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답게 살 수 있게”… 현금수송노동자에 무슨 일이?
“사람답게 살 수 있게”… 현금수송노동자에 무슨 일이?
  • 임동우 기자
  • 승인 2021.08.07 00:05
  • 수정 2021.08.06 15: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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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악화까지 맞물려 노동조건 개선 시급해진 현금수송업계
노사 힘 합쳐 ‘최저입찰제’ 문제 개선하고 표준노임단가제 적용해야

리포트_현금수송노동자의 오늘, 안녕하신가요

2019년 11월, 서울 여의도 소재 국회의원회관에서는 현금수송노동자의 처우 개선을 논의하고자 하는 토론회가 열렸다. 대다수 사람은 ‘현금수송’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총격도 막을 법한 튼튼한 차량과 검은 유니폼을 갖춰 입은 건장한 사람들을 떠올리지만, 이들의 노동조건은 생각과는 달랐다. 당시 토론회에는 현금수송 양대 업체인 한국금융안전과 브링스코리아의 노동조합 위원장들이 참여했는데, 이들은 최저경력 노동자와 20년 이상 일한 최고경력 노동자 간 월 임금 차이가 불과 50만 원 수준이라는 점을 밝히며 노동조건 개선을 호소했다. 그리고 약 2년의 시간이 흘렀다.

지난 4월 8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금융감독원 앞에서 열린 ‘최저입찰제 폐지, 용역단가 현실화 촉구를 위한 현금수송 노동자들의 호소 기자회견’ ⓒ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
지난 4월 8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금융감독원 앞에서 열린 ‘최저입찰제 폐지, 용역단가 현실화 촉구를 위한 현금수송 노동자들의 호소 기자회견’ ⓒ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

현금수송노동자, 오늘은 안녕하신가요

현금수송업이란 은행 등 금융기관에 적정한 현금의 양이 유지될 수 있도록 시시때때로 현금을 수송하는 일을 말한다. 은행 지점에 현금이 부족할 경우 본점에서 지점으로 현금을 수송하고, 마찬가지로 본점에 돈이 없을 경우 현금 보유 한도를 맞추기 위해 한국은행을 통해 현금을 수송한다. 이 밖에도 외화, 유가증권, 증서 등 금융기관 내 주요 서류를 안전하게 전달할 뿐만 아니라 CD·ATM 등 자동화기기 관리까지 도맡고 있기도 하다.

현장 노동자의 고충을 듣고자 마련된 한국노총의 유튜브 콘텐츠 ‘있긔없긔 시즌2’ 첫 화에서는 현금수송노동자의 고충을 소개했는데, 당시 출연자들은 하루 12시간 이상 업무를 하고 있으며, 시간외수당을 제외한 8시간에 대해서는 최저임금 수준의 처우를 받는다고 토로했다. 2019년 11월 말에 이러한 현금수송노동자의 노동조건 개선방안을 논의하는 토론회가 열리기도 했지만, 이후에도 현금수송노동자들은 ‘장시간 노동’과 ‘최저임금 수준 급여’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설상가상으로 들이닥친 회사의 재정 악화로 인해 ‘급여 분할 수령’이라는 혹까지 붙이게 됐다.

당시 토론회 발제를 맡았던 이종수 노무법인 화평 대표는 이 같은 현금수송노동자의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서는 우선 금융기관과 현금수송업체 간 입찰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현금수송업체들은 금융기관으로부터 업무를 위탁받는 하도급업체라고 봐도 무방하다. 금융기관은 해당 업무를 현금수송업체에 위탁할 때 더 낮은 단가를 부르는 업체를 채택하는 최저입찰 방식을 활용한다. 여기에 현금수송업체 간 경쟁이 맞물리게 되면서 입찰단가는 내려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는 현금수송업체의 수익률 개선이 어렵다는 말로 풀이할 수 있고, 수익률 개선의 어려움은 현금수송노동자 처우와 직결된다.

국내 현금수송업체 1, 2위로 한국금융안전과 브링스코리아가 꼽히는데, 지난 7월 1일부로 금융노조 한국금융안전지부(위원장 이동훈, 이하 금융안전지부)는 관광·서비스노련 브링스코리아노동조합(위원장 조승원, 이하 브링스노조)과 함께 국회 앞 천막투쟁에 돌입했다. 금융안전지부는 지난 1월, 노동조건이 개선되지 않는 까닭이 회사의 경영실패에 있다고 판단해 김석 대표이사의 퇴진을 요구했다가, 총파업 하루 전 회사와 교섭을 타결하고 단체협약을 체결한 바 있다. 당시 단체협약에는 1% 임금인상과 시간외수당 지급 등 노동조건 개선 사항이 포함돼 있었고 노사 문제는 이로써 일단락되는 듯 보였지만, 이후 노조는 회사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천막농성에 돌입했다.

현금수송업체의 경영악화로 인해 신규채용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노동조건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경비업법에 따르면, 운송 차량에 귀중품이 있을 경우 3명이 배석해야 한다. 그러나 비용을 줄이기 위해 암암리에 2명만 나가는 경우가 많다는 게 현장의 목소리다. 배석 인원수가 줄어들 경우 업무강도는 당연히 높아질 수밖에 없다.

안성진 브링스코리아민주노동조합 위원장은 “(현금수송을 나갔을 때) 금융기관에서 왜 3명이 오지 않았냐고 물어보면, 2명밖에 없지만 거래처에 책잡히기 싫어 1명은 화장실에 갔다고 얘기하는 경우도 많다”며 “심지어 (회사에서) 1명만을 내보낸 경우도 있었다”고 토로했다.

 

한국금융안전과 브링스코리아에서는 대체 무슨 일이?

현금수송업체 내 노동조합으로 한국노총 소속의 금융안전지부와 브링스노조, 민주노총 소속의 서비스연맹 브링스코리아민주노동조합(위원장 안성진, 이하 브링스민주노조) 세 곳이 활동하고 있다. 상급 단체는 모두 다르지만 세 노동조합이 요구하는 바는 같다. 궁극적으로 현금수송노동자가 생활을 영위할 수준의 노동조건 개선과 이를 위한 경영방식 개선이 그것이다.

국회 앞 천막투쟁을 이어가고 있는 한국노총 소속 두 노동조합은 소속 회사가 다름에도 김석 한국금융안전 대표이사의 퇴진을 외치고 있는데, 이들이 퇴진을 외치는 이유는 한국금융안전의 지배구조 때문이다.

한국금융안전은 1990년 국내 시중은행 출자로 설립된 현금수송업체다. 2014년 이후 청호이지캐쉬(대표이사 김석)가 하나은행과 외환은행 등이 보유한 지분 37.05%를 사들이면서 최대 주주로 올라섰다. 현재 경영권을 주장할 수 있는 대주주로는 우리은행(15%)·KB국민은행(14.96%)·신한은행(14.91%)·IBK기업은행(14.67%)이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 공시(2020년 말 기준)에 따르면, 청호이지캐쉬의 최대 주주는 금융안전홀딩스(구 렉스라피스, 지분 57.8%)이며, 금융안전홀딩스의 최대 주주는 80% 상당의 지분을 보유한 김석 대표이사다.

또한 브링스코리아의 지분 100%를 브링앤세이프(구 에코맥스)라는 회사가 보유하고 있는데, 노동조합은 현재 브링앤세이프의 사내이사 자리에 김석 대표이사가 배정돼 있는 점과 브링앤세이프의 박철민 대표이사가 김석 대표이사의 동창이라는 점, 2020년 5월 29일 당시 브링스코리아의 대표이사로 선임돼 3개월 만에 임기를 마쳤던 이주홍 씨가 김석 대표이사의 처남이라는 점을 들어 김석 대표이사가 한국금융안전뿐만 아니라 브링스코리아에도 지배력을 행사·강화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브링스민주노조는 2020년 5월 29일 브링스코리아가 청호이지캐쉬가 보유하고 있던 ‘청호VAN(물품 등 구입 시 카드사에 결제승인을 받기 위한 승인중계업무)’사업권을 인수하기 위해 당시 해당 사업의 고정자산 평가액이 9억 5,000만 원이었음에도 32억 원에 계약을 체결했다고 지적한다. 회사가 재정 적자를 면치 못하는 상황이었음에도 무리한 사업권 인수에 나섰다는 것이다. 브링스민주노조는 김석 대표이사와 계약을 체결한 이주홍 전 대표이사에 대해 업무상 배임 혐의로 고발을 예고한 상황이다.

안성진 위원장은 “청호VAN 사업권 인수로 인해 한 달에 5,000만 원에서 1억 원가량이 빠져나가고 있다”며 “작년 12월부터 3월까지 직원들 급여가 지연됐다. 5년 전만 해도 1,000명이 넘었던 직원이 지금은 400여 명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회사는 인원을 줄이고자 한다”고 말했다.

6월 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한국금융안전 정상화 및 특별근로감독 촉구 기자회견’ ⓒ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6월 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한국금융안전 정상화 및 특별근로감독 촉구 기자회견’ ⓒ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또 금융안전지부는 최근 경영악화 속에서도 김석 대표이사가 은행에 수수료 인상을 요구해 입찰 기회를 놓친 점을 두고 고의적인 해사 행위를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금융안전지부는 2021년 5월 “한국금융안전이 매출의 10%를 차지하는 농협물류 업무 계약을 파기 반납하고, 국민은행과 신한은행 등에 계속해서 업무 파기 협박성 문서를 발송해, 매출 감소로 인한 노동자들의 고용과 생존권까지 위협하고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계약 파기 후 농협물류 업무 입찰 기회는 브링스코리아에 먼저 주어졌다. 금융안전지부는 당시 브링스코리아가 계약 앞두고 농협 측에 20% 수준의 수수료 인상을 요구하면서 업무가 나이스CMS 등 경쟁업체로 돌아갔는데, 이 같은 일련의 과정에서 김석 대표이사와 박철민 대표이사 간 모종의 협의로 해사행위를 주도한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이 같은 노동조합의 주장과 관련해 김석 대표이사는 사실관계가 잘못됐다고 밝혔다. 우선 VAN사업과 관련해서 “국내 ATM 회사가 5개뿐인데, 기계뿐만 아니라 46개 금융기관과의 전용선을 연결해줘야만 사업이 가능하다. 실제 54억 원, 100억 원, 360억 원 등에 VAN사업권이 팔린 사례까지 있다”고 반박했다. 농협 입찰 건 관련해서도 최저입찰제로 인한 수입구조 개선을 위한 대응이었다는 게 김석 대표이사의 주장이다.

김석 대표이사는 노동조합의 대응에 대해 “매출액 대비 인건비 수준이 85%로 높다. 회사가 이익이 날 때 노동조합이 (처우 등) 몫을 가져가기 위해 요구할 수 있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올해 연말이면 회사가 문 닫아야 할 판국에 노동조합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노사 상생’ 기반으로 구조적 문제 바꿔가야

“60만km 넘게 달린 차를 아직도 타고 다녀요. (회사가) 돈이 없어서 교체를 못하는 거예요. 유니폼도 새로 제작하기 어려우니 아껴 입는 정도예요.”

브링스민주노조는 생존권을 위협하는 최저입찰제 문제 해결을 위해 지난 4월 8일부터 금융감독원 앞 1인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현재 금융감독원 원장 자리가 공석이지만 노동조합의 요구는 지속되고 있다.

금융감독원 앞 1인 시위를 진행하고 있는 브링스민주노조, 국회 앞 천막투쟁을 진행하고 있는 금융안전지부와 브링스노조의 요구사항은 현행 최저입찰제 폐지와 최저임금 인상률이 반영된 표준노임단가제(노임 기준에 맞춘 단가제)를 적용한 생존권 보장으로 모아진다.

안성진 위원장은 “은행들은 성과급을 많이 지급한다는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들리는데, 정작 은행 일을 하는 현금수송노동자는 벼랑 끝에 몰려있다”며 “현금수송노동자들이 바라는 건 급여가 오르는 것도 아니다. 급여 날 가족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구조적인 문제를 개선해 달라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안성진 위원장은 이어 “금융감독원에 구조적 문제 개선을 외치는 일은 노동조합뿐만 아니라 회사도 함께 나서야 하는 일이다. 조합원들도 회사를 위해 노력하고 있으니, 회사도 조합원들이 사람답게 살 수 있게 노력했으면 한다”고 밝혔다.

이동훈 위원장은 “(만약) 회사를 정상화시킬 수 있다면 노동조합도 기꺼이 고통을 분담할 것”이라며 “은행들과 금융당국이 사태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회사 외부에 있는 구조적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내부의 화합된 힘이 최우선이다. 노동자는 기업의 필수요소이며, 기업은 노동자의 둥지와 같다. 노동자는 자신이 소속된 기업을 통해 삶의 안정성을 보장받으면서 ‘신뢰’라는 자산을 생성하고, 이를 기반으로 기업은 미래 성장을 위한 동력을 얻게 된다. 위기에 처한 두 현금수송업체의 상황을 기회로 바꾸기 위해서는, 노사가 서로를 파트너로 인식하고 상생을 위한 ‘노사 화합’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