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창단 노동자들이 마이크 대신 피켓을 든 이유
합창단 노동자들이 마이크 대신 피켓을 든 이유
  • 김광수 기자
  • 승인 2023.07.10 16:20
  • 수정 2023.07.10 16: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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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단시간노동자로 월급 90만 원 받는 의정부 시립 예술단 노동자들
“직장인 건강보험 가입하고, 생계 걱정 벗어나고파”
지난 6월 16일 의정부 시립 합창단 노동자들이 의정부 음악극 축대 무대에서 공연을 펼치고 있다. ⓒ의정부시립예술단지회

의정부 시립 예술단 노동자들이 쟁의행위에 돌입한 지 76일(7월 4일 기준)이 지났다. 의정부시립예술단지회 조합원들은 “교섭 상대인 의정부시와의 논의가 계속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고 말한다. 최문성 의정부시립예술단지회 지회장은 “싸움이 장기화될 것 같다”고 예상했다. 예술노동자인 이들은 어떤 이유로 장기간 싸움을 계속하고 있을까.

의정부시립예술단지회 조합원들은 모두 의정부시에서 운영하는 의정부 시립 합창단 노동자들이다. 이들은 상·하반기 연 2회 정기연주회를 연다. 그 외에도 수시로 필요에 따라 다양한 공연을 펼친다. 시민들이 많이 모이는 공원 등에 찾아가 길거리 무료 공연을 하기도 하고, 커다란 콘서트홀에 서기도 한다. 지난 4월엔 국립합창단과 함께 롯데콘서트홀에서 에드워드 엘가의 작품 ‘The Music Makers’를 한국에서 처음으로 공연하기도 했다.

쟁의하는 이유 ‘건강보험’
하지만 건강보험 가입하려면 월 60시간 이상 노동 필요

이들이 쟁의행위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건강보험(직장)에 가입하기 위해서다. 최문성 지회장은 “건강보험을 적용받지 못하면 의료비 등의 문제도 생기지만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다. 살아가는 데 지장이 많다. 직장이 불안정하다며 은행에서 대출도 안 해준다”고 토로했다.

의정부시립예술단지회 노동자들이 건강보험을 보장받지 못하는 이유는 그들이 초단시간노동자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현재 화, 목, 금(금요일은 격주) 오전 10시부터 오후 1시까지 3시간씩, 월 10회 총 30시간 일하고 있다. 임금은 월 92만 5,000원이다.

법적으로 주 15시간 미만 일하는 초단시간노동자들은 건강보험(직장)에 가입할 수 없다. 그래서 의정부시립예술단지회 노동자들은 건강보험을 적용받기 위해 주 15시간으로 노동시간을 늘려 초단시간노동자 위치에서 벗어나게 해달라고 요구한다.

의정부시립예술단지회는 주 15시간 노동시간 보장과 건강보험(직장) 가입을 요구하며 출근하는 날마다 출퇴근 전후로 1시간씩 시청 앞에서 피케팅을 하고, 매월 마지막 주 목요일에는 퇴근 후 시청 앞에서 대규모 결의대회를 연다.

의정부시립예술단지회가 지난 6월 29일 오후 3시 의정부시청 앞에서 결의대회를 열고 있다. ⓒ참여와혁신 김광수 기자 kskim@laborplus.co.kr

법적 문제로부터 자유로운 초단시간노동자
2018년 대비 44% 늘어나

초단시간노동자의 정확한 정의는 ‘4주 동안을 평균하여 1주 동안의 소정 노동시간이 15시간 미만인 노동자’다. 최근 의정부시립예술단지회 같은 처지에 있는 초단시간노동자들이 급증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초단시간노동자는 157만 7,000명이다. 2018년 109만 명에서 44% 늘었다. 이는 전체 비정규직의 20%를 차지하는 규모이기도 하다.

이렇게 초단시간노동자가 증가하고 있는 이유는 초단시간노동자들이 노동관계법의 일부 조항을 적용받지 않기 때문이다. 초단시간노동자들은 주휴일·퇴직금·연차 유급휴가 등을 적용받지 않는다. 따라서 퇴직금이나 주휴수당을 주지 않아도 된다. 2년 초과 사용 시 무기 계약직으로 전환되는 기간제법도 적용받지 않는다. 사용자로선 일반 노동자를 쓰는 것보다 훨씬 부담이 적다.

또 초단시간노동자들은 의정부시립예술단 노동자처럼 4대 보험도 적용받지 못한다. 구체적으로 4대 보험 중 산재보험, 고용보험(3개월 이상 노동 시)은 의무가입 대상이지만 국민연금은 사용자가 동의해야 가입할 수 있다. 건강보험(직장 가입)은 아예 가입할 수 없다.

법적인 문제를 피할 수 있다는 이유로 사용자로서 모범을 보여야 할 정부·지자체·공공기관에서조차 초단시간노동자 제도는 적극 활용되고 있다. ‘경기지역 초단시간노동자 실태 파악 및 정책 방안 마련 연구’에 따르면 경기도 공공기관 중 50%는 초단시간노동자를 활용하고 있다. 의정부 시립 예술단 노동자들도 지자체인 의정부시 소속 초단시간노동자들이다.

무늬만 초단시간··· 이미 60시간 이상 일해
부업은 필수··· 적은 임금 탓에 일 집중 어려워

상대적으로 짧은 시간 일하는 초단시간노동자들은 자기 일을 부업이나 ‘지나가는’ 임시 일자리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의정부 시립 예술단 노동자들은 자기 일을 주된 직업으로 인식한다. 의정부 시립 예술단 노동자들은 모두 성악 전공자다. 나아가 일을 잘하기 위해 유관 대학원에 다니거나 해외 유학을 다녀온 이들도 적지 않다. 최문성 지회장은 “나도 대학원에서 뮤지컬을 따로 배웠다. 부족한 월급에도 잘하고 싶어 자비로 공부를 계속하는 이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의정부 시립 예술단 노동자들은 상시적인 초과근무에 시달린다고 토로한다. 최문성 지회장은 “공연에서만 보면 노래를 쉽게 부르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공연을 앞두고 한두 달 정도는 공연에서 연주하는 곡에 계속 몰입해 있어야 한다. 혼자 따로 연습도 해야 하고, 합창도 연습해야 한다. 악보도 외워야 한다”며 “사실 연습에는 끝이 없다. 하지만 지금 수준으로 공연하기 위해선 월 30시간이 아니라 월 60시간은 돼야 추가 노동 없이 공연 준비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사실 대부분의 단원은 지금 하는 연습이 초과 노동이라는 생각조차 못 한다. 공연을 잘하기 위해 모든 것을 쏟는 것이 일상화돼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최문성 지회장은 “생계 문제만 해결된다면 예술 전공자로서 이 일에 최선을 다해 몰입하고 싶다. 하지만 92만 원으로 먹고살기 위해선 부업을 해야만 한다”며 “특히 가족이 있다면 부업이 필수”라고 털어놓았다. 이어 “부업을 할 때도 본업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해야 하므로 제약이 크다. 노래하는 사람이다 보니 목 관리가 필요해 먼지를 많이 먹는 일이나 목소리를 많이 내는 일은 하지 못한다. 한 명이라도 목소리가 나가버리면 전체 합창단에 피해를 주기 때문”이라며 “전공을 살려 교회 성가대나 결혼식 축가 등을 부업으로 하려고 하지만 그마저도 요즘은 일감이 많지는 않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최문성 지회장은 “우리 합창단 사람들은 모두 이 일에 진지하게 임하고 있다. 연습 시간을 늘려 생계만 보장된다면 우리는 반드시 받는 것 이상을 돌려줄 것이다. 확신한다”며 “지금은 노동시간도 짧고, 부업도 필수적으로 해야만 한다. 따라서 연습 시간이 부족하니 공연 퀄리티는 낮아지고, 공연 횟수도 적어질 수밖에 없다. 오히려 마음 놓고 연습하고, 공연할 수 있게 해주면 더 효과적·효율적으로 의정부시립예술단이 운영될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시에서는 건강보험을 보장해 주려면 예산이 너무 많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만 반복한다”고 지적했다.

의정부시 “요구 과해, 노동시간 점차 늘려가야”

의정부시는 “현재 의정부시립예술단에서 원하는 것은 전체 노동시간을 두 배로 늘리는 것이다. 주 15시간이면 현행 월 30시간에서 월 60시간으로 늘어난다. 그렇게 노동시간을 늘리려면 산술적으로만 계산해도 지금 들어가는 인건비의 두 배가 들어간다. 게다가 노동시간이 늘어나면 여러 가지 부가적으로 지급해야 하는 비용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열악한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으론 당장 그렇게 큰 금액을 편성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래서 의정부시에선 올해 39시간으로 노동시간을 늘리는 방안을 의정부시립예술단에 제시했다. 다만, 39시간으론 현재로선 의정부시립예술단지회에서 원하는 건강보험(직장) 가입은 불가능하다. 법적으로 초단시간노동자는 건강보험에 가입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또 “합창단에서 공연을 기획하고, 더 활발히 활동해 시민들에게 신뢰를 얻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데 의정부 시립 합창단은 공연 기획 등을 하지 않아 현재 공연 횟수가 적다”며 “(의정부시립예술단에서 먼저 자신들이) 필요성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최문성 지회장은 “공연 기획은 시에서 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또 “그런 이야기들을 많이 하길래 공연 기획서를 제출한 적도 있다. 하지만 그것 또한 의정부시에서 예산이 없다며 반려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지자체 예술단은 돈 버는 것이 목적 아냐
공공성 측면에서 생각해야

최문성 지회장은 “지자체의 예술단이 애초에 돈을 벌려고 만드는 사업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시민들에게 문화예술을 누리게 해주는 역할이 더 강조돼야 한다. 말하자면 공공성에 더 초점을 맞추고 의정부시립예술단을 운영해야 한다는 거다. 하지만 현재 의정부시에선 수익성이라는 관점에서만 의정부시립예술단을 보고 있는 것 같다. 의정부시와 의정부시립예술단이 서로 의정부 시립 예술단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다. 그래서 합의에 이르려면 조금 오래 걸릴 것 같다. 아울러 지자체 예술단에 공공성과 수익성의 균형은 지금 단번에 결론을 내릴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계속 고민하고, 균형을 맞춰 나가야 한다. 장기적인 관점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했다.

또 “하지만 우리는 수십 년째 시립 합창단원으로서 시민들에게 예술공연을 제공해 왔다. 나도 2006년에 입사했고, 일한 지 19년 됐다. 이제 막내가 30대다. 이곳에서 젊음을 바쳐 예술노동을 했다. 장기적으로 고민해야 할 것은 같이 고민해 나가더라도 일단 적어도 생계를 유지할 수 있을 정도로는 처우를 개선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최문성 지회장은 후배들을 위해서라도 이 싸움을 계속해 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나아지겠지’하는 안일한 생각만 반복하다 여기까지 왔다. 이제는 가만히 기다리진 않으려고 한다. 현재 성악을 전공하는 후배들에게도, 새로 들어올 합창단 후배들에게도 클래식 성악 분야에서도 열심히 노력하면 괜찮은 일자리를 얻을 수도 있다는 희망을 주고 싶다. 생계를 유지하며 전공한 것을 써먹을 수 있다는 믿음을 주고 싶다. 집회가 아니라 무대 위에서 빛나는 사람들이 될 수 있도록 해주고 싶다. 70년생으로 은퇴가 얼마 남지 않은 내가 지회장을 맡아 시를 상대로 싸우고 있는 이유다. 적어도 건강보험은 보장되는, 예술을 해도 평범하게 생계는 꾸려나갈 수 있는 그런 직장으로 만들고 물러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