한 소요사태 및 1954년 9월 21일까지 발생한 무력충돌과 진압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이자, ‘미군정기에 발생해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에 이르기까지 7년여에 걸쳐 지속된, 한국현대사에서 한국전쟁 다음으로 인명 피해가 극심했던 비극적인 사건’으로 4.3항쟁을 기록합니다.

4.3항쟁은 당시 제주도 인구 10%에 이르는 3만여 명이 동백처럼 붉은 피를 흘리며 희생된 비극이며, 기록 너머에 그 생생한 상처는 아직 남아 있습니다.

노동자들도 매해 4.3항쟁의 정신을 계승하고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행사를 진행하는데요. 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해 규모를 줄이거나 마음으로 대신할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4.3항쟁 73주년을 맞아 노동자들에겐 4.3항쟁이 어떤 의미인지 물었습니다. 

동백꽃은 제주 4·3항쟁 때 붉은 피를 흘리며 쓰러진 제주도민을 상징한다. ⓒ 클립아트코리아
동백꽃은 제주 4·3항쟁 때 붉은 피를 흘리며 쓰러진 제주도민을 상징한다. ⓒ 클립아트코리아

임기환 민주노총 제주지역본부 본부장 

4.3항쟁은 미군정과 이승만으로 대표되는 식민지 분단세력의 탄압과 학살로부터 민중의 생명과 공동체를 지키기 위한 항거이자, 분단과 전쟁을 반대하고 통일 민주국가를 세우기 위한 민중항쟁이었다. 

73년 전처럼 민중의 생명과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불평등하고 양극화된 한국사회의 대전환을 일으킬 수 있는 투쟁을 해나가는 것이 노동자들이 4.3항쟁 정신을 계승한다는 의미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제주도민으로선 4.3항쟁으로부터 자유로웠던 사람은 한 명도 없다. 본인이 살아남았더라도 가족에게, 후대에게 공포가 대물림됐다. 내가 지금 노동운동을 하는 배경도 4.3항쟁에서 출발했다. 4.3항쟁을 알게 되면서 한국사회에 대한 인식, 역사에 대한 인식이 전환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4.3항쟁은 아직 진상규명도 제대로 안 된 상태다. 게다가 당시 평등, 평화, 정의, 민주를 외쳤던 민중들의 염원을 짓밟았던 미군정은 이후 단 한 차례도 사과하지 않았다. 이런 4.3항쟁을 완결해야 할 임무가 우리 세대 노동자들에게 주어진 게 아닌가 많이 생각하고 있다.  

조순호 한국노총 제주도지역본부 의장

어렸을 때 동네 어른들에게 들었던 4.3항쟁은 살기 위한 투쟁이었다. 어른들이 ‘우린 살기 위해 뛰었다’고 자주 말씀하셨다. 어떻게든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뛰고, 시간에 맞춰 경계선까지 넘어가려고 뛰고, 달려서 넘어가지 못하면 죽음밖에 없었던 거다.

내 고향이 제주도 중산간(해발 200~600m)지역이다. 해안 지역과 한라산 산지를 나누는 중간지대인데, 살기 위해선 해안가로 나가든가 아예 산으로 가든가 둘 중 하나였다고 한다. 도망가지 않으면 무장공비로 매도당하니까. 사실 여러 제주도민에겐 적을 둔 싸움이라기보다, 내 목숨을 부지하기 위한 자신만의 싸움이었다. 그래서 더 슬픈 거다. 

한국노총 제주지역본부에선 매해 추모행사들에 참여했는데, 올해는 코로나19로 동백꽃이 그려진 마스크를 차며 4.3항쟁을 기억하고 있다. 

안혜영 민주노총 통일국장 

4.3항쟁의 정신은 외세를 반대했던 민중의 자주정신이자, ‘탄압이면 저항이다!’라고 외치며 무력에 굴하지 않고 투쟁한 저항정신이라고 생각한다. 민주노총이 4.3민중항쟁 정신계승 운동을 하는 배경은 자본과 외세에 굴하지 않고 노동자들의 자주권을 쟁취하며 분단된 조국을 하나의 조국으로 만들기 위한 투쟁을 계속 이어나가겠단 의미로 보면 된다. 

윤지혜 한국노총 대외협력본부 부장

4.3항쟁은 분단 반세기 동안 말조차 꺼내지 못했던 한국사의 가장 큰 상처가 된 사건이었다. 최근 제주4.3사건 특별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됐는데, 추가 진상조사 등 개정안이 제대로 작동해서 4.3항쟁의 새로운 이름이 세워지는 과정이 되길 바란다. 노동자로선 1948년에 제주도민들이 외쳤던 단독선거 반대, 단독정부 반대는 이 땅의 분단을 반대했던 것이기에 그들의 희생정신을 기억하면서 평화와 통일을 열어가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임성형 한국노총 플랫폼노동공제회추진단 차장

제주대학교 학생이면 4.3항쟁에 관한 교양강의를 듣는다. 전반적인 역사에 대한 강의와 4.3평화공원 방문 등을 통해 4.3항쟁 속에서 도민이 겪었을 아픔과 저항정신을 마주하게 되어 마음이 무거워졌던 기억이 난다. 직접 학살의 현장과 아픔을 겪은 세대는 아니지만 교육을 통해서라도 아픔을 공감하고, 역사를 바로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양성영 민주일반연맹 통일위원장

4.3항쟁은 국가폭력에 의해, ‘빨갱이 섬’이란 낙인 아래 제주도민들이 사실상 사살된 사건이다. 노동자들도 역사적으로 이데올로기 공격을 많이 받았다. 선배들도 그렇고 나도 노동운동하던 초창기만 해도 노조하면 빨갱이란 소리를 듣곤 했다. 4.3항쟁의 역사를 바로잡는 데 노동자들이 함께했듯, 현재진행형인 4.3항쟁의 역사에 노동자들이 같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장석원 금속노조 언론부장

4.3민중항쟁은 청산하지 못한 일제 잔재와 분단세력의 대두, 외세의 개입이라는 모순이 남쪽 끝 제주도에서 뒤엉켜 발생한 비극이다. 결국 학살로 끝난 민중의 저항은 3년 뒤 한국전쟁이라는 더 큰 비극의 서막이었다. 우리 노동자가 계승할 항쟁의 정신은 우선 학살을 폭동으로 뒤바꾼 역사를 바로잡고 그 힘으로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달성하는 것이다. 그리고 제주도를 파괴하는 군사기지, 제2공항을 걷어내고 평화의 섬을 완성해야 한다.

김국현 서비스연맹 교육선전국장 

4.3항쟁은 민중 자신의 힘으로 친일파를 청산하고 외세와 분단을 막아내 새 조국을 건설하고자 했던, 자주와 자립의 정신을 담은 민중의 투쟁이었다. 아직도 미군을 앞세운 미국의 영향 아래 놓여 있고, 여전히 갈라진 채 통일을 완수하지 못한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그래서 4.3항쟁 정신은 우리 노동자들에게 자주와 자립을 실현하기 위해 더욱 투쟁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명구 건설산업연맹 건설노조 조직국장

항쟁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4.3항쟁의 정신은 항쟁, 저항 그 자체다. 이승만 정권이 미제국주의에 놀아나는 것을 막기 위한 제주도민의 저항 정신이 배어있는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노동조합 입장에선 4.3항쟁이 조합원 역사교육의 좋은 계기이기도 하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오는 미국과 우리나라의 관계를 함축적으로 이해할 수 있어서다.

양영수 의료연대본부 제주대학교병원분회장

4.3항쟁은 당시 신탁통치했던 미제국주의의 폭압, 신탁통치에 의한 남한 단독정부, 이를 막기 위한 제주도민의 항쟁의 역사다. 국가폭력에 항거했던 무장대에 대한 명예회복 등 앞으로 남은 과제가 많은 현재진행형 역사이기도 하다. 

홍정혁 제주도공무직노조 위원장

제주도민에겐 여전히 아픔이자 비극이다. 당시 마을들이 사라져서, 마을을 옮기며 가족들이 많이 돌아가셨다. 우리 동네도  4.3항쟁 때 이사 온 분들이 계신다. 그런 모습들을 보고 자랐고, 예전엔  4.3항쟁이라면 말도 못하고 불이익을 많이 당했잖나. 그래서인지 아픔이란 단어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