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브란스병원 ‘병원계 최초’ 주4일제 시범사업, 어떻게?
세브란스병원 ‘병원계 최초’ 주4일제 시범사업, 어떻게?
  • 정다솜 기자
  • 승인 2022.09.07 16:51
  • 수정 2022.09.08 14: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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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력 충원 전제 3개 병동에서 연내 실시 예정
“주4일제 법·제도화까지 이어질 사례 되길”
[인터뷰] 권미경 세브란스병원노동조합 위원장

세브란스병원노동조합은 1960년 7월 21일 설립된 병원계 최초 노동조합이자, 최대 노동조합이다. 그래서 세브란스병원 노사가 맺은 단체협약은 다른 병원 단체교섭의 기준이 되곤 했다. 통상임금에 상여금 포함, 집에서 쉬다가도 응급상황 시 호출을 받는 온콜(On-call·호출대기) 근무자의 수면오프 도입 등이 대표적이다. 세브란스병원 노사가 올해는 병원계 최초로 주4일제 시범사업 연내 실시를 단체교섭에서 약속했다. 이번에도 노동계 안팎이 술렁였다. 권미경 세브란스병원노동조합 위원장을 만나 올해 단체교섭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인터뷰는 지난달 24일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노동조합 사무실에서 진행했다. 

권미경 한국노총 의료노련 세브란스병원노조 위원장 ⓒ 참여와혁신 이윤호 기자 yhlee@laborplus.co.kr
권미경 한국노총 의료노련 세브란스병원노조 위원장 ⓒ 참여와혁신 이윤호 기자 yhlee@laborplus.co.kr

- 올해 단체교섭 의제로 주4일제를 내건 배경은?

주4일제는 올해 요구해서 올해 합의된 것이 아니다. 4년 전부터 노조의 교섭 요구안이었다. 이는 병원노동자들의 높은 노동강도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됐다. 높은 노동강도의 핵심은 야간근무를 포함한 불규칙한 교대제다. 그간 교대제를 바꾸기 위한 여러 실험이 있었다. 그런데 교대제 개선은 정말 어려운 과제다. 구상대로 현장에서 적용이 어렵다는 말이다. 간호사들이 무리하지 않기 위해선 원하는 근무 시간대가 있을 텐데, 그럼 수요가 없는 시간대를 결국 누군가는 채워야 하는 문제가 생긴다. 여러 고민 속에서 실질적으로 병원노동자들의 노동강도를 낮추고 워라밸(일·삶 균형)을 지키려면 출근일수 자체를 줄이는 것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리게 됐다.

- 처음 사측 반응은? 

아니 무슨 봉창?(웃음) 노조는 우리가 병원 노동조건을 견인해야 한다고 늘 이야기하고 있다. 사측도 그건 인정하지만 빨라도 너무 빠르단 반응이었다. 교섭 의제로도 인정을 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 어떻게 풀었나? 

결국 교섭이니까 사측을 설득하기 위해 여러 노력했다. 우선 주4일제로 워라밸을 보장하면 신입 간호사의 높은 이직률을 줄여 노무비용 절감 효과가 있다고 주장했다. 세브란스병원은 우리나라에서 간호사 초봉이 가장 높은 병원인데도 현장에선 신입간호사들이 빨리 빠지는 걸 체감하고 있다. 

또 장기근속을 유도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고 이야기했다. 체력적으로 버티기 힘들어서 퇴사하는 이들을 주4일제 도입으로 줄일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세브란스병원 노사가 획기적으로 일터를 바꿔서, 이번 실험이 법·제도화까지 이어지는 사회 공헌의 측면에서도 주4일제가 중요하다는 인식을 공유했다. 그 과정에서 지난 대선 때 주4일제가 화두로 떠오르기도 했다. 이 같은 긴 시간 꾸준한 설득에 설득 끝에 올해 시범사업을 하자는 합의를 도출하게 된 거다. 

교섭을 마친 뒤 한 연구자가 남긴 말이 떠오른다. 주5일제를 금융노조가 만들어낸 거라면, 장기적으로 봤을 때 주4일제는 세브란스병원노조가 만들어낸 것일 수도 있다는 거다. 나도 그런 마음으로 교섭하고 사용자를 설득했다. 

- 교섭 과정에서 주요 쟁점은? 

비용 문제였다. 처음에 노조는 임금 감소 없는 주 4일제를 주장했다. 이 과정에서 주5일제 직원들과 형평성 문제 등이 제기됐고 임금 보전은 어렵겠다고 판단했다. 대체인력 충원을 위한 비용도 고려해야 했다. 게다가 노조는 주4일제 전 직원 확대를 전제로 교섭했기에 비용이 가장 큰 쟁점일 수밖에 없었다. 

- 병원이 아닌 사업장의 경우 생산성 향상과 임금 보전을 노사가 합의하는 경우가 많다. 병원은 생산성 측정이 어렵다. 임금 문제는 어떻게 풀었나?

다른 선진 사례는 임금 삭감 없는 주4일제지만, 우리는 임금 조정이 동반된 주4일제 시범사업이다. 논의 초반에 사측은 주5일 중 4일만 일하니 임금 총액의 20%를 줄여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우리는 노동강도가 가장 높은 교대근무자가 주4일제를 하더라도 상근직보다 임금이 낮으면 안 된다고 요구했다. 교대근무자들은 너무 힘드니까 임금이 줄어도 상근직으로 간다고 한다. 그런데 상근직보다 임금이 떨어지면 아무리 주4일제라도 교대근무를 하려는 직원이 없을 거라고 봤다. 

결과적으로 임금 조정분은 임금 총액의 10% 내외 수준이다. 어려운 개념이긴 한데 월 급여 기준으로 20%를 줄였고, 연차 상여금 등은 주5일제를 기준으로 삭감되지 않도록 한 거다. 

- 인력 충원은? 

시범 사업은 인력 충원이 된 후 연내 실시한다고 합의했다. 인력이 충원되지 않으면 다른 간호사들에게 피해를 줄 수밖에 없다. 한 병동당 간호사 5명 내외가 참여할 예정이며, 인력 충원은 한 병동당 1.5명이 필요하다. 결국 시범사업의 결과를 봐야 한다. 비용 문제를 선택할 것인지, 조직에 대한 몰입으로 이어지는 직원의 근무 만족도 향상을 선택할 것인지 지속적으로 평가를 해봐야 한다. 

- 단체교섭 타결 이후 현장의 반응은?

엄청 뜨거웠다. 사실 올해 임금인상률은 기본급 4% 인상으로 병원계에서 높은 수준이다. 그런데도 조합원들은 돈보다 주4일제에 대한 관심이 굉장히 많았다. 이런 반응을 보면서 역시 워라밸이 중요하구나 싶었다. 물론 일부에선 장시간 노동을 하고 싶어하는 직원들도 있다. 특근비 등을 받아서 임금을 많이 받는 게 중요한 직원들은 주4일제를 안 하겠다고 한다. 이는 선택의 영역이다. 

- 주4일제 시범사업 관련해 현재 남은 과제는? 

노사가 TF를 꾸려서 신촌 2개 병동, 강남 1개 병동을 지정할 것이다. 노동강도가 높은 병동을 우선적으로 제안할 예정이다. 주4일제 시범사업 대상자를 어떻게 선발할지도 논의해야 한다. 그리고 주4일제를 유지할 수 있도록 응급사직 등 돌발상황이 발생했을 때 어떻게 대처할지 등 여러 변수도 고려해야 한다. 

연구과제도 함께 가져갈 거다. 주4일제가 노동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주5일제 부서와 비교해볼 계획이다. 이 연구 결과가 세브란스병원 내 주4일제 전직종 확대 가능성을 증명해줄 것이다. 나아가 우리의 사례가 주4일제의 법·제도화까지 이어질 수 있는 하나의 사례가 되길 바라고 있다.

권미경 한국노총 의료노련 세브란스병원노조 위원장 ⓒ 참여와혁신 이윤호 기자 yhlee@laborplus.co.kr

- 주4일제 시범사업 외에 이번 단체협약 결과 중 소개하고 싶은 내용이 있나? 

나한테 가장 의미 있었던 건  청소, 주차 등 외주 협력업체 노동자들의 진료비 감면을 위해 기금 2억 원을 마련한 것이다. 단체협약은 조합원에 해당하는 정규직에만 적용되지만, 조합원이 아닌 외주 협력업체 노동자들을 위해 기금을 마련하는 일은 노조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병원 구석구석을 청소하고, 폭염이나 혹한에도 야외에서 주차업무를 하는 분들의 진료비 50% 감면은 우리가 감당하지 못할 수준은 아니라고 계속 주장했다. 세브란스병원에서 일할 때 가장 큰 혜택이 진료비 감면이기도 하다. 물론 조합원 중에 왜 비조합원까지 신경 쓰냐는 의견이 있을 수도 있다. 회사도 그랬다. 사실 화나는 게 돈이 엄청나게 드는 일이 아니다. 결국 인식의 문제다. 이런 노동조합의 선택은 조합원들이 늘 임금이나 노동조건이 부족하다고 이야기하는 문제와 충돌하기는 한다. 그 지점이 계속 고민이다. 

노조의 역할은 세상을 좀 더 평등하게 만들고, 나은 방향으로 가고자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큰 틀에서 봤을 땐 병원 노조이기 때문에 국민의 건강을 책임져야 하는 역할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과잉진료, 상급병원에 몰리는 환자 등을 막기 위한 의료전달체계 개편에도 관심을 갖고 있다. 빅6 병원 노조가 모여서 코로나19 이후 달라진 의료환경에 공동 대응 등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의견도 나누고 있다. 

-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말은?

주4일제가 세브란스병원에서만 확대되는 걸 원하지 않는다. 병원사업장뿐 아니라 전체 노동자에게 주4일제가 확대되길 바란다. 또 세브란스병원 노사의 새로운 경험이 우리나라 노동자들의 노동시간 단축과 워라밸 보장에 기여할 수 있길 기대한다. 우린 아주 작은 첫발을 뗐다고 생각한다. 이 첫발이 어떤 발걸음으로 이어질지 끝까지 많은 관심을 갖고 지켜봐 주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