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방네 소문낸 ‘압수수색 쇼’...이상한 대공수사
동네방네 소문낸 ‘압수수색 쇼’...이상한 대공수사
  • 백승윤 기자
  • 승인 2023.01.19 22:33
  • 수정 2023.01.20 16: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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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적으로 드러내는 국정원 압수수색...“대공수사에 맞지 않아”
간부의 개인 활동을 민주노총의 조직적 행위로 악의적 왜곡 지적도
18일 국가정보원이 서울 중구 민주노총 사무실에서 간부 A씨에 대한 대한 압수수수색을 진행했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국가정보원의 민주노총 압수수색에 대해 ‘압수수색 쇼’, ‘퍼포먼스’ 등의 비판이 이어진다. 18일 국정원은 간부 한 사람을 수사하기 위해 경찰 700여 명과 소방차 등을 동원해 거리를 봉쇄하고, 시민·차량 통행까지 막아서며 민주노총 사무실 압수수색을 벌였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에 따른 수사였으나, 자신들의 활동을 대대적으로 알리려는 듯한 국정원에 다른 의도가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노동계는 정부·여당 기조에 따른 ‘노조 때리기’를 극대화하기 위해 과잉된 장면을 연출했다고 지적한다. 내년 1월이면 경찰로 이관되는 대공수사권을 사수하려는 실력 행사란 분석도 있다. 작년 말부터 제주, 경남, 전북 등에서 벌인 대공수사 과정을 마치 홍보하듯 언론에 흘리는 국정원의 행태는 이 같은 주장에 힘을 싣는다.

이날 국정원·경찰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압수수색 영장을 집행한 대상자는 모두 4명이다. 국정원·경찰은 민주노총과 보건의료노조 사무실, 금속노조 부위원장을 지낸 기아자동차지부 조합원의 자택, 제주 평화쉼터 등을 대상으로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평화쉼터 대표도 금속노조 간부로 활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은 이들이 2016~2019년 캄보디아, 베트남, 중국 등에서 북한 공작원과 회합한 것으로 보고 수사 중이다.

19일 서울 중구 민주노총 15층 회의실에서 열린 '국정원 동원 노동탄압·공안통치 부활 윤석열 정권 규탄' 기자회견에서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19일 서울 중구 민주노총 15층 회의실에서 열린 '국정원 동원 노동탄압·공안통치 부활 윤석열 정권 규탄' 기자회견에서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이토록 시끄러운 압수수색
“대공수사 방식에 어긋나”

19일 긴급 기자회견을 연 민주노총은 국정원의 압수수색 방식이 적절치 않았다고 규탄했다. 정기호 민주노총 법률원장은 “수사란 근본적으로 긴밀함과 은밀함이 요구된다. 만약 피의자에 대한 수사 방식이 알려지면 수사에 방해될 수밖에 없고 증거인멸이 이뤄질 수밖에 없다”며 “특히 국정원의 대공수사는 은밀성·긴밀성이 크게 요구되고 이를 지키는 게 적합한 수사방식이라고 생각하는데,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압수수색 방식은 결국 수사의 기본도 안 된 것”이라고 말했다.

수색 대상과 규모에 비해 과도한 집행이 이뤄진 부분은 헌법상 과잉금지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공권력 행사하는 필요한 최소 범위에 그쳐야 하는데 이를 어겼다는 주장이다. 정기호 법률원장은 “국보법 위반 혐의는 민주노총 간부 개인의 활동이지 민주노총의 조직적 결정과 의사에 따른 게 전혀 없다. 압수수색 대상 자체도 해당자의 책상, 집, 차량이 전부”라며 “그런데 마치 민주노총이 압수수색 대상인 것처럼 수백 명 경찰과 소방차를 동원하는 게 과연 헌법이 요구하는 과잉금지의 원칙에 합당한 공무집행인지 굉장히 의문스럽다”고 강조했다.

이어 “피의자 신체에 대한 압수수색은 민주노총 사무실에서 상당 부분 떨어진 서대문역 쪽에서 이미 이뤄지고 있었다”며 “신병확보에도 불구하고 많은 수의 경찰을 동원하고 사다리차와 에어매트리스를 설치한 것은 결국 민주노총에 (악의적 프레임을) 덧씌우기 위한 용도로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18일 민주노총 사무실이 입주한 서울 중구 경향신문 사옥 부근에 배치된 경찰과 에어매트리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국정원의 기획적인 민주노총 공안몰이”

특정 언론과 국정원이 민주노총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확산하기 위해 합을 맞췄다는 의혹도 제기된다. 18일 오전 국정원의 민주노총 사무실 압수수색 사실을 최초로 알린 것은 조선일보의 단독 보도다.

조선일보는 오전 9시 6분에 ‘[단독] 국정원, 민노총·보건의료노조 압수수색… 간첩단 사건 수사’란 기사를 냈다. 국정원·경찰이 민주노총 사무실에 도착한지 3분 만이다. 국정원 압수수색 시작과 거의 동시에 이를 보도한 셈인데, 기사 작성-데스킹-노출로 이어지는 보도과정을 고려하면 사전에 인지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주장이 나온다. 민주노총의 언론 대응 방침으로 출입·취재를 거부당한 조선일보가 민주노총 사무실에서 최초 보도를 낸 부분은 의심을 더한다. 한상진 대변인은 “국정원과 경찰이 민주노총 사무실에 온 지 몇 분 만에 조선일보에서 속보 기사를 쏟아내기 시작했고, 그 이후 언론이 ‘간첩단’ 등의 이야기들을 거리낌 없이 썼다”며 “미리 계획하고 협조하지 않았으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임기환 민주노총 제주지역본부장은 “작년 11월과 12월, 그리고 1월 18일. 한 달여 간격으로 세 차례에 걸쳐 마치 이벤트 하듯 국정원이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압수수색 대상자들은 실체적 진실에 다가갈 틈도, 항변할 기회도 없이 국정원과 언론, 국민의힘에 의해 사회적으로 조리돌림 당하고 간첩으로 낙인 찍혔다”며 법원 판결이 나오기도 전에 수색 대상자를 간첩으로 규정하는 여론을 경계했다.

윤장혁 금속노조 위원장은 “최근 제주와 경남에서 진행되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에 대한 피의사실 공표를 서슴지 않더니, 급기야 민주노총 사무실 주변을 철통같이 에워싸고 심지어 애어매트리스까지 등장시켜 수구 언론을 중심으로 간첩단 운운하며 실시간으로 압수수색을 중계토록 하는 국정원의 의도는 도대체 무엇이냐”고 반문했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민주노총을 대상으로 진행한 압수수색은 대통령의 사주를 받아 국정원이 메가폰을 잡은 '한 편의 쇼'였다”며 “정권을 향해 쓴소리를 멈추지 않는 민주노총의 입을 막으려는 색깔 공세”라고 비판했다. 또 양경수 위원장은 “해외 순방 중 발생한 대통령의 외교 참사를 덮기 위한 것”이며 “내년이면 경찰로 이관되는 국정원의 대공 수사권을 지키기 위한 발악”이라고 주장했다.

나순자 보건의료노조 위원장은 “부패몰이 노조탄압에 이은 공안몰이 노조탄압의 신호탄”이라고 말했다. 나순자 위원장은 “공안몰이 여론조작으로 민주노총을 국민으로부터 고립한 뒤 노동시간을 늘리고 임금을 줄이고 공공서비스 민영화하는 노동개악을 밀어붙이겠다는 포석”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코로나19 시대에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지킨 영웅으로 칭송받은 보건의료노조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기획된 노조탄압으로 보건의료노조를 흠집 내고 국민건강을 위한 활동에 재갈을 물리려 한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