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불임금 승소했더니, 미래임금 뺏는 행안부?
체불임금 승소했더니, 미래임금 뺏는 행안부?
  • 정다솜 기자
  • 승인 2023.06.14 22:03
  • 수정 2023.06.14 22: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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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대노총 지방공기업 특위, 8일부터 행안부 앞 천막농성 돌입
‘2023년 지방공기업 예산편성 보완지침’ 수정 촉구
ⓒ 한국노총 전국공공노동조합연맹
공공연맹 서울교통공사통합노조가 14일 행정안전부 농성천막 앞에서 피케팅을 하고 있다. ⓒ 한국노총 전국공공노동조합연맹

지방공기업 노동자들이 통상임금 확대 소송에서 이겼는데도, 행정안전부의 부당한 예산편성 지침으로 인해 오히려 향후 임금이 깎일 상황에 놓였다고 밝혔다. 이들은 행정안전부에 지침 수정을 촉구하며 천막농성에 돌입했다.

양대 노총 공공부문노조 공동대책위 지방공기업특위는 14일 기준 5일째 정부세종청사 행정안전부 앞에서 천막농성을 하고 있다. 지방공기업특위는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와 한국노총 공공연맹이 함께한다. 지방공기업 노동자들은 약 11만 명으로 전국 지방자치단체가 설립한 1,200여 개 지방공기업과 지방 출자 출연기관에서 일한다.

지방공기업 노동자들이 천막농성에 돌입한 핵심 배경엔 행정안전부의 ‘2023년도 지방공기업 예산편성 보완지침’이 있다. 

이 지침에 따르면 2024년 1월 1일부터 통상임금 소송 결과에 따른 지급액이 총인건비 인상률 산정 시 포함된다. 그간 통상임금 지급액은 총인건비 외 예비비로 지급됐는데, 이젠 총인건비 내에서 주겠다는 것이다.

이 지침대로라면 공기업 노동자들은 “미래임금이 잠식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14일 천막농성에 나선 이양섭 공공연맹 서울교통공사통합노조 위원장은 “서울교통공사에서 올해 임금 인상률이 1.7%로, 180억 원 정도다. 반면 서울교통공사에서 진행 중인 통상임금 소송 규모는 약 890억 원이다. 이 통상임금 지급액을 총인건비에서 준다면 미래임금이 잠식되는 것과 다름없다”고 설명했다. 

또 이양섭 위원장은 “통상임금 지급액은 그간 통상임금 산입범위에 포함이 안 됐던 미지급 임금에 대한 문제”라며 “행정안전부의 지침대로라면 노동자들이 자기 미래임금으로 체불임금을 받는 격이다. 게다가 이미 퇴사한 노동자들은 후배들의 미래임금으로 체불임금을 받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조
공공운수노조 소속 서울농수산식품공사 노동자들이 지난 13일 행정안전부 앞에서 선전전을 하고 있다. ⓒ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조

‘2024년 1월 1일부터’라는 지침 변경 적용 시점에 대한 해석도 불확실한 상황이다. 지방공기업특위에 따르면 행정안전부는 2024년부터 나오는 ‘통상임금 소송 결과’를 적용한다고 풀이되는 지침 해석을 노조에 전달했다. 기획재정부의 관련 지침은 2022년 1월 이후 새로 ‘제기된 소송’부터 적용된다.

이양섭 위원장은 “소송 결과 시점은 알 수 없는 문제다. 노사가 예측할 수 없는 시점을 총액인건비 인상률 산정의 기준으로 삼겠다고 하니 문제”라며 “또 중앙공기업의 예산 통제를 하는 기획재정부는 소송 제기 시점을 기준으로 하는데, (지방공기업을 관장하는) 행정안전부는 소송 결과를 기준으로 한다면 중앙공기업과 지방공기업 간 형평성 문제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지방공기업특위는 통상임금 지급액을 총인건비에 포함하는 개정 지침에서 기획재정부의 방식대로 행정안전부도 신규 소송 제기 시점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무엇보다 지방공기업 노동자들은 통상임금 문제가 더는 소송전이 아닌 근본적인 대책 마련으로 정리돼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근본적인 대책은 통상임금 재판 결과에 따른 수당 항목 자체를 총인건비에 산입해서 총인건비를 계산하는 것이다. 그러면 노동자들도 통상임금 소송전에 나설 이유가 없게 된다.

한편 행정안전부는 지방공기업특위와 오는 19일 관련 면담을 계획하고 있다. 정윤희 공공연맹 정책실장은 “행정안전부와 통상임금 지급액 지침 관련해 오는 19일 만나 의견을 조율해 보기로 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