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이 없는 기라. 지금 공무원들 다 그렇습니다”
“희망이 없는 기라. 지금 공무원들 다 그렇습니다”
  • 강한님 기자
  • 승인 2021.06.23 16:45
  • 수정 2021.06.23 16: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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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공무원노조 ‘공무원 희생강요 중단, 코로나 대응인력 확충 촉구 기자회견’
현장 전수조사·감염병 대응 정규인력 확충과 예산수립 요구
부산진구선별진료소에서 코로나19 검체를 채취하는 간호직 공무원 뒤로 코로나19 검사를 위해 대기하는 사람들이 줄지어 앉아 있다. ⓒ 참여와혁신 송창익 기자 cisong@laborplus.co.kr
부산진구선별진료소에서 코로나19 검체를 채취하는 간호공무원 앞으로 코로나19 검사를 위해 대기하는 사람들이 줄지어 앉아 있다. ⓒ 참여와혁신 DB

#뇌출혈 #두통 #우울증 #공무원 휴직 #공무원 면직

부산 동구 보건소에서 간호공무원으로 일하던 故 이한나 씨가 숨지기 전날 밤 검색했던 단어들이다. 지난달 23일 자택에서 숨진 故 이한나 씨는 코호트 격리에 들어간 부산 동구의 한 병원을 담당하고 있었다.

민주노총 전국공무원노동조합(위원장 전호일, 이하 전국공무원노조)에 따르면, 故 이한나 씨는 올해만 400시간이 넘는 초과근무를 했다. 전국공무원노조는 “고인은 코로나 발생 이후 밤낮도, 휴일도 없이 비상근무를 해야 했고, 밤늦게 귀가해서도 쉬지 못하고 수시로 업무 모니터링을 하며 위급 상황에 대비해야 했다”고 설명했다.

故 이한나 씨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코로나19 업무를 담당하는 공무원들이 과로를 호소하고 있다. 본래 가지고 있던 업무와 코로나19 업무가 중첩된 결과다.

“새벽 5시 30분 기상. 밤새 확인된 확진자와 전화. 아침 6시 30분까지 과장과 소장에게 검사결과와 확진자 발생보고. 아침 8시 이전에 사무실 출근합니다.

전화로 자가격리 하셔야 된다고 하면 온갖 욕을 다하고, 영업 손실을 보상하라는 등 하루 종일 민원처리에 정신없이 보냅니다.

저녁 늦게까지 처리 못한 일을 처리하고, 퇴근시간은 10시나 11시입니다. 퇴근 이후에도 전화나 톡으로 코로나19 관련 연락이 계속 옵니다. 업무 지시 카톡방이 10개 정도입니다. 정말 밤 낮 할 것 없이 카톡 지옥에 삽니다.

새벽 5시에 퇴근해서 한 시간 씻고 다시 출근하기도 하고, 3주 이상을 하루도 쉬지 않고 밤 12시까지 근무하며 버티기도 했습니다. 대체 이 지옥 같은 시간이 언제 끝날까? 이번 동구 간호 직원을 보니 저 사람이 내가 될 수도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故 이한나 씨의 죽음 이후 전국공무원노조 부산본부와의 면담자리에서 한 보건소 공무원이 했던 말이다. 1년 6개월가량 ‘비상근무’ 중인 공무원들이 스러지고 있다. 14일에는 전남 담양군청에서 감염병 관리업무를 수행하던 한 공무원이 과로로 숨졌다.

박중배 전국공무원노조 부산본부장은 “(故 이한나 씨의) 죽음은 결코 자살이 아니다. 공무원노동자들의 건강권을 생각하지 않고 부족한 인력을 즉시 보강하지도 않은 채 개인이 모든 것을 감당하게 만드는 공직사회의 구조적인 병폐가 고인을 죽음으로 내몬 것”이라며 “어쩔 수 없이 막다른 골목에 몰려 죽음을 강요당한 명백한 사회적 타살”이라고 말했다.

이어 “하루 확진자 7명이면 따라오는 자가격리자가 250명이다. 구청 전체 공무원 340명이 동원된다. 다음날 또 확진자가 나오면 또 많은 인력이 필요하다. 한 사람이 관리하는 인원이 계속 늘어난다. 희망이 없다. 지금 공무원들이 다 그렇다”며 “당장 대책도 필요하지만 필요한 인력을 충원할 수가 없다. 코로나 업무증가로 인한 인력충원을 지자체 실정에 맞게 할 수 있도록 열어줘야 한다”고 했다.

 

전국공무원노조가 23일 오전 11시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공무원 희생강요 중단, 코로나 대응인력 확충 촉구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 참여와혁신 강한님 기자 hnkang@laborplus.co.kr

감염병 대응 정규인력 확충해야

전국공무원노조가 감염병에 대응할 공무원 정규인력을 늘려야 한다고 다시 한 번 촉구했다. 코로나19 대응 업무가 길어지면서 세상을 떠나는 공무원이 늘지 않게끔 인력확충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전국공무원노조는 23일 오전 11시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공무원 희생강요 중단, 코로나 대응인력 확충 촉구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제2, 제3의 비극을 멈춰야 한다”고 경고했다.

전국공무원노조는 1일 대정부투쟁을 선포하고, 정부 세종청사 앞에서 무기한 천막농성을 진행 중이다. 4개 부처(인사혁신처, 기획재정부, 행정안전부, 국민권익위원회) 앞에서는 매일 1인 시위를 한다. 코로나19 대응 인력 확충은 대정부투쟁 요구사항에 포함된 바 있다.

전국공무원노조는 “코로나19 발생 이후 모든 공무원의 업무는 가히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특히 코로나 관련 업무를 하나부터 열까지 직접 챙겨야 하는 간호·보건직 공무원의 고통과 부담은 이미 공무원이라는 사명감과 인내로 감당할 수준이 아니”라면서 “이제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답해야 한다. 정부는 새로운 대유행과 위기에 대처하기 위한 근본적인 정책과 예산을 당장 수입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전국공무원노조는 ‘코로나19 대응 인력 확충 촉구 의견서’를 청와대에 전달하고, ▲공공의료시설 확대와 감염병 대응 정규인력 확충·예산수립 ▲주52시간 근무제 실시와 수당 현실화 ▲현장 전수조사 실시 후 공무원노동자의 안전을 위한 특단의 대책 마련 등을 정부에 주문했다.

전호일 전국공무원노조 위원장은 “현장의 분노가 한계에 달하고 있다는 게 우리가 보는 분위기다. 공무원노조는 작년부터 코로나19에 꾸준히 대응하기 위한 인력충원을 요구했다. 별도의 정원과 별도의 과를 마련해야 이 문제가 해결된다고 이야기해왔다. 그러나 정부는 백신을 맞은 사람이 늘어나면 코로나19가 안정화 될 거라는 안일한 이야기만 지속하고 있다”며 “코로나19 상황 속 공무원들의 생존권과 쉴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다면 문재인 정부에 등을 돌릴 것이다. 또한 우리의 요구가 수용되지 않는다면 더 강력한 집단행동을 통해서라도 조합원들의 목숨과 공무원 노동자의 권리를 지켜 나갈 것”이라고 발언했다.

김은형 민주노총 부위원장도 연대사를 통해 “K-방역을 헌신과 희생으로 지켜왔던 공무원들이 그 중량을 이기지 못하고 무너져 내리고 있다. 공무원들의 희생은 아름다운 헌신인 양 왜곡된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노동자의 죽음과 희생으로 버텨야 하나”며 “감염병 대응으로 턱없이 부족한 인력과 예산에 대한 요구를 했지만, 정부는 귀를 막고 있다. 재난상황을 공무원의 노동조건을 후퇴시키는 매개로 여기는 정부에 분노가 차오른다”고 비판했다.

한편, 전국공무원노조는 공무원 보수위원회 참여를 중단한 상태다. 21일 오후 2시 정부청사에서 진행된 공무원 보수위원회 1차 회의에서 전국공무원노동조합 보수위원회 위원들은 “기재부가 보수위원회에 참여하고, 보수위원회의 위상이 강화될 때까지 참여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뒤 퇴장했다. 기획재정부가 매번 공무원 보수위원회의 논의를 무력화한 것에 대한 항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