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 칼럼] 나의 미래가 궁금하다면?
[발행인 칼럼] 나의 미래가 궁금하다면?
  • 박송호 발행인
  • 승인 2021.10.09 22:07
  • 수정 2021.10.09 22: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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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송호 참여와혁신 발행인

박송호 참여와혁신 발행인

세상이 복잡해지면서, 그 세상의 발전의 속도는 오히려 더뎌졌습니다. 예전 같은 획기적인 아이템이 아니라 이제는 융합과 개선으로 새로운 시장을 만들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가장 흔하게 회자되는 말이 ‘불확실성’과 ‘참여’, ‘창의성’입니다. 우리의 일터와 사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산업화를 넘어 민주화 과정까지 우리 사회를 관통해 온 것이 엘리트주의입니다. 하지만 엘리트 중심의 사회 운영은 한계에 부딪혔습니다.

일터에서는 노동의 참여가 중요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자신의 책임에 따른 의사 결정을 부담스러워합니다. 결정된 것을 따르는 것도 싫어합니다. 권한이 없는 실행, 이것이 냉소주의를 만드는 근원입니다. 아직도 누군가 자신의 문제를 시원하게 해결해주길 바란다면 그건 노예의 길이자 불행으로 향하는 길이기도 합니다. 불확실성을 넘기 위해서는 투명성이라는 바탕하에 모두의 지혜를 모아야 합니다. 자기의 일을 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먹고 사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일자리와 취업을 전제로 사회가 재편되고 있습니다. 창의성, 자율성이 필요하다고 하면서 노동하는 당사자가 아닌 기업이 필요하다고 하는 ‘인재상’을 만들기 위해 대학이 변해버렸습니다. 이제 중등 교육마저 변화하고 있습니다. 학교 현장에는 계약직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두세 과목을 맡는 교사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학생의 선택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현실의 선택은 주어진 조건 내에서만 가능합니다. 날마다 희망이 바뀌는 청춘에게 주어진 조건 내에서의 선택을 강요하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학교를 이탈하는 학생수가 엄청납니다. 대상이 되어버린 학교에서의 경험만이 남은 이들이 사회에 나왔을 때 일터에서의 참여는 가능할까요?

높은 자존감을 가지고 핵가족의 돌봄을 받아온 젊은이들이 중심이 되는 시대입니다. 자신의 머리로 생각하고 자신의 방식으로 살아가고 싶어 하는 욕구가 강해졌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투명성과 자신의 삶만큼의 책임입니다. 누구도 나의 삶을 대신해 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지금 전문가의 시대를 넘어가고 있습니다. 거기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민주주의, 조정과 타협. 책임이 필요합니다.

일터에서의 본질은 일을 재밌게 잘하는 것입니다. 학교의 본질은 학생들이 오늘을 배워 미래를 준비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노동자, 학생이 중심입니다. 나머지는 이것이 잘 되게 하는 보조자이자 조력자입니다. 필요라는 이름으로 제기되는 것이 노동자와 학생이 오늘 반드시 해야 되는 일은 아닙니다. 시민사회에서 시민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오늘 무엇을 보고 고민해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