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 칼럼] 새해! 당신을 기다리며
[발행인 칼럼] 새해! 당신을 기다리며
  • 박송호 발행인
  • 승인 2022.01.03 13:53
  • 수정 2022.01.05 14: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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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송호 참여와혁신 발행인
박송호 참여와혁신 발행인

새해가 밝았습니다. 호랑이해라고 합니다. 
호시(虎視)가 필요한 시기입니다. 
우리 사회의 혼란과 답답함을 넘어,
호랑이처럼 예리하게 사물을 보고 치열하게 진실을 찾아가라는 시대적 언명이겠지요.

세상이 답답하고 불확실할수록 우리는 한방을 기대합니다. 
또 누군가는 판을 정리하고 끝내는 영웅이 되고 싶어 하고, 그런 영웅을 기다리기도 합니다. 
‘이건 아닌데’라는 답답함으로, 번득이는 아이디어로 나와 세상의 다름을, 세상의 우둔함을 탓하는 무기로 삼기도 합니다. 
과정이 빠진, 정체성의 차이가 서로 다름이 아닌 상대가 틀림을 부각시키고 갈등을 만듭니다.

우리는 팬데믹 상황에서 위드코로나, 포스트코로나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디지털화의 가속화는 대한민국 산업 전반의 변화를 요구하고 또 진행되고 있습니다. 일자리로써 노동에 대한 배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된 듯 보입니다. 바로 사회안전망 차원에서 교육과 훈련의 필요성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한 가지가 간과된 듯합니다. 새로운 산업, 미래의 먹거리, 신성장 동력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면서, 이것이 이뤄지는 방식은 여전히 변함없다는 것입니다. 즉 노동의 소외, 국민의 소외이며 엘리트 중심의 탑다운 방식이라는 것입니다. 과정의 참여 없이 결과에 동의하고 따르라고 바라는 것은 또 다른 전체주의입니다. 주체에 대한 못 미더움, 주어진 조건을 따르라는 ‘참여의 강제’를 통해 주체에게 기대할 수 있는 게 무엇이 있을까요?

우리 사회는 상당 기간 추격자 경제의 한계를 경험하며 고부가가치 산업으로의 이동을 이야기했습니다. 조선업의 성장과 추락이 시장의 변화 때문만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말뫼와 일본의 경험을 무시한 것입니다. 지속적인 성장과 변화는 단순반복 작업과 장시간 노동에 의지해서는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은 현장을 지켜야 합니다. 존재하는 현실을 지속하기 위해 오늘을 사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엘리트주의 중심의 지향과 다수의 소외는 지대추구와 냉소를 부추깁니다. 비전의 부재와 민주주의의 지루함을 대중주의로 대신해서는 안 됩니다.

일하는 사람이 자신의 노동에 자부심을 갖도록 일터가 변해야 합니다. 살맛 나는 일터를 위해 노동 역시 참여해야 합니다. 일터에서 내가 성장해야 합니다. 노동의 참여와 성장을 위해 고성과작업장, 고숙련노동이 필요합니다. 성장을 위한 노동의 인간화는 시대의 과제입니다.

내가 있는 오늘과 내일이 일터에서 만날 때 자신감이 생긴다고 합니다. 자신의 가치와 정체성이 성장해야 신뢰가 만들어집니다. 나와 우리, 그리고 우리 사회가 함께 희망을 만들어 가야 합니다.

나답게 살기 위해, 또 꿈을 꾼다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진흙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처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성큼성큼 호행(虎行)이어도 좋습니다. 뚜벅뚜벅 우행(牛行)이어도 상관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