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타워크레인 외길 건설노동자도 육아휴직 못 받는다
30년 타워크레인 외길 건설노동자도 육아휴직 못 받는다
  • 김광수 기자
  • 승인 2023.07.07 20:25
  • 수정 2023.07.07 21: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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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업장서 6개월 미만 일한 노동자에겐 모성보호제도 적용 안 돼
현장 생길 때마다 사업장 옮기는 건설노동자들은 법 사각지대에 있어
ⓒ참여와혁신 김광수 기자 kskim@laborplus.co.kr
7일 오전 건설산업연맹과 노동인권실현을위한노무사모임이 국가인권위원회에 '건설노동자 모성보호제도 적용을 요구하는 진정'을 제기한 사실을 알리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참여와혁신 김광수 기자 kskim@laborplus.co.kr

노동자의 재생산권*을 보장하기 위한 모성보호제도(육아휴직·육아휴직 급여·육아기 노동시간 단축 등)를 건설노동자들은 이용하지 못하고 있었다. 건설노동자 대부분이 일용직인데, 모성보호제도는 6개월 이상 하나의 사업 또는 사업장에서 노동해야만 적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재생산권: 모든 부부와 개인이 자녀의 수와 자녀를 가질 시기에 대해 자유롭고 책임 있는 결정을 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1994년 유엔 국제인구개발회의(ICPD)는 재생산 권리를 건강 영역에 포괄하면서 인권으로 인정한 바 있다.

윤원경(58) 씨는 28살 때부터 건설 현장에서 타워크레인 조종사로 일했다. 38살에 늦둥이를 가진 윤원경 씨는 당시 10년 경력의 건설노동자였음에도 육아휴직을 받지 못했다. 윤원경 씨가 육아휴직을 요청했을 때 현장소장은 “원경 씨 돌아오면 현장 끝난다. 그런데 그런 걸(육아휴직) 우리가 왜 해줘야 하냐?“고 되물었다. 결국 윤원경 씨는 임신 9개월 차까지 타워크레인에 올랐다. 이후 출산을 위해 자발적으로 퇴사했고, 출산 후 3개월 만에 다시 일을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윤원경 씨는 모성보호제도로부터 아무런 혜택을 받지 못했다.

2년 후 둘째를 가졌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모성보호제도의 혜택을 기대할 수 없었던 윤원경 씨는 이번에도 임신 9개월 차까지 일하고, 출산 3개월 후 현장에 복귀하는 것을 선택했다. 윤원경 씨는 “두 아이 모두 태어난 지 100일쯤부터 어린이집에 다녔다. 말도 못 하는 아이들을 두고 일을 나가는 것이 속상했다. 하지만 아이들의 양육을 위해서라도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 했다. 일을 쉴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윤원경 씨는 “다행히 아이들이 탈 없이 잘 자라주었다. 큰 애는 올해 대학에 들어갔다. 작은 아이는 고2로 한창 공부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육아 휴직이나 육아 휴직 급여 등을 받을 수 있었으면 조금 더 아이들과 시간을 보낼 수도 있었을 텐데 아쉬움이 남는다“고 털어놓았다.

윤원경 씨는 아직도 ‘현역‘ 건설노동자다. 요즘 그녀는 과천의 현장으로 출근한다. 다만, 30년 동안 타워크레인 한 우물을 판 윤원경 씨가 다시 셋째 아이를 갖는다고 해도 모성 보호제도의 혜택을 누리는 것은 여전히 불가능하다. 6개월 이상 하나의 사업 또는 사업장에서 일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행 모성보호제도는 하나의 사업 또는 사업장에 상시 고용돼 신청 당시 해당 사업장에서 노동기간이 6개월 이상인 노동자에게만 적용된다.

하지만 건설노동자는 현장에 개설되면 고용되고, 현장이 끝나면 해고된다. 대부분 일용직이다. 통계청과 건설근로자공제회에 따르면 건설노동자 87.4%는 일용직이며, 1년 평균 9개월 고용된다. 또 ‘건설 현장 일용노동자 근로형태 및 실태조사‘(대전비정규직센터, 2017)에 의하면 건설노동자는 1년 평균 10.6개의 현장에서 일한다. 따라서 6개월 이상 한 현장에서 일하는 경우가 드물어 건설노동자는 아무리 경력이 쌓여도 모성 보호 제도의 혜택을 전혀 받을 수 없다. 전일제 및 정규직 노동자를 전제로 만들어진 현행 모성 보호 제도의 사각지대다.

7일 오전 건설산업연맹과 노동인권실현을위한노무사모임(이하 노노모)은 이런 모성 보호 제도의 사각지대를 없애 건설노동자들에게 모성 보호 제도를 보장받을 수 있게 해 달라고 요구하며 국가인권위원회에 고용노동부 장관을 상대로 진정을 제기했다.

김세정 노무사(노동법률사무소 돌꽃)는 “합리적인 이유 없이 차별하는 것은 헌법이 보장한 평등권의 침해“라며 “건설노동자가 다른 노동자에 비해서 모성보호제도에 대해 차별 받을 합리적인 이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오랜 경력의 건설노동자들도 이런 제도를 적용받지 못하는 것은 분명한 차별“이라고 지적했다.

노노모 회장인 김재민 노무사는 “저출산이 문제라고 이야기한다. 저출산 문제 해결의 시작은 출산과 육아에 대한 차별 해소“라며 “정부는 법의 사각지대에 있는 건설노동자의 재생산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자회견 참석자들은 진정을 통해 “구체적으로 건설노동자의 모성보호제도 이용 실태 및 문제점에 대한 조사 촉구, 일용·일당직 건설노동자도 모성보호제도를 상근노동자와 등등하게 보장받을 수 있도록 지원 방안 마련을 촉구했다“고 밝혔다.

모성 보호 제도의 불합리함에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이유에 대해 윤원경 씨는 이렇게 말했다. “요즘 2030 여성들이 건설 현장에 많이 들어온다. 나야 ‘짬‘(경력)이 찰 만큼 찼으니 이런 목소리를 내서 건설사에 찍혀도 그러려니 할 수 있다. 하지만 젊은 사람들은 건설사에 찍혀 영영 고용이 안 될까 봐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 후배들이 내가 겪은 차별을 겪지 않게 하기 위해 어색하지만 목소리를 내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