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의 외주화가 또다시 노동자를 죽였다”
“위험의 외주화가 또다시 노동자를 죽였다”
  • 강한님 기자
  • 승인 2021.07.15 18:52
  • 수정 2021.07.15 18: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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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 통신외선공, 400kg 넘는 케이블드럼에 깔려 사망
공공운수노조, “하청 노동자의 위험하고 열악한 노동환경이 사고의 주범”

14일 KT대구본부 흥해지점 앞마당에서 한 외선정비공이 400kg이 넘는 케이블드럼에 깔려 사망했다.

고인은 크레인차량을 이용해 지상에 있는 케이블드럼을 옮기던 중이었다. 고인과 동료 노동자들은 오전 7시 경 밧줄로 케이블드럼을 차에 묶었다. 사고가 난 건 7시 5분이다. 묶어놓은 매듭이 풀리며 케이블드럼이 고인의 머리 위로 떨어진 것이다. 고인은 현장에서 사망했다.

 

왼쪽 사진은 사고 현장에서 케이블드럼을 차량에 묶었던 매듭이다. 밧줄을 이용해 케이블드럼이 풀리기 쉽다. 오른쪽 사진은 다른 현장에서 철제 고리와 와이어를 사용해 케이블드럼을 묶은 모습이다. ⓒ 공공운수노조 

노동조합, 위험한 작업현장 개선 요구해왔지만
원청인 “KT가 예산 책정하지 않았다”며 번번이 거절

고인은 ‘KT 2021년 북포항, 울진, 영덕 지역시설 공사’를 위해 4월 대종통신건설에 입사했다. 대종통신건설은 KT의 하청업체다. KT는 통신선을 개설하고 연결하는 업무를 하청업체에 맡겨왔다. 고인은 맨홀 바닥이나 전봇대에서 광케이블 통신망을 연결하는 외선정비 일을 했다.

사고가 난 KT대구본부 흥해지점은 대종통신건설이 장비를 보관하는 곳이었다. 대종통신건설 소속 외선정비공들은 근처에서 숙박하고, 아침 일찍 흥해지점으로 모여 적재된 자재와 작업공구를 차에 싣고 현장으로 향한다. 이때의 노동은 임금으로 환산되지 않는다. 안전관리자도 없다. 사고 당시 현장에 있던 노동자들은 안전모를 착용하지 않은 상태였다.

공공운수노조 대구경북지부 KT상용직대구경북지회(지회장 장태영)가 사고 현장을 확인한 결과, 케이블드럼과 차량은 밧줄 매듭으로 연결돼 있었다. ‘임시’ 매듭이기에 이동 중 언제든 풀릴 수 있는 구조였다. 노조는 다른 현장의 경우 철제 고리와 와이어를 통해 케이블드럼을 차에 연결한다고 설명했다.

앞서 노조는 사측과의 교섭에서 위험한 작업현장 개선을 요구해온 바 있다. 노조는 중량물작업 안전펜스 설치와 안전관리자 및 신호수 배치를 요구했다. 이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원청인 KT에서 별도 예산이 책정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30년 동안 통신외선공으로 일했던 고인도 KT상용직대구경북지회의 조합원이다.

 

공공운수노조가 15일 오전 11시 KT 대구지사 앞에서 ‘죽음의 외주화 정책이 30년 통신외선공을 죽였다’ 긴급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 공공운수노조

공공운수노조, “시행처인 KT도 이번 사건의 공범”
위험의 외주화 중단·재발방지대책 촉구

공공운수노조는 15일 오전 11시 KT 대구지사 앞에서 ‘죽음의 외주화 정책이 30년 통신외선공을 죽였다’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KT 하청 노동자들의 위험하고 열악한 노동환경이 이번 사고의 주범”이라고 비판했다.

공공운수노조는 “하청구조에서 노동자들의 요구는 무시되었고, 하청노동자의 위험은 증폭된 결과 30년차 베테랑 통신외선공이 417kg의 케이블드럼에 깔려 사망하는 사고에 이르렀다”며 “시공사인 협력업체뿐 아니라 시행처인 KT도 이번 사건의 공범이다. KT건물 앞마당에서 일어난 이번 사고에 대해 KT 구현모 대표이사는 즉각 책임을 인정하고, 위험의 외주화를 중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공공운수노조는 또 “대종통신건설은 50인 이하 사업장이라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이 3년 유예된다. 산재사망사고 80%가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하는데 이를 제대로 처벌하지 않고 산재를 줄일 수는 없다”며 “하청노동자들의 안타까운 죽음의 행렬을 멈출 수 있도록 정부의 실효성 있는 대책마련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사고 이후 누군가 현장에 안전모를 내려놓는 장면도 CCTV에 찍혔다. 신경현 공공운수노조 대구경북지역본부 조직국장은 “사고 현장 2~3m 뒤편에 안전모가 있었다. 뭔가 싶어서 영상을 확인해보니 안전모를 쓴 사람이 없었다”며 “사고 나고 하니까 은폐를 하려고 한 게 아닌가. 정확하게 판단할 수는 없지만, 정황상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편, 이 사안과 관련해 KT 홍보실 관계자는 “안타깝게 생각한다. 협력업체니까 (KT와) 관련이 없다는 말은 못 한다”면서도, “(사고가 난 곳을) 현장사무소처럼 사용한다고 들었다. 거기서 자재를 가지고 공사현장을 가기 위해 준비하는 곳이라고 들었다. 조사가 진행되고 있고, 우리를 부른다면 당연히 응하겠다. 이렇다 저렇다 먼저 말씀을 드리는 것 자체가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상황”이라고 말을 아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