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금지법이 필요한 OO”
“차별금지법이 필요한 OO”
  • 강한님 기자
  • 승인 2022.04.01 19:29
  • 수정 2022.04.12 19: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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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차별을 끊고 평등을 잇는 릴레이 단식행동 평등한끼’ 참여자들
누구에게나 어느 공간에나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차별금지법 기준으로 법·정책 다시 살펴야
ⓒ 참여와혁신 강한님 기자 hnkang@laborplus.co.kr

국회 앞은 소란하다. 무언가 바라는 사람들이 각자의 요구를 들고 모이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성소수자부모모임의 지월 씨는 “국회 근처에 가면 사람들이 지금 뭘 필요로 하는지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그도 자식이 성소수자인 것을 알기 전엔 국회 앞을 지나치며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조금 더 고상한 방법이 없나’ 하고 생각했다.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바라며 국회 앞에 온 지월 씨는 “이제는 안다. 모든 사람이 평등하지 않기 때문에 이렇게 나와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21대 국회가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제정할 것을 촉구하며 지난 3월 14일부터 국회 앞에서 매일 ‘평등한끼’를 진행하고 있다. 점심 한 끼를 굶으며 국회에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전달하기 위해서다.

차별금지법(평등법)에는 성별, 학력, 나이, 장애, 출신지역, 성별 정체성, 용모 등 신체조건, 혼인 여부 등을 이유로 차별을 금지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21대 국회에서는 장혜영 정의당 의원과 권인숙, 박주민, 권인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했다.

국회 앞은 소란하지만, 요구 실현은 대부분 요원하다. 차별금지법도 처음 국회에 발의된 2007년 이후 본회의 안건으로 상정된 적이 없다. 국민의 동의를 받아도 법 제정은 어렵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지난해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국민동의청원을 진행해 10만 명의 동의를 받았지만, 국회 법제사법위원회가 이 청원의 심사를 2024년 5월까지로 연장했다.

이 와중에 제20대 대선에서는 “구조적 차별은 없다”는 말까지 등장했다. 이에 반박하며 ‘평등한끼’에 참여해 사회 곳곳에서의 차별을 증언한 사람들에게 차별금지법의 필요성을 다시 질문했다. ‘차별금지법이 필요한 OO’을 질문하고 OO에 떠오르는 것을 자유롭게 말해달라고 했다.

왼쪽부터 유랑 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가, 장채원 한국성폭력상담소 자원활동가, 김은경 대한성공회 서울교구 사제(왼쪽) ⓒ 참여와혁신 강한님 기자 hnkang@laborplus.co.kr

“차별금지법은 ‘성폭력 피해자’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요”_유랑 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가
성폭력을 대응하는 과정에서 많은 피해자가 가해자의 주변인이나 가해자를 지지하는 집단들에 의한 차별과 혐오를 경험해요.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2차가해나 역고소 같은 피해를 방지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항상 ‘나중에’라고 하면서 소수자와 약자의 권리를 뒤로 미뤄오는 행태를 보였잖아요. 임기가 3개월밖에 남지 않았지만 차별금지법을 빨리 제정하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여성노동자’를 말하고 싶은데 괜찮나요?”_장채원 한국성폭력상담소 자원활동가
저는 여성에게 주어지는 일이나 보상이 정의롭지 않다고 생각해요. 노동을 할 때도 ‘여성적’인 면을 기대한다는 게 가장 문제인 것 같아요. 여성이 노동자로서 살 때는 노동도 해야 하지만 사람들 간 유화제 역할도 해야 하고, 분위기를 편하게 만들어야 하잖아요. 그런 것처럼 여성 노동자들에게 또 다른 억압이 있다고 생각해요. 성별과 상관없이 원하는 직종의 일을 선택하고, 직장에서 노동에 집중하고, 임신했거나 늙은 여성이라 퇴직당하는 것이 아니라 존엄하게 직장을 떠날 수 있어야 해요.

“‘장애인’ 차별철폐가 제일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_익명의 활동가
우리는 모두 병이나 사고로 인해 장애인이 될 수 있어요. 장애인의 가족이 될 수도 있고요. 차별금지법은 장애인뿐 아니라 미래의 나와 내 가족을 위한 법이기 때문에 너무나 당연하게 필요해요. 저도 30년을 차별주의자로 살아왔어요. 지금 정말 반성해요.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노골적으로 차별을 당연시 여기는 사람들이 부끄러워할 수 있는 사회가 될 것이라 생각해요. 우리는 사회적 동물이잖아요. 차별금지법에 맞춰 사람들의 인식이 바뀔 수도 있지 않을까요? 언젠가는 반드시 오고야 말 차별금지법 있는 세상, 파이팅!

“저는 ‘성소수자’들이 떠오르네요.”_김은경 대한성공회 서울교구 사제
한 사회가 어떤 성적 지향을 가진 사람들을 차별하는 것을 허용하면 다른 차별의 허용 범위도 점점 넓어질 수밖에 없어요. 우리 사회가 차별하고 혐오하는 관계를 학습하게 만드는 것도 같아요. 변희수 하사님이 돌아가신 것처럼, 차별 때문에 많은 분들이 지금도 목숨을 잃고 있어요. 이 죽음의 행렬을 멈추기 위해서는 차별금지법이 제정돼야 해요. 배제되고 차별받는 사람들을 따뜻하게 품어주라고 하신 예수님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여서 우리 모두 그 길을 잘 따라갔으면 합니다.

“물론 자식이 ‘성소수자’이긴 하지만”_하늘·지월 성소수자부모모임 활동가
지월 : 차별금지법은 특히 수가 작으면서도 힘을 못 쓰는 사람들에게 필요해요. 그 중에서도 사실 저는 성소수자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가장 배제당하는 사람들이 제일 급하죠.

하늘 : 우리가 삶을 살아가다 보면 어떨 때는 내가 소수일 때가 있어요. 그럴 때 차별금지법이 있어야 해요. 사회적 약자를 차별하지 말라는 것은 결국 모든 사람을 차별하지 말라는 뜻이거든요. 차별금지법을 바탕으로 정치를 하게 되면 모두가 공평하고 평등한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해요. 아직 차별금지법이 없다는 것은 우리나라가 인권후진국이라는 것을 전 세계에 드러내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거를 꼭 기사에 넣어주세요.

지월 : 윤석열 당선자가 구조적 차별이 없다고 했는데,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에요. 지금은 기득권이니 절대로 소수자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하겠지만 당신들도 언제든지 소수자가 될 수 있어요. 구조적 차별이 있는데, 거기서 우리가 뭘 놓치고 있는지를 찾는 게 바른 마음이죠. 차별은 언제든지 있을 수 있어요.

왼쪽부터 섹 알 마문 이주노조 수석부위원장, 강다영 성공회 용산나눔의집 이주민인권활동가, 명숙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상임활동가 ⓒ 참여와혁신 강한님 기자 hnkang@laborplus.co.kr 

“사업장 이동의 자유가 ‘이주노동자’들에게는 없잖아요”_섹 알 마문 이주노조 수석부위원장
일자리를 선택할 자유가 유일하게 이주노동자들에게 주어지지 않아요. 이번에 코로나19 재난지원금도 결혼이주민 말고 다른 이주민들한테는 주지 않았잖아요. 이런 거는 국가가 대놓고 사람한테 하는 차별인 거잖아요. 국가가 우리 사회구성원들을 다르게 보는 거니까요. 만약에 차별금지법이 통과됐다면 이거는 이주노동자를 넘어서 사람에 대한 차별이라는 걸 법원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거죠. 그런데 차별금지법 없어서 이런 문제가 해결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결국은 우리가 나서서 우리의 권리를 주장해야 하겠죠. 그래도 차별금지법은 권리를 국가로부터 배제당했던 사람들을 약간이나마 위로하고 권리를 더 말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거예요.

“오 너무 많은데··· ‘병원?’”_강다영 성공회 용산나눔의집 이주민인권활동가
장애인분들은 동네 병원이 집 바로 옆에 있는데도 휠체어로 들어가기 어려워서 멀리 가야 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또 이동권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은 문제 때문에 지하철이나 버스 타기가 어려워요. 또 트랜스젠더분들이 필요로 하는 의료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건강보험제도가 이를 전혀 고려하지 않기 때문에 너무 비싼 비용을 들이고 있고요. 에이즈 감염인분들도 감염인이라는 이유로 병원에서 진료를 쉽게 받을 수 없는 상황도 있고요. 이주민분들도 그래요. 아파도 혹시 잡혀 강제추방 될까봐 병원을 잘 찾지 못하세요. 병원에서 모든 사람을 같은 한 사람으로 대한다면 더 안전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차별금지법은 ‘우리 동네’부터 있어야 할 것 같아요”_명숙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상임활동가
디지털 접근권이 없는 노인분들이나, 중증장애인분들은 정보도 못 얻어요. 예를 들어 코로나19 백신이나 지원금 안내가 온라인에만 공개되면 알 수가 없어요. 다양한 사람을 고민하지 않고 편의적으로 예산에 맞춰 행정서비스를 해서 그런 거죠. 그런데 동네에 차별금지법이 있으면 지자체가 정보를 제대로 전달하는 방법을 고민하지 않을까 싶어요. 차별금지법은 이런 부분까지 고민할 수 있게 하는 법인데, 국회는 여전히 눈치를 보는 거죠. 대형교회나 반동성애그룹, 구조적 차별이 없다고 하는 사람들의 공격에 국회가 입장을 분명히 해야 하는데 그러지 않고 있어요. 이번 20대 대선에서 많은 여성이 차별에 저항하기 위한 표를 던졌는데 새정부가 그 힘을 무시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왼쪽부터 이종걸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대표, 서재유 공공운수노조 철도노조 코레일네트웍스지부 정책부장, 정혜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대표 ⓒ 참여와혁신 강한님 기자 hnkang@laborplus.co.kr 

“저요”_이종걸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대표
살아가다가 스스로가 존재하는 이유를 다시 한 번 고민하게 되는 과정이 한 번씩은 있잖아요. 내가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했을 때일 수도 있고, 아니면 나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못하는 조건이 있을 수도 있고요. 그럴 때 차별금지법은 우리가 우리에 대해 말할 수 있도록 돕는 법이거든요. 스스로를 돌볼 수도 있고 내 주변의 가족, 친한 사람들이 차별에 놓여 있을 때 그분들을 도울 수 있는 법이기도 해요. 부당함을 겪는 사람들이 같이 대응하고, 말할 수 있도록 돕는 법이 생기면 조금이라도 변하지 않을까 싶어요.

“차별금지법은 ‘노동’에 꼭 필요하다고 말하고 싶네요”_서재유 공공운수노조 철도노조 코레일네트웍스지부 정책부장
노동조합들이 불평등이나 사회양극화를 많이 이야기하잖아요? 사람들은 모두 노동을 하면서 살고 있는데 노동에서 발생하는 차별에는 무감각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간접고용·비정규 노동자들은 당연히 차별해도 되는 것처럼 제도가 만들어져 왔잖아요. 이 불평등한 구조를 풀어가는 핵심은 노동의 가치를 얼마나 인정받느냐인데, 한국사회의 비정규직은 노동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죠. 그러니 다들 착취 구조는 내버려둔 채 대기업 정규직이나 공사의 정규직이 되려고 노력해요. 이런 상황에서 사업장 규모에 따른 차별과 산업 내 차별을 없애는 차별금지법이 필요해요. 노동조합이 지금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에 아주 주동적으로 참여하지는 못하고 있지만 더 같이 함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홈리스’로 할게요”_안형진 홈리스행동 활동가
홈리스들은 공공장소 말고는 오랜 시간을 보낼 곳이 많이 없어요. 그런데 공공장소가 홈리스들에게 점점 더 배타적이게 되는 것 같아요. 공공역사에서 홈리스로 보이는 사람들을 골라서 제재를 가한다거나, 그들의 물건을 임의로 폐기하는 것이 대표적이에요. 제가 홈리스행동에서 활동을 시작했을 때가 30살 즈음이었는데, 그간 단 한 번도 불심검문을 당해본 적이 없거든요. 그런데 어떤 홈리스분과 이야기를 나눴는데 하루에만 4번을 당하셨다는 거예요. 이런 경험은 홈리스이기 때문에 하게 된다고 보고요. 열악한 곳에 거주한다는 이유로 함부로 대우받고, 모욕당하는 거죠. 차별금지법이 제정된다면 공공장소를 중심으로 홈리스를 표적 삼는 차별 체제에 대항할 수 있지 않을까 상상해요. 홈리스분들에게도 대응할 수 있는 무기가 필요해요.

“우리 모두죠”_정혜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대표
누구도 남겨놓지 않겠다는 저희 슬로건이 있거든요. 정치적 입장, 나이, 성별, 성적 지향, 피부색, 그 모든 것과 상관없이 모두에게 필요한 법이라고 생각해요.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기준으로 해서 법이 제대로 제정돼 있는지, 정책은 제대로 집행되고 있는지, 우리 일상 속 어느 곳이라도 차별은 없는지를 살펴야 하는 거거든요. 그래서 차별금지법은 하나의 가이드라인이라고 생각해주면 좋겠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은 하나예요. 국회의원의 의무는 법 제정이잖아요. 법 제정은 이 땅에 살아가는 모든 시민을 위한 것이어야 하고요. 차별금지법이 조속히 제정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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