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컷 수 조정, 휴재권 보장 안 돼” 웹툰작가 장시간 노동 심각
“컷 수 조정, 휴재권 보장 안 돼” 웹툰작가 장시간 노동 심각
  • 임혜진 기자, 천재율 기자
  • 승인 2023.03.08 08:11
  • 수정 2023.03.08 08: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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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웹툰작가 노동환경 실태조사 결과 발표 및 건강문제 토론회
민지희 전문의 “플랫폼, 에이전시 등 요구 따라 결정되는 작업량으로 웹툰작가 노동강도 높은 편”
7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원회관 제2간담회실에서 '웹툰작가들의 노동환경 실태와 건강문제' 토론회가 진행되고 있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7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원회관 제2간담회실에서 '웹툰작가들의 노동환경 실태와 건강문제' 토론회가 진행되고 있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주 1회 연재인 경우 한 회에 70컷의 그림을 완성해요. 하루 스토리를 구성하고, 이튿날 콘티로 연출을 대강 구성하고, 셋째 날 70컷의 스케치를, 넷째 날 70컷의 펜 터치를, 다섯째 날 70컷의 채색을, 여섯째 날 70컷의 대사 편집과 마무리 작업을 하면 총 6일이 소요돼요. 사실 하루에 70컷을 할 수 없는데 솔직히 저도 어떻게 해내고 있는지 모르겠어요.”(심층조사에 참여한 웹툰작가 A씨)

웹툰 작가들이 일감 중심의 노동, 정보 비대칭에 따른 불리한 계약 관행 등의 영향으로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는 문제가 제기됐다. 이에 따라 유급 휴재권 보장, 작업 컷 수 상한제 도입 등으로 업무 강도를 낮춰 웹툰작가의 육체적·정신적 건강을 보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7일 오후 국회의원회관 제2간담회실에서 ’웹툰작가들은 건강하게 일하고 있을까?‘ 국회토론회가 열렸다. 토론회는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 류호정 정의당 의원,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전국여성노동조합 디지털콘텐츠창작노동자지회, 웹툰작가노동조합이 공동 주최했다.

발제를 맡은 민지희 한양대학교병원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는 지난해 6월 실시된 웹툰작가 320명이 참여한 온라인 설문조사, 웹툰작가 15명을 대상의 심층면접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는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의 지원으로 수행됐다.

하루 평균 10시간 노동
재량권 부족해 높은 업무강도 지속

조사 결과 웹툰작가들의 노동시간은 하루 평균 9.9시간, 마감 전날에는 11.8시간으로 나타났다. 민지희 전문의는 “웹툰작가들은 대체로 일주일에 하루 정도 쉬고 있었다”며 “보그지수(노동강도 평가 지표) 점수로 보면 공장 생산직보다 높고, 버스노동자·집배노동자와 노동강도가 비슷한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웹툰작가들은 한 회당 평균 70컷을 그리며 주 1회 연재하는 경우가 62.8%(196명)로 가장 많았다, 이는 웹툰작가들이 원하는 작업량보다 높은 수준으로 드러났다. 업무강도를 높이는 원인으로 △한 회당 그려야 하는 컷수가 많아서 41.6%(133명) △연재 주간이 짧아서 37.5%(120명) 등이 지적됐기 때문이다.

하신아 웹툰작가노동조합 위원장은 “5년 전만 해도 50컷, 2000년대 초반은 40컷대였다”면서 “지금은 100~140컷을 그리는 경우도 쉽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작업량이 상당히 늘어났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웹툰작가들은 업무의 자율성이 부족하다고 밝혔다. 이들은 컷 수 조정 가능 여부(별로 그렇지 않다, 전혀 그렇지 않다 58%), 연재 주기 조정 가능 여부(별로 그렇지 않다, 전혀 그렇지 않다 63.8%), 원하는 휴재 가능 여부(별로 그렇지 않다, 전혀 그렇지 않다 47.1%)에 대한 자율성이 부족해 업무강도가 높다고 말했다.

민지희 전문의는 “자율적인 결정이 아닌 계약 상대방인 플랫폼이나 에이전시의 요구에 따라 작업량과 연재 주기 등이 결정되는 상황”이라며 “작품 계약당 소득이 발생하기 때문에 플랫폼 등이 제시하는 계약 관행을 웹툰작가들이 따라갈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분석했다.

7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원회관 제2간담회실에서 열린 '웹툰작가들의 노동환경 실태와 건강문제' 토론회에서 민지희 한양대학교 병원 직업환경의학과 전임의가 발제를 하고 있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7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원회관 제2간담회실에서 열린 '웹툰작가들의 노동환경 실태와 건강문제' 토론회에서 민지희 한양대학교 병원 직업환경의학과 전임의가 발제를 하고 있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우울증·불면증 비율 높아
악성댓글 등에 따른 정신적 고통도 

웹툰작가들은 우울증과 불면증 정도도 심한 편이었다. 민지희 전문의에 따르면 우울증을 겪는 비율이 28.7%, 불면증을 겪는 비율은 28.2%로 나타났다. 또한 일반 인구집단에 비해 자살 계획·시도 비율이 3배 이상 높았다.

이같은 정신적 고통의 원인에는 높은 업무강도도 있지만 댓글 등 대중의 반응에 영향을 받는 부분도 작용하고 있다고 민지희 전문의는 설명했다. 조사 결과 작품에 대한 비난을 받은 비율은 77%, 댓글에 대해 ’많이 신경 쓰인다‘로 대답한 비율이 50.3%였다.

이수경 전국여성노동조합 디지털콘텐츠창작노동자지회 지회장은 “작가 사상을 검열하며 지나치게 비난하거나 성희롱성 댓글, 한 회 휴재를 하는 것에 대해서도 악성댓글이 굉장히 많이 달린다”며 “작가 개인에 대한 사이버 불링이 일어나는 경우도 있어 두려움이 많은데, 관련된 작가 보호 조치는 거의 없다”고 밝히기도 했다.

업무강도 관련 최소 기준 마련하고
플랫폼의 책임 있는 역할도 필요

민지희 전문의는 웹툰작가들의 건강 보호를 위해 기본적인 업무 강도를 낮추기 위해 플랫폼 등이 책임 있게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웹툰작가들은 계약 여부가 불안정한 상황에 놓인 자영업자 신분이다. 그러다 보니 노동권 관련 교육을 받은 적이 거의 없고 관련 도움을 받을 만한 기관도 부족하다”며 “(웹툰작가와) 계약 관계에서 영향력이 큰 플랫폼 등이 책임 있게 업무강도 등을 낮출 수 있는 최소한의 가이드라인 마련에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신아 위원장은 “웹툰작가들이 휴재권을 보장받으려면 법적으로 근로자성이 인정돼야 하고, 그러면 (프리랜서로서) 저작권 보호와 충돌되는 문제가 있다고 들었다”며 “그러나 저작권은 재산권이고, 휴재권은 건강권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권리로 별개라고 생각한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고용노동부가 예술인 고용보험 문제를 해결해나갔듯이 긴밀하게 논의해 휴재권 보장 등의 제도 개선을 해 나갔으면 한다”고 전했다.

이수경 지회장은 “명절 등 연휴나 공휴일이 일주일 안에 있으면 작가들의 작업 마감 기일은 더 앞당겨진다. 그래서 휴일이 기쁘지 않다는 작가도 있다. 정기 유급 휴재 보장이 필요하다”며 “컷 수 상한 제도를 도입해 스토리상 컷 수가 넘어갈 수밖에 없다면 고료를 더 지급하는 등의 제도적 개선도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7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원회관 제2간담회실에서 열린 '웹툰작가들의 노동환경 실태와 건강문제' 토론회에 참석자가 자료집을 보고 있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7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원회관 제2간담회실에서 열린 '웹툰작가들의 노동환경 실태와 건강문제' 토론회에 참석자가 자료집을 보고 있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