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퍼에서 만난 노동자들] “그대로 살아갈 것이니, 미워해도 소용없어”
[퀴퍼에서 만난 노동자들] “그대로 살아갈 것이니, 미워해도 소용없어”
  • 강한님 기자
  • 승인 2022.07.19 17:30
  • 수정 2022.07.19 17: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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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회 서울퀴어퍼레이드 코로나19 3년 만에 열려
‘모두’에게 좋은 사업장은 없다···‘나’로 일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 참여와혁신 강한님 기자 hnkang@laborplus.co.kr

3년 만에 서울광장이 무지개로 메워졌다. ‘살자 함께하자 나아가자’를 슬로건으로 16일 진행된 서울퀴어퍼레이드에는 수많은 성소수자가 참여해 그 존재를 알렸다. 서울퀴어퍼레이드는 이달 15일부터 31일까지 열리는 23회 서울퀴어문화축제의 주요 행사 중 하나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법으로 축제를 즐겼다. 배지, 팔찌, 망토, 스티커 타투 등 크고 작은 무지개를 들고, 노래를 부르며 행진했다. “모두가 일하기 좋은 직장은 없다는 것이 가끔은 막막하다”면서도, “그대로 나로 살아갈 것”이라던 9명의 성소수자와 엘라이(연대자)들의 목소리를 전한다.

있는 그대로인 제가
가장 중요하다고 여겨요

트랜스 남성이고요.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로 일해요. SNS를 통해 일감을 받는데, 정체성을 올려둔 후 일감이 딱 끊겼던 적이 있어요. 퀴어는 사주는 거 아니다, 페미니스트니까 없어져야 한다거나, 그런 식으로 간 고객이 꽤 있어요. 굳이 찾아와서 사이버불링을 하는 사람도 있고요. 일을 아예 못 받아서 다른 직업으로 옮기신 분들이 주변에도 있고요. 젠더와 여러 사랑이 더 알려져야 하는데, 사람들이 모르니까 헛소리로 대답을 한단 말이에요. 가끔은 막막하긴 한데, 그냥 그대로 살아가려고요. 있는 그대로인 제가 제일 중요하다고 여겨요. 교육과정을 만들 때 성소수자의 의견을 전폭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필요할 것 같아요. 최소한 그래야 한다고 봐요.

저를 뭐라고 해야 하지. 일반 회사에 다니다 지금은 그만두고 다시 일을 알아보고 있어요. 엄마나 사촌들한테는 커밍아웃 했는데, 당연히 회사엔 안 했죠. 아무래도 보이지 않는 차별이 걱정되더라고요. 성소수자인 게 알려지면 업무에서 배제가 된다거나, 인사고과에서 문제가 생긴다거나 하는 거요. 정체성이나 사적인 부분으로 차별을 하는 것은 지양하면 좋겠는데···. 그런 법을 좀 빨리 만들어야 할 것 같아요.

50대 퀴어입니다. 민주노총에 퀴어 조합원 모임이 있거든요. 일원으로 함께하고 있어요. 사실 모두가 일하기 좋은 사업장은 없죠. 노동조합이 조합원 교육을 종종 하는데요. 교육 내용을 보면 변화가 조금씩 일어나고 있다는 생각은 해요. 우리는 알려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많잖아요. 노동조합은 조합원 권익을 위해서 활동을 하고요. 그러면 커밍아웃까지는 아니겠지만 적어도 내가 불이익을 받았을 때 노동조합에 이야기할 수 있겠구나 하는 게 있어야 하는데 아직 그런 건 부족해요. 조합원 모임에서 머리를 맞대고 고민할 수 있는 장을 만드는 게 중요할 것 같아요. 공동대응을 할 수도 있는 거고요.

ⓒ 참여와혁신 강한님 기자 hnkang@laborplus.co.kr

직장 내 문화 개선도
‘다른 노동문제’만큼 중요

저는 서울 사는 시민이라고 해 주세요. 공무원인데요. 공직사회가 성소수자 말고도 연령이나 여성에 대해서도 굉장히 굳어 있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퀴어프렌들리한 사내 문화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스스로를 성소수자라고 드러내시는 분들도 아예 없죠. 공무원들에게는 노동조합이 있는데, 노조는 직장 내 문화를 개선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 당장 닥친 노동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잖아요. 그러나 그만큼 직장 내 문화를 개선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저는 보고 있어요.

대학생인데··· 예비 노동자라고 할까요? 만약에 제가 사장님이면 이력서에 성별 기입 같은 거 다 없애고, 사진 같은 거 붙이는 거 없애고. 불편하지 않은 회사를 만들 것 같아요. 뭔가 그냥 편안한 회사? 모두를 위한 화장실도 만들면 좋겠어요. 자신을 여성이나 남성으로 정체화하지 않거나, 트렌스젠더 분들은 특정 성별 화장실을 이용하기가 힘들 수 있잖아요. 모두의 화장실을 만들면 성별에 구애받지 않고 모두가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러쉬코리아에서 일하고 있는 소닉이에요. 러쉬가 퀴퍼에 참여한 지가, 퀴퍼 시작부터 했으니까 거의 7년 정도 됐을 거예요. 러쉬는 상생을 되게 중요하게 생각하는 브랜드인데요. 차별이 없어야 한다는 것을 직원들에게 알려주는 의미로 매년 참여하고 있어요. 회사에서는 일로 평가가 돼야 하는 거잖아요. 성별이나 성적 지향으로 사람을 규정하거나 평가하면 안 돼요. 왜냐면 정말 좋은 사람을 회사가 놓칠 수 있거든요. 그러면 회사의 발전에도 손실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그런 장벽들을 무너뜨리는 게 회사의 성장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 참여와혁신 강한님 기자 hnkang@laborplus.co.kr

포괄적 차별에 관한 규정이
이 사회에 빨리 생겨야

30대 직장인인데, 직장엔 여러 편견이 많은 것 같아요. 성적 지향도 그렇고, 여성, 지역, 어떤 학교를 나왔는지 등등 보여지는 모습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것 같아요. 평범하길 바라고요. 이거 회사 이름 안 나가는 거죠? 하하하. 저는 여기 남편이랑 같이 왔는데요. 용기를 주고 싶어 왔어요. 차별하는 사람이 잘못된 거고, 사회가 바뀌어야 하는 거잖아요. 성소수자의 날이나 이런 행사가 있을 때 사내에서 인식 개선에 나서주면 어떨까 하는 바람이 있어요. 그리고 저는 회사도 그렇지만 학교 교육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안태진 보건의료노조 정책부장이에요. 병원도 성소수자들이 본인을 드러낼 수 없다는 점은 다른 사업장과 다를 바 없어요. 보건의료노조는 조합원 대상으로 강의를 할 때 퀴어에 대한 전반적인 정보와 함께, 우리 안의 퀴어를 어떻게 차별하지 않을지를 이야기하기도 해요. 단체협약도, 가족이라는 개념이 확장돼야 한다는 이야기가 많잖아요. 단순히 법적인 가족에 한정하지 않고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인정할 수 있는 방향으로 단체협약을 폭넓게 열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알바 하고 있어요. 초중등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데요. 일하는 시간의 거의 대부분을 학생들과 보내요. 학생들에게 굳이 퀴어에 대해 물어보지 않아도 그 친구들이 가끔 ‘쟤 게이예요’라고 이야기를 할 때가 있어요. 이야기를 들어 봤을 때 그 친구들한테는 퀴어가 놀림으로 쓰인다고 느꼈던 것 같아요. 무슨 의미로 말하는지 물어보지도 않았지만. 결코 좋은 의미로 쓰이지는 않는다고 받아들였어요. 그런데 저는 시간 안에 수업을 진행해야 한다는 마음이 커서 더 대화를 나누고 싶어도 못하는 현실적인 부분이 있어요. 포괄적인 차별에 관한 규정들이 회사뿐 아니라 이 사회에 빨리 생겨야 한다는 생각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