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이여 노조하라” 말하기 전에 노조가 해야 할 것
“청년이여 노조하라” 말하기 전에 노조가 해야 할 것
  • 이동희 기자
  • 승인 2021.05.06 00:00
  • 수정 2021.05.06 10: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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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조합도 청년이 어렵다②] 늘 고민하지만, 성과 내기 어려운 청년사업
“청년을 주체로… 권한과 책임 주고, 엄숙주의 내려놔야”

리포트_노동조합도 청년이 어렵다②

노동조합 안에서 청년사업은 그 필요성을 누구나 인정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현안, 다른 사업에 밀려 자꾸 미루게 되는 사업이기도 하다. 성과를 내기 어려운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청년들을 노조 안으로 들이는 것도 어렵지만, 노조 안에 있는 청년들이 노조에 관심을 갖게 하는 것도 어렵다. ‘청년은 노동조합이 어렵다①’(참여와혁신 202호, 2021년 4월호)에 이어 이번에는 노동조합 이야기를 들어본다.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기 위해 양대 노총에서 청년사업을 고민하고 있는 두 사람을 만났다.

 

ⓒ 클립아트코리아
ⓒ 클립아트코리아

본격적인 이야기는 최근 민주노총에서 있었던 한 가지 일화를 소개하며 시작하려고 한다.

민주노총은 5월 1일 노동절에 맞춰 민주노총 방송국을 개국했다. 방송국은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이 후보 시절부터 강조했던 공약으로, 현장에 있는 조합원과의 소통을 위해 만들어졌다. 방송국 개국을 앞두고 준비가 한창이던 지난 4월, 개국 행사 중 하나로 ‘게임대회를 개최하자’는 내용이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원회(중집) 보고 안건으로 올라왔다.

일단 게임대회의 전말은 이렇다. 지난 2월 민주노총 청년사업실에서 가맹조직 청년사업 담당자들과 청년사업 아이디어를 나눴는데, 이때 나온 이야기가 게임대회였다. ‘비대면 시대에 안성맞춤인 사업’이라는 설명과 ‘민주노총도 이제 재밌는 것 좀 하자’는 볼멘소리가 같이 나왔다.

연미림 민주노총 청년사업실장은 무릎을 쳤다. 굳이 거창한 의미 부여할 것 없이 민주노총에서 이런 사업도 한다는 걸 보여줄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아이디어를 낸 청년 간부들 입에서 ‘절대 안 될 거다’ ‘조직에서 이걸 결정할 리 없다’ ‘개념 없다는 소리 들을 것 같다’ 등 부정적인 말들이 쏟아졌다.

연미림 실장은 게임대회에 대한 내부 저항(?)을 조금이라도 줄이고자 단독 행사가 아닌 방송국 개국 행사 중 하나로 게임대회를 개최할 것을 안건으로 올렸다. 그러나 중집 전까지 우려의 목소리는 계속됐다. 그 중에는 ‘노동절에 웬 게임대회냐’ ‘굳이 그런 논란을 왜 일으키느냐’는 반응도 있었다.

결론을 말하자면 게임대회 개최 건은 지난 4월 15일 중집에서 단 하나의 이견 없이 통과됐다. 지레 두려움을 안고 중집에 참석한 연미림 실장은 ‘참가자 연령 제한을 두지 말고 모든 조합원이 즐길 수 있는 행사로 만들어 달라’는 추가 의견을 받고 웃는 얼굴로 회의장에서 나올 수 있었다.

노동조합은 준비돼 있는가

위 이야기는 연미림 실장에게 민주노총에서 청년사업을 할 때 부딪히는 어려움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돌아온 대답이었다. “노조 안에 자리 잡힌 기존의 질서, 관행에서 봤을 때 청년사업은 새로운 사업일 수밖에 없고 그에 따른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그걸 상징적으로 보여준 것이 게임대회였다. 게임대회 아이디어를 낸 간부들조차 조직에서 절대 결정할 수 없을 거라고 말하고, 자신을 개념 없다고 생각할 것 같다고 걱정했다. 이들이 없는 이야기를 했을까? 지금껏 활동가로서 경험한 노조의 모습을 투영한 것이었다고 본다.”

흔히 노동조합에서 청년사업의 어려움을 이야기할 때 청년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고민이 주를 이룬다. 그런데 한 걸음 더 들어가 보니 다른 고민이 눈에 띈다. 이를 질문으로 바꿨을 때 핵심은 이것이다. 노동조합 안에는 청년사업으로 대표되는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돼 있는가?

먼저 한국노총 이야기를 들어보자. 10년 전만 하더라도 한국노총의 청년사업은 법률지원 서비스, 노동 상담 등 ‘청년을 서비스받는 대상으로 보고’ 진행하는 사업 경향이 강했다. 하지만 지금의 청년에게는 다르게 다가가야 한다는 게 김정목 한국노총 정책2본부 차장의 생각이다. “지금 청년들은 ‘우리가 하고 싶은 걸 한다’ ‘재미가 있어야 한다’는 성향이 강하기 때문에 이제 노동조합은 청년을 주체로 세우고 이를 사업으로 소화할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하지만 현재 한국노총에는 청년사업을 어느 부서에서 누가 담당한다는 실무체계가 명확히 잡혀 있지 않다.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각 본부에서 산발적으로 사업을 진행하는 식이다. 김정목 차장은 컨트롤 타워 부재에 아쉬움을 느낀다. “실제 미조직 청년, 청년 조합원을 대상으로 한국노총이 할 수 있는 사업은 많다. 조직확대본부에서는 교육사업을, 미디어홍보본부에서는 노조 인식 개선을, 정책본부에서는 청년 정책 전반 등을 사업으로 다룰 수 있다. 그런데 컨트롤 타워가 없다 보니 당시의 필요성, 담당자의 의지에 의해 사업이 진행될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다.”

민주노총은 어떨까? 민주노총의 청년사업은 올해 양경수 위원장 집행부가 들어서면서 청년사업실 신설이라는 변화를 맞이했다. 청년사업은 방송국과 마찬가지로 양경수 위원장이 후보 시절부터 강조했던 공약이다. 민주노총은 청년사업실이 만들어지기 전에는 미조직전략조직실에서 여러 사업 중 하나로 청년사업을 진행했는데, 이제 청년사업실을 중심으로 청년사업을 체계적으로 운영하겠다는 계획이다.

양경수 위원장은 현 집행부가 청년사업을 전면에 내세우고 집중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청년 세대 문제는 모두가 심각하다고 이야기하는데 누구도 청년을 주체로 세워서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않았다. 정규직 운동을 비정규직이 대신할 수 없고, 비정규직 운동을 정규직이 대신할 수 없는 것처럼 청년 세대의 문제는 청년이 주체가 되어 해결해야 한다.”

권한과 책임이 주어질 때 가능한 것들

양대 노총 모두 청년사업을 진행할 때 청년을 주체로 세워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권한과 책임을 줘야 한다고 강조한다. 여기서 말하는 권한과 책임은 앞서 짚은 ‘노동조합이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는 토대’가 된다.

김정목 차장은 “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소위 말하는 견적이 나와야 하는데 권한과 책임이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는 견적조차 나오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권한과 책임이 주어져야 청년사업의 목표와 방향을 결정한 후 ‘① 우리가 가용한 자원이 어느 정도지? → ② 이 자원으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뭘까? → ③ 실제 사업을 해봤더니 이런 결과와 평가가 나왔네 → ④ 올해는 이 정도를 해봤으니 내년에는 이 정도까지 할 수 있겠다’가 차례로 나올 수 있다는 설명이다.

민주노총 청년사업실은 주체가 된 청년의 권한과 책임을 제도화하는 작업에 들어간다. 규약 개정을 통해 청년 부위원장 제도를 만들고, 청년의 요구를 반영하고 청년 조합원의 노동조합 활동을 보장하기 위해 청년 할당제를 시행하고, 노동조합 내 청년위원회를 구성하는 일이다. 집행부가 바뀌어도 지금의 청년사업이 계속 이어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냥 청년사업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하는 건 아무런 소용이 없다. 사업을 결정하고 집행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져야 스스로 의제를 만들고 사업을 만들어갈 수 있다.”(연미림 실장)

청년을 주체로 세우기, 권한과 책임 외에도 양대 노총이 청년사업에서 중요하다고 강조한 것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엄숙주의에서 탈피하는 일이다.

민주노총 게임대회 안건을 두고 일각에서 ‘노동절에 웬 게임대회냐’ ‘굳이 그런 논란을 왜 일으키느냐’ 등의 반응이 나왔다는 것에서 우리는 노동조합 안에 존재하는 엄숙주의가 어떤 모습인지 엿볼 수 있다. 김정목 차장도 노동조합이 엄숙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유는 간단하다. “재밌지 않으면 청년사업의 주체인 청년의 관심을 받을 수 없다.”

한국노총은 최근 약 2년간 코로나19 사태 등으로 청년사업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올해부터는 다시 기지개를 켜려고 준비 중이다. 현재 구상 중인 것은 청년 조합원들과의 대화의 장을 만드는 것. 올해를 시작으로 내년에는 조직되지 않은 청년들과의 접점도 만들어 보려고 한다. 특히, 수도권보다는 비수도권에 사는 청년들의 일자리 문제를 조명하고 싶은 게 김정목 차장의 생각이다. 지난 2월에는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청년위원회를 통해 광주형 일자리를 주제로 광주지역 청년들과 만나는 시간도 가졌다.

김정목 차장은 “물론 청년 조합원을 대상으로 하는 사업도 중요하지만, 노동시장에 진출하지 못한 청년이 우리 사회에 아직 많기 때문에 포커스를 노동조합 내부에만 맞추면 안 된다”며 “앞으로는 청년 관련 조직과 연합해 사업을 진행하는 방향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민주노총 청년사업실은 △청년 신입 조합원 교육사업 △청년활동가 발굴사업 △공정성 담론 기획사업 △조직문화 개선사업 △청년 일자리·고용 개선 의제 운동 △학교부터 노동교육운동본부 등 사업을 확정했다. 또, 오는 11월 예정된 민주노총 총파업에서 청년노동자대회 개최를 계획하고 있다. 연미림 실장은 “아마 사상 최초의 청년노동자대회가 될 것 같다”며 “대회 준비부터 진행까지 청년들이 스스로 기획하는 대회를 만들어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노동조합은 청년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할까

마지막으로 두 사람에게 가장 근본적인 질문을 하나 던졌다. 노동조합은 청년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할까.

“방법론적으로는 재밌어야 하고 신선해야겠지만, 진지하게 다가가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노동조합에 가입조차 할 수 없는 처지에 놓인 청년들이 많다. 민주노총이 계속 문제라고 이야기하는 불평등에 직격타를 맞은 것도 청년이다. 청년들이 아프고 고통스러워할 때 ‘노조가 답을 줄 수 있어, 그리고 주체로 나설 때만이 삶의 문제를 바꿀 수 있어’라고 진중하게 다가서고 보여줘야 한다.”(연미림 실장)

“청년들에게는 소위 말하는 가성비를 따지면서 접근하면 안 되는 것 같다. ‘무조건 청년들을 한국노총의 멤버십 안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이런 관점을 가지고 접근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나지 않을까. 조급함을 내려놓고 청년들에게 씨앗을 뿌리는 거다. ‘노동조합은 이런 일을 하고, 이런 기회가 열려 있어. 나중에 일자리 가질 거지? 가입해서 우리에게 와’ 이런 메시지가 중요한 거지, ‘노조 조직해! 사업해서 조합원 몇 명 늘었어?’ 이렇게 하는 건 지금 세대에 맞지 않는 것 같다.”(김정목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