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내 입법' 추진 플랫폼종사자법, 실효성 문제 제기 나와
'연내 입법' 추진 플랫폼종사자법, 실효성 문제 제기 나와
  • 손광모 기자
  • 승인 2021.10.05 17:07
  • 수정 2021.10.05 17: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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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안이 공정 계약·유리의 원칙·알고리즘 공개 규정하지만...
​​​​​​실효성 의심하는 노조·시민단체, “​노동자 아닌 ‘플랫폼 종사자’ 제3지대 만드는 해로운 법”
ⓒ 참여와혁신 송지훈 기자 jhsong@laborplus.co.kr
10월 5일 오전 10시 여의도 국회 앞에서 진행된 ‘노동기본권 외면하는 사업자 보호법! 플랫폼종사자법, 당사자와 시민사회는 반대한다’ 기자회견 현장 ⓒ 참여와혁신 송지훈 기자 jhsong@laborplus.co.kr

플랫폼종사자를 보호하고 지원하기 위해 발의된 법이 그 실효성을 두고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플랫폼종사자법이 ‘플랫폼 종사자’라는 제3의 지위를 규정해 노동관계법 적용을 어렵게 할 것이라는 전망 때문이다.

라이더유니온,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전국대리운전노동조합, 웹툰노동조합,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택시지부 등 노동조합들은 5일 오전 10시 여의도 국회 앞에서 ‘노동기본권 외면하는 사업자 보호법! 플랫폼종사자법, 당사자와 시민사회는 반대한다’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참여연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한국 비정규노동센터 등 시민사회단체들도 함께 했다.

앞서 장철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3월 18일 플랫폼 종사자 보호 및 지원에 관한 법(이하 플랫폼종사자법)을 대표 발의했다. 플랫폼종사자법의 주요 골자는 ▲노동관계법, 공정거래법, 플랫폼종사자법 중 플랫폼종사자에게 유리한 법을 우선 적용(유리의 원칙) ▲공정한 플랫폼 계약 체결(위반 시 과태료 500만 원) ▲개인정보 보호 및 알고리즘 정보 제공 의무 ▲공제 사업 근거 마련 ▲플랫폼 사업자의 사회보험 의무 적용 등이다.

하지만 플랫폼 노동조합과 시민사회단체들은 발의안이 규정한 ‘유리의 법칙’이 현실에서는 작동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은 “프리랜서가 아니라 노동자로 인정될 경우 노동법을 우선 적용하도록 하는 유리의 원칙이 명시돼 있지만, 노동자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7~8년이 소요되는 대법원 판결을 받아와야 하는 당사자들 입장에서는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노동자성 입증의 책임을 사용자가 아닌 노동자 각자에게 맡겨두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다.

반면 해외에서는 플랫폼 종사자의 노동자성 입증을 사용자에게 부과하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 올해 1월부터 시행된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AB5 법안은 플랫폼종사자의 노동자성 입증 책임을 사용자에게 두고 있다. 또한 9월 15일 유럽연합 의회에서 통과한 ‘라이더, 운전기사 등 플랫폼 노동을 위한 공정하고 평등한 사회적 권리 보장(Fair and equal social protection for riders, drivers and other platform workers) 결의안’은 플랫폼 종사자가 노동자인지 자영업자인지 입증 책임을 사용자에게 전환할 것을 제안했다.

알고리즘 공개 범위를 두고서도 실효성 논란이 제기된다. 발의안은 플랫폼기업의 정보공개 범위를 플랫폼종사자가 요청하는 정보에서 “경영상·영업상 비밀에 관한 사항으로서 공개될 경우 정당한 이익을 현저히 해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정보”를 제외할 수 있도록 했다.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은 “플랫폼종사자법은 알고리즘 공개에 기업 비밀일 경우를 단서 조항으로 두고 있다”면서 “교섭에서 회사는 요금제가 어떻게 조정되는지, 누가 패널티를 받는지 모두 AI가 하기 때문에 모른다고 말한다. 공개를 요구해도 기업비밀이라면서 공개하지 않고 있다. 이러한 회사의 주장을 입법적으로 뒷받침하는 게 플랫폼종사자법”이라고 밝혔다.

공정한 계약을 지향한다는 발의안의 취지가 현실에서 실현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평가도 있다.

범유경 민변 노동위원회 변호사는 “노동자가 아무런 협상력이 없다는 사실을 철저하게 외면하고 있다”면서 “발의안에서는 플랫폼과 노동자가 대등한 지위에서 계약을 공정하게 체결해야 한다고 정하고, 계약 내용 변경이나 해지시 10일(변경) 혹은 15일(해지) 전에 서면으로 제공해야 한다고 하지만, 현실에서 플랫폼은 말을 듣지 않는 노동자와 곧바로 계약을 해지한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플랫폼 이용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을 경우 5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는데, 이는 근로기준법상 근로계약서 미작성 시 500원 이하의 '벌금'을 내리는 것에 비해 약소한 처벌이라는 점도 실효성을 의심케 하는 대목이다.

김동철 웹툰노조 부위원장은 “플랫폼과 중간 제작사에게 더 많은 수수료를 떼어주는 계약을 하는 작가에게 기회를 더 준다. 저작권을 더 많이 양보하는 작가에게 연재 기회를 주고, 광고도 저해준다”면서 “울며 겨자 먹기로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고 플랫폼의 비위를 맞추게 된다”고 토로했다. '취업방해금지', '해고의 제한', '중간착취 금지' 등을 규정하는 노동관계법과는 달리 플랫폼종사자법에는 ‘공정한 계약’을 강제하기 위해 플랫폼 종사자에게 부여하는 권리가 현저히 적다는 지적이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이들은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스페인, 네덜란드, 호주 등 세계 곳곳에서 플랫폼종사자를 노동자로 인정한 판결이 쏟아지고 있다. 이들을 노동자로 인정하는 법·제도를 속속 도입하고 있다”면서, “한국만 세계적 흐름과는 정반대로 역주행을 하며 플랫폼 기업의 손을 들어주려한다. 플랫폼종사자법은 플랫폼노동자로부터 노동법을 빼앗고, 플랫폼 기업의 책임을 면제해주는 해롭고 위험한 법”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현재 플랫폼종사자법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9월 30일 정부가 발표한 "다양한 고용형태 보호 방안"에 따르면, 정부는 "플랫폼종사자법의 연내 입법을 추진할 수 있도록 국회 논의를 지원할 것"이라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