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로운 전환의 기본, 폭넓은 참여와 뚜렷한 계획
정의로운 전환의 기본, 폭넓은 참여와 뚜렷한 계획
  • 박완순 기자
  • 승인 2023.08.28 16:36
  • 수정 2023.08.28 16:4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노동조합, 정의로운 산업전환 위해 정책 대안 마련할 필요 있어
한노사연·녹색전환연구소 ‘정의로운 전환‘ 주제로 토론회 열어
지난 8월 24일 한국노동사회연구소와 녹색전환연구소가 ‘정의로운 전환: 기업에 무엇을 요구할 것인가?’를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인류가 스스로 만든 덫, 기후위기는 모든 사회 주체들에게 전환의 심각성을 알리고 있다. 기업들 역시 당사자로 탄소중립 생산과 탄소중립 경영을 고민해야 할 시기다. 그렇다면 기업에게는 전환 국면에서 어떤 사회적 역할이 요구될까. 기업과 관계를 맺고 있는 노동의 고민은 무엇일까.

지난 8월 24일 오후 한국노동사회연구소와 녹색전환연구소가 서울 중구 녹색연합 레이첼카슨홀에서 ‘정의로운 전환: 기업에 무엇을 요구할 것인가?’를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이날 토론회는 ‘정의로운 노동전환의 전제’와 ‘기업의 책무’에 대한 발제와 현장 노동자들의 발언이 오갔다.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기업의 책무
이해관계자 참여와 계획 수립이 가장 중요

김우창 녹색전환연구소 연구원은 이날 발제에서 기업 경영 활동에서 정의로운 전환이 중요한 이유를 설명했다. 이어 기업의 정의로운 전환 정도는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지를 세계 벤치마킹 얼라이언스(WBA)의 정의로운 전환 평가 지표(Just Transition Indicator, JTI)를 소개하면서 설명했다.

JTI는 총 6개 부문으로 이뤄졌다. 각 부문은 4개 세부지표로 구성됐다. 6개 부문은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사회적 대화 및 이해관계자 참여 △정의로운 전환 계획 △녹색일자리, 좋은 일지리 등을 창출, 제공 및 접근 지원 △재교육과 훈련(reskilling & upskilling)을 통한 고용창출, 유지 및 지원 △사회적 보호와 영향 관리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정책과 제도에 대한 기업의 옹호와 지지 등이다.

해당 6개 부문마다 있는 4개 세부 지표에 0.5점을 부여했다. 예를 들어 이해관계자 참여 부문에서 세부 지표 중 하나는 ‘기업은 노동자, 노조 또는 동등한 노동단체를 포함해 2자 또는 3자(정부 포함) 협상에 적합한 당사자와 사회적 대화에 참여한다는 공식적 약속’인데, 여부에 따라 0.5점 또는 0점을 부여하는 것이다. 총점은 16점이다. ‘이해관계자 참여’와 ‘계획 수립’ 부문에 2배의 가점을 줬기 때문이다. 그만큼 참여와 계획 수립이 기본이고 중요하다는 뜻이다.

WBA는 2021년 정의로운 전환 평가 방법을 통해 세계 180여 개 기업을 평가했다. 그중 한국 기업 중에서는 SK이노베이션, 한국전력, 현대차, 기아가 평가 대상으로 포함됐다. 평가에 따르면 이해관계자 참여 및 사회적 대화 부문에서 SK이노베이션(1점)을 제외한 3곳은 0점을 받았다. 정의로운 전환 계획 부문에서는 4곳 모두 0점을 받았다.

김우창 연구원은 “기본적이면서 중요한 ‘다양한 이해관계자 참여와 의미 있는 사회적 대화’와 ‘구체적인 정의로운 전환 계획과 목표’가 미흡하다”고 이야기했다. 아울러 “정의로운 전환 계획에는 전환의 피해를 외부화하지 않아야 하고, 녹색일자리, 좋은 일자리를 창출해야 한다”며 “재교육과 숙련향상을 통해 고용 유지 및 창출하고 재취업을 할 수 있도록 관련 지원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정의로운 노동전환 전제는
정의로운 산업전환

김병권 녹색전환연구소 자문위원의 발제는 경제 상황 변화와 정의로운 전환의 방향과 고민 지점이 담겼다. 김병권 자문위원은 “최근 미국과 유럽의 산업전환은 기후위기 대응과 자국 산업 기반 강화 경쟁이 겹치면서 자국 보호 및 육성을 중심으로 설계되고 경쟁이 이뤄지고 있다”면서 “그런데 국내 녹색산업은 이에 대비하지 못하고 재생에너지 제조 및 전력 관련 정책이 멈춘 상태”라고 분석했다.

덧붙여 탄소배출을 이른 시기에 최대한 줄일 수 있는 방안을 선택해야 목표 연도 부근에 가서 탄소배출 저감 부담이 덜하다고 설명했다. 만약 2013년부터 탄소배출을 줄여나갔다면 2030년에는 126억 톤까지만 줄여도 섭씨 1.5도 미만에 머무를 수 있으나, 10년 늦은 2023년 올해부터 배출 축소를 본격화하면 2030년에 54억 톤까지 대폭 줄여야 한다. 탄소 총 누적배출량을 줄여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인데 “정부의 탄소중립기본계획은 빠른 탄소배출 감축이 어려운 수단에 더 의존하는 실수를 범하고 있다”며 “실용화 어려운 탄소포집·활용·저장 기술에 비중을 많이 뒀는데, 초기부터 탄소배출 저감을 크게 할 수 있는 다양한 태양광, 풍력 설비 증설과 석탄화력발전의 더 빠른 폐쇄, 전기차로 교체, 주택 및 상업건물 에너지 효율 올리기 등에 집중해야 한다”고 봤다.

아울러 국제 경제 상황 변화, 기후위기 대응에 따라 요구되는 녹색산업전환을 이해하고 이를 전제해야 정의로운 노동전환도 가능하다는 게 김병권 자문위원의 설명이다. 또한 녹색산업으로 산업 분야가 재편되는 상황에서 노동조합은 루카스 플랜* 정신에 입각해 선도적으로 정의로운 산업전환 정책을 제안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렇듯 산업전환에서 노동자들의 대안이 만들어지고 반영되는 과정 속에서 정의로운 노동전환도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다.
* 루카스 플랜 : 1970년대 영국 군수항공부품 제조사 루카스항공에 구조조정이 예고되자, 정리해고에 맞서 노동조합이 자체적인 대안 생산계획을 수립하고 정부에 이를 지원할 것을 요청함. 사회적으로 유요한 생산이라는 개념으로 제안된 대안생산계획을 수립하기 다양한 아이디어를 수집해 1,000여 쪽에 달하는 루카스 플랜을 만들었음.(풍력터빈, 히트펌프, 가정용 신장 투석기 생산 등). 다만 루카스 플랜은 제대로 구현되지 못하고 대처정부에 의해 폐기됨.

정의로운 전환,
참여의 폭을 넓혀라

이날 발제 이후 이어진 토론에서는 현장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태성 발전비정규직노조 전체대표자회의 간사와 나병호 한국노총 금속노련 정책국장은 정의로운 전환에 노동자 참여 보장을 강조했다. 또한 산업전환으로 원-하청 사이의 불균형이 가속화되는 것을 고민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송관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은 “국내의 정의로운 전환 논의는 노동이슈가 비어 있다”며 “참여의 실효성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이야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