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기능학교 리포트②] ‘노-정’ 노력 담긴 건설기능학교
[건설기능학교 리포트②] ‘노-정’ 노력 담긴 건설기능학교
  • 박완순 기자
  • 승인 2021.05.05 00:04
  • 수정 2021.05.05 00: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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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가 원하고 건설근로자공제회가 지원하는 사업
더 나은 건설노동자 교육훈련에 재원과 대안 필요

건설기능학교 리포트② 건설기능학교의 지금과 개선 과제

건설기능학교는 고용보험기금을 활용한 고용노동부의 사업이다. 정식 명칭은 ‘건설근로자 기능향상 및 취업 지원’이다. 고용노동부의 설명에 따르면 건설일용근로자 기능향상지원과 건설근로자 취업 지원을 사업 목적으로 하고 있다. 2021년에는 106억 원 정도가 해당 사업에 할애됐다.

건설기능학교는 위탁 사업 구조로 운영된다. 고용노동부가 건설근로자공제회에 위탁하고, 건설근로자공제회는 사업 공모를 통해 재위탁기관을 선정한다. 전국 47곳의 건설기능학교 중 11곳이 서울시와 경기도에 있다. 건설기능학교가 수도권 지역에 활성화된 것이다. 그중 노동조합이 사업공모를 통해 직접 훈련기관을 운영하는 곳도 있다. 현재 민주노총 건설산업연맹은 부설 사단법인 전국건설기능훈련취업지원센터를 통해 서울건설기술교육학원, 성남건설기능학교, 안산건설기능학교, 파주건설기능교육원이라는 이름으로 4곳의 건설기능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편의상 ‘◯◯건설기능학교’로 표기

파주건설기능학교 수업 모습 ⓒ 참여와혁신 박완순 기자 wspark@laborplus.co.kr
파주건설기능학교 수업 모습 ⓒ 참여와혁신 박완순 기자 wspark@laborplus.co.kr

노동조합이 맡은 건설기능학교
현장성 있는 교육과 취업 연계

김지만 씨는 베테랑 중에서도 손에 꼽는 베테랑 형틀목수다. 1970년대부터 건설노동자로 47년 경력을 쌓았다. 지금도 건설 현장에서 형틀목수 팀장을 맡고 있다. 민주노총 건설산업연맹 건설노조 서울건설지부 고양파주지대 형틀2팀 팀장으로 노조 활동도 해왔다. 요즘에는 후진 양성에 힘을 쓰고 있다. 파주건설기능학교에서 강사로 일하며 매일 기초적인 기술과 자신의 노하우를 전수한다.

4월 21일 오후 1시 ‘툭툭탕탕, 툭툭탕탕탕’ 소리가 선명하게 들리는 공장 모양의 건물 앞에 멈췄다. 상대적으로 시설이 열악한 서울건설기능학교, 성남건설기능학교를 먼저 봤기 때문에 눈앞에 있는 곳이 건설기능학교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파주건설기능학교는 60평 규모에 건물 3층 높이 정도 된다. 2030 건설노동자들이 지적했듯 현장에 최적화된 실습을 하기 위해서는 협소한 공간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파주건설기능학교는 공간 문제를 상당 부분 해결한 곳으로 보였다. 4월 21일 당일 파주건설기능학교에 출석한 수강생은 10명으로 5명이 한 팀이 돼 눈썹보 형틀을 제작 중이었다. 공간이 충분하다 보니 두 팀이 양쪽에서 동시에 실습이 가능했다.

“망치질을 그렇게 하면 안 되지. 손목 다치고, 팔꿈치 다치고, 어깨 다친다니까.”

“오른손잡이니까 여기서 해야 잘 될 거 아니야.”

“이렇게 높으면 안 돼, 미끄러져.”

“우마(이동식 작업대) 내려올 때도 올라갈 때랑 똑같이 내려와야 해, 망치 걸려서 앞으로 고꾸라진다니까.”

지만 씨는 수강생 한 명 한 명의 동작을 눈여겨보며 기술만이 아니라 동작 하나하나에도 현장에 필요한 것들을 가르쳤다. 이날 파주건설기능학교에 출석한 수강생 10명 중 6명은 2030세대였다. 사업을 하다 실패해서, 공장에 다니는 것보다 건설 현장 임금이 높고 야간 노동이 없어서, 주변에서 형틀목수라는 직업을 추천받아서 등 여러 가지 이유를 가지고 파주건설기능학교를 찾았다. 김정훈 씨(35)는 경기도 시흥에서 살고 있지만 교육을 위해 왕복 2시간을 투자하고 있다. 20일 과정에서 15일째 수강 중인 정훈 씨는 5일 후 건설 현장에서 일할 기대를 품고 “상당히 전문적인 기술을 요하는 직업이더라고요”라며 기술을 몸과 머리에 익히고 있다. 노조를 통해 취업 연계가 가능하기 때문에 정훈 씨의 5일 후 기대는 현실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렇듯 노동조합이 운영하는 건설기능학교의 경우 직접 현장 베테랑노동자가 강사로 초빙돼 기술과 노하우를 전수해 현장에 바로 필요로 하는 최적화된 기술을 배울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취업 연계도 비교적 용이한 장점도 있다.

노동조합은 왜, 언제부터
노동자 교육훈련을 강조했을까?

민주노총 건설산업연맹은 건설기능학교 사업과는 무관하게 꽤 오래전부터 건설노동자 교육훈련에 적극적이었다. ‘노가다’로 불리는 게 아닌 ‘직업인’으로 불리기 위해서 노동자 스스로가 자기 직무에 맞는 기술을 알고 향상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다른 측면으로는 기술력이 있어야 그에 합당하게 임금 수준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기술이 곧 임금이고 사회적 지위라고 봤다. 그래서 마음 맞는 노동자들이 모여 기술을 서로에게 전수해주고 함께 공부했다. 김창년 민주노총 건설산업연맹 건설노조 서울건설지부 지부장은 현재 서울건설기능학교의 태동기인 1988년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노동을 통해 정당한 대가를 받아야 한다는 소박한 생각이었죠. 그 노동이 기술력이라고 봤고요. 그러면 현장에서 기능공이 돼야 하는데, 어깨 너머로 전수되는 그 과정이 굉장히 힘들었죠. 시간도 오래 걸리고 그 시간 동안 부당한 대우도 받고 하니까 노동조합이 조합원들을 빨리 현장에 자리 잡게 하기 위해서는 기능을 우리가 향상해야 하겠다 싶었던 거죠. 조합원들이 기술을 배우고 싶어 하는 이해와 요구가 있었기도 했고요.”

김창년 지부장의 말에 따르면 초창기에는 형틀목수 양성이 아닌 배관 용접공 양성이 주였다. 당시 서울에 가장 많이 필요했던 직종이었다. 과거 활성화된 구로, 성수 공단을 중심으로 공장 유지보수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더욱이 배관 용접은 기술력이 생명이었기 때문에 용접 기술을 연마하고 싶은 조합원들의 욕구가 대단했다. 신길동 노조사무실 뒤편 한 평도 안 되는 공간에서 용접기를 가져다 놓고 아르곤 용접을 연습했다. 이후 문래동의 3평 남짓한 마을공장(일명 마치코바) 공간을 얻어 기술 향상의 열망을 이어갔다. 조합비를 통한 운영에 한계를 느꼈고, 동시에 조합원들의 교육훈련 참여 수요가 늘어 운영 방식의 변화가 필요했다. 노사발전재단에서 추진한 노사공동훈련사업에 참여했고, 현재는 건설근로자공제회 사업에 참여한 것이다. 건설산업연맹 사단법인 전국건설기능훈련취업지원센터에 속한 성남건설기능학교, 안산건설기능학교, 파주건설기능학교도 서울건설기능학교와 비슷한 경로를 거쳐 현재의 모습에 이르렀다.

건설근로자공제회를 통한 교육훈련,
개선 지점은 없을까?

노동조합이 건설근로자공제회 사업에 공모해 건설기능학교를 운영하면서 이전보다 나은 교육훈련을 제공하는 데 힘이 됐다. 하지만 지금 사업에도 개선점이 있다는 게 건설기능학교를 수료하고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2030 건설노동자들의 생각이다. 각 건설기능학교를 운영하는 노동조합의 생각이기도 하다. 건설산업연맹 부설 사단법인 전국건설기능훈련취업센터는 그러한 개선 지점을 파악하고 대안을 만들 방법들을 고려하며 건설근로자공제회와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건설기능학교 시설과 접근성 개선,
충분한 재원이 필요하다

앞에서 효주 씨, 진 씨, 정익 씨가 지적했듯 건설기능학교의 시설 변화가 필요하다. 건설기능학교 공간 크기를 확대하고 화장실 같은 기본 시설이 갖춰져야 한다는 게 건설기능학교를 나온 2030 건설노동자들의 생각이다.

시설의 개선을 위해 새로운 건물로 이사를 갚고 싶어도, 수도권 지역은 비싼 임대료가 문제다. 재개발 지역에 세를 살고 있는 서울건설기능학교의 경우 이사를 준비하고 있지만 규모 있는 공간을 찾기 어려워 고민 중이다. 김서원 파주건설기능학교 간사는 “건설 산업의 특성상 옥외 작업을 하기도 하고 높이를 얼마큼 올리는지도 중요한데, 지자체와 연계해서 유휴지를 활용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이는 재원의 문제와 맞닿아 있다. 현재 건설근로자공제회의 사업을 통해 건설기능학교를 운영할 경우 주간 과정 기준 하루 훈련비 3만 2,000원을 훈련기관에 지급하고, 하루 훈련장려금 1만 5,000원을 훈련생(수강생)에게 지급한다. 건설기능학교의 운영은 ‘수강생 한 명당’으로 계산되는 3만 2,000원으로 소화해야 한다. 임대료, 훈련 자재비, 강사료를 지급하고 나면 적자 운영이라는 게 유현민 서울건설기능학교 교무부장의 설명이다. 민주노총 건설노조 서울건설지부 조합원들은 적자 운영을 메꾸기 위해 올해 조합비 1억 원을 서울건설기능학교에 활용하기로 마음을 모았다.

건설근로자공제회 관계자는 “건설기능학교 사업을 위한 재정 규모의 확대 필요성은 느끼고 있다”며 “한편, 한정된 예산 속에서 다양한 방안을 찾아보도록 연구하겠다”는 입장이다. 사실상 고용노동부가 고용보험기금을 어떻게 활용할지와 기획재정부가 고용노동부 사업 취지에 얼마큼 공감해 예산 편성 재량권을 행사할지의 문제까지 닿아있다.

이외에도 충분한 재원의 문제는 건설기능학교 홍보와 접근성을 개선해야 한다는 2030 건설노동자의 요구로도 이어진다. 수강생 대부분은 지인 추천으로 건설기능학교를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 취재를 통해 만난 건설기능학교 수강생들은 “좀 더 빨리 알았으면 좋았을 것 같은데, 지인 소개 말고는 알 방법이 없었다”고 토로했다. 또, 건설기능학교에 많은 수강생들이 편하게 오기 위해서는 교통편이 용이한 지점에 건설기능학교가 세워져야 하는데, 이 역시 임대료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

건설기능학교,
일-학습 병행 가능성?!

건설기능학교의 교육프로그램은 20일 과정이다. 또한 1일 완성형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프로그램에 따라 그날 훈련한 내용은 그날의 이론과 실습을 통해 하루로 마무리 짓는다. 따라서 일-학습 병행이 가능하다. 하루는 일하고 하루는 교육받을 수 있다. 건설노동자의 고용과 단절의 반복, 흔히 말하는 일당 노동의 특수성을 반영한 방안이다. 기능 향상과 소득 보전이 가능하다는 이점이 있다. 건설노동자가 아니고 새로 건설 산업에 들어오려는 예비노동자의 경우도 해당된다. 하루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하루는 건설기능학교에 와서 학습을 할 수 있다.

이러한 일-학습 병행 방식이 만들어진 배경은 건설기능학교 수강생들의 현실적인 금전 문제 때문이다. 건설기능학교 교육프로그램에 참여했을 경우 수강생에게는 하루 1만 5,000원의 훈련장려금이 지급된다. 20일 과정이니 총 30만 원이 들어오는 셈이다. 당장 돈을 벌어야 할 사람들에게는 밥값과 교통비만 감당할 수 있는 적은 액수이다.

다만 일-학습 병행의 실효성에 대한 문제 제기도 있다. 이영록 건설산업연맹 부설 사단법인 전국건설기능훈련취업지원센터 운영위원장은 “일-학습을 병행할 수 있도록 1일 완성형이라지만 훈련이 그렇게 진행될 수 없는 현장과 괴리된 이야기”라며 “형식과 제도는 1일 완성형이지만 훈련은 연속적으로 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오늘 배운 내용을 활용해 내일 다음 단계를 나가야 하는데, 1일차 훈련을 듣고 2일차 훈련을 건너뛰고 3일차 훈련에 적응할 수 없다는 이야기이다. 이영록 운영위원장은 “건설 일을 아무것도 모르는 초보자가 들어와서 배우기에 20일 연속으로 듣는 것도 부족하고 수강생뿐만 아니라 가르치는 강사 입장에서도 수강생 관리가 안 되며 결국 둘 다 마이너스”라고 봤다.

종합적으로 봤을 때, 건설기능학교가 건설 산업에 적응하고 정착할 새로운 건설노동자를 양성하는 기능을 하기 위해서 적절한 재원 마련이 필요한 상황이다. 더불어 일-학습 병행을 실효성을 가지도록 구체적인 방식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건설노동자 교육훈련의 역사가 발전하며 쌓아온 시간만큼 과제들도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