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공무원들에 물었다 “철밥통, 왜 걷어차고 싶나?”
청년 공무원들에 물었다 “철밥통, 왜 걷어차고 싶나?”
  • 강한님 기자
  • 승인 2023.03.07 08:33
  • 수정 2023.03.07 13: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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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에 작은 도움 될 때 뿌듯·안정성 높아 계속 일하고 싶지만
정치 위한 행정, ‘이상한’ 인사와 평가, 과로, 봉급에 “무력해”

[리포트] n년차 공무원들과 조기퇴직 좌담회①

문과계열을 전공한 청년이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은 한정적이었다. 공무원 C씨가 수험생활을 시작한 이유도 C씨가 생각하는 ‘좋은 직업’을 가질 별다른 길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수험생활이 길어질수록 불안도 커져갔지만 묵묵히 도서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시험에 합격하고 나서는 주위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다. C씨는 안정적인 직업을 얻었단 점도 기뻤지만 주민을 위한 일을 하면 왜인지 보람될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12년차가 된 C씨는 공직사회를 두고 “미래가 없다”고 했다. 동료도 여럿 그만뒀다. 인사 상담을 신청해 보기도 하고, 정신과 상담을 받기도 하고, 질병 휴직을 쓰며 버티다 결국 그만둔 사람들이다. 다른 동료들도 “차라리 하루라도 젊을 때 나가는 게 낫다”는 반응이었다.

공직을 떠나는 청년들이 늘고 있다. 버티기보다 긴 수험기간을 포기하는 게 낫겠다고 판단한 것이다. 공직생활 4년차 A씨, 7년차 B씨, 12년차 C씨와 D씨에게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다. 만남은 민주노총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이 도왔다. A씨, B씨와는 인터뷰를 진행했고, C씨와 D씨의 경험은 서면으로 받았다.

2월 21일 전국공무원노동조합 근처에서 A씨와 B씨를 만났다.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주민 위한 행정 못하고
단체장 위한 행정에 회의감

“진짜 그만두려고까지 생각을 한 적이 있었어요. 스트레스를 받아서 화병이 와서 한 달 병가를 쓰고 쉰 적도 있었고요. 이 조직이 손댈 수 없을 만큼 썩어있다고 느꼈을 때, 나 혼자 바꿀 수 없다고 느꼈을 때 더 이상 못 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수도권이 아닌 지역에서 나고 자란 B씨는 할 수 있는 일이 많이 없었다고 했다. 특별한 기술이나 자본 없이 시작할 수 있는 것 중 가장 안정적인 게 공무원이었다. 공무원이었던 아버지의 영향도 받았다. 월급이 따박따박 나오고, 시간이 되면 퇴근하는 아버지를 지켜보며 공무원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무엇보다 돈을 빨리 벌고 싶었다. B씨는 관심 분야가 다양했다. 퇴근하고 저녁이 있는 삶을 살며 꿈꿔왔던 취미생활을 하고 싶었다.

공무원이 하는 업무 자체는 괜찮은 것 같았다. 같은 지역 주민을 만나 도움을 주고, 감사 인사를 받으면 마음이 사르르 녹았다. B씨를 “무력하게” 했던 건 공직사회다. “툭 까놓고 이야기해서 간부들이 우리랑 있을 땐 근무 제대로 하라고 하면서 막 뭐라고 하다가 단체장이 오니까 여기(가슴)에 자석이 달린 것 마냥 움츠러들고 쩔쩔매더라고요. 우리가 누구를 위해 일을 하고 있는 거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가슴이 꽉 막히는 기분이었어요. 그 때 이거 진짜 못 하겠다.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B씨는 한 가지 일을 떠올렸다. B씨는 보조금을 지원하는 업무를 맡았는데, 기준에 맞춰 사람을 순차적으로 선정하는 일이었다. 어느 날 B씨에게 한 사람이 찾아와 “왜 나를 뺐냐”고 항의했다. “순서가 되려면 멀었다”고 답했더니, 나흘 뒤 본청에서 전화가 왔다. 항의했던 사람에 대한 보조금을 추가로 내려줄 테니 지원하라는 내용이었다.

일을 번복하게 된 B씨는 “자율적으로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아바타처럼 누가 시키는 일만 한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하면서 뿌듯함이 싹 사라져버리고 힘이 쭉 빠졌다”고 말했다. 그 사람은 B씨에게 다시 찾아와 “거 봐라, 되잖아”라고 말했다. B씨는 “공직사회가 외부의 영향을 많이 받는 것 같다. 지역 유지 같은 민원인들이 자기가 아는 공직자에게 부탁을 했는지 지시가 거꾸로 내려올 때면, 기준을 명확히 지켰는데 소용이 없어진다. 스스로도 작아지고 거짓말 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고 했다.

D씨도 비슷한 상황을 겪었다. D씨는 “나 구의원 아들인데 서류 좀 떼 달라는 전화를 받은 적이 있었는데 의욕이 정말 떨어졌다”고 공감했다. C씨도 “선출직 단체장을 위한 업적 쌓기, 보여주기식 행정을 하면서 고위 직급의 상사가 시키는 일만 하는 현실을 봤다. 공무원으로서 주민을 위한 실질적인 행정, 복지는 할 수 없다”며 “공직사회는 권위적인 문화가 강한데, 일선 공무원들은 정책에 제대로 된 의견을 내지 못하고, 과장과 국장이 결정한다든지, 구청장과 시장의 입김에 의해 정책의 방향이 뒤바뀌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 비난은 B씨의 표현처럼 ‘아바타’처럼 앉아 있는 하위직 공무원들이 감내한다. C씨는 “정부에서 현실에 맞지 않는 법과 정책을 만든 경우, 최일선의 공무원들은 잘못된 정책이라는 점을 알면서도 국민에게 비난과 욕설을 들으며 정책을 집행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일 잘 하고 열심히 하면 과로
일보다 사내정치 잘 해야 승진 잘 해

공직에 들어간 청년 공무원들은 갖가지 ‘비상근무’에 차출된다. C씨의 동료도 코로나19 대응 업무 중 장시간 과로로 퇴직을 택했다. 비상근무를 해도 본래 가지고 있었던 업무는 그대로 유지된다. 인력충원을 말해도 제자리걸음이다. 이런 상황에서 일을 열심히 하는 건 오히려 손해인 것만 같다는 게 이들의 생각이다. “일 잘하는 것보다는 말을 잘 듣는 게 중요하다고 보여진다”는 것이다.

“일을 열심히 잘하는 공무원일수록 업무를 더 주는 경향이 있어요. ‘이렇게 많은 업무를 줬는데도 버티고 버티네? 더 해야지’ 이런 마음인 것 같아요. (C씨)” 일 잘하는 사람이라는 ‘낙인’이 찍히면 일이 쌓이고, 일을 많이 하는 부서로 옮겨가게 된다. 업무는 업무대로 하는데 승진은 안 된다. 업무량이 늘어나면 평가와 감사에 자주 노출되기 때문에 오히려 가만히 상사 말 잘 듣는 사람이 승진을 하게 된다. 일을 하다 보면 생길 수밖에 없는 문제는 인사 불이익으로 이어진다. 공무원들이 적극행정이 아닌 ‘소극행정’을 하는 게 오래 버티기 좋다고 생각하게 된 이유다.

“공무원으로 일하면서 주민들에게 공익을 제공해야 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고 윗사람에게만 잘 보이고 시키는 대로 일만 하면 된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 것 같아요. 행정에서 주민들은 보이지 않고, 시장, 구청장, 상사에게만 잘 보이는 사내정치를 하면 되겠다는 생각을 할 때도 있었어요. (C씨)”

“저 사람 분명히 업무적으로 능력 없는 사람인데 좋은 자리만 가요. 왜냐면 윗사람들한테 잘 한대요. 소문에. 그런 게 이제 보이니까 일을 하는 사람만 손해인 거죠. 열심히 묵묵하게 일하는 사람만요. 그러니까 하기 싫죠. 솔직히. (B씨)”

A씨도 관련해서 “기분이 나빴던 적”이 있다. 공무원들은 상반기와 하반기 정기적으로 성과상여금이란 명목의 수당을 받는다. 성과상여금은 평가에 의해 책정된다. 법원 공무원인 A씨도 평가를 받아봤는데, A씨가 예상했던 것보다 등급이 낮았던 적이 있다. “이유를 찾아보면 찾아볼수록 씁쓸한 현실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진짜 낮은 평가를 받아야 하는 사람인가 스스로 돌아봤을 때 그런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싶고. 그러면 다른 데서 이유를 찾게 되는데, 그거는 정치적인 이유밖에 없더라고요.”

A씨는 공무원들이 받는 평가에도 할 말이 있었다. 법원의 경우 공무원들이 하는 일에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게 A씨의 의견이다. 성과상여금을 주기 위한 줄 세우기는 오히려 공무원끼리의 갈등을 부추긴다. A씨는 “상대평가다 보니 내가 저 사람보다 잘했다고 주장하는 건 반대로 그 사람이 나보다 못했다는 걸 주장해야 한다는 건데, 그런 점이 되게 힘들었다”며 “다 똑같이 고생하는 거 아는데, 저 사람이 나만큼 고생했다는 걸 아니까 평가 시즌마다 마음이 그렇다”고 말했다. 행정직 공무원인 C씨도 “주민들에 대한 봉사, 공익을 위해 일하는 공무원의 업무는 성과로 매길 수 없다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하위직 공무원 보수·초과근무수당 등은
‘비현실적으로 낮다’ 느껴···연금도 불안

공무원 보수 이야기는 빠지지 않았다. A씨는 보수와 초과근무수당 등을 두고 “비현실적”이라 말했다. “올해 최저임금이 9,620원인데, 제가 이번년도에 받게 될 초과근무수당이 한 시간당 9,620원이에요. 야근하기 싫은데 하더라도 돈이라도 많이 주면 모르겠는데 그것도 아니고요. 또 공무원이 인기 있던 게 공무원 연금을 통한 보장된 미래 때문인데, 월급은 생각보다 너무 적고 연금은 내가 온전히 낸 만큼 받을 수 있냐는 회의감도 생겨요. 공무원의 업무는 사기업의 업무와의 연관성이 떨어지고 경력이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일찍 나와야 매몰되는 시간이 적어진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나갈 수 있을 때 빨리 나가자 이거죠. 내가 다른 걸 할 수 있을 때. 더 오래 있으면 아예 이직을 못 하니까요.”

A씨는 하후상박이라는 정부의 대안을 두고 “땜질식 달래기”라고 했다. A씨는 “사실 임금이 상승되지 않는다는 건 사람의 동기를 떨어뜨리는 요인이고, 지금처럼 상위는 동결, 반납으로 결정해버리고 그 돈으로 하위의 임금을 올리는 것은 윗돌을 빼서 아랫돌을 괴듯 서로의 갈등을 만들게 되는 것 같다”고 했다.

하위직 공무원도 그렇지만 연차가 쌓인 공무원들도 낮은 보수에 이직을 생각한다. 10년 넘게 공직에 있었던 C씨는 240만 원 정도의 월급을 받고 있다. 적은 월급을 받아도 공무원들은 겸직을 할 수 없도록 정해져 있다. 가정을 꾸린 공무원들에게 암담하게 와닿는 점이기도 하다. 공무원은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지 않고, 매년 공무원보수위원회를 거쳐 권고된 보수 인상률을 기재부가 참고해 결정한다. 공무원보수위원회에서 논의된 보수 인상률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건 공무원 노동계에서 수년 동안 지적해왔던 문제기도 하다.

C씨는 “하위직 공무원의 보수는 최저임금 수준이고, 당직비나 급식비 등 각종 수당은 현실적이지 못하다. 청년 공무원 외에도 10~15년차 공무원들이 조기 퇴직하는 걸 현장에서 많이 본다. 공무원의 임금은 몇 년째 물가상승률에 맞게 오르지 않고 있고, 공무원연금도 줄어들고 있어 공무원이라는 직업에 대한 희망이 없어져서 그렇다고 본다”며 “이러면서 무한한 봉사와 희생을 강요하는 공직사회를 앞으로 어떻게 버틸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고 걱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