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센터노동자 건강권 제자리걸음
콜센터노동자 건강권 제자리걸음
  • 강한님 기자
  • 승인 2023.09.05 17:14
  • 수정 2023.09.05 18: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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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2023 콜센터 노동자 건강권 실태조사’ 결과 발표
국회서 토론회 열어 “열악한 처우 개선되지 않아”
5일 오전 10시 국회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2023 콜센터노동자 건강권 실태조사 결과 발표, 개선과제 토론회’가 진행됐다. ⓒ참여와혁신 강한님 기자 hnkang@laborplus.co.kr 

콜센터노동자들의 몸·마음 건강에 적신호가 켜져 있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나왔다.

설문조사 결과는 5일 오전 10시 국회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진행된 ‘2023 콜센터노동자 건강권 실태조사 결과 발표, 개선과제 토론회’에서 공개됐다. 설문조사는 민주노총이 지난 5월 콜센터노동자 1,280명을 대상으로 진행했다. 토론회는 민주노총과 이은주 정의당 의원, 강성희 진보당 의원이 함께 준비했다.

55% 노동자, “목표콜수제 있어”
아파도 출근하는 노동자 약 40%

설문조사 응답자 중 여성은 1,188명(93%), 남성은 90명(7%)이었다. 회사와 근로계약을 어떻게 체결한 상태인지를 묻는 질문에 정규직이라고 응답한 노동자는 55%로 나타났고 나머지 45%는 계약직이었다. 계약직이라고 응답한 노동자의 경우 대부분(74.4%) 1년 단위의 계약을 하고 있었다.

‘하루 업무 중 실제로 쉬는 시간(점심시간 포함)이 얼마나 되느냐’는 질문엔 1시간 이상 쉰다고 대답한 노동자는 775명(61%)이었다. 30분에서 1시간 미만으로 쉰다는 노동자는 357명(27.9%)이었고, 30분도 못 쉬는 노동자는 147명(11.5%)이었다. 698명(55%)이 일하는 사업장이 하루에 콜 수가 정해지는 ‘목표콜수제’를 운영하고 있기도 했다.

또 조사에 따르면 콜센터노동자들이 지난해 경험한 질병은 △목, 어깨, 팔, 손가락 통증(69.7%) △만성피로(67.5%) △허리 통증(66.6%) △수면장애(41.9%) △여성질환(36.4%) △난청, 이명(33.8%) 등이었다.

지난해 ‘아파도 병가나 연차휴가를 낼 수 없었던 날은 며칠이었냐’는 질문에 ‘하루도 없었다’고 응답한 비율은 60.8%로 나타났다. 발제를 맡은 한인임 정책연구소 이음 이사장은 이를 두고 “콜센터노동자들은 약 40%가 아파도 출근했던 것”이라며 “아파도 병가나 휴가를 낼 수 없었던 이유는 관리자에게 밉보일까봐가 1순위로 나타났고, 다음으로는 소득이 줄어들까봐, 동료에게 미안해서라고 응답했다. 심지어 회사가 못 쓰게 한다는 응답도 13%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콜센터는 감정노동 스트레스를 가장 많이 받는 곳 중 하나고, 감정노동자 보호규제가 그 어느 곳보다 강력하게 작용할 필요가 있다”면서도, “50%의 노동자들은 ‘빨리 하라’는 닦달을 주1회 이상 받고 있었고, 고객 스트레스가 큰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노동자 보호조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서”라고 지적했다.

월 소득(세금 및 4대 보험 공제 후)은 평균 220.6만 원으로 조사됐다. 한인임 이사장은 “최저임금을 조금 넘는 수준”이라며 “저임금임에도 임금체계는 복잡하다. 계약직의 경우 정규직보다 더 많이 성과급을 운영하는 것으로 나타나 고용도 불안정한데 임금체계도 더 불안정하다”고 지적했다.

임금이 어떤 방식으로 결정되는지를 물어본 결과 회사에서 일방적으로 결정한다는 응답이 850명(66.5%)으로 가장 많았다. 316명(25%)은 노사가 교섭을 하지만 노동자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는다고 응답했다. 보기 문항에는 ‘노사가 교섭을 해서 정하며 노동자의 의견을 수렴함’도 있었지만 여기에 응답한 노동자는 없었다.

부모님 돌아가셔도 전화 못 끊어···
국회서 관심 가져야

토론회에 참여한 세 명의 콜센터노동자들은 현장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알리며 정부와 국회의 관심을 요청했다. “얼마 전 상담사의 고백을 이 자리를 빌어 꼭 전하고 싶다”던 김현주 공공운수노조 대전지역일반지부 수석부지부장은 “20대의 상담사는 민원전화에 시달리던 중 어머니께서 소천하셨다는 문자 한 통을 받았지만, 팀장은 해당 콜을 마무리하고 어머니께 가보라는 이야기를 하면서 어깨를 지그시 눌렀다고 했다”며 “30분 넘게 울면서 통화를 마무리하고서야 어머니께 갈 수 있었다고 한다”고 말했다.

5일 오전 10시 국회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진행된 ‘2023 콜센터노동자 건강권 실태조사 결과 발표, 개선과제 토론회’에서 김현주 공공운수노조 대전지역일반지부 수석부지부장이 현장증언을 하고 있다. ⓒ참여와혁신 강한님 기자 hnkang@laborplus.co.kr 

김현주 수석부지부장은 “장례를 치르고 돌아왔을 때 그 통화가 원청사로부터 평가돼 엄청난 감점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난 이런 곳에서 일하는구나’ 생각하고 아직도 트라우마에 시달린다고 했다”며 “콜 많은 점심시간은 줄여야 하고, 아파도 출근하라고 강요받는다. 본인들의 매출이 곧 실적이기 때문이고, 이런 구조가 계속되는 한 콜센터 환경은 변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연승훈 사무금융노조 KB손보CNS지부 지부장도 “우리 같은 감정노동자들을 위한다고 5년 전 감정노동자법이 생겨났다. 고객에게 폭언이나 욕설을 들었을 때 우리는 하던 업무를 중단하고 휴식 시간을 부여받을 수 있지만 이것을 지키는 콜센터가 과연 얼마나 되냐”며 “눈에 보이는 실적에 연연해 상담사들의 고통을 외면한다면 상담사들의 고통은 고스란히 회사의 고통이 되어 돌아올 것”이라고 했다.

조미선 민주일반연맹 공공연대노조 고용노동부본부 부본부장은 “과도한 경쟁을 부르는 평가와 인권침해에 해당되는 연차 사용 제한, 화장실 사용 등에 대한 정부의 관리감독이 필요하다”며 “이번 실태조사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콜센터노동자들의 상황이 얼마나 열악한지 다시 한 번 정부와 국회에서 관심을 가져 달라”고 강조했다.

노동강도와 과도한 성과주의
고치는 법·제도개선 과제 산적

전문가들은 “근본적으로 높은 노동강도와 과도한 성과주의가 문제일 수 있다”며 몇 가지의 법·제도개선 과제를 제시했다.

김성호 한국비정규노동센터 부소장은 “적정한 노동강도, 콜 수 등에 대한 노사 간 대화가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ILO의 여유율을 기초로 노동시간과 휴식 시간을 재정립하는 것이 적정한 노동강도를 정하는 기준이 될 수 있다”며 “45분 상담노동에 15분 유급휴식시간을 부여하는 등 근로기준법상 휴게시간 외 ILO의 여유율을 고려한 유급휴게시간 부여를 법제도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우새롬 민주노동연구원 객원연구위원은 “상담사의 직업교육훈련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아 제대로 된 직무 가치가 부재한 상황도 문제라고 할 수 있다”며 “콜센터노동자 숙련형성과 경력개발을 위한 직업훈련 과정과 공인자격증제도를 도립할 필요도 있다”고 주장했다.

원청의 역할도 요구된다. 한인임 이사장은 “이미 서울교통공사와 같은 곳에선 외주화된 콜센터 노동자에게 폭언, 업무방해 등이 발생하면 원청이 고발하는 방법을 채택하고 있다. 공공부문이라면 우선적으로 이렇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민간부문에서도 원청을 대리해 업무를 수행하는 노동자를 위해 원청이 가해 고객에게 고발조치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