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한 일터 만들기에 ‘원-하청’이 같이 나선다면?
안전한 일터 만들기에 ‘원-하청’이 같이 나선다면?
  • 박완순 기자
  • 승인 2023.06.18 15:23
  • 수정 2023.06.18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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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한회사 에스엠’, ‘주식회사 진흥플랜트’ 사례로 본 안전 일터 구축
노사발전재단-시앤피컨설팅, 제3차 일터혁신 사례공유 포럼 개최
2023년 제3차 일터혁신 사례공유 포럼이 15일 여수시 LG화학 연수원에서 열렸다. ⓒ 참여와혁신 박완순 기자 wspark@laborplus.co.kr

일하는 누구나라면 몸을 버려가며 일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산업안전보건법의 지속적인 개선,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등 법제도적 조치와 사업장의 안전 문화 수준도 꾸준히 나아지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한국 사회 일터가 안전한가라고 물었을 때 당연하다고 답하기 쉽지 않다. 국제적으로 높은 산재사망률, 산업재해율 등이 대표적인 근거다.

안전한 일터를 만들기 위한 혁신 활동 역시 일터혁신이다. 혁신 활동이라는 조직적인 형태로 사업장의 안전 수준을 높일 수 있다. 노사발전재단과 시앤피컨설팅이 15일 오후 여수시 LG화학 연수원에서 ‘2023년 제3차 일터혁신 사례공유 포럼’을 열었다. 포럼 주제는 노사 참여 기반 자율 안전관리체계 구축이었다.

특히 이날 안전한 일터를 위한 일터혁신 우수사례로 발표된 사업장은 많은 시사점을 안겨 줄 수 있는 곳들이었다. 안전 문제에 취약한 원-하청 관계에서 협력업체, 화학산업에 속한 업체라는 특성을 가진 곳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토론에서 향후 안전한 일터 조성에 도움이 되는 다양한 의견들이 나왔다.

한 번에 다 같이 안전 일터 만들기
컨소시엄형 일터혁신

이날 사례로 발표된 ‘에스엠’은 LG화학 여수 용성공장의 사내 협력업체로 포장 및 출하 공정에 인력 공급을 담당하는 기업이다. 에스엠을 필두로 LG화학 여수 용성·화치공장 4개의 사내 협력업체를 포함해 총 5개 업체가 컨소시엄을 구성해 일터혁신을 진행했다. 여기에 원청인 LG화학도 일터혁신 프로젝트 지원을 했다.

이들이 뭉쳐서 안전 일터 조성에 나선 이유는 산업안전 이슈가 사회적으로 부각되고,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이후 한 층 높아진 안전 규범 준수 때문이다. 같은 사업장 내 안전이라는 공통 의제를 안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럴 경우 하나의 협력업체만 안전 준수에 나서기보다는 공동으로 안전 혁신 활동을 진행하면 효과성이 높으며 개별 협력업체의 부담도 줄어든다.

토론자로 나선 오계택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한국의 독특한 원-하청 관계에서 개별기업(개별 협력업체)이 컨설팅을 진행하는 데 한계가 있다”며 “비슷한 상황에 있는 협력업체들이 공동의 방식으로 컨설팅을 하는 게 효율적”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같은 작업장 내 일어나는 안전 문제이기 때문에 사고가 발생하면 작업장 내 모든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공동 운명체, 공동 책임의 관계가 형성되는 만큼 컴소시엄 모델이 중요 모델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다만 “평가체계, 임금체계 컨설팅을 컨소시엄형으로 하는 데는 고민이 필요하다”며 “협력업체들 사이의 노하우, 영업 기밀 등이 공유되는 상황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장종익 여수시 노사민정협의회 사무국장은 “원-하청이 함께 참여하는 안전 일터 구축은 중요하다”며 “실제로 설비는 원청의 것이고 협력업체는 인력 파견 형태로 나와서 일하다 보니 안전을 위한 설비 개선, 비용 투자에 협력업체들은 엄두를 못 낸다”고 이야기했다.

나아가 “원-하청이 산업안전보건위원회를 공동으로 구성해 안전보건을 다룰 수도 있지만, 현실적인 수준에서 원-하청이 안전보건 관련 간담회를 진행하는 등 향후 함께 논의하는 테이블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또 “원청의 경우 대기업인 만큼 안전보건 활동이 잘 이뤄지고 있다”며 “다만, 협력업체에게 안전 관련 정보를 공유하는 데 힘썼으면 한다. 예를 들어 사용물질이 유해화학물질인지 대체할 수 있는지 등 정보를 공유한다면 좀 더 안전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산업안전 문제에 있어서 원청의 적극적 활동이 가능하도록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내놨다. 장종익 사무국장은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이 활발해진 후로 원청이 설비 개선 등 안전 활동을 직접 관여하지 못하는 상황도 있다”며 “해당 부분에 대해서는 전문가들과 정부의 대안 마련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에스엠은 이러한 컨소시엄형 일터혁신을 통해 현장 안전 확충 조치를 취했다. 안전 발판 미끄럼 방지, 지게차 운행 경로 표시, 안전 덮개 설치 등의 개선 활동을 했다. 산업안전관리비도 2021년 1억 600만 원, 2022년 1억 2,400만 원, 2023년 1억 3,000만 원으로 늘렸고, 안전교육 시간도 대폭 늘렸다.

노사가 참여해야 현장이 바뀐다

안전한 일터를 만들기 위해서 사업장에서 직접 일하는 사람들의 의견이 제대로 반영돼야 한다. 현장 개선 활동도 사업장에서 직접 일하는 사람들의 경험에서 나온 의견에서 시작됐을 때 효과적이고 효능감도 있다. 혁신 활동에 노사 참여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이유다.

‘진흥플랜트’는 LG화학 등 화학업체들의 파이프라인 및 관련 설비를 공사하는 업체다. 특히 보온이 필요한 라인에 관련 설비 공사를 주로 하고 있다. 설비 공사인 만큼 안전 위험 요인에 직접적으로 노출되기 쉽다.

진흥플랜트는 안전 일터 구축을 위한 일터혁신을 통해 안전 수준을 높였다. 무엇보다도 현장의 의견을 반영하기 위해 노사 참여형으로 일터혁신을 추진했다. 노사가 참여하는 설문조사, 인터뷰를 통해 현장 안전 문제를 진단했다. 실질적인 방안들이 도출됐다.

향후 안전 활동을 위해서도 노사가 함께 참여하는 구조를 만들기도 했다. 안전보건회의를 정기적으로 개최하면서 부서장, 근로자대표 모두를 참여하게 해 현장의 이슈를 파악하고 대처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앞선 사례인 에스엠 등 5개 협력업체의 컨소시엄 모델에서도 노사 참여가 강조됐다. 노사의 안전 인식 수준 설문과 인터뷰를 기반으로 현장 의견을 안전 일터 구축의 시작점으로 놨다.

이에 대해 오계택 선임연구위원은 “산업안전이 안전공학적 측면에서 접근됐다면, 노사관계 측면에서 접근도 필요하다”며 “노사가 얼마나 함께 하느냐가 사업장 안전에 많은 영향을 준다”고 설명했다.

안전에서 보건으로
다른 산업에 적용 가능성은?

이날 포럼에서는 다양한 의견도 나왔다. 안전에 집중된 컨설팅이었다면 보건 영역으로까지 향후 확장돼야 한다는 게 장종익 사무국장의 생각이다. “근골격계 문제로도 접근할 수 있고, 작업환경측정 등을 통해 노동자 건강을 위한 작업환경 개선, 설비 개선 소재 등이 나올 수 있다”고 설명했다. 노동자의 일상적 건강까지 챙기는 수준 높은 안전 일터를 만들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원-하청관계의 안전 일터 구축에 대한 사례가 나온 만큼 원-하청 관계로 빚어지는 안전 문제가 빈번한 건설업과 조선업에 대한 모델 적용 이야기도 나왔다. 오계택 선임연구위원은 “건설업과 조선업은 화학업의 원-하청 형태와는 또다른 업종 특성이 있기 때문에 바로 적용은 어려우나 컨소시움 모델이 실마리를 제공할 순 있다”고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