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현장에서 말하는 산재... “처벌보다 필요한 건 중소 사업장 지원”
산업 현장에서 말하는 산재... “처벌보다 필요한 건 중소 사업장 지원”
  • 김광수 기자
  • 승인 2022.12.21 11:45
  • 수정 2023.11.05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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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처법 이후에도 여전한 산재 사망··· “진짜 문제는 중소사업장”
“의지 보이는 기업에 지원 강화해 안전 선순환 만들어야
[인터뷰] 울산 석유화학 공장 안전관리자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지 1년이 돼간다. 법 시행 이후로 중대재해는 얼마나 줄었을까?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22년 3분기 누적 재해조사 대상 사망사고 발생 현황’(이하 산재 사망 현황)에 따르면 지난 1월부터 9월까지 산업재해 사망자 수는 510명으로 502명이었던 전년 동기보다 오히려 8명 늘었다.

이를 두고 중대재해처벌법의 실효성에 관한 갑론을박이 분분하다. 노동계는 법 통과 과정에서 다수의 조항이 빠져 법의 사각지대가 생긴 것이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산재 사망 현황에 따르면 산재 사망자 510명 중 60.2%인 308명은 아직 법 적용을 받지 않는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다 사고를 당했다. 경영계에선 사업주의 자율 의지를 강조한다. 나아가 중대재해처벌법이 경영자에게 과도한 책임을 물리는 위헌적인 법안이라고 말한다. 지난 2월 노동자 16명이 트라이클로로메테인에 집단 노출돼 중대재해처벌법 1호 기업이 됐던 두성산업은 지난 10월 법원에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을 신청한 상태다.

산업 현장에선 중대재해처벌법 이후 어떤 변화를 느끼고 있을까. 여전히 줄지 않는 산재의 원인은 무엇이라고 여길까.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보고자 울산 석유화학 공장에서 안전관리자로 일하고 있는 하인혜 씨의 이야길 들었다. 그는 안전관리자로 일하며 자신이 직접 보고 느꼈던 산업 안전에 관한 생각을 소셜미디어(SNS) 등을 통해 꾸준히 글로 풀어내고 있다. 그는 중대재해처벌법의 효과를 인정하면서도 사후적 처벌만이 능사는 아니라고 말한다. 산업안전에 대한 의지는 있지만 그럴 돈과 시간이 없는 영세 기업 위주로 국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인터뷰는 지난 11월 18일 진행했다.

 

- 간단히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이름은 하인혜(가명)다. 울산석유화학 공단의 하청업체에서 안전관리자로 일하고 있다. 현재 대기업의 하청업체에서 일하고 있어 실명을 밝히는 데는 어려움이 있다. 양해 부탁한다. 건설회사에서 안전관리자로 일했고, 지금은 제조업 분야에서 일하고 있다.

- 안전관리자는 어떤 일을 하나?

현장 소장이나 사업주를 대상으로 안전관리에 대해 조언을 하는 것부터 노동자들의 건강 상태 체크, 안전 운영계획이나 안전 보고서 작성 등 세분하자면 많다. 산업 현장에서 안전과 관련된 모든 일에 관여한다고 생각하면 편하다. 산업 현장에서 안전과 완전히 무관한 일은 없어서 정말 많은 부분에 관여하고 있다.

-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전의 현장은 어땠나?

중대재해처벌법 이전에는 안전 관리가 기업에서 중요한 업무가 아니었다. 기업 내 저연차 직원에게 안전 관리를 맡기곤 했다. 그런데 저연차엔 권한이 많이 없지 않나. 사실상 안전 관리가 소홀해지는 거다.

- (중대재해처벌법 이전에) 안전 관리자를 선임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나?

안전관리자를 선임해야 한다는 법규는 예전부터 있었다. 하지만 직원에게 형식적으로 안전관리자 직함만 달아놓는 식으로 법을 형식적으로 지키는 경우도 꽤 있었다.

-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이후로 피부로 느껴지는 변화가 있나?

많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론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해야 하다 보니 안전관리자를 제대로 고용하려는 기업이 늘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CEO를 처벌한다고 하니 기업 입장에서도 부담이 많이 됐을 거다. (안전관리자에 대한) 수요가 공급을 못 따라갈 정도였다. 덕분에 안전관리자의 보수도 많이 오르고 있다.(웃음) 안전관리자를 제대로 선임하는 것뿐만 아니라 안전 관련 규정을 잘 지키려는 노력도 많아졌다. 우리 안전관리자들도 전에 비해 일할 때 촉각을 더 곤두세운다.

중소 사업장, 법 따라갈 여력 부족
법 개정보다 실현에 초점 맞춰야

- 그런데도 산재 사고가 줄지 않았다. 혹시 법 제도적으로 부족한 것이 있었나?

현재 안전관리에 대한 법 규정은 꽤 잘 돼 있다. 산재사고가 끊이지 않는 이유는 법 제도가 미비해서가 아니다. 여전히 현장에서 그 법이 지켜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기업이 노력하고 있다고 하지만, 법 제도가 바뀌었을 때 그에 따라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기업은 대부분 대기업이다. 실제로 법 제도를 완벽하게 지키는 곳은 정유기업이나 원자력 발전소, 그리고 몇몇 대형 건설사 정도다. 이런 곳은 사업장의 안전용품 관리를 하는 인원이 따로 있을 정도다. 공장별로 돌아다니며 설비와 용품을 검사하고, 얼마나 더 사용할 수 있을지 체크하고, 위험하다고 여겨지면 폐기한다. 하지만 중소사업장은 애초에 굴릴 수 있는 여유 자원이 많지 않다. 법이 변한다고 사업장 내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 내는 게 쉽지 않다.

- 산재 문제는 중소사업장에서 클 수밖에 없겠다.

그렇다. 우리는 뉴스에서 대기업의 산재 사고 이야기를 많이 보게 되니까 산재를 대기업의 문제, 혹은 대기업에서 위험을 외주화했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라고 손쉽게 결론낸다. 하지만 산재의 80%는 중소 사업장에서 발생한다. (고용노동부의 통계에 의하면 지난해 산재 사고사망자 수의 80.9%가 50인 미만 소규모사업장에서 발생했다) 중소 사업장의 산재를 막아야 산재 사고를 대폭 줄일 수 있다

앞서 말했듯 영세한 사업장은 여유 자원 자체가 적다 보니 법이 제정된다고 기민하게 안전에 투자하기가 쉽지 않다. 설상가상으로 최근 법 제정으로 안전관리자의 보수가 상승했으니 안전관리자에게 시장 임금을 지급하는 것도 부담이 될 것이다. 법이 대기업의 안전관리를 한층 강화시켰지만, 상대적으로 안전관리가 더 필요한 중소기업엔 오히려 안전 관리를 더 어렵게 만든 측면이 있다.

- 중소 사업장의 산재를 줄이기 위해 어떤 방법이 필요하다고 보나?

지금 있는 법을 실효성 있게 지킬 수 있도록 적절한 지원제도를 많이 만들었으면 좋겠다. 안전관리는 기업의 업무이기도 하지만 국민 생명권 문제이기도 하지 않나. 공적인 측면이 있다. 안전관리에 대한 의지가 있지만, 그럴 여력이 부족한 사업장을 선별해 안전 관리 법제를 잘 지킬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지금은 그런 지원이 부족하다.

예컨대 고용노동부나 KOSHA(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에 중소 사업장에 대해 안전관리 인증 제도가 있다. 안전관리에 대한 일정한 기준을 충족시키면 국가에서 지원금을 주는 제도다. 다만 내가 보기에 그 지원금이 너무 적다. 안전에 투자하게 할 유인이 크지 않다. 일단 이 금액을 증액해야 한다.

금액을 늘리는 것만큼 중요한 게 또 있다. 홍보다. 현장에서 보면 안전관리 인증 제도가 있는지도 모르는 중소 사업장이 태반이다. 인증 제도에 대한 보상을 충분히 하고, 성실하게 홍보하면 중소기업에서 산재를 예방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거다. 보상을 늘리는 것 자체가 일종의 홍보 역할도 하게 되니까 증액과 홍보는 서로 시너지를 낼 거다.

- 처벌보다 예방에 초점을 맞춘다는 점에서 지난 11월 30일 정부에서 발표한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어 보인다. 어떤 점이 다른가?

산재가 나면 누군가 다치거나 죽는다. 기업으로서도 손해가 막심하다. 예방이 가장 좋은 해결책인 건 자명하다. 예방에 초점을 맞추자는 이야기는 안전관리 분야에선 누구나 강조하는 것 중 하나다. 다만, 정부의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이 자발적인 예방체계 수립 자체에 방점이 찍혔다면, 나는 예방체계를 만들기 위한 지원에 더 집중해보자는 쪽이다.

-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에 대해 어떻게 보나?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이 말 그대로 아직 로드맵 수준이라 실무자로서 많은 말을 얹기는 조심스럽다. 그래도 이야기해 보자면 우려되는 지점이 두 가지 있다. 첫째는 몇 가지 안의 현실성 여부다. 예컨대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엔 안전관리자 선임이 힘든 영세 사업장에 국가가 안전관리자 선임을 지원해주는 안이 있다. 정부가 선임한 안전관리자 1명이 여러 사업장의 안전 관리를 맡는 거다. 이론적으론 훌륭해 보인다. 하지만 안전관리자인 내가 봤을 땐 현실성이 부족하다. 안전관리자 1명은 1개의 사업장을 관리하기도 힘들다. 사업장 특성과 위험 요소들을 파악한 후 현장을 실시간으로 감시하면서 적절한 조처를 해야 하는 것이 안전관리자의 일이다. 안전관리자가 사업장에 상주해야 업무가 가능하다. 그런데 어떻게 1명이 여러 개의 사업장을 관리하겠나. 이렇게 비현실적인 안들은 로드맵을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현실성을 고려해 수정하거나 폐기해야 할 필요성이 있어 보인다.

두 번째는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이 중대재해처벌법을 대체하는 수단으로 쓰이게 되는 것에 대한 우려다. 안전관리에서 예방과 처벌은 택일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중대재해 발생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 안전관리에 관한 ‘채찍질’을 한 거라면,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은 산재 예방을 위한 수단을 마련하도록 ‘당근’을 주는 거다. 하나를 강화했으니 나머지 하나는 약화하겠다는 사고방식은 위험해 보인다. 두 가지 방식을 잘 조화시켜 가장 적합한 방법론을 찾아내려고 노력해야 한다.

- 기업 안전 혹은 산재와 관련하여 더 하고 싶은 말이 있나?

언론에선 대기업·청년·비정규직의 산재가 많이 보도된다. 그러나 사실 하청 업체를 포함해도 산재 사고에서 대기업의 비중은 크지 않다. 청년의 경우도 그 비중이 작기는 마찬가지다. 모든 산재를 없애야 하지만, 그 수가 많고 구조적인 것부터 해결하는 것이 좋다고 본다.

- 예를 들자면?

50~60대 중장년의 산재 문제가 있다. 사무직에 종사하다가 기업의 인력 적체로 50대쯤 돼 퇴직하는 분 중 육체노동으로 빠지는 경우가 많다. 요즘엔 나이가 들어도 일하려는 분들이 많다 보니 이런 분이 늘고 있다. 사무직에 종사하던 사람이니 육체노동이 익숙하지 않아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산재 사고를 당하곤 한다. 이런 산재가 반복되는데, 이 부분에 대해선 간과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구조적 문제가 더 많이 보도돼서 해결책이 나왔으면 좋겠다.

안전에 대한 사용자의 의지와
정부의 지원을 선순환시켜야

- 산업 현장의 이야기가 미디어를 통해 유통되는 데도 관심이 많아 보인다. SNS나 언론에 목소리를 내게 된 계기가 있나?

대학 시절, 학생 운동에 관심이 많았다. 그때 대학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한 각종 정보를 수집해서 글을 썼다. 글쓰기에 재미를 느꼈다. 또 내 일이 사람 목숨과 관련된 일이지 않나. 일종의 책임감을 느꼈던 것 같다. 어느새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지점에 관해서 쓰고 있었다. 앞으로도 일하면서 다양한 플랫폼에 산업 안전과 관련한 글을 써볼 계획이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산재를 바라는 사람은 없다. 노동자도, 사용자도 마찬가지다. 산재는 처벌보다 예방이 중요하다. 그걸 전적으로 사용자의 자율 의지에 맡기는 것은 옳지 않다. 산재 예방을 위해 유인책을 계속 마련해야 한다. 일종의 넛지(Nudge)를 주는 거다. 영세한 업체라도 의지가 있다만 충분한 지원을 해주고, 그 지원이 다시 더 큰 의지로 바뀌게 하는 선순환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선 국가나 지자체의 지원 창구 다양화, 지원 금액 확대가 절실하다. 하루빨리 그런 지원 제도가 많아지길 바란다. 나도 현장에서 노동자들의 안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