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19주년 참여와혁신, 노동일보 포스터 주인공을 만나다
창간 19주년 참여와혁신, 노동일보 포스터 주인공을 만나다
  • 정다솜 기자
  • 승인 2023.07.17 03:57
  • 수정 2023.07.17 03: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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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와혁신은 노동일보를 재건하고자 2004년 7월 12일 창간했다. 올해는 창간 19주년을 맞아 참여와혁신과 특별한 인연이 있는 독자를 만났다. 1999년 노동일보 창간 광고 포스터 3명의 모델 중 한 명, 김희준 만도노동조합 위원장이다. 당시 만도기계에 공권력이 투입되면서 명동성당에서 수배 생활을 하던 30대 중반 김희준 위원장은 이제 정년을 한 해 앞뒀다. 백발이 성성한 김희준 위원장의 안부를 물었다.

김희준 만도노동조합 위원장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김희준 만도노동조합 위원장 (노동일보 창간 포스터 왼쪽이 30대 중반 김희준 위원장의 모습이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 1999년 노동일보 창간 광고 포스터 3명의 모델 중 한 명이다. 당시 기억은?

1998년 9월 만도기계에 공권력이 투입되면서 명동성당에서 수배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찍혔다. 회사의 정리해고 등에 맞서 전면파업을 하던 금속연맹 만도기계노동조합은 당시 정권의 좋은 먹잇감이었다. 공장이 7개로 흩어져 있는 데다, 공장마다 노동자가 1,000명씩은 있어서 전국적인 노조 파업 저지 성과를 낼 수 있었다.

- 포스터 사진을 찍은 뒤 24년이 흘렀다.

1990년대 공권력 탄압이 끝은 아니었다. 2012년 용역 깡패 단체에 의해서 금속노조 만도지부가 파괴됐다. 당시 조합원이 약 2,300명이었다. 이후 회사에서 세 차례 희망퇴직을 시행했고 현재 만도노조 조합원 수는 1,300명 수준이다. HL만도뿐 아니라 제조업체들이 노조를 깨고 가장 먼저 생산성을 올린다. 회사는 노조를 딱 깨고 시간당 생산량을 2배 가까이 올렸다. 외주화도 많이 이뤄졌다. 또 2012년 노조 파괴 전에 만도는 현대차·기아와 연봉이 비슷했는데, 지금은 현대차·기아에 비해 연봉이 3,000만 원 정도 떨어진다. 노조 파괴 이후 창조컨설팅과 함께 회사가 임금체계, 인사체계, 생산체계를 싹 바꾼 거다. 조합원들의 평균 연령은 점점 높아지고 있으며 신규 채용도 없다. 이젠 괜히 나섰다가 나만 아웃되느니 이대로 지내려는 관성이 현장에 많이 퍼졌다고 본다.

- 위원장 개인의 소회는?

소회랄 것도 없다. 1998년 공권력과 대립에서 당시엔 젊기도 했지만 일정 부분 성과를 냈다. 그런데 2012년에는 싸움도 못 해보고 용역 깡패 단체에 깨져버렸다. 질 땐 지더라도 저항 자체를 못 해본 거다. 이후 노조에 문제제기를 하면, 노무 담당 부서에서 바로 불러 개별 면담을 하니까 사업장 내 공포 분위기가 더 커졌다. 이 속에서 우리가 뭘 할 수 있겠느냐며 스스로 한탄하면서 지냈다.

- 그러다 2020년부터 만도노조 4대 위원장에 이어, 5대 위원장직을 맡아 다시 노조 활동을 하고 있는데.

4대 집행부에 당선돼 뭔가 바꿔보려고 하니까 회사도 ‘언젯적 김희준이냐’며 당황하더라. 금속노조 출신이 다시 집행할 줄은 몰랐던 거다. 회사나 노조나 실력이 없었다. 어느 날은 노조가 피케팅을 하는데 회사 관계자가 건너편 건물에서 사진을 찍더라. 노조 간부들에게 회사 측 카메라를 뺏어 오라고 했더니 아무도 못 갔다. 그래본 적이 없으니까. 2012년 이전에 노조 경험이 있는 간부 한 명이 카메라를 내놓으라고 다가갔더니, 회사 관계자가 당황해서 카메라 메모리칩을 빼주더라.

첫 중앙집행위원회에선 노조 출범 선언문부터 폐기했다. 투쟁하지 않고 정치파업을 하지 않는다는 말이 써 있더라. 노조 실력이 없어서 싸우지 못하더라도, 그런 말이 노조 출범 선언문에 들어가선 안 된다. 그래도 조합원들을 쭉 만나 보니 조합원들은 집행부가 결정해서 끌고 나간다면, 현장을 바꿔볼 의지는 충분하다는 걸 느끼고 있다.

- 최근 만도노조는 회사의 일방적인 희망퇴직 시행에 반발해 법적 대응에 나서기도 했다.

HL만도가 윤석열 정권을 믿고 그러는지 알 수는 없겠지만, 희망퇴직 시행은 단체협약에 명시된 고용안정위원회 심의 안건인데도 이를 무시하고 일방통행으로 일관했다. 고용노동부 행정지도와 법원의 가처분 인용조차 무시하는 중이다. 개인 간 합의를 지키지 않을 땐 사기죄로 처벌하는데 노조와 회사가 맺은 단체협약이 무시된다면 노조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 법률을 개정해서라도 단체협약이 무시되면 반드시 사용자를 처벌하는 조치가 필요하다. 이것이 윤석열 정권이 말하는 공정과 상식이라고 생각한다. 최근 10번 넘는 교섭까지 사측은 희망퇴직은 고용안정위원회 교섭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다시 느낀 것이 우리나라의 사회적 갈등 중재력이 정말 약하다는 거다. 사회적 갈등을 해소할 만한 법·제도적 장치가 부재하다. 그러니 갈등이 생기면 그대로 존치된다. 중재 역할을 해야 할 정부도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태도가 달라진다. 문재인 정부 때는 노동자 편을 드는 척했고, 윤석열 정부는 아예 때려잡고 있다. 갈등을 풀어나갈 사회적 기준, 가이드라인 자체가 없다. 우리사회에 갈등 조정 기반이 없으니 힘 없는 쪽은 다 깨지는 거고, 힘 있는 쪽은 완강히 버티는 식이 반복되는 거다.

- 내년이면 정년이다. 계획이 따로 있나?

강원도 원주에서 텃밭을 가꾸며 살 거다. 놀러 오시라.

- 참여와혁신이 창간 19주년을 맞았다. 한마디 하자면?

회사와 교섭하면 많이 듣는 말 중 하나가 ‘회사의 영속을 위해서’라는 말이다.(웃음) 참여와혁신이 계속 민주언론으로 성장해서 빈자일등(貧者一燈)의 기운으로 영속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