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아시아나 합병 꼭 이뤄져야”
“대한항공-아시아나 합병 꼭 이뤄져야”
  • 백승윤 기자
  • 승인 2023.08.01 10:10
  • 수정 2023.08.07 14: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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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항공사 합병 항공 산업에 이득···인위적 구조조정 어려울 것“
[인터뷰] 오필조 대한항공노동조합 위원장

“두 회사가 빨리 합병해서 대한항공이 이득을 보고, 아시아나항공 노동자들도 고용안정을 누리는 게 우리의 바람이다.” 2020년 11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합병을 추진한다는 소식이 발표되고 3년 가깝게 시간이 흘렀지만, 해외 경쟁당국의 심사가 미뤄지면서 합병은 불투명해진 상태다. 오필조 대한항공노동조합 위원장은 지난 7월 21일 <참여와혁신>과 인터뷰에서 두 회사가 합병하면 국내 항공 산업이 경쟁력을 갖추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합병 과정에서 우려되는 구조조정에 대해선 회사가 인위적으로 강행하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치열해지는 글로벌 항공사 간 경쟁에서 국내 항공사가 우위를 차지하려면 국가의 지원이 강화돼야 한다고 밝혔다.

오필조 대한항공노동조합 위원장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양대 항공사 합병, 장기적으로 이득”

- 아시아나항공과 합병이 장기화하고 있다.

해외 승인이 예측보다 길어지고 있다. 14개 국가 중 유럽연합(EU)과 미국, 일본 경쟁당국의 기업결합 심사가 아직 진행 중이다. 당장 합병으로 대한항공이 어떤 이익을 내지는 않을 것이다.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노선과 슬롯(항공사가 특정 시간에 운항할 수 있는 권한)을 반납해야 하기 때문에 일정 부분 구조조정도 예상된다. 아시아나항공의 부실함도 부담되는 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조합은 합병을 꼭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무엇보다 아시아나항공 노동자들의 일자리 문제다. 위기를 맞은 기업에서 일하는 종사자들은 고용불안에 떨 수밖에 없다. 대승적 차원에서 대한항공이 그들을 품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국내 항공 산업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다. 국경을 넘나드는 항공 산업의 특성상, 국내 기업은 글로벌 항공사와 경쟁하는 측면이 강하다. 몇 해 전 자국 정부의 막대한 지원을 등에 업은 중동 항공사가 한국에 노선 확대를 요구했을 때, 국내 항공사가 잠식당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 것이 일례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합병하면 운임이 증가할 거로 보는데 그렇지 않다. 오히려 규모의 경제로 항공기 티켓 가격을 낮춰서 글로벌 항공사와 가격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는 방향으로 갈 것이다. 수익성이 개선되고 투자로 이어지면 소비자에게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국내 항공사의 글로벌 경쟁력이 높아질 거로 본다. 또 대한항공은 미국·유럽 등 주로 장거리 노선에서 수입을 많이 창출하는 기업이고, 아시아나는 중국·일본 등 중·단거리 노선에 집중돼 있다. 노선 확대로 인한 환승객 수익 창출도 기대할 수 있다.

- 노선과 슬롯 반납으로 인해 예상되는 구조조정 수준은?

미국과 EU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합병으로 인한 노선 독과점을 주장하며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노선과 슬롯 반납을 내건 조건부 승인을 내릴 가능성이 크다. 해당 노선·슬롯에서 자국 항공사의 비행기를 띄우려는 것이다. 영국도 두 회사가 보유한 히스로 공항 슬롯 일부를 영국 항공사에 넘기는 조건으로 승인을 결정했다. 합병은 대한항공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일 수 없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노선과 슬롯은 이전은 불가피해 보인다.

노선과 슬롯을 반납하면 항공기가 운행이 줄어든다. 비행기가 못 뜨는 만큼 일이 사라지기 때문에 구조조정이 우려된다. 승무원과 기장뿐 아니라 연료, 청소, 운송 예약 등 본사와 용역사의 일거리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다만 회사가 인위적으로 구조조정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대항항공노조는 회사를 상대로 고용안정을 항상 유지해왔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도 인위적인 구조조정을 하지 않는다고 약속했고, 산업은행도 그 부분을 인수합병 조건으로 강조했다.

퇴직자 대비 신규 채용을 줄이는 식의 자연감소는 걱정스럽다. 대한항공의 우려스러운 점 중 하나는 고령화다. 객실 승무원을 제외하면 신입직원을 거의 못 받고 있다. 회사 입장에서는 아시아나항공과 통합 이후 채용을 고려하는 모양인데, 합병이 수년째 마무리되지 않고 있다. 가뜩이나 코로나19 기간에 신규 채용은 없고 퇴직만 있었기 때문에 자연감소가 빨라질 수 있다. 아울러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 중 하나가 지역사회에서 고용 창출인데 제주·부산 등에서 해오던 지역 인재 채용도 미진하다. 노동조합이 관심을 가지는 부분이고, 합병도 더는 미뤄져선 안 된다.

“항공업, 글로벌 경쟁력 갖추려면 국가 지원 절실”

-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합병만으로 국내 항공사 경쟁력이 높아질 거라고 단언할 수 있나?

국가의 지원이 절실한 상황이다.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합병으로 세계적인 대형항공사(FSC)가 나온다고 말만 할 게 아니다. 안전을 위해 국내 항공사를 규제하는 건 당연하지만, 해외 항공사와 자율적으로 경쟁할 수 있도록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줘야 하는데 아직은 미흡하다. 코로나19 대유행 기간에도 미국, 유럽 항공사는 자국 항공사를 살리기 위해 지원금을 방대하게 쏟아부었다. 그런데 한국은 고용유지지원금을 제외하면 항공사의 존립 기반을 위한 지원은 실상 하지 않았다. 전 세계 항공 시장은 커지고 경쟁은 날로 심화하고 있다. 국가가 나서서 글로벌 항공사와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도록 지원을 많이 해줘야 한다.

- 부족한 부분이라면?

항공을 최우선하는 연구기관이 없고, 항공을 담당하는 정부 부처 규모도 작다. 국토교통부 항공정책실에 속한 일부 과에서 항공 산업 전반을 담당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국토부 과장이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되겠나. 국내외 항공 산업의 변화 속에서 안전과 경쟁력을 강화할 방안을 연구하고 국내 항공사에 먼저 제안할 수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대부분 국내 항공사들이 국제노선 발굴 등에 직접 뛰어들어 국토부로부터 최종 허가를 받는 식이다. 국토부가 항공사를 지원하는 측면이 필요한데, 갑의 위치에서 항공사에 징계를 내리는 쪽으로 치우쳐 있다. 현장과 괴리가 크다.

중동, 동남아 각국에서 유럽이나 미국으로 가는 노선을 두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정부가 공항만 만들 게 아니다. 제도 완화, 취항 등에 대한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항공청’ 정도의 기관을 만들어 항공 업계가 발전할 수 있도록 역할을 해야 한다.

- 현장 노동자들이 바라는 개선점은 뭔가.

인천공항 내 항공사 직원들이 사용하는 공간이 너무 열악하다. 콩나물시루다. 1단 라커룸을 설치하지 못해서 2단 라커룸을 쓸 정도다. 겨울 유니폼 하나 안 들어가는 라커룸이다. 휴게공간도 마땅치 않다. 어떻게든 공항공사에 개선을 요구해도 협의가 잘 안 된다. 임대인인 인천공항공사가 항공사에 추가로 사무실을 내주지 않는다. 공항공사 입장에서는 빈 공간이 있으면 상업시설로 만들고 싶어 한다. 비싼 임대료를 지불하며 공간을 빌렸고, 돈을 더 내서라도 조합원들에게 편의를 제공하려는데 해야 하는데 그게 안 되다 보니 직원들 불만이 크다. 대한항공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터미널 상주 항공사 모두 비슷하리라고 본다.

오필조 대한항공노동조합 위원장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노조 60주년, 대한항공 새 출발 계기되길”

- 코로나19로 항공 산업이 큰 어려움을 겪었다.

지난 6월 1일부로 전 직원이 휴업을 중단하고 완전히 복귀한 상태다. 국제노선이 전부 열리지는 않았지만 실적은 많이 회복했다. 화물 단가가 워낙 올라서 대한항공이 득을 봤다. 지난해 4분기 기준으로 여객 매출이 90% 회복했다.

코로나19로 조합원들은 고통을 겪었다. 2~3년간 제대로 출근하지 못해 우울을 호소하는 경우도 많았다. 지방 국제선 다 폐쇄했기 때문에 아예 문을 닫은 사무실도 있다. 항공 산업은 IMF 외환위기보다 힘든 시기였다. IMF 때는 적어도 비행기는 떴지만, 코로나19 유행 때는 비행기를 받아주는 공항이 없었다. 조합원들은 회사가 문을 닫을지 몰라 불안해하며 대기발령 당하는 기분으로 집에서 비행 날을 기다렸을 것이다. 그건 집행부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다행스러웠던 건 단 한 차례도 무급휴직이 없었다. 회사와 협의도 있었지만 고용노동부를 상대로 고용유지지원금 연장을 얻어냈기 때문에 통상임금 100%를 보존한 휴업수당을 지급받았다. 급여 손실을 보지 않도록 최대한 노력했다.

- 2021년 11월, 대한항공노동조합 역사상 처음으로 당선된 일반직 위원장이다. 임기 절반을 넘겼는데.

노동조합 출범 이후 57년간 정비직만 위원장을 해왔다. 다른 직종에서도 위원장을 해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었고, 용기를 내서 출마했다. 초반에는 정비가 아닌 일반직 출신 위원장에 대한 우려도 컸던 것으로 안다. 임기 동안 현장의 걱정과 우려를 깨기 위해 정비, 객실 승무원, 일반 승무원 등 직종별 이슈가 있을 때마다 해당 본부장을 직접 찾아가서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했다. 그간 24대 집행부에서 잘 해왔기 때문에 초기의 걱정이 지금은 많이 해소됐다고 생각한다.

- 내년 11월 임기 종료까지 24대 집행부의 과제는?

무엇보다 공약을 지키는 것이다. 지난해 취임하면서 임기 3년 내 임금인상 20% 달성, 성과급제도 개선과 복지 향상 등을 공약했다.

올해 임단협으로 성과급은 18년 만에 기본급의 300%에서 500%로 상향했다. 임금은 총액 3.5%, 기본급 기준 4% 인상을 했는데, 이 부분에서 조합원들이 실망해서 잠정합의안에 대한 조합원 찬성률이 과반을 간신히 넘겼다. 조합원 입장에선 고정비로 들어오는 기본급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설명하기 쉽지 않았다. 그래도 지난해와 올해 임금 인상률을 기본급으로 환산하면 약 15% 수준이다. 또 이번에 선택적 복지제도를 도입했는데 직원들이 원하는 복지를 잘 이용할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남은 임기간 공약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겠다.

아울러 내년에 노동조합이 60주년을 맞이한다. 60년간 조직을 유지한 노동조합이 많지 않은데, 행사를 크게 열어 노사가 단합할 자리를 만들고자 한다. 조원태 회장도 참석하길 희망한다. 노동조합의 60주년 행사가 대한항공이 새롭게 출발하는 계기였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