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SOS, 역무원은 달린다
지하철 SOS, 역무원은 달린다
  • 백승윤 기자
  • 승인 2023.03.13 06:06
  • 수정 2023.03.13 22: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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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력 부족에 텅 빈 역무실...사고·민원 동시발생하면 손쓸 방도 없어
서울시·공사 매년 “인력 감축”...“지금도 부족, 더 줄일 여지 어딨나”

일평균 수송인원 600만 명에 이르는 서울지하철. 승객이라면 쉽게 지나치고 마는 상황이 가득한 이곳에는 역무원들이 있다. 안내·감시·수리·구조·점검·순찰·중개 등. 동시다발로 터지는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역무원의 발걸음을 따라가 봤다.
 

서울 지하철 7호선 고속터미널역 아이센터 중 한 곳. 인력부족으로 폐쇄 중이다. ⓒ 참여와혁신 백승윤 기자 sybaik@laborplus.co.kr
서울 지하철 7호선 고속터미널역 아이센터 중 한 곳. 인력부족으로 폐쇄 중이다. ⓒ 참여와혁신 백승윤 기자 sybaik@laborplus.co.kr

“지금 관제실 지시로 급히 출동 중입니다. 자세한 건 나중에 말씀드릴게요.” 토요일 오전 9시 15분 서울 지하철 7호선 고속터미널역. 원도훈 역무원이 승강장 쪽 계단을 뛰어 내려가며 남긴 말이다. 근무 시작 15분 만에 발생한 열차 내 승객 다툼. 사태를 수습한 원도훈 역무원이 ‘아이센터(역무실)’로 돌아오자마자 벨이 울린다. 시각장애인 환승 길 안내를 부탁하는 전화였다. 지하철 시각장애인 안내도우미*에게 상황을 전달하자 이번엔 시민들이 다가온다. “교통카드 어디서 사요?”, “출입구를 잘못 나온 것 같은데 문(개찰구) 좀 열어주실래요?” 부역장이 사람들을 응대하던 이때 다시 전화벨이 울린다. “못 만나셨다고요?” 좀 전의 시각장애인이 안내도우미와 만나지 못해 혼자 이동했다며 불만을 전했다.
*서울시가 만65세 이상 기초연금수급자를 대상으로 실시하는 노인 일자리 복지사업

역무원은 하루 수십 개의 문의에 응대한다. 그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게 ‘길 안내’다. △△로 가기 위한 환승 경로, □□역 가는 길, ○○백화점과 가까운 출구 등. 마치 관광안내소처럼 전화로 인근 지리 안내를 요청받을 때도 있다. 관련 문의가 워낙 많다 보니 역에 따라 출구별 주요 시설물을 정리한 A4 용지를 아이센터 내에 붙여두기도 한다. 보건소는 1번 출구, 이마트는 2번 출구, 국민은행은 3번 출구, △△중학교는 4번 출구, ······.

출구를 잘못 나와서, 화장실에 가기 위해서 등 개찰구를 열어달라는 승객도 적지 않다. 역무원은 일상적이라 말했지만, 다소 의아한 요구도 있었다. “지하에 있는 네이처리퍼블릭(화장품매장) 가려고 하는데 문 좀 열어주세요.”

오전 9시 30분. 원도훈 역무원은 동료와 손카트를 끌고 교통카드 충전기로 향했다. 충전기에서 현금을 수거하고 잔돈을 채워 넣는 ‘장탈’을 하기 위해서다. 장탈을 하는 20여 분간에도 승객들의 질문이 이어진다. 지하철에 교통카드가 도입된 지 20년이 넘었지만, 하루에도 교통카드 구매·이용 방법을 물어보는 승객이 상당수다. 이날도 마찬가지였다. 역무원들은 교통카드 충전기 수익금을 정리하며 승객을 응대했다.

ⓒ 참여와혁신 백승윤 기자 sybaik@laborplus.co.kr
원도훈 역무원이 외국인 승객에게 1회용 교통카드 발권 안내를 하고 있다. ⓒ 참여와혁신 백승윤 기자 sybaik@laborplus.co.kr

“고속터미널역은 1회권을 발매해서 쓰는 승객이 많아요. 외지 분들이어서 교통카드를 거의 안 들고 다니세요.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로 오신 분들은 이동을 위해 주로 지하철을 이용하잖아요. 하루 중 ‘처음이라서 잘 모르겠다’는 얘기를 승객들에게 엄청 많이 듣죠.”

기자의 질문에 답변하는 원도훈 대리의 이마에선 땀이 흘렀다. “교통카드 발매기에 열이 많아서 한여름이면 사우나 문을 열고 들어가는 느낌”이란다. 다시 아이센터에서 울리는 벨 소리. 엘리베이터 긴급호출이다. “네, 무슨 일이세요?”, “......”, “말씀하세요.”, “......” 대답이 없어 CCTV를 확인해보니 특이 사항은 없었다. 엘리베이터 이용 승객이 비상호출 버튼을 잘못 눌러 알람 소리가 울리는 경우는 부지기수다. 그렇다고 호출을 무시할 순 없다. 만에 하나 발생하는 사고를 놓쳐선 안 되기 때문이다. 역무원은 항상 눈과 귀를 열고 근무해야 한다.

사방에서 요청하는 도움의 손길,
역무원은 달렸다

60분간 파도치듯 몰려오던 민원이 잠시 그쳤다. 원도훈 역무원은 역사 수시 순찰을 위해 아이센터를 나섰다. 시설물 점검을 위해서다. 2시간마다 정기 순회를 하도록 되어있지만, 작년 여름 폭우 이후 시간이 날 때마다 순찰을 돈다고 원도훈 역무원은 말했다. “지하철역 시설이 오래되다 보니 천정 탈락 등이 발생할 때가 있어요. 작년 여름에도 폭우로 일부 역사 천정이 무너졌거든요. 혹시 모를 다양한 상황을 미리 예방하려 하지만, 사실 봐야할 게 너무 많아요.”

지하철 도착 시간을 알리는 전광판, 선로 출입문 잠금, 에스컬레이터 파손 등을 확인하고 아이센터로 돌아가는 길. 바닥에 가방을 늘여놓고 장사 중인 행상인과 마주쳤다. “가방을 치워 달라”는 역무원의 말에 흥정하던 시민들이 목소리를 높인다. “아니 왜 장사하는 사람을 내쫓아요. 먹고살려고 하는 건데.”

“지금처럼 승객들이 오히려 저를 제지하려 할 때면 악당이 된 느낌이에요. 그러면 역 직원 입장에서 말씀드리죠. 저도 먹고살기 위해서 하는 일이라고. 불법이고 민원이 들어오기도 하니 계도 조치를 할 수밖에 없어요. 저희에게 사법권이 없으니 나갈 때까지 지켜볼 수밖에 없어요. 고성이 오가기도 하죠. 행상인 단속을 목적으로 단속영수증을 발부하기도 하지만, 사실상 유명무실하다고 느껴요. 과태료 부과 완료 보고를 받은 적이 거의 없거든요.”

 행상인 계도 조치 중인 원도훈 역무원 ⓒ 참여와혁신 백승윤 기자 sybaik@laborplus.co.kr

이제는 정말 아이센터로 돌아가려던 찰나, 동료 역무원으로부터 긴급 연락이 왔다. “대리님, 에스컬레이터 끼임 사고가 발생했대요.” 원도훈 역무원이 급히 발길을 돌려 달리기 시작한다. 도중에 다른 업무를 마치고 복귀하던 사회복무요원과 마주쳤다. “○○씨, 빨리 에스컬레이터로!” 현장에 도착하니, 승객의 치마 끝단이 발판에 빨려들어 간 상태였다. 두 사람이 출동했지만 일손은 모자랐다. 원도훈 역무원이 승객을 진정시키며 상황을 살피는 동안 사회복무요원이 우회를 유도했지만, 위아래서 동시에 몰리는 사람을 모두 안내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위에서 내려오려는 사람들은 영문을 모른 채 멈춘 에스컬레이터로 걸어오며 사고 승객을 밀쳐 지나가기도 했다. “제가 위에서 잡아드릴게요!” 보다 못한 시민 한 명이 나서서 손을 보탰다.

사고를 처리해갈 무렵 다시 아이센터에서 연락이 온다. “대리님, 휠체어 리프트 이용 요청 왔어요.” 리프트 두 곳에서 동시에 온 요청이다. 고속터미널역 7호선은 총 4대의 리프트를 운영하고 있다. 사회복무요원과 원도훈 역무원이 각자 다른 리프트를 향해 뛰기 시작했다. 달리는 원도훈 역무원을 한 승객이 불러 세운다. “잠실역으로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3호선 타고 교대에서 2호선 갈아타세요!” 약 7분간의 휠체어 리프트 이동 업무를 마치니 점심시간이었다. “저희가 바쁘기 때문에 중식 시간이 1시간이라도 다 보장받지는 못하고 있어요.” 점심 후 돌아온 아이센터에는 아무도 없었다. 동시에 발생한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서 남아있던 역무원들이 출동했기 때문이었다.

에스컬레이터 끼임 사고를 처리하고 있다. ⓒ 참여와혁신 백승윤 기자 sybaik@laborplus.co.kr
장애인 휠체어 리프트 이용 도움 요청을 받은 원도훈 역무원이 뛰어가는 중이다. ⓒ 참여와혁신 백승윤 기자 sybaik@laborplus.co.kr 

텅 빈 ‘상황실’, 안전한 지하철 가능할까

“상황실”, “작은 관제실”. 역무원들이 아이센터를 비유한 말이다. 승객의 긴급호출, 관제실로부터 출동 지시, CCTV 확인, 스크린도어(PSD) 고장 감시, 각종 민원 응대 등. 역사에서 발생하는 거의 모든 일은 아이센터로 모인다. 한마디로 지하철 민원과 안전의 최전선 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센터에 역무원이 없는 경우는 꽤 많은 역에서 종종 발생한다.

“역사에 불이 나더라도 아이센터로 신고가 들어와요. 열차 간격 조정, 열차 내 문제 발생 등에 즉시 대처 못 하면 큰 사고가 발생할 수 있고요. 원칙대로라면 아이센터를 비우면 안 되는데, 사실 비울 수밖에 없어요. 혼자 남아있다고 해서 호출·민원이 없는 건 아니니까요. 2인1조일 경우에는 어떻게든 공백이 생길 수밖에 없죠. 그런데도 2인 역무로 운영되는 곳이 많으니 문제죠.” (경력 4년의 A역 ㄱ역무원)

서울교통공사노동조합에 따르면, 지하철 1~8호선 총 1,060개 근무조 중 39%(413개)가 2인1조다. 역으로 보자면 73개 역에 2인1조, 53개 역에 3인1조로 배치된다. 전체(265개 역)의 47.5%에 달하는 규모다(2022년 8월 기준). 근무조 중 1명이 법정휴가 사용하면 사실상 ‘나 홀로 근무’를 해야 한다. 긴급 상황 발생 시 승객과 역무원의 안전을 담보하기 어렵다.

“교통카드·스크린도어·아이센터 등 업무 자동화의 혜택은 커요. 단점이라면 서울시의 구조조정 압박이겠죠. ‘기계들이 다 하는데 너희가 무슨 할 일이 있느냐’는 거죠. 그런데 출범 당시부터 적은 인원으로 운영되던 5-8호선 인력감축은 터무니없는 얘기 같아요. 저희 역은 3명이 한 조를 이뤄서 근무해요. 평일에 역장과 사무직, 사회복무요원이 출근하는 걸 고려하면 4명은 과할 수도 있어요. 문제는 주말이에요. 병가·휴무가 있으면 두 명이 근무해야 하잖아요. 만일 1명이 사고에 매달리면 나머지 인원이 다른 모든 일을 도맡게 되죠. 인원이 모자라는 날이 있으면 다른 역에서 지원을 받기도 하는데, 지금은 오히려 역무원을 1명씩 빼는 추세라서 지원을 못 받는 경우도 있어요. 역장마저 교대근무에 투입되는 상황인데, 더 이상 줄일 수 있는 여지가 있을까요.” (경력 25년의 B역 ㄴ역무원)

오세훈 서울시장은 서울교통공사에 구조조정을 주문했던 2021년 당시 ”서울교통공사의 경영합리화가 절실한 상황이지만 그렇다고 안전을 희생시킬 수는 없다”며 “안전과 경영합리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는 고도의 경영기법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역내 ‘상황실’마저 비워둘 정도로 일손이 부족한 상황에 추가 구조조정을 실시하면 안전은 난망하다고 역무원들은 입을 모은다.

“말로만 안전 인력을 얘기하는 게 아니라 일하는 입장에선 정말 부족해서 강조하는 거거든요. 그런데 어떻게든 서울시와 회사는 줄이려고만 하지, 더 주려고 한 적은 없어요. 4명이던 역이 3명이 되고, 3명이던 역은 2명으로 됐으니까요.” 서울교통공사노조에 따르면, 서울교통공사는 1-4호선과 5-8호선 통합 이후인 2018년부터 2020년까지 1,429명의 인력을 감축했다. 많은 역사에서 인력부족을 겪고 있지만, 지난 2년과 마찬가지로 서울시는 ‘재정난’을 이유로 서울교통공사에 인력 감축을 요구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