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음’과 ‘나눔’으로 노년의 삶과 사회를 고민하는 곳
‘이음’과 ‘나눔’으로 노년의 삶과 사회를 고민하는 곳
  • 박완순 기자
  • 승인 2022.12.30 15:09
  • 수정 2023.01.02 19: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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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에는 ‘연금개혁’, ‘마을에서 만드는 일자리’, ‘조합원 500명으로 확대’ 꿈꿉니다
[인터뷰] 김억 이음나눔유니온 상임위원장

참여와 시민단체

참여와혁신이 매달 노동·시민·사회단체를 소개합니다. 노동을 주로 다루던 참여와혁신인데 ‘장르’가 달라진 게 아니냐고요? ‘참여’는 일터 내 민주주의뿐 아니라 일터 밖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데도 중요한 요소입니다. 참여민주주의 학교 노동·시민·사회단체들을 만나며 여러 형태의 참여 경험을 참여와혁신 독자와 나누려 합니다.

[참여와 시민단체⑩] 이음나눔유니온

지난 12월 16일 민주노총 서울본부 5층 대강당에 갔다. 대강당에 좌석을 마련해 앉아 있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봤다. 정확히는 강당 뒤편에서 연단을 바라보는 그들의 뒤통수를 봤다. 백발 혹은 희끗희끗한 머리가 많이 보였다. 백발의 노동자들이 모인 것이다. 백발의 노동자들은 이날 이음나눔유니온이 창립총회와 출범식을 열고 퇴직자노동자합의 시작을 알렸다.

이음나눔유니온은 이탈리아 퇴직자노동조합을 모델로 한 퇴직자 대중노동조합으로 만 55세 이상의 퇴직자, 예비퇴직자, 재취업자를 조합원으로 받고 있다. 민주노총 서울본부와 퇴직노동자들의 인생 2막을 응원하고 함께하는 대중노동조합으로 나설 계획이다. △공제로 상호부조하는 삶 △유니온으로 조직하고 실천하는 삶 △단절이 아닌 사회를 연결하는 이음의 삶 △선배시민으로 자신의 경험을 사회와 함께하는 나눔의 삶 △퇴직 후 인간의 존엄과 자존감이 유지되는 삶을 지향한다. 이날 창립총회에서는 김억‧이경옥‧박정규 조합원을 공동위원장으로, 박주동 조합원을 사무총장으로 해 초대 임원진을 선출했다. 김억 상임위원장을 지난 12월 21일 민주노총 서울본부에서 다시 만나 이음나눔유니온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를 들어봤다.

지난 12월 21일 민주노총 서울본부에서 김억 이음나눔유니온 상임위원장을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 우선 이음나눔유니온 소개와 출범계기부터 말씀해주세요.

민주노총과 16개 산별연맹에서 임원과 집행간부로 활동했던 분들 12명 정도가 퇴직자노동조합이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시작했습니다. 가장 컸던 고민은 연금문제입니다. 퇴직 이후의 삶을 보장할 수 있는 연금이어야 한다는 것이죠. 그리고 퇴직 이후의 일자리 문제도 있고요. 확장해 생각하면 퇴직을 하게 되면 근로기준법,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이 없어진 채 사회로 나오는 거죠. 재직 시절과는 달리 법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이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빈곤함이 커지죠. OECD 국가 중 최고의 빈곤율을 나타나내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런 것을 함께 고민하고 해결해보자 해서 이탈리아의 퇴직자노동조합을 참고했습니다. 이탈리아 퇴직자노동조합은 연금 문제, 노인 일자리 문제를 다루고 총연맹의 조합원 자격을 유지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어 모델로 삼았죠. 이탈리아 3대 총연맹 중 하나인 CGIL(이탈리아노동총연맹)의 조합원 중 52.4%가 퇴직노동자입니다. 이를 모델로 2021년 4월 1일 고민을 시작해서 2021년 8월 25일에 이음나눔유니온이라는 명칭을 만들고, 올해 9월 1일 이음나눔유니온 준비위원회를 발족해 12월 16일에 창립총회를 열고 이음나눔유니온이라 조직 명칭을 확정했습니다. 처음 시작했던 100명의 발기인이 그대로 조합원이 돼 활동을 알렸죠.

- 퇴직자노동조합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개인적인 계기도 있나요?

제가 집이 안산이어서 지하철로 출퇴근을 하는데, 출근 때 아침 일찍부터 형님뻘 되는 분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서 배낭에 등산 스틱을 꽂고 지하철에 계시는 거예요. 아마 북한산 등반을 하러 아침 일찍부터 준비하셨던 거 같아요. 근데 하루가 아니라 계속 본 분들을 보고 또 봤죠. 그래서 물어봤어요. 등산모임이시냐고. 그건 아니고 퇴직자들이래요. 집에 그냥 있기도 뭐하고, 어디 있을 곳도 없고 하니까 나오셨던 거죠 일단. 그 때 한국 사회에서 퇴직노동자의 삶을 고민하지 않는다는 걸 느꼈죠.

- 이탈리아 퇴직자노동조합을 모델로 삼았다고 했는데요. 이탈리아 3대 노총에 각각 소속된 퇴직자노동조합 이름에는 연금, 고령 등의 단어가 들어있는데요. 이음나눔유니온은 왜 연금과 고령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 ‘이음’과 ‘나눔’을 이름에 넣어 강조했나요?

첫 번째로 ‘이음’의 의미는 재직자와 퇴직자의 이어짐을 뜻합니다. 이음나눔유니온 조합원분들을 만나면 내년 이슈파이팅이 무엇이냐 물어봐요. 그러면 연금개혁을 가장 먼저 말씀드려요. 적정 수준의 연금이 노후에 보장돼야 노년의 삶을 빈곤하지 않게 살 수 있잖아요. 그런데 연금 기금 고갈도 문제죠. 지급률만 높여달라는 것은 젊은 세대와의 단절이고 이기적인 것입니다. 그래서 적정한 지급률, 적정한 부담률이 맞춰져야 하는 것이죠. 이것을 재직자들과 퇴직자들이 이어져서 같이 요구하자는 겁니다. 재직노동자들도 퇴직노동자의 전철을 밟을 수밖에 없기도 하고요. 같이 고민하고 같이 투쟁해야 할 문제입니다.

두 번째로 ‘나눔’은 지역으로, 마을로 돌아간 퇴직자들이 그곳에서 필요한 역할을 한다는 의미입니다. 마을에 필요한 역할은 많이 있죠. 지역 돌봄 센터에서 돌봄 노동, 횡단보도에서 깃발 들고 있으면서 아이들에게 등굣길 하굣길을 안전하게 안내하는 것, 자율방범대 등등. 이것들은 잘 알려진 것이고, 마을에 지역에 필요한 일은 상상하고 찾아보면 얼마든지 많아요. 이것들을 퇴직자들이 하는 것이죠. 그리고 이게 노인들을 위해 지역에서 만들어지는 일자리이면서 노인들이 빈곤하지 않게 노년을 보내게 할 수 있는 방안이기도 합니다. 노동시장에서 경쟁하는 경성형 일자리가 아니라 연성형 일자리, 연대로 연결되는 이런 일자리들은 지역으로부터 창출될 수밖에 없는 것이죠. 이건 다시 ‘이음’의 의미이기도 한데요. 후배 노동자들이 퇴직해서 돌아올 곳은 자기가 살고 있던 마을이에요. 후배 노동자들이 퇴직 후 마을로 돌아왔을 때 마을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저희가 미리 만들어놔야 하는 거죠. 재직자와 퇴직자는 이어져 있으니까요.

한편으로 ‘이음’에 관해 이야기를 좀 더 하자면 노인자살률이 OECD 최고예요. 2020년 기준 10만 명당 24.6명으로 OECD 평균 11.3명의 2배 이상이죠. 노후에 혼자 산다는 것은 참 외로운 것이에요. 일할 때 맺었던 관계들이 퇴직하면 줄어들기 마련이잖아요. 일하면서 사람들도 만나고, 부딪히면서 맺었던 사회적 관계가 퇴직으로 단절되는 거죠. 그리고 지금 환경에서는 퇴직 후 돌아온 마을에서 소외를 경험하게 될 확률이 높죠. 사회적 인간으로 계속 이어지고 외롭지 않은 삶을 위한다는 ‘이음’의 의미도 있는 것이죠. 이런 사회적인, 연대적인 지향을 가지고자 이름을 이음나눔으로 했습니다.

지난 12월 16일 민주노총 서울본부에서 이음나눔유니온 창립총회 및 출범식이 열렸다. ⓒ 참여와혁신 박완순 기자 wspark@laborplus.co.kr

- 여담입니다만 ‘노인의 삶에 대한 사회적인 고민을 하자’. ‘노인 복지를 늘리고 더 나은 복지제도를 설계하라’는 이야기들을 세대갈등론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있는데요.

초고령사회로 간다고 이야기하잖아요. 막말로 태어나는 사람보다 죽는 사람이 더 많으니 누군가는 과장해서 국가 소멸도 이야기해요. 그런데 왜 젊은 세대들이 아이를 낳고 키우려고 하지 않을까요. 젊은 층에게 희망이 없기 때문인데, 내 중년의 삶과 내 노년의 삶에 대한 전망이 안 보이니까요. 그래서 노년의 삶을 고민하는 것도 세대갈등론보다 장기적으로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것이죠. 물론 우리 이름이 이음나눔유니온인 것처럼 사회연대의 지향을 가지고 젊은 세대들의 이해에도 함께해야 하죠.

저는 나이 들어가는 우리들한테 책임이 있다고 봐요. 어쩌면 노동자로 살면서 우리 주장만 했어요. 노동자로 살면서 노사 간 대립, 국가와의 대립만 있었고, 이웃과의 삶에 대한 걸 안 만들어 놓은 거죠. 저는 나이 들어가는 우리가 여기에 대한 반성을 해야 하고, 그래서 이음나눔유니온이 우리 사회 주변부에 있는 분들과 빈곤층, 특히 노인빈곤에 시달리고 있는 노인들을 위해 고민해야죠. 노동자였을 당시 그러지 못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마땅한 퇴직자노동조합이 없었다고 봐요.

그리고 선배 노동자들이 마을로 돌아가서 살아가는 모습에서 희망을 보이기 시작하면 지금의 결혼문제, 출생문제, 거기에 따른 인구 문제에 뭔가 일정 부분 맥이 잡히지 않을까 해요. 이음나눔유니온이 조직 성원들의 이익만을 추구하고 그걸 집단화시키는 조직이 아니라 후배 세대와 지역 주민과 연결하고 나누는 공간이 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 이음나눔유니온 2023년 목표를 말해주세요.

앞서 이야기한 것들인데요. ‘연금개혁’과 ‘마을에서 만드는 일자리’ 그리고 ‘조합원 500명으로 확대’ 입니다. 노후의 삶을 보장할 수 있는 연금과 지속가능한 연금 개혁을 이야기할 것이고, 지역에서 만들 수 있는 연성형 일자리를 지자체와 교섭을 통해서 만들거나 요구할 겁니다. 그리고 조합원을 500명으로 늘릴 계획입니다. 노년의 몸과 마음을 위해 한 달에 한 번 등반대회도 하려고 합니다. 목공예를 배운다거나 수제 맥주 만들기, 전통주 만들기, 책 읽기 등의 모임도 확대하려 합니다.

- 마지막 질문입니다. 노동은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요. 그렇다면 은퇴자의 노동은 어떤 의미라고 생각하고, 어떤 의미를 가졌으면 하십니까?

생계의 의미가 우선이었죠. 많이 옅어졌습니다만, 지금 은퇴를 하거나 은퇴를 이미 한 세대들에게는 특히나 생계와 부모 부양을 위한 노동을 많이들 했습니다. 집이라는 공간은 일하고 온 나의 지친 심신을 푸는 것보단 밥 먹고 자는 곳이었죠. 이걸 수십년 동안 계속해왔고, 그러다보니 은퇴노동자들은 노동을 놔버리는 순간 자기를 잃어버립니다. 노동을 놓는 순간 급격하게 늙어요. 마음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요. 아름다운 소풍이 끝날 때까지 기본적인 노동은 해야 한다는 게 하나고요. 거기에 이제 자기의 심신을 단련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어야죠. 취미 생활도 하고. 그래서 적정한 노동과 심신을 단련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자기를 잃어버리지 않는 은퇴 생활을 할 수 있어야죠. 이음나눔유니온이 자기를 잃지 않도록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노인 일자리도 창출할 수 있는 역할을 해야죠.

* 이음나눔유니온 후원하기 ▶ 우리은행 1002 763 300890 라기주

참여와혁신은 12월호에 소개한 ‘내놔라 공공임대 농성단’에 지난 12월 13일 후원금 30만 원을 전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