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전환기 HL만도 ‘일방적 희망퇴직’이 남긴 것
산업전환기 HL만도 ‘일방적 희망퇴직’이 남긴 것
  • 정다솜 기자
  • 승인 2023.04.13 12:51
  • 수정 2023.04.13 15: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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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HL만도 원주공장 희망퇴직 접수 종료··· 38명 신청
산업전환기 희망퇴직 통한 선제적 구조조정 선례로
경쟁력 약화된 국내공장 일거리 논의 등 과제 남아
금속노조 만도지부와 만도노조가 28일 민주노총에서 ‘만도 공격적 구조조정 규탄 공동 기자회견’을 열었다. ⓒ 금속노조
금속노조 만도지부와 만도노조가 28일 민주노총에서 ‘만도 공격적 구조조정 규탄 공동 기자회견’을 열었다. ⓒ 금속노조

자동차 부품사 HL만도가 산업전환기 유휴인력 부담을 이유로 진행한 희망퇴직 접수가 종료됐다. 13일 HL만도와 만도노조에 따르면 HL만도 원주공장의 희망퇴직 신청 기간(3/29~4/11)에 희망퇴직서를 제출한 노동자는 총 38명이다. HL만도는 특별위로금 등 보상을 지급하며 오는 30일부로 이들을 퇴직 처리한다. HL만도는 노조의 반발, 정부와 법원의 제동에도 희망퇴직 절차를 진행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이번 희망퇴직은 끝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HL만도는 애초 목표했던 희망퇴직 인원을 채우지 못했고 국내공장 투자 계획도 불확실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HL만도의 희망퇴직 과정부터 결과, 남은 과제에 대해 짚어봤다. 

노조에 통보 후 한 달여 만에
희망퇴직 접수 완료, 어떻게?

HL만도는 지난달 8일 노조에 공문을 보내 원주공장 기능직(생산직) 희망퇴직 실시를 통보했다. 회사는 국내 자동차 시장 성장세 정체, 미국 IRA(인플레이션감축법) 영향에 따른 완성차의 해외 현지화 전략 가속화 등으로 유휴인력 해소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노조는 회사에 단체협약*에 근거해 고용안정위원회 개최를 요구했다. 반면 HL만도는 인위적인 인력 감축이 아니기 때문에 고용안정위원회 심의 안건이 아니라며 거부했다. *단체협약 31조에는 “회사는 생산부문의 자연감소 및 경영악화 등을 이유로 일방적으로 정원을 축소해서는 안 되며, 축소 조정시에는 조합에 통보하고 유휴인력 대책방안을 고용안정위원회에서 다룬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에 노조는 단체협약 위반으로 고용노동부에 지난달 21일 진정했다. 그다음 날엔 회사를 상대로 ‘국내공장(원주·익산·평택)의 전동화로 인한 공동화 현상과 원주공장 희망퇴직 건’ 고용안정위원회 개최 응낙 가처분신청을 법원에 냈다.

상황을 파악한 고용노동부 평택지청은 조성현 HL만도 대표이사 앞으로 ‘단체협약과 신의칙에 따라 노동조합과 고용안정위원회에서 희망퇴직 건을 논의하라’는 내용이 담긴 행정지도 공문을 지난달 28일 보냈다. 행정지도를 받은 당일 HL만도는 원주공장에 희망퇴직 실시 공문을 붙였다. 지난 4일 법원도 HL만도에 고용안정위원회 개최를 명령했다. 

법원 판결 뒤 회사는 지난 6일부터 두 차례 고용안정위원회를 열었지만, 노사 간 이견은 좁혀지지 못했다. 노조는 법원의 결정 취지에 따라 진행 중인 희망퇴직 즉각 중단을 요구했고, 회사는 ‘희망퇴직 중단 이유를 찾지 못하겠다’며 거부했다. 그러다 지난 11일 희망퇴직 접수는 완료된 것이다.

한편, HL만도 측은 참여와혁신에 “(가처분 결과에 대한) 이의신청은 변호사와 협의해 대응할 예정이며 아직 확정된 바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난 3월 28일 HL만도가 원주공장에 게시한 희망퇴직 신청 접수 공고 ⓒ 만도노동조합
지난 3월 28일 HL만도가 원주공장에 게시한 희망퇴직 신청 접수 공고 ⓒ 만도노동조합

국내공장 일거리 문제
HL만도 노사 논의 이어가

이러한 상황에서 만도노조는 “희망퇴직 즉시 중단을 거부한 회사에 강력히 유감을 표명한다”며 “회사의 일방적이고 위법적인 희망퇴직으로 인해 노사가 맺은 협약이 무력화됐고 언제든 회사가 원할 때 희망퇴직을 남발할 수 있기에 항구적인 고용불안이 존재하게 됐다”고 말했다. 만도노조에 따르면 애초 회사의 희망퇴직 목표 인원은 76명(2020년 원주공장 내 주물공장 외주화 과정에서 진행한 희망퇴직 이후 남은 인원)이었는데, 이번에 희망퇴직을 원한 인원이 38명이었다. 나머지 인원에 대해 회사는 “안고 가겠다”는 입장을 지난 11일 고용안정위원회에서 노조에 전달했다.

만도노조는 실효성 문제로 회사에 희망퇴직 중단 요구는 더 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이제 노조에 남은 핵심 과제는 국내공장 일거리 보장과 고용보장 약속을 회사로부터 받는 것이다. 노사는 고용안정위원회의 안건이 ‘국내공장(원주·익산·평택)의 전동화로 인한 공동화 현상’인 만큼 관련 논의를 이어갈 계획이다. 

다만 고용안정위원회 사측 대표인 김현욱 HL만도 ER(Employee Relations·노무) 센터장이 국내공장 일거리에 관한 결정권자가 아닌 점, 현대차 1차 벤더인 HL만도는 현대차의 계획·의사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는 점 등은 노조에 남은 난관이다. 이에 김희준 만도노조 위원장은 “이번 희망퇴직은 정몽원 HL한라그룹 회장의 승인 없인 불가능했을 것”이라며 “또 앞으로 국내공장 일거리도 최종 책임자인 정몽원 회장의 결정이 중요하다. 노조는 반드시 정몽원 회장이 나서야 한다고 회사에 요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만도노조는 일방적 희망퇴직 추진에 대한 사과 및 책임자 문책, 단체협약 위반에 대한 재발방지 약속도 사측에 요구하고 있다. 

만도노조는 법적, 행정적 추가 대응도 검토하고 있다. 김희준 위원장은 “민사소송을 비롯해 법적인 절차에 대해 담당 변호사와 상의해 고민할 예정”이라며 “희망퇴직은 정리해고와 법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근로기준법 제24조(경영상 이유에 의한 해고의 제한)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과 관련해 지방고용노동청에 한 번 더 진정서를 제출해 행정적인 확대해석도 요청해볼 계획”이라고 밝혔다. 

만도노조의 소송을 지원해주고 있는 김상은 변호사는 “단체협약은 일종의 합의다. HL만도가 단체협약을 위반한 것은 노조와 합의를 위반한 것”이라며  “HL만도가 단체협약 규정에 명시된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채무불이행 책임이 있고, 노조는 민사소송에서 회사에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노조에 의견을 전달했다”고 말했다. 

(왼쪽부터) 김희준 만도노조 위원장,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 김현태 만도노조 노동안전보건실장 ⓒ 만도노조
(왼쪽부터) 김희준 만도노조 위원장,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 김현태 만도노조 노동안전보건실장 ⓒ 만도노조

산업전환기 추가 선례 막기 위한 
법·제도적 보완 과제도 남아

아울러 만도노조는 전동화(내연기관차의 전기전동화)가 점점 속도를 높이는 산업전환기에 사측의 선제적·일방적 구조조정, 그 구조조정 수단으로 활용되는 희망퇴직 등을 막기 위한 법·제도적 보완을 국회와 정부에 요구할 계획이다. 특히 희망퇴직은 노사 자율 의지로 이뤄진다지만 사용자가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노동자에게 강제할 수 있고, 이후 노동자가 진정으로 희망퇴직을 원했는지 객관적으로 판단하기엔 제약이 큰 방식이다. 

지난 11일 만도노조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이수진(비)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만나기도 했다. 이수진 의원은 2021년 9월 ‘산업구조 전환에 따른 노동전환 지원에 관한 법률안’(노동전환지원법)을 발의한 바 있다. 

김희준 위원장은 “이수진 의원을 만나 희망퇴직 남발 방지, 단체협약 이행 의무 강화 등을 위한 법·제도적 정비가 필요하단 이야기를 했다”면서 “무엇보다 산업전환 과정에서 공정한 전환이 필요하기 때문에 만도노조의 사례 등에 대해 의원실에 자주 의견을 전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수진 의원실 관계자는 “노동전환지원법 통과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이번 HL만도 건뿐 아니라 지난해 외투기업 제약노조(NPU)가 밝혔던 제약바이오산업에서 벌어진 무분별한 희망퇴직, 한국와이퍼 집단해고 사례도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다”면서 “특히 자동차산업에선 산업전환에 따라 완성차 벤더(협력업체)에서 HL만도와 유사한 고용조정 문제가 발생할 것으로 본다. 이런 흐름 속에서 국가 차원의 대책을 마련하려면 노동전환지원법이 꼭 필요하다”고 이야기했다. 이어 “HL만도에 희망퇴직이 다시 일어나지 않으리란 법도 없으니 향후에 의원실과 공동대응하자는 이야기도 만도노조에 전했다”고 덧붙였다. 

김희준 위원장은 “앞으로도 여러 난관이 있겠지만 자본이 이번처럼 일방적으로 노동조합을 밀어붙이는 데는 결코 동의할 수 없다는 원칙하에 대응을 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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