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채 해결도, 에너지전환도 정치 독립이 우선’
‘부채 해결도, 에너지전환도 정치 독립이 우선’
  • 김광수 기자
  • 승인 2024.01.15 14:34
  • 수정 2024.01.15 14: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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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프레임 대신 전력산업 관련 제대로 된 진단 강조
[인터뷰] 최철호 전국전력산업노동조합연맹 위원장

전국전력산업노동조합연맹(위원장 최철호, 이하 전력연맹)이 지난해 11월 16일 출범식을 열고 공식 출범을 선포했다. 현재 전력연맹엔 12개 전력그룹사 중 8개 노동조합이 가입돼 있다. 그간 공공기관 관련 연맹에 속해 있었던 전력그룹사들이 독자적인 목소리를 낼 필요성이 있다는 것을 절감하고 뜻을 모아 전력연맹을 만든 것이다. 전력연맹은 출범과 동시에 여러 과제 앞에 놓였다. 조직을 정비하는 것은 물론이고 한전의 201조의 누적 부채를 해결해야 한다. 에너지 전환에 대한 대비책 마련도 시급한 문제다. 최철호 전력연맹 위원장은 전력연맹 초대 위원장으로서 산별교섭의 토대를 구축하겠다고 이야기한다. 한전 적자에 대해선 근거 없이 방만경영 딱지를 붙여 공기업을 위축시키는 것이 아니라 적자의 원인에 대해 제대로 진단한 후 이를 바탕으로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한다. 에너지 전환과 관련해선 탈원전이냐, 친원전이냐의 정치 논쟁이 아니라 현재와 같은 안정적 전기 공급을 유지하며 에너지 전환을 하기 위한 단계별 해법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지난해 12월 6일 전력연맹 사무실에서 최철호 전력연맹 위원장을 만나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최철호 전력연맹 위원장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산별노조 토대 만들 예정
한전·전력연맹만의 조직문화도 만들고파

- 무사히 출범식을 마쳤다. 전력연맹을 만들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

전력그룹사의 업무는 사실상 하나로 연결돼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발전에서부터 배전, 변전, 송전 등의 과정을 통해 가정이나 기업에 전기가 들어오기까지 모든 과정이 하나로 다 연결돼 있다. 중간에서 어느 한 곳에서만 잘못돼도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다. 따라서 과거부터 전력그룹사들만의 연맹 결성은 오랜 꿈이었다.

게다가 이제 전력그룹사들은 에너지 전환이라는 큰 파도 앞에 서 있다. 에너지 전환도 전기 공급과 마찬가지로 한 회사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전력 계통에 관계된 모든 것이 바뀌어야 한다. 그래서 결국 전력그룹사 노동조합들 사이에 더 이상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됐고, 결국 전력연맹의 결성으로까지 이어지게 됐다.

- 산별노조로 가는 것도 염두에 두고 있나?

그렇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진행되는 산별교섭들은 완전한 산별교섭이라고 보긴 어렵다. 기업노조의 교섭권을 인정하면서 교섭 사항 중 일부를 산별노조가 위임받는 형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종종 한국의 산별노조들은 무늬만 산별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그런데 전력그룹사들은 전부 한국전력공사(한전)의 자회사다. 이 자회사들은 모회사 한전 정책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산별노조에 교섭권을 전부 위임하는 산별교섭을 하는 것이 다른 산별노조들보다 전력연맹에서 더 쉽게 가능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전력연맹이 한국에서 진정한 산별교섭을 하는 최초의 조직이 될 수도 있다.

다만 첫술에 배부를 순 없다. 나는 후배들이 산별노조로 갈 수 있는 토대를 만든다는 생각으로 연맹을 운영할 계획이다. 연맹 산하 조직들에 공통으로 적용되는 의제들부터 하나씩 사측과 공통교섭을 해나가면서 공통교섭의 범위를 넓혀갈 생각이다. 이렇게 교섭구조를 만들어 놓으면 우리 후배 세대에선 조만간 완전한 산별노조로 전환도 가능해 질 것으로 생각한다.

- 아직 미가입한 전력그룹사도 있다.

아직 초기이다 보니 기존에 다른 상급단체에 가입해 있던 전력그룹사들이 전력연맹 가입을 망설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전력연맹이 여러 가지 성과를 내고, 전력연맹에 가입하는 것이 지금보다 더 낫다는 판단이 들면 곧 전력연맹에 들어올 것이다. 지금은 외연 확장보단 작더라도 성과를 만들어 내는 것에 집중할 계획이다.

- 어떤 성과를 내고 싶은가?

초기이기 때문에 할 것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다. 하지만 한전과 전력연맹만의 ‘조직문화’를 만드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한전의 방향성은 정부의 입김에 따라 결정됐다. 만들어졌다 정치적 이유로 금방 폐기돼 버린 정책도 많다. 한전은 한 국가의 전력산업을 책임지는 회사다. 정부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고 내부에서 자생적으로 큰 방향성을 설정한 후 흔들리지 않고 갈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전력그룹사 노사 연석회의 시스템’(가칭)을 만들어서 한전과 전력그룹사 사장단과 위원장들이 정기적으로 모여 의견을 주고받는 자리를 정례화하고 싶다. 이 자리에서 노사가 정치적 입김에 흔들리지 않을 방향성을 만드는 문화를 내부에 만들고 싶다.

방만경영에 대한 제대로 된 진단 필요
단기적으론 전기요금 인상해야

- 한전의 201조의 누적 부채로 인해 올해만 두 차례의 자구안이 나왔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자구안의 필요성은 일부 인정한다. 하지만 문제는 자구안이 정치적 필요성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현 정부는 전 정부 집권 시절, 공기업이 방만하게 운영됐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렇다 할 방만경영의 증거는 제시하지 못한다. 재무 전문가인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에 의하면 재무제표상 방만경영을 확인할 수 있는 지표인 판관비(인건비, 복리후생비 등) 추이를 살펴봤을 때 방만한 운영이라고 볼만한 지점은 없다고 이야기한다. 지금의 적자는 국제 유가 인상 등으로 전기의 원가가 올랐음에도 정부가 여론의 눈치를 보며 전기요금을 올리지 않은 것이 가장 큰 이유다. 그런데 정부에서 전기요금을 그냥 올리자니 여론의 포화를 맞을 것 같은 거다. 그래서 방만경영 프레임을 씌어 한전에 책임을 돌리고 있다. 한전을 ‘욕받이’로 만들어 놓은 거다.

정치적 프레임에서 나온 자구안이라 그 안들도 사실상 실현 가능성이 부족한 것들이 대다수다. 예컨대 노원구 공릉동에 있는 인재개발원 부지를 매각한다는 것이 자구안 중 하나다. 그런데 해당 부지는 그린벨트 지역이다. 토지 용도변경이 되면 매각하겠다는 계획인데, 그게 쉬운 일이 아니지 않나. 경영진도 정부가 하라고 하니 일단 던지고 보는 거다. ‘정치쇼’에 가깝다.

- 그럼 어떤 자구안이 필요하다고 보나?

일단 어느 부분에서 문제가 있었는지 차분히 진단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러니까 정부에서 ‘인력 줄여’ 이렇게 명령하고 내부에서 부랴부랴 인력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내부에서 인력을 감축하는 것이 필요한지, 필요하다면 불필요한 부분이 어디인지 제대로 진단하고 그 부분에 대한 방책을 마련해야 한다. 지금은 공공기관에 대해서 기재부에서 일률적으로 평가한다. 하지만 공기업별로 특성에 맞게 진단·평가하고, 해결책도 각 기업의 특성에 맞게 나와야 한다. 토끼와 거북이와 사자가 있다고 치자. 각 동물 특성에 맞게 평가해야지 무조건 속력으로만 평가하면 제대로 된 평가가 아니지 않나.

아까도 말했지만 이번 적자의 가장 큰 원인은 급등한 전기 원가를 전기요금에 반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단기적으론 요금 인상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한전이 부채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그 후엔 원가에 따라서 유동적으로 전기요금을 올렸다 내렸다 하는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요금을 올릴 때 제대로 올려야 내려야 할 때도 내릴 수도 있다. 정치적으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전기요금을 결정하는 독립된 규제기관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그 기관에서 요금을 결정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최철호 전력연맹 위원장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최철호 전력연맹 위원장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에너지 전환, 공공이 주도해야
원자력은 과도기적 에너지로 필요

- 에너지 전환도 시급한 문제다

그렇다. 과거엔 ‘질 좋은 전기를, 값싸게,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것이 한전의 목표였다. 지금은 하나가 더 추가됐다. ‘깨끗한 전기’를 공급해야 한다.

- 전력연맹이 이야기하는 전력산업의 방향성 중 ‘원자력을 포함한 현실적인 에너지믹스 구성’도 있다. 이건 어떤 의미인가?

지금은 원자력발전이 마치 이념의 ‘리트머스지’인 것처럼 쓰이고 있다. 원자력발전이 필요하다고 말하면 보수고, 원자력발전을 없애자고 하면 진보라고 한다. 양극단에 서서 서로 이야기를 듣지도 않는다. 전력산업을 이념의 도구로 사용한 정치인들에 의해 벌어진 일이다.

현실적으로 보자. 지금 상황에서 원자력발전 없이 바로 탄소중립으로 갈 순 없다. 화력발전을 줄이면 원자력발전이 그 부족분을 채워야 한다. 원자력발전이 과도기적 역할을 하는 동안 어떻게 신재생에너지를 통해 안정적으로 전기를 공급할 수 있을지 고민해서 원자력을 대체해 나가야 한다. 이 정도 기본 전제하에서 발전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 원자력 가지고 다투는 건 한심한 일이다.

아까부터 계속 강조하고 있지만, 전력산업은 정치로부터 독립돼야 한다.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전력 정책이 표류하면 결국 나중엔 국민만 손해 보게 될 확률이 높다.

- 전력연맹은 공공이 주도해서 에너지 전환을 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알다시피 신재생에너지는 그 간헐성이 가장 큰 문제다. 바람만 해도 어떨 땐 불필요할 정도로 강하게 불다가도 어쩔 땐 아예 안 분다. 햇빛도 밤에는 아예 없을뿐더러 비가 오는 날엔 갑자기 약해진다. 하지만 전기는 항상 일정량이 필요하다. 따라서 태양광, 풍력 등의 신재생에너지로 에너지 전환을 하려면 반드시 종합적으로 전기의 총량을 관리해 줄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유럽처럼 다른 나라와 전력 계통이 이어져 있지도 않다. 따라서 전력 컨트롤타워에 대한 더욱 세심한 관리가 요구된다. 오랫동안 투자가 필요할 것이고, 전력에 대한 노하우·이해도·기술력도 요구된다. 이를 하기에 가장 적합한 곳이 한전과 전력그룹사들이라는 생각이다.

한전이 전력산업을 독점하겠다는 말이 아니다. 안정적 전력공급을 위해 한전이 수익성을 포기하더라도 먼저 들어가 기틀을 마련하겠다는 말이다. 그 이후, 민간 기업이 들어올 수 있는 부분이 있으면 들어와도 된다는 생각이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나?

국민이 공기업을 색안경 끼지 않고 바라봐 주셨으면 좋겠다. ‘제재를 받지 않아 방만하게 운영된다’는 편견에 비해 공기업은 기획재정부 경영평가를 비롯해 많은 감시를 받고 있다. 그런데 정부에서 방만하게 운영한다는 프레임을 씌우고, 공기업을 정부의 입김 아래 두려고 한다. 이렇게 모든 정책이 정치적으로 결정되면 부채 해결도, 에너지 전환도 제대로 할 수 없게 된다. 결국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 한전과 전력그룹사 내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전력연맹에서도 고쳐나갈 수 있도록 많은 목소리를 내겠다. 편견을 갖지 않고 한전과 전력산업을 바라봐 주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