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참여와혁신’인가?
왜 ‘참여와혁신’인가?
  • 정다솜 기자
  • 승인 2022.02.07 15:41
  • 수정 2022.02.14 13: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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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호 제안자에게 묻다
[초대] 이문호 워크인조직혁신연구소 소장

참여와혁신은 참여와혁신 기자들을 가끔 곤란에 빠뜨린다. 처음 매체명을 듣는 이의 얼굴에 물음표가 떴을 때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까?’ 참여와혁신이 익숙한 취재원도, 믿었던 그도 문득 묻는다. “근데 왜 참여와혁신입니까?” 

기자들마저 서로 의심이 드는 순간이 있다. ‘저 기자가 말하는 참여와혁신과 내가 이해하는 참여와혁신은 같은 걸까?’ 토론하고 묻는 수밖에 없다. 처음 참여와혁신이라는 이름을 추천한 이문호 워크인조직혁신연구소 소장을 지난달 20일 참여와혁신 사무실에 초대했다. 이 자리엔 강한님·김민호·박완순·백승윤·손광모·정다솜 기자가 함께했다. 

이문호 워크인조직혁신연구소 소장 ⓒ 참여와혁신 김민호 기자 mhkim@laborplus.co.kr
이문호 워크인조직혁신연구소 소장 ⓒ 참여와혁신 김민호 기자 mhkim@laborplus.co.kr

 “창간 당시 참여와혁신이 화두였다”

기자들 : 참여와혁신이라는 제호를 추천한 이유가 뭐였나? 

이문호 소장 : 2000년대 초반 창간 당시 참여와혁신이 화두였다. 회사 또는 지배계층의 일방적인 혁신은 취약계층의 희생이 따를 수밖에 없다. 그러니 노동자, 시민 당사자들이 참여해야 요즘 이야기하는 ‘정의로운 전환’이 일어날 수 있단 뜻이다.

노동계는 참여를 통해 ‘노동의 인간화’를 실현할 수 있다. 노동은 회사의 일방적인 혁신 때문에 힘들다. 한쪽으로 치우친 생산성 향상, 이윤 추구로 인해 노동강도가 높아지고 일터가 각박해진다. 이런 맥락에서 노동의 참여가 화두로 떠올랐고, 참여와혁신이라는 매체명이 어떨까 제안했던 거다.

그때 매체명을 정하고 한 3개월 뒤에 노무현 정부가 출범했다. 정부 이름이 참여정부였고, 화두가 혁신이었다.(웃음) 이 또한 세계적 흐름 속에서 잡은 기조였다. 공교로운 일이었지만, 참여와혁신이 정치적 배경에서 탄생한 잡지가 아니냐는 오해도 많이 받았다. 

정다솜 기자 :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산업전환을 취재하면서 노동의 참여와 일터의 혁신이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일 수 있는지 그려본 계기가 됐다. 다만 기자들은 참여와혁신이 무엇인지 명료하게 정리하고, 정리된 문장을 함께 추구하며 취재하고 기사를 써나가고 싶단 바람이 있었다.

이문호 소장 : 참여와혁신은 기자들이 이해한 것 이상이 아니다. 직장을 다니면서 노동자에게 중요한 건 왕따 당하지 않는 것, 결정 과정에서 배제당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노동계 입장에서 참여는 부담이 될 수 있다. 공부해야 하니까. 경영 참여라고 한다면 경영 전략부터 다 공부해야 한다. 

손광모 기자 : 참여는 좀 피곤한 것 같다. 그래서 노동의 자발성에만 기대기엔 장기간 유지되기 어렵지 않을까. 끊임없이 내 시간을 들여서 참여하는 것과, 내 시간을 여유롭게 쓰면서 참여하지 않는 것. 전자를 택하는 노동자가 얼마나 될까? 회사라는 공동체 내에서 참여가 구조적으로 가능할지 의문도 든다. 참여가 가능하려면 노동조건이 안정돼야 하지 않을까. 노동시간이 엄격하게 제한된다든가, 그렇지 않다면 초과노동에 대한 충분한 보상이 주어진다든가.

이문호 소장 : 참여와혁신이라는 개념이 과연 한국적 노동현실에 맞는 이야기인지는 고민해 봐야 한다. 노동은 참여를 위해 새로운 역량을 갖춰야 하는데, 이게 필요 없는 역량일 수도 있다. 노동자가 경영 전략을 공부한다고 돈을 더 받는 것도 아니다. 물론 정치적 야심이 있으면 가능하다. 나쁜 의미가 아니라 야심을 품으면 공부를 하게 되니까. 그쪽에서 노동이 참여해야 한다는 말은 노동이 파워, 힘을 행사하겠단 거다. 

그런데 이 말이 일반적인 노동자들에겐 거리감이 느껴질 수 있다. ‘골치 아프게 내가 뭐 하러 참여해? 결정은 그냥 회사가 하고, 결과에 대해 찬성이든 반대든 평가할래. 반대면 투쟁’ 이런 길도 있다. 노동계 입장에선 일장일단이 있는 거다.

산업전환, 
다시 떠오른 노동의 참여

백승윤 기자 : 앞서 언급했듯 그래도 산업전환이 화두가 되면서 노동의 참여라는 말이 보편적으로 이해되기 시작한 것 같다.

이문호 소장 : 탄소중립과 디지털화라는 산업전환 과정에서 참여와혁신이 계속 화두가 되는 이유는 불안해서다. 지금 일어나는 전환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고, 불안하다. 불안하면 뭔가 알고 싶다. 우리 회사가 어디로 가는 건지 가서 좀 듣고 싶은 거다. 여기에 참여가 필요한 거다. 노동이사제도 이런 배경에서 나왔다. 또한 산업전환이 곧 혁신 아닌가. 이 혁신을 참여를 통해 같이 해나가자는 거다. 회사의 이야기를 듣고 어디에 투자할 건지, 앞으로 어떤 사업을 할 건지 같이 결정해 나가는 것. 이게 금속노조에선 ‘공동결정법’으로 이야기가 됐던 거다. 

정다솜 기자 : 노동조합은 참여보단 개입이라는 단어를 많이 쓰더라. 

이문호 소장 : 자본은 싸워서 이겨야 될 상대라는 인식이 깔려 있는 말이다. 한국 노동조합은 1987년 이후 투쟁 중심적으로 갔다. 참여는 테이블에 같이 들어가서 소통하고 협력하자는 뜻이 강하니까, 이 단어 자체를 싫어할 수 있다. 사실 학술적으로 개입이란 용어는 잘 안 쓴다. 개입은 참여하지 않고 내가 너를 바꿔놓겠다는 뜻이다. 개입이 옳다는 이들에게 참여라는 말을 먼저 꺼내면 어용 취급받을 가능성도 있는 거다. 그렇게 되면 처음부터 벽이 생긴다. 

하지만 노동의 관점에서 보면 참여와혁신을 적극적으로 해석할 여지는 크다. 노동운동의 주요 구호 중 하나는 ‘노동이 주인되는 세상’이다. 이건 참여 없이 이뤄질 수 없다. 일터에서 경영을 알지 못하면 주인이 될 수 없다. 그러니까 노동 배제적 산업전환을 많이 우려하는 거다. 노동 참여적 산업전환을 하라는 이야기는 곧 정의로운 전환이다. 지금 양대노총 모두 정의로운 전환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렇게 해석을 하면 개념적으로 큰 마찰은 없을 거다. 

노동의 참여를 위한
기자의 역할

이문호 소장 : 기자들에게 과제는 노동의 인간화를 위해 어떤 역할을 할지 고민해나가는 것일 터다. 그러기 위해선 스스로도 계속 공부를 해나가야 한다. 구체적인 목표를 세워도 될 것이다. 이런 토론을 통해서 목표와 관점을 좁혀나가면 된다. 토론은 주관적인 자기 생각을 객관화시켜준다. 다만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겠다. 중요한 건 이 과정에서 얼마나 흥미를 느끼는가다. 조직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본인과 맞아떨어져야 한다. 자기 관점이 생기고 문제의식이 제대로 기사로 표현되면 즐거움이 생길 것이다. 

 

*가까이에 힌트도 있다. 박송호 참여와혁신 발행인은 창간 15주년 행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지시받는 노동, 마지못해 하는 노동으로 열심히 따라가기만 하던 시대는 저물고 있다. 양질의 노동, 살맛 나는 삶을 위해 지혜를 모아야 한다. 노동은 살맛 나는 일터를 위해 참여와 협력을 해야 한다. 참여와 혁신은 노사관계의 당사자인 노와 사가 자기 대안과 비전을 갖고 만날 수 있도록 조력자로서 최선을 다하겠다. 행복한 일터의 동반자로서 전문성과 소명의식을 갖도록 공부하고 노력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