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박싱] 이 주의 인물 : 학교 급식노동자
[언박싱] 이 주의 인물 : 학교 급식노동자
  • 정다솜 기자
  • 승인 2021.04.11 13:13
  • 수정 2021.04.11 17:5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산재 #산보위

환기가 제대로 되지 않는 경기도 수원의 ㄱ중학교 급식실에서  2016년 6월부터 1년간 급식노동자 4명이 쓰러졌습니다. 

이들 중 뇌출혈로 쓰러져 뇌경색으로 인한 장애를 안고 살아가게 된 조리실무사 A씨는 지난해 3월 산업재해 승인을 받았습니다. 폐암으로 사망한 B씨도 올해 초 산재 인정을 받았는데요. 급식노동자가 폐암으로 산재 인정을 받은 첫 사례입니다.

한 급식실에서 노동자들이 잇달아 산재 인정을 받자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위원장 박미향, 이하 학비노조)은 이를 ‘집단산재’로 규정하고 급식실 산업안전 문제를 전면화하겠다고 지난 6일 선포한 바 있습니다.

학비노조는 이들이 쓰러지기 전부터 급식실 환풍기 후드와 공조기(온도와 습도를 적정수준으로 유지하는 기계) 불량으로 조리 연기가 빠지지 않는다며 교체를 요구했지만, 학교 측이 늑장 대응한 데다 일부만 수리해 피해가 더 커졌다고 말합니다.

더 큰 피해를 막기 위해 학비노조는 “전국 시·도교육청의 학교 급식실 공기 순환 장치에 대한 전수조사 실시와 공기 질 개선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투쟁을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는데요.

10년간 학교 급식노동자로 일한 박화자 학비노조 경기지부 수석부지부장에게 급식 현장 안전문제부터 필요한 대책까지 더 들어봤습니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이 6일 오전 ‘급식실 폐암 사망 산재 최초 인정, 수수방관 교육당국 규탄 및 학교 급식실 직업암 대책 마련 촉구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 참여와혁신 정다솜 기자 dsjeong@laborplus.co.kr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이 6일 오전 ‘급식실 폐암 사망 산재 최초 인정, 수수방관 교육당국 규탄 및 학교 급식실 직업암 대책 마련 촉구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 참여와혁신 정다솜 기자 dsjeong@laborplus.co.kr

- 수원 ㄱ중학교 집단 산업재해 사건이 학교급식노동자들에겐 어떤 의미였나? 

ㄱ중학교 급식실과 비슷한 학교가 많다. 학교 급식이 시작된 지 20년이 흐른 만큼 노후화된 환풍기 후드와 공조기 때문에 앞으로 호흡기 질환 환자가 더 많이 나올 수 있단 위기감이 크다.

나도 전판 앞에서 전을 부칠 때 가스냄새로 인해 항상 어지럽고 구토증세를 느꼈다. 특히 한여름엔 200도가 넘는 튀김솥 앞에서 2시간 이상 꼼짝하지 않고 일해야 한다. 탈수, 열사병 등으로 쓰러지는 급식노동자가 많다. 이런 상황에서 후드나 공조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굉장히 답답하고 힘들어지는 거다. 후드는 급식실의 호흡기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노동조합이 한여름에는 튀김, 전요리보다 오븐요리 쪽으로 식단을 바꿀 수 있도록 요구도 했지만, 교육청에선 어디서든 기본적으로 하는 요리라며 가볍게 넘겨버렸다.

- 노동조합 차원에서 학교 급식실마다 공기 순환 장치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조사해본 적이 있다고 들었다.

지난해 경기지부에서 각 학교 급식실 환풍기 후드에 휴지가 빨려 들어가는지 점검한 적이 있다. 후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학교가 50여 곳이었다. 이 중 20개 학교만이라도 노동조합이 파주의료원과 급식실 공기질을 측정해보려고 교육청에 협조공문을 요청했다. 예산은 경기도 노동자건강센터 사업으로 받을 계획이다. 그랬더니 교육청은 6개월 넘게 자기 부서 업무가 아니라며 서로 떠넘기는 상황이다. 교육청에 예산을 요구한 것도 아니고 교육청이 공문 하나만 학교에 보내주면 되는 건데 그게 안 돼서 아직도 손을 쓰지 못하고 있다.

- 호흡기 질환은 눈에 보이지 않아 산재로 인식하지 못하는 급식노동자들도 많을 것 같다. 

그렇다. 2019년에 노동조합에서 각 지부, 지회별로 암 환자를 조사해봤다. 한 학교에 폐암 환자가 두 명이나 있는 경우가 있었다. 폐암을 비롯해 갑상선암, 유방암 등 암 환자가 많았다. 당사자들은 본인의 병을 노출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크고, 암으로 퇴사하신 분들이 많은 걸 감안해도 급식노동자의 암 발병률이 높은 상황이었다.

- 법적 설치 의무가 있는 산업안전보건위원회(산보위)는 어떻게 운영되고 있나? 

지난해부터 산보위가 설치됐지만 제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다. 노동자들은 현장의 안전문제를 위해 여러 요청을 한다. 그런데 교육청 측에선 노동자들의 안전과 건강을 위해 함께 고민하기보단 임금인상 등을 요구하는 노사관계로 착각하는 거 같다. 그러다 보니 논의 진척이 잘 안 된다. 

- 호흡기 질환 외에 근골격계 질환도 자주 발생하는데. 

급식노동자의 90% 이상은 근골격계 질환에 시달리고 있다. 급식 일은 짧은 시간 안에 많은 양의 음식을 만들어내야 하는 고강도 노동이다. 대량의 재료를 옮기고 손질하고 요리하면서 온몸의 관절과 근육을 동원해야 한다. 한 조사에선 조선노동자보다 급식노동자의 노동강도가 세다고 하더라. 그러다 보니 급식노동자들은 일이 끝나면 병원이든 한의원이든 가서 찜질하고 침 맞고 방학엔 수술도 많이 한다. 우리끼린 우스갯소리로 병원 가면 1년짜리 진단은 그냥 다 받을 수 있다고 이야기하곤 한다.

사람들은 그럼 그렇게 힘든데 왜 그 일을 하느냐고 묻는다. 이건 돈을 벌기 위한 일이고 중년여성이 갈 수 있는 일자리라면 다른 곳도 상황이 비슷하다. 손에 익은 일인데다 아프다고 해서 차마 쉽게 그만두긴 어려운 거다. 

- 급식노동자들이 많이 다치는데 산재신청을 잘 못한다던대.

산재신청이 쉽진 않다. 몇 년 전까진 그냥 학교 눈치가 보여서 못했다. 그리고 내가 산재를 신청해서 병가로 자리를 비우게 되면 인력 배치기준이 빡빡하다 보니 동료가 힘들어진다. 급식 일은 서로 손발을 맞춰서 돌아가니 대타를 구해도 합을 맞추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미안해지는 거다. 게다가 근골격계 질환의 경우 보통 산재로 인정받기까지 9개월 정도 걸린다. 다치거나 아프면 산재신청을 할 수 있단 인식은 많이 높아졌지만, 아직 여러 걸림돌이 남아있다. 

- 식수인원에 따른 급식노동자 배치기준이 얼마나 빡빡한가? 

공공기관 급식실 배치기준은 학교의 두 배라고 한다. ㄱ중학교를 예로 들면 급식노동자 한 명당 식수가 100명이었다. 배치기준이 완화되면 급식실도 조금 더 여유롭게 돌아갈 수 있다. 근골격계 질환뿐 아니라 발암물질에 노출되는 빈도도 줄어들지 않겠나. 그런데 교육청에선 단순히 예산 문제, 인건비로만 생각하니까 접점이 만들어지지 않는 거다.

- 가장 시급한 대책은 뭔가? 

경기도교육청은 노동조합이 요구하는 전체 학교 급식실 공기 순환 장치에 대한 전수조사를 해야 한다. 낡은 후드와 공조기에 대한 전문적인 조사를 통해 급식현장을 안전하게 바꿔야 한다.

특히 배치기준 문제를 풀기 위해선 급식노동자 수를 단순히 예산 문제로 보지 말고, 배치기준 TF팀을 구성해 노동자의 안전문제 차원에서 적극적인 협의가 필요하다. 그러려면 산보위 실무회의에서 논의해야 하지만 교육청이 배치기준 문제를 산보위에서 다룰 수 없다며 안건조차 올리지 못하게 한다. 교육청은 산보위에 대한 인식부터 바꿔야 한다. 노동자들의 안전문제에 대해 진정성 있게 논의하는 대화 테이블로 인식하고 참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