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재난, 우리 힘으로 막자”···시민 3만 명 모여
“기후재난, 우리 힘으로 막자”···시민 3만 명 모여
  • 백승윤 기자
  • 승인 2023.09.24 14:39
  • 수정 2023.09.25 10: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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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923 기후정의행진’···윤석열 정부 ‘기후 역행 정책’ 비판 목소리
‘노동자 배제한 산업전환, 기후재난 불평등, 생태 파괴’ 등 지적
23일 서울 세종대로 일대에서 진행된 ‘923 기후정의행진’ ⓒ 참여와혁신 백승윤 기자 sybaik@laborplus.co.kr

‘923 기후정의행진’이 23일 서울 세종대로 일대에서 진행됐다. 주최 측 추산 시민 3만여 명이 참여해 정부에 기후재난 정책을 촉구하는 한편, 함께 기후위기에 대응하자는 실천을 다짐했다.

기후정의행진은 기후위기를 막기 위한 대규모 시민행동으로 지난해 9월 24일 처음 진행됐다. 2019년 9월 21일 7,500여 명이 참여한 기후위기비상행동 이후 대규모 시민행동을 조직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으나,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대규모 행사를 치르지 못했다.

923 기후정의행진에는 특히 아동·청소년이 다수 참여해 기후위기를 해결하라는 목소리를 냈다. 충북에서 초등학교에 다니는 A 씨는 “우리가 어른이 돼서 더 심각한 기후위기가 생기면 점점 살 수 없게 되니까, 그것을 막기 위해서 참여했다”고 말했다. 초등학생 B 씨는 “동물들이 다 치는 것”을 기후위기의 가장 큰 문제로 꼽았다. 한 고등학생은 학교에서 채식 급식을 제공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축산업은 고농도 탄소 배출의 원인 중 하나로 지적된다.

자녀들과 함께 행사에 참여한 학부모 C 씨는 “아이들이 학교에서 조금 더 기후 변화에 대해서 적극적인 교육을 받았으면 좋겠어서 나왔다”며 “교과서에 나오기는 하는데,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알려 주는) 직접적인 내용은 별로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기후정의행진에서 나온 대정부 요구는 ▲노동자의 일자리 보장하는 정의로운 전환 ▲핵발전 및 화석연료 사용 중단과 재생에너지 사용 ▲이동권 보장 위한 철도 민영화 중단과 공공교통 확충 ▲생태계 파괴하는 신공항 건설, 국립공원 개발 중단 ▲기후재난으로 죽지 않고 모두가 안전하게 살아갈 권리 보장 ▲대기업·부유층 등의 기후재난 책임 규명 등이다.

이번 행진을 주최한 ‘923 기후정의행진 조직위원회‘에는 노동·농민·여성·장애인·동물권·환경·종교 등 600여 개 단체와 2,500여 명의 개인추진위원이 참여했다.

“정의롭지 못 한 산업전환 안 돼“

923 기후정의행진에 참가한 노동자, 활동가 등은 윤석열 정부의 기후 정책에 대해 퇴행적이라고 비판했다.

발전소노동자들은 산업전환으로 발생할 일자리 문제에 대해 정부가 안일하게 대응한다고 지적했다. 송민 한국노총 공공노련 탈석탄일자리위원회 위원장은 “윤석열 정부가 탄소중립위원회와 녹색성장위원회를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로 통합하면서 다양한 사회계층의 참여 보장을 위한 위촉 위원의 수가 반토막 났고, 특히 정의로운 전환의 당사자인 노동계 위원은 단 한 명도 배정되지 않았다”며 “정부는 사용자와 기업을 대변하는 위원의 참여는 보장하고, 탈석탄으로 자식과 가족의 삶이 무너질 노동자의 의견은 배제하는 구조를 만들었다. 노동자 참여가 배제된 현실에 함께 분노하고 싸워 달라“고 호소했다.

김영훈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한전KPS비정규직지회 지회장은 “발전소 노동자들도 석탄화력발전소의 시대는 이제 종식되어야 한다는 것에 동의하지만, 석탄화력발전소가 폐쇄돼도 우리의 삶이 폐쇄될 순 없다”고 했다. 이어 “정부는 산업전환으로 가는 길목에서 해고는 당연하다는 전제를 앞세우고 있다. 고용위기에 처한 노동자들, 그리고 노동자들이 떠나면 붕괴할 지역사회가 있다”며 “환경과 사람 그 어떤 것도 희생시키지 않는 정의로운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공공교통의 중요성을 주장한 김지현 철도노조 전기국장은 “민간에게 넘어간 철도산업은 경쟁과 이윤만 추구할 뿐 공공성 강화와 기후위기 시대에 대안이 될 수 없다”며 “철도노조는 더 많은 시민이 탄소배출이 적은 철도를 이용해 기후위기에 함께 할 수 있도록 공공철도와 녹색철도를 지키기 위해 함께 싸우겠다”고 말했다.

23일 서울 세종대로 일대에서 진행된 ‘923 기후정의행진’ ⓒ 참여와혁신 백승윤 기자 sybaik@laborplus.co.kr

“기후재난 불평등, 해결할 의지는 있나”

기후위기로 불평등이 심화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정부가 생색내기로 대처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활동가는 “지난해 여름 서울에서 일어난 수혜참사로 동작구와 관악구 반지하에 살던 이웃들이 폭우로 목숨을 잃었다. (···) 정부와 서울시는 재발방지 대책을 제대로 만들겠다고 공언했지만, 전수조사는 슬그머니 표본조사로 변경됐고, 윤석열 정부는 공공임대주택 예산을 5조 원 삭감했다. 결국 서울시나 정부의 지원을 통해 실제 이주한 가구는 전체 반지하 가구의 0.95%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김윤영 활동가는 “지난 1년간 차수판 설치와 같은 간단한 조치조차 침수가 우려되는 주택 중에서도 단 4분의 1에만 시행됐다. 침수 주택으로 보이면 건물값이 하락할 것을 염려한 건물주의 낮은 실천이 원인 중 하나라고 한다”며 “단지 기후위기가 아니라 기후위기를 살아가는 불평등한 사회가 재난의 순서를 정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정미진 오송참사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시민대책위원회 위원은 “지난 7월 15일 새벽부터 내려진 홍수 경고에도 왜 하천 옆 지하차도는 통제되지 않았는지, 홍수를 대비한다며 쌓은 임시재방은 왜 그리도 허무하게 무너졌는지, 지방정부는 기후재난을 대비할 의지가 있긴 했는지, 참사가 일어나고 두 달이 지난 지금도 그 진상을 알 수 없다”며 “비민주적인 정치·경제체제가 기후재난 시대에 어떤 비극을 만들어 내고 앞당기는지, 지금의 정치·자본 권력이 우리 손으로 직접 기후재난들 대비할 수 있는 기회와 희망을 어떻게 빼앗고 있는지 더욱 선명하게 느낀다”고 말했다.

하태성 삼척석탄화력반대 투쟁위원회 위원장은 “지금 사용하는 전기에는 석탄화력발전소 지역 주민들의 고통이 담겨있다”며 각 지역구 국회의원에게 탈석탄법 제정을 요구해 달라고 말했다. 이어 “지구는 광폭적이고 빈번하게 기후위기 징후와 인류재앙을 예고하고 있다”며 “우리가 삶의 태도를 바꾸지 않는 것도 한몫한다. 정치 무관심도 그 이유”라고 했다.

“생태계 파괴하는 개발·성장 멈춰야”

생태계 파괴와 기후위기를 가속화하는 개발·성장 중심 체제를 바꿔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정규석 녹색연합 사무처장은 “케이블카부터 공항까지 우리 국토는 무수히 파헤쳐 지고 있다. 우리 바다의 회복탄력성은 그 어느 곳, 그 어느 때보다 취약하고 위험한 지경에 놓여 있다. 제주도부터 시작해, 강원도 등 우후죽순 만들어지는 지역자치 특별법은 지방자치제도의 취지와는 상관없이 생태위기, 기후 위기를 앞당기는 첨병으로 나선 지 오래”라며 “성장과 개발이 우리의 지상과제로 군림하는 현실을 이제는 두고 볼 수 없다. 지금 당장 우리가 해야 하는 건, 우리를 둘러싼 자연 생태계를 되살리는 일이다. 더 큰 대오로 어긋난 정부 정책과 맞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우현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기후팀장은 “윤석열 대통령은 온실가스를 뿜어대며 미국까지 날아가서는 UN 기후정상회의에는 참석도 않고 부산 엑스포 유치 활동을 했다고 한다. 문재인 정권은 그 엑스포를 핑계로 가덕도 신공항 건설 추진으로 돌이킬 수 없는 생태계 파괴의 문을 열었다. 우리가 그 위선과 모순의 보수정치가 아닌 우리의 힘으로 위기를 넘어서려는 이유”라고 말했다.

사토 다이스케 반핵아시아포럼 일본사무국장은 “핵발전은 기후위기 대안이 아니다. 차별과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오히려 재생에너지 확대를 막는다. 기후위기를 빌미로 노후 핵발전소 수명 연장과 신규 핵발전소 건설에 반대하는 아시아 각국의 탈핵운동에 함께 연대해 달라”고 호소했다.

민주노총은 이날 성명을 내고 “국제적인 기후위기의 경각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윤석열 정권은 자본이 탄소배출 저감을 면피할 정책들을 추진하면서 기업의 부담을 줄여주고 있다”며 “노동자가 기후정의실현과 정의로운 전환의 주체가 될 수 있도록 싸워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약 90분간 이어진 본대회가 끝난 이후 참석자들은 용산 대통령실과 광화문 정부서울청사로 나뉘어 행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