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연맹 “정의로운 전환, 이렇게 해야 한다”
전력연맹 “정의로운 전환, 이렇게 해야 한다”
  • 김광수 기자
  • 승인 2023.10.03 13:01
  • 수정 2023.10.03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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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방식, 정의롭지 않아···절차적·실질적 정의, 공공 주도 필요해”
[인터뷰] 남태섭 전력연맹 사무처장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남태섭 전력연맹 사무처장이 19일 오후 서울 여의도 전력연맹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한국노총 전국전력산업노동조합연맹(이하 전력연맹)은 지난 7월 11일 국내 1호 ‘정의로운 전환 소송’을 제기했다. 정의로운 전환은 탄소중립 사회로 가는 과정에서 직·간접적으로 피해를 보는 화력발전노동자, 지역의 소상공인 등의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전환해야 한다는 원칙을 말한다.

전력연맹은 소송을 통해 ‘2050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이하 탄녹위)’의 재구성과 탄녹위가 의결한 ‘제1차 국가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이하 기본계획)’의 재수립을 요구했다.

탄녹위는 탄소중립 사회로 이행하기 위한 주요 정책 및 계획과 그 시행에 관한 사항을 심의·의결하는 대통령 직속 위원회다. 탄녹위는 지난 4월 10일 탄소중립 관련 최상위 법정 계획인 기본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참여와혁신>은 19일 서울 여의도 전력연맹 사무실에서 남태섭 전력연맹 사무처장을 만나 정의로운 전환 소송을 제기한 이유를 물었다. 아울러 전력연맹이 생각하는 정의로운 전환은 어떤 모습인지에 대해서도 물었다.

- 정의로운 전환 소송을 제기한 이유는?

탄녹위는 지난 정부의 탄소중립위원회가 개편된 위원회다. 화력발전 등의 노동자들은 탄소중립의 직격탄을 맞는다. 따라서 기존 탄소중립위원회엔 77명의 위촉직 위원 중 노동자 대표로 한국노총 위원장이 있었다. 솔직히 77명의 위원 중 노동자 대표가 1명인 것도 너무 적다.

그런데 2022년 10월 위촉직 위원을 새로 선임하면서 위촉직 위원이 32명으로 줄었다. 그 과정에서 그나마 1명 있던 노동자 대표도 위원에서 빠졌다. 이런 상황에서 수립된 기본계획은 전혀 정의롭지 않다. 그래서 탄녹위 재구성과 기본계획 재수립 등 정의로운 전환을 요구하는 행정 소송을 제기했다.

- 정치권에도 ‘정의로운 전환’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지난 8월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산업전환 시 고용안정 지원 등에 관한 법률안’이 통과되기도 했다. 이 법률안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정의로운 전환이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다만, 4가지 지점에서 아쉽다.

첫째로, ‘정의로운 전환’이라는 용어가 법명과 목적에 명시되지 못했다. 정의로운 전환이라는 말에는 노동자가 참여한다는 의미가 담겼다. 하지만 ‘산업 전환 시 고용안정’이라는 표현은 노동자 참여를 보장하고 있지 않다.

둘째로, 법률안엔 ‘사회적 대화’와 관련한 내용이 없다. 전환 과정에서 이해관계 당사자들과 충분한 상의를 통해 대안을 마련한다는 내용을 법에 명시할 필요가 있다. 그런 조항이 없다.

셋째로, 구체적인 고용 안정 방안이 없다. 법안엔 고용 안정을 위해 노력한다는 선언만 담겼다. 구체적인 이행 방법이 필요하다.

넷째로, ‘산업 전환’이라는 용어다. 디지털 전환과 탄소 중립은 그 이행 주체부터 방법까지 여러모로 다르다. 둘을 합쳐 산업 전환이라고 두루뭉술하게 정의하면 안 된다. 환부에 정확하게 메스를 대야 한다. 가령 독일에서는 ‘탈석탄법’을 만들어 정확하게 탈석탄의 주체들이 누구인지, 어떻게 탈석탄 사회로 이행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명시한다.

나아가 현재 국제노동단체들은 ‘정의로운 전환’의 개념과 그 방법론을 어느 정도 정립한 상태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지난 6월 ‘정의로운 전환 특별결의문’을 채택했다. 거기엔 정의로운 전환에 대한 구체적 개념과 노사정의 역할 등 방법론이 자세히 명시됐다.

- 정의로운 전환 과정에서 무엇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가?

‘중층적인 사회적 대화’다. 보통 사회적 대화라고 하면 이해당사자와 정부의 대화를 연상한다. 하지만 탄소중립에는 훨씬 더 많은 주체가 있다. 가령 석탄화력발전소가 폐쇄된다고 하면 석탄화력발전소가 밀집해 있는 충남도가 가장 큰 피해를 본다. 이 경우 지자체인 충남도가 중요한 사회적 대화 주체다. 하나의 사업장이 폐쇄된다고 할 때는 해당 회사의 입장이 중요하다. 이처럼 상황에 따라 참여해야 하는 이해관계자들이 다르다. 따라서 정부, 지자체, 산업별 노사, 사업장 단위 노사 등 다양한 주체들이 중층적으로 참여하는 논의 테이블이 마련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어쩔 땐 정부와 지자체, 노동자 3자가 모여 논의를 진행하고, 어쩔 땐 개별 회사와 지자체, 노동자가 모여 논의하는 등 상황에 맞게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유연하게 참여할 수 있는 사회적 대화 테이블을 만들어 가는 것이 중요하다.

- 중층적인 테이블이 만들어진다고 해도 생계가 걸린 노동자 입장에서 탄소 중립은 큰 위협이다. 불안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맞다. 화력발전노동자 2,000명을 대상으로 전력연맹이 자체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화력발전노동자 86.8%가 심각한 고용 위기를 느낀다고 답했다. 하지만 고용이 보장된다면 노동자들 또한 석탄화력발전 폐지에 대체로 동의했다. 국회 미래연구원 연구 결과도 그렇다. 탈석탄 정책에 동의하는 노동자 비율은 36.4%였다. 하지만 정부의 구체적 지원 정책(고용유지 등)이 병행될 경우, 노동자의 70% 이상이 탈석탄에 동의한다고 답했다.

- 탈석탄 정책이 실현되면 화력발전소가 사라진다. 고용이 유지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사라지는 석탄화력발전소의 90%는 발전 공기업이 소유하고 있다. 이에 비해 지금 새로 생기는 신재생에너지발전소의 90%는 민간 기업 소유다. 정부가 정책적으로 발전 공기업이 신재생에너지 시장에 진출하는 것에 제약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작년에는 적자 재무구조를 안정화해야 한다면서 발전 공기업들의 신재생에너지 투자를 축소하게끔 했다. 이런 구조에선 발전 공기업에 있던 노동자들이 신재생에너지발전소로 이동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 노동조합은 에너지 전환 과정을 공공부문이 주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발전 공기업은 발전에 관한 유통망과 인적 네트워크 등 수많은 인프라를 이미 가지고 있다.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사업 기회를 발전 공기업에 주면 자연스레 공공부문이 주도하는 에너지 전환이 가능해진다. 그 과정에서 화력발전소에서 일하던 노동자들도 사내 재교육을 통해 신재생에너지 발전 분야로 이동할 수 있다. 공기업이 신재생에너지를 공급하니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이 가능해 시민들에게 좋고, 고용보장이 되니 노동자들에게도 좋다.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남태섭 전력연맹 사무처장이 19일 오후 서울 여의도 전력연맹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 한전 그룹사 측도 공공이 주도하는 에너지 전환에 의견을 같이하나?

에너지 전환에서 공기업의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에는 노사가 의견을 같이한다. 하지만 미세한 차이도 있다. 노동조합은 지금 12개로 나뉘어져 있는 한국전력 그룹사가 다시 뭉쳐 통합적인 전력산업 구조를 마련하자는 입장이다.

지금의 전력산업 구조는 민영화를 목표로 1990년대부터 진행된 전력산업 구조개편의 결과물이다. 2004년 노사정위원회의 결정으로 현재 구조개편은 중단된 상태다. 하지만 발전사만 6개로 분리된 전력산업의 기형적인 구조는 지난 20여 년간 지속되고 있다. 민영화 추진을 방지하고, 탄소중립 시대 지속 가능한 전력산업을 만들려면 현재 분리돼 있는 전력산업을 재통합해 운영해야 한다. 그래야 산업 전환으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A회사의 발전소가 없어지면 재교육을 통해 B회사로 보내고, B회사의 인력을 감축해야 하면 다시 재교육해서 C회사로 이동시키는 등 유연한 인력 운영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동조합은 통합적 전력산업 구조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하지만, 사측은 경영진 인사이동 등의 문제가 있어 통합적 전력산업 운영에 동의하지 않고 있다.

- 인력 재교육과 이동의 구체적 상이 궁금하다.

탄소 중립으로 석탄화력발전소 폐쇄 등이 생기면 4가지 측면의 불일치가 생긴다. 시간, 공간, 기술, 산업의 불일치다. 가령 당진의 화력발전소가 폐쇄된다고 해서 그 즉시 당진에 다른 발전소가 생기진 않는다. 시간·공간이 불일치한다.

게다가 화력발전소를 없애고, LNG발전소 혹은 신재생에너지발전소가 생긴다고 가정하면 노동자에게 산업·기술의 불일치 또한 추가된다. 이런 불일치를 최소화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 정부의 지원책은 대부분 기술적인 부분에만 국한된다. 교육·훈련 프로그램만 있다. 아까 이야기한 ‘산업전환 시 고용안정 지원 등에 관한 법률안’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4가지 불일치를 해결하려면 개별 민간사업자보다는 통합적 인프라를 이미 갖춘 공공부문이 주도해서 인력을 운영하는 것이 좋다는 입장이다.

- 정의로운 전환에서 가장 중요한 3가지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절차적 정의. 실질적 정의. 공공 주도. 이렇게 이야기하고 싶다. 첫째, 절차적 정의는 정부가 시혜적으로 정책을 통해 고용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가 참여해 자기 몫을 주장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까 이야기한 중층적 사회적 대화가 가장 적절한 수단이라고 본다.

둘째, 실질적 정의는 구체적인 지원 체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중층적 사회적 대화를 통해 세부적·구체적 로드맵을 마련해야 한다. 그래야 노동자들이 안심하고 탄소 중립을 위해 같이 뜻을 모을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정부의 재정적 지원이 꼭 있어야 한다. 지난 6월 발표된 ILO 특별결의문에도 “재정 및 통화 수단의 적절한 사용이 필요하다”는 문구가 있다. 정부 정책에 의해 탄소 중립을 하는 만큼 정부가 실질적으로 재정을 투입해 노동자 및 지역사회 관계자들을 지원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에너지 전환은 막대한 투자가 필요한 분야다. 따라서 공공부문이 주도해야 한다. 한국전력공사에 투자하라는 것이 아니다. 기존의 인프라를 가진 한국전력 그룹사들이 신재생에너지 발전을 하는 것을 막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에너지 전환에 참여할 수 있도록 기회를 줘야 한다. 이런 것들이 전제돼야 이해관계 당사자들이 직면할 시간, 공간, 기술, 산업의 불일치를 최소화할 수 있다. 그래야 수월하게 탄소 중립 사회로 갈 수 있다.

- 앞으로 전력연맹의 계획은?

전력연맹은 지난 4월 출발했다. 오는 11월 16일 공식적으로 출범을 선언한다. 전력연맹은 현재 진행되는 에너지 전환을 ‘정의롭지 않은 전환’으로 규정한다. 따라서 11월 16일 ‘정의로운 전환’을 연맹의 강령으로 채택하고, 5만 전력노동자를 대표하는 대표 산별 연맹으로서 앞서 이야기한 정의로운 전환이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활발히 활동할 계획이다. 구체적으로 우리 연맹은 앞으로 정례 포럼 등을 정기적으로 열어 정의로운 전환을 어떻게 정의해야 하고, 또 어떤 방식으로 해야 하는지에 관한 한국적 합의를 만들어 나갈 생각이다. 나아가 이런 합의가 법 제도로 규범화될 수 있도록 정책 의견도 제시할 예정이다. 잘 지켜봐 줬으면 좋겠다.

남태섭 전력연맹 사무처장이 19일 오후 서울 여의도 전력연맹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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