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쑥날쑥’ HL만도 노사협의회···근로감독은 패싱?
‘들쑥날쑥’ HL만도 노사협의회···근로감독은 패싱?
  • 정다솜 기자
  • 승인 2023.12.20 16:11
  • 수정 2023.12.23 23: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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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L만도, 정기적 노사협의회 미개최 혐의 노동부 조사
2020년 노동부 근로감독에선 확인 안 돼?
진정인 “노사협의회 제대로 열리고 있는지 실태조사 필요”
HL만도 CI
HL만도 CI

HL만도가 2012년 ‘노조파괴’ 사건 이후 10여 년간 노사협의회 개최를 해태하고 있단 문제가 제기됐다. 고용노동부의 근로감독에서도 따로 제재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노동자 경영참여의 기초 단계이자, 특히 무노조 사업장에선 노사 간 공식 대화 창구 역할을 하는 6만 개에 달하는 노사협의회에 대한 고용노동부 근로감독의 실효성에 대한 지적도 뒤따른다. 

20일 〈참여와혁신〉의 취재를 종합하면 고용노동부 평택지청에 ‘HL만도의 근로자 참여 및 협력 증진에 관한 법률(근참법) 위반’ 건으로 진정이 지난달 1일 접수됐다. 진정인은 만도노조 전 기획실장이다.

진정인 “상습적으로 협의회 미개최”
사측 “일부러 안 한 것 아냐”

진정인은 “HL만도는 2023년 3분기 노사협의회 미개최뿐 아니라 2023년 3월 3일 문서로 제출된 근로자위원 측의 1분기 노사협의회 및 산업안전보건위원회 개최 요구해 불응해 근참법 12조를 위반한 사실이 있다”며 “이외에도 2012년 이후에 HL만도는 10여 년간 상습적으로 노사협의회를 미개최해 왔다”고 밝혔다. 

진정인이 고용노동부에 진정 증거로 제출한 ‘HL만도 노사협의회 개최 여부 일람표’
진정인이 고용노동부에 진정 증거로 제출한 ‘HL만도 노사협의회 개최 여부 일람표’

진정인이 고용노동부 평택지청에 제출한 ‘HL만도 노사협의회 개최 여부 일람표’를 보면 HL만도는 대개 4분기에 집중적으로 노사협의회를 개최했다. 

근참법은 상시 30명 이상 노동자를 사용하는 사업이나 사업장에 대해 노사협의회의 설치를 강제하고 있다. 아울러 노사협의회는 3개월마다 정기적으로 회의가 개최돼야 한다.(제12조) 사용자가 이를 위반하면 2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제32조) HL만도가 3개월마다 노사협의회를 개최하지 않았다면 법률 위반이다. 이에 대해 고용노동부는 조사를 하고 있다.

HL그룹 관계자는 “노사협의회가 분기마다 열리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다. 보통 한 해에 1분기, 4분기 두 번 정도 열렸던 것으로 안다”며 “노사협의회는 노조 쪽에서 요청이 있을 때마다 개최했다. 일부러 안 한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또 HL그룹은 측은 “노사협의회가 개최되지 않은 2분기, 3분기에는 현안 과제를 논의하기 위한 단체교섭을 했기 때문에 노사 간 소통은 충분히 이뤄졌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진정인은 “노동조합법에 따른 단체교섭과 근참법에 따른 노사협의회의 성격과 개최 근거가 상이하다”며 “노조와 단체교섭이나 실무협의를 근참법에 의한 노사협의로 볼 수 없다”고 반박했다.

“근로감독 실효성 의심”

무엇보다 HL만도가 노사협의회를 정기적으로 개최하지 않은 점이 고용노동부의 정기근로감독에서 확인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고용노동부는 정기근로감독에서 사업장의 노사협의회 설치 여부 및 운영 사항을 확인하고 있다.

진정인은 “고용노동부에 HL만도의 최근 10년 치 근로감독 결과에 대한 정보공개 청구를 했다. 그랬더니 근로감독관이 문서 보존 기간이 3년이라 2020년 12월 근로감독 결과만 있다고 했다”면서 “근로감독관이 보여준 1장짜리 근로감독 결과를 보니 당시에도 노사협의회가 분기별로 개최되고 있지 않았으나 고용노동부는 HL만도의 단체협약 미신고 외에 노사협의회 운영에 대해선 시정조치를 한 바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런 상황에서 진정인은 “2020년 12월 근로감독 결과는 고용노동부가 HL만도의 노사협의회 운영 해태를 묵인했거나, HL만도가 고용노동부에 허위 서류를 제출한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며 “고용노동부 근로감독의 실효성이 의심된다”고 주장했다. 

고용노동부 평택지청 관계자는 “진정인이 HL만도 근로감독 결과에 대한 정보공개 청구를 했기 때문에 곧 해당 내용이 공개될 것”이라며 따로 2020년 HL만도 근로감독 결과에 대한 사실관계를 확인해 주진 않았다. 

한편 고용노동부의 조사 과정에서 HL만도 측은 ‘규정상 호선으로 선출하는 의장의 부존재로 (노사협의회 미개최가) 발생한 것으로 사용자를 처벌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진정인은 지난 15일 진정 추가 의견 및 자료를 제출해서 △근참법은 호선으로 의장을 선출하고 공동의장을 둘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이는 강행규정이라 보기 어렵다는 점 △현재 2023년 4분기 노사협의회가 의장 부존재 상태에서도 개최되고 있다는 점 등을 봤을 때 의장 부존재는 노사협의회 미개최의 정당한 사유가 될 수 없다고 밝혔다. 진정인의 이 같은 주장에 대해 HL그룹 측은 〈참여와혁신〉에 따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24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산업전환기 HL만도 단협 위반 및 일방적 구조조정에 대한 제도 보완 촉구’ 기자회견에 참가한 전국금속노동조합 조합원이 ‘기업은 성장해도 노동자는 선제적 구조조정하는 기업 HL만도’라는 문구가 적힌 손피켓을 들고 있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지난해 4월 24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산업전환기 HL만도 단협 위반 및 일방적 구조조정에 대한 제도 보완 촉구’ 기자회견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전국 6만 개 노사협의회···
“제대로 열리고 있는지 실태조사 필요”

노사협의회가 근참법에 따라 제대로 운영되지 않는 문제는 HL만도만의 일은 아니다. 노사협의회 설치 의무 대상인데도 설치조차 안 한 사업장이 많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노사협의회는 노조보다 많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22년 기준 30인 이상 사업장 5만 9,415곳에 노사협의회가 설치돼 있다. 신규 사업장의 증가로 노사협의회는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추세다. 무노조 사업장이 86%에 달하는 상황에서 노사협의회는 노사 간 공식적인 대화 창구 역할을 하고 있다. 노사협의회는 국제노동기구(ILO)가 노동자 경영참여의 유형 4가지*를 제시한 것 중 가장 일반적인 제도이자, 가장 협의의 노동자 경영참여를 뜻하기도 한다. *△노사협의 및 공동의결 △단체교섭 △노동이사제 △작업장 참여

근참법에 명시된 노사협의회 의결사항은 노동자의 교육훈련 및 능력개발 기본계획의 수립, 복지시설의 설치와 관리, 사내근로복지기금의 설치 등이다. 협의사항으론 생산성 향상과 성과 배분, 인사·노무 관리의 개선, 작업공정의 개선, 임금 체계 등 제도 개선 등이 있다. 이처럼 사업장에서 노동자의 기본적인 참여를 보장하고 노동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노사협의회가 법률대로 운영되지 않는다면 노동자들의 권익은 침해받게 된다. 고용노동부의 적극적인 행정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2016년 고용노동부의 ‘노사협의회 운영 상황 실태조사’ 연구용역에 따르면 노사협의회 설치 의무 대상인 30인 사업장 586곳 중 42.8%(251곳)가 노사협의회를 운영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보고서는 “30인 이상 기업에서 노사협의회 설치가 의무화돼 있는데도 운영하고 있다고 한 응답이 60%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은 다소 충격적”이라며 “근로감독 같은 정부의 적극적인 행정행위와 함께 노사협의회의 필요성을 스스로 느낄 수 있도록 적극적인 홍보와 교육이 필요하다”고 밝힌 바 있다. 

진정인은 “노사협의회 미개최는 분기별 경영계획 및 실적, 인력계획에 관한 사항 등을 사용자가 보고하지 않게 돼 노동자들의 권리를 침해한다”며 “HL만도의 경우 올해 1분기 일방적인 희망퇴직을 실시해 고용노동부의 시정조치와 법원의 고용위원회를 개최하라는 가처분 결정을 받은 바 있다”고 설명했다. 

진정인은 고용노동부가 노동조합에 대해 타임오프(근로시간면제) 제도, 국고보조금 등에 대한 전수조사만 할 것이 아니라, 사용자의 노사협의회 개최 및 운영에 대한 실태도 법과 원칙에 따라 조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진정인은 “HL만도의 사례 외에도 현대차, 기아 같은 대공장에서도 노사협의회 개최 해태는 빈번하게 일어난다”며 “우리나라 노조 조직률을 고려했을 때 노조가 있는 곳에서도 이렇다면 노조가 없거나 회사 측 관리자가 근로자위원을 겸하는 사업장의 경우 노사협의회는 서류상으로만 존재할 확률이 크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고용노동부는 노조와 관련된 것만 전수조사하고 왜 사업주와 관련된 건 전수조사는 둘째치고 근로감독도 제대로 안 하느냐”며 “노사협의회 운영 여부뿐 아니라 내용상 제대로 열리고 있는 건지 실태조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