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노동시장연구회 권고안, 결국 '일 많이, 임금 적게'"
"미래노동시장연구회 권고안, 결국 '일 많이, 임금 적게'"
  • 김광수 기자
  • 승인 2022.12.23 20:41
  • 수정 2022.12.23 20: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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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토론회에서 쏟아진 권고안 비판
"노동 시간 유연화, 과로 못 막아...직무급제도 실효성 부족"
"노동자가 사용자와 대등하게 협상할 환경이 먼저"
ⓒ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민주노총에서 최근 발표된 미래노동시장연구회 권고안(이하 권고안)에 관한 토론회가 열렸다. 토론회에선 권고안의 문제점을 짚고, 이를 어떻게 개선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가 오갔다.

민주노총은 지난 21일 오전 서울 중구 정동 프란치스코 회관에서 '미래노동시장연구회 권고안의 문제점과 대응 방안 토론회'를 열었다. 토론회는 민주노총 정책실, 민주노총 법률원, 민주노총 산하 민주노동연구원이 공동으로 진행했다.

미래노동시장연구회는 고용노동부가 노동시장 개혁을 주제로 논의하기 위해 지난 7월 18일 발족한 기구다. 고용노동부에 의하면 미래노동시장연구회는 학계 인사를 중심으로 12명으로 구성됐으며, 발족 이후 5개월 동안의 논의를 통해 정부에 권고안을 제출했다. 권고안은 노동시간 유연화와 직무·성과급제 도입을 골자로 한다.

민주노총은 "권고안에선 노동시간과 임금체계를 미래적으로 바꾸겠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내용을 보면 일은 많이 시키고, 임금은 적게 주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이번 토론회를 통해 노동 약자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노동시간 제도 및 임금 체계를 제안할 것"이라며 토론회의 개최 사유를 밝혔다.

권고안에 따르면 노동시간과 관련한 내용의 핵심은 “노·사에 자율적인 노동 시간 선택권을 부여”하는 것이다. 현행 노동법은 연장근로시간의 관리 단위를 '주'로 한정하고 있다. 하지만 권고안에서는 관리 단위를 '주·월·분기·반기·연(年)' 단위로 개편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정기호 민주노총 법률원 원장은 "노동 시간 산정 단위가 주 단위 이상으로 바뀌면 단기간의 노동 시간이 지나치게 늘어날 수 있다. 1주에 120시간 노동이 가능해지는 거다“며 ”노동 시간을 제한한 의도는 단기간 과로를 방지하는 것인데, 지나친 노동 시간 유연화는 제도의 취지를 무색하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런 폐단을 막고자 미래노동시장연구회는 근로일 사이 11시간을 쉴 수 있도록 규정했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 역시 문제가 많다. 현행 노동법엔 1회 근로에 대한 시간제한이 없다. 50시간을 연속적으로 근로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런 식의 장시간 근로가 행해진다면 11시간 휴식으론 충분한 휴식이 불가능해져 노동자의 건강권을 해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권고안에서 임금 체계와 관련하여 가장 강조되고 있는 것은 '직무·성과급제'의 도입이다. 현재 한국 기업에서 많이 쓰이고 있는 연공급 중심 임금체계 대신 '직무·성과급제'를 도입해 직무 가치와 성과에 따라 임금을 지급하겠다는 것이다.
     
권고안은 직무·성과급을 지급하면 기업의 지불능력에 따른 임금 격차가 완화돼 대기업과 중소기업으로 이뤄진 한국의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소에 일조할 수 있을뿐더러 연공에 따른 임금 격차 또한 해소될 것이라고 한다. 아울러 연공을 이유로 지나치게 고임금을 받는 장년층의 임금이 줄어 청년고용이 활성화되고, 장년층 또한 적정임금을 받아 고임금으로 인한 해고 위험을 피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정경은 민주노총 부설 민주노동연구원은 "직무·성과급은 동일가치노동 동일 임금을 원칙으로 한다지만 실제론 직무 간 임금 격차, 성과에 따른 임금 격차를 정당화하는 기제로 쓰일 가능성이 높다. 그뿐만 아니라 사측의 힘이 강하고 노조 조직률이 낮은 우리나라의 상황에서 직무·성과급은 정당한 임금 지급이 아니라 사측의 협상력만 키울 가능성이 높다. 이는 노동자에 대한 착취로 연결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정부의 권고안은 너무 성급하게 직무·성과급제로 전환하려고 하는 것처럼 보인다. 연공급에서 직무급으로 연착륙할 수 있도록 과도기적 제도를 잘 설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아울러 그 전에 직무 가치에 대한 평가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선행돼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혜진 불안정노동철폐연대 활동가는 "핵심은 '예측 가능성'이다. 권고안은 노동시간에 대한 노동자의 자율성 보장을 약속했지만, 현실에선 기업이 일방적으로 노동시간을 정할 가능성이 크다. 노동시간에 대한 예측 가능성이 작아지면 노동자의 모든 시간은 기업에 종속된다.”고 말했다.

또 “임금에 관해서도 자신의 직무 가치나 성과에 대해서 노동자가 결정에 참여할 환경이 갖춰지지 않는다면 직무급제는 실효성이 없을 것”이라며 “임금이나 노동시간이나 제도를 유연화하기 이전에 노사가 실질적으로 협상할 수 있도록 양측의 힘을 대등하게 만드는 것이 먼저”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날 토론회에선 ▲통상임금, 평균임금, 주휴수당, 최저임금 등 임금 제도 전반에 대한 개선 ▲파견과 도급의 구별에 대한 예측 가능성 제고 등 권고안의 내용에 대한 전반적인 토론이 이어졌다. 이날 열린 토론회의 발제문과 토론자료는 민주노총의 온라인 홈페이지에서 열람이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