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노조, 고덕 아파트 문 앞 배송 ‘일시’ 재개
택배노조, 고덕 아파트 문 앞 배송 ‘일시’ 재개
  • 정다솜 기자
  • 승인 2021.04.16 18:17
  • 수정 2021.04.16 20: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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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입주민 과도한 항의로 택배기사 정신적 고통 호소··· 문 앞 배송 이틀 만에 재개”
ⓒ 정다솜 기자 dsjeong@laborplus.co.kr
16일 택배노조가 상일동역 앞에서 ‘아파트 단지 앞 배송을 일시중단합니다 국민여러분 아파트 갑질문제 해결을 위해 힘을 모아주십시오’ 기자회견을 열었다. ⓒ 정다솜 기자 dsjeong@laborplus.co.kr

택배차량의 지상 출입을 막은 서울 강동구 고덕동 A아파트의 방침에 반발해 단지 앞 택배 쌓기로 맞섰던 택배노조가 당분간 문 앞 배송을 하기로 했다. 일부 주민의 과도한 항의 문자와 전화로 택배노동자들이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고 있어서다. 

택배노조는 대화로 문제를 풀겠단 원칙을 강조하면서도 대화의 문을 더 큰 투쟁으로 열겠다는 입장이다. 이들은 문 앞 배송 거부에 동참할 택배노동자들을 더 모으고 시민과 함께하는 촛불집회를 진행할 계획이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전국택배노동조합(위원장 진경호, 택배노조)은 16일 오후 서울 강동구 상일동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같이 밝혔다.

앞서 공원형 아파트로 설계된 A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는 안전사고 우려로 지난 1일부터 택배차량의 지상 공간 진입을 금지했다. 

문제는 A아파트 지하주차장 입구 높이가 2.3m라 일반 택배차량이 진입할 수 없단 점이다. 일반 택배차량의 높이는 평균 2.5~2.7m다. 택배노동자들은 눈·비에도 손수레를 끌고 5,000세대 규모에 이르는 아파트 단지를 걸어서 이동하거나, 차에 오를 때마다 허리를 굽혀 일할 수밖에 없는 저탑차량을 자비로 사야 하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택배노조는 노동자들의 의견이 빠진 일방적 결정은 받아들일 수 없다며 A아파트에 대화를 요구했다. 이들은 ▲아파트 단지 내 안전 속도 협의 ▲택배 차량 후면 카메라 의무 설치 ▲안전 요원 배치 등을 해결책으로 제시했다. 

입주자대표회의는 “1년의 유예기간을 줬다”며 “당 아파트 단지를 일방적으로 매도한 행위에 대한 해명이 선행돼야 협상 요청을 공식적으로 검토할 명분이 생길 것”이라며 사실상 대화를 거부했다. 

이에 택배노조는 입주자대표회의 측이 택배기사의 손수레 배송과 저탑차량 구입이란 결론을 내려놓고 유예기간을 줬단 명분을 내세우는 건 부당하다며 지난 14일 문 앞 배송을 거부하고 단지 앞에 택배를 쌓아놓고 주민들이 찾아가도록 안내했다.

​A아파트 일부 주민들이 문 앞 배송을 거부한 택배기사들에게 항의한 문자 메시지 내용 ⓒ 택배노조
​A아파트 일부 주민들이 문 앞 배송을 거부한 택배기사들에게 항의한 문자 메시지 내용 ⓒ 택배노조

이 과정에서 택배노조는 “아파트 단지 앞 배송에 참여한 택배노동자에게 과도한 비난 문자와 전화가 쏟아져 기사들이 심각한 정신적 피해를 호소했다”며 “조합원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다시 문 앞 배송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전국의 공원형 아파트에서 비슷한 갈등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가운데 택배노조는 이번 사태를 대화로 풀겠단 입장을 강조했다. 진경호 위원장은 “이 문제가 사회적 공론화가 된 마당에 차분하고 충분하게 서로 입장을 개진해 나가면서 합의점을 찾아 나가자는 게 노조의 공식적 입장”이라고 했다. 

택배노동자과로사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인 강규혁 서비스연맹 위원장도 “아이들을 안전하게 키우고 싶다는 입주민들의 마음을 존중한다. 우리의 제안은 대화해보자는 것”이라며 “혹여라도 체면과 자존심 때문에 못 나오겠다는 마음이면 제가 대표해서라도 거듭해서 몇 번의 사죄를 올릴 의향이 있다”고 말했다.

동시에 택배노조는 다시 한 번 집 앞 배송을 중단하겠단 의지도 밝혔다. 이들은 “빠른 시일 내에 CJ대한통운, 한진 택배노동자들과의 협의를 통해 더 광범위한 개별배송 중단을 만들어갈 예정”이라고 했다. 

택배노조는 입주민에게 택배노동자들의 입장을 알리기 위해 아파트 앞에 농성장을 설치하고 매일 저녁 6시 30분에 시민과 촛불집회도 열 계획이다. 구조적 문제를 방치한 정부와 택배사들에게도 문제 해결에 동참하라고 촉구할 예정이다.

택배노조는 오는 18일 긴급 중앙집행위원회와 25일 정기대의원대회를 통해 향후 투쟁방안을 정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