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와 시민단체] 일하는 여성, ‘죽음’을 배워보라고?
[참여와 시민단체] 일하는 여성, ‘죽음’을 배워보라고?
  • 강한님 기자
  • 승인 2023.10.04 02:07
  • 수정 2023.10.05 11: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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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여성이 삶·사회 주인 되는 교육 기획한
일하는여성아카데미 이원아 원장·이주환 대표 인터뷰

참여와 시민단체 

참여와혁신이 노동·시민·사회단체를 소개합니다. ‘참여’는 일터 내 민주주의뿐 아니라 일터 밖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데도 중요한 요소입니다. 참여민주주의 학교인 노동·시민·사회단체들의 참여 경험을 독자와 나누려 합니다.

[참여와 시민단체⑭] 일하는여성아카데미 

죽음교육, 내 마음 기록법, 홀가분 글쓰기, 소통&숨통, 가족세우기·조직세우기···늘어놓고 봐도 뭔가 범상치 않은 이것들은 일하는여성아카데미가 여성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교육 프로그램 제목이다. 일하는여성아카데미 구성원들은 교육이 여성의 삶과 자신의 조직, 사회에서 주인이 되는 데 힘을 줄 수 있다 생각해 2004년부터 다양한 프로그램을 고안해왔다. 이원아 일하는여성아카데미 원장과 이주환 대표를 9월 13일 만나 이런 교육이 여성 노동자들에게 왜 필요한지를 들려달라고 했다.

이원아 원장(왼쪽)과 이주환 대표(오른쪽)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변화를 만드는 여성
교육하는 활동가들

- 일하는여성아카데미를 소개해 달라.

이원아 : 현장에서 일하는 여성들의 의식 변화, 리더십 개발, 성평등 의식을 일상에서 높일 수 있는 실질적인 교육이 뭘까 고민하던 교육 활동가들이 모인 곳이다. 나에게도 계기가 있었다. IMF가 시작됐던 1997년 서울여성노동자회에 들어와서 똑같이 직장 생활을 하는데도 가사와 육아를 전담하고, 가정 내에서 불평등한 위치에 있지만 불평등한지 모르고 사는 지역 여성들의 모습을 만나게 됐다. 당시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들은 착한 여자, 모성, 현모양처를 말하면서 결핍을 조장하기 쉬워 보였다. 여성을 삶의 주인으로, 조직과 사회의 리더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이 좀 안 보였다.

이주환 : 여성들이 지역사회, 자신이 속한 조직, 사회의 주인이 되도록 하자는 게 모토였다. 주인이 된다는 건 차별받고 있는 것들을 흘려보내는 게 아니라 그것을 해결할 당당한 주체가 되는 것이라고 우리는 생각했다. 변화를 만들어내는 주체가 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IMF 때 여성 노동자들은 일에 대한 자부심, 그리고 일이 사회에 어떻게 기여하고 있는지를 연결하지 못하는 분들이 대다수였다. 그래서 비정규직과 빈곤 여성을 중심에 두고 교육 프로그램을 짰다.

스스로의 매력 찾고
사회 구조 직시하도록

- 어떤 프로그램들을 고안했는지 듣고 싶다.

이원아 : 처음엔 자기개발 교육이 많았다. 자존감을 향상하고 일터에서 당당해지려면 의사를 잘 전달하고 소통하는 역량이 필요하더라. 자존감은 혼자 발달되는 게 아니라 관계 속에서 성장을 한다. 스스로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경청하는 건 뭔지를 교육 프로그램 중 하나로 둔다. 최근까지도 많은 수요가 있었던 교육이기도 하다. 또 장애물을 넘어갈 수 있도록 내적인 힘을 찾게 만든다. 말하자면 자원을 보게 하는 거다. 아주 작은 것, 성실한 거, 약속 시간을 잘 지키는 거,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듣는 것도 다 장점이다. 스스로가 좋아하는 것도 보게 한다. 좋아하는 사람, 활동, 장소가 내적인 동력이 되도록.

이주환 :  자존감 향상 프로그램도 진화를 했다. 저학력, 취약계층, 비정규 여성 노동자들이 자존감이 낮은 원인은 본인이 못나서가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에서 오는 차별로 그들이 사회에서 폄하됐기 때문이다. 원장님이 말씀하신 내적인 힘을 발견하게 함과 동시에 구조의 문제를 인식하도록 한다. 그냥 못나거나 게을러서, 무능력해서 임금을 적게 받는 게 아니라 사회 구조적으로 여성들이 성차별적인 임금을 받을 수밖에 없고, 그것이 어떻게 발생됐는지도 초점을 맞춘다. 각 개별 프로그램들을 필요에 따라 진행을 하다 보니 교육 내용의 폭이 넓다.

이원아 : 참여형 교육이란 점도 특징이다. 공부를 하면 머리로는 알지만 몸으로 체화되진 않는다. 실제로 연습해보거나, 게임을 하면서 나의 의식이나 태도를 성찰하는 거다. 최근 2~3년 팬데믹 상황에선 죽음교육이란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한국 사회는 죽음을 금기시하고, 여성과 남성이 맞이하는 죽음은 또 다르다. 죽음의 과정에서 남성들은 대체로 여성 보호자와 반려자에 의해 돌봄을 받지만 여성들은 민폐 끼친단 생각도 있고 죽음에서 주체가 아니라 타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 시범 교육은 요양보호사들과 했다. 죽음과 고통에 대한 인식 변화가 필요하겠단 생각을 했다.

이주환 : 우리가 중노년 활동가가 돼 가다보니 관심을 가지게 된 것도 있다. 나이듦과 죽음, 돌봄을 개인이 해결하려고 하면 굉장히 혼란스럽다. 어떤 관점을 가져야 할지도 모르겠고 삶이 허무해지기도 하고, 그러다 보면 활동을 중단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래서 함께 풀어나가고자 하는 측면도 있다. 나이듦과 돌봄을 공부하다 보니 새로운 사실들도 알게 됐다. 비건강 수명이 긴 우리나라는 죽지도 못하고 살지도 못하는 상태가 오래 간다. 사회적으로도 연동된 문제다. 의료 산업이 그런 사람들을 포획하다보니 죽음에서 삶의 주체성이 훼손된다. 학습을 하니 풀어나가야 할 과제들이 선명해진다. 나중에 노년 운동을 해야 하나 생각도 든다.

이주환 대표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못한다”던 교육생
변화 보면 감동적

- 일하는여성아카데미의 교육에 노동자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나?

이원아 : 최근 죽음교육이나 홀가분 글쓰기, MBTI 소통 교육을 받은 분들이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스타일의 사람인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그리고 나와 다른 사람들을 ‘정말 꼴 보기 싫고 왜 저럴까’ 문제시했는데 ‘차이와 다양성을 인식하게 됐다’는 말도 들었다. 자녀나 동료 관계가 편해졌다는 거다.

이주환 :  초창기에는 진짜 감동 버전이 많았다. 우리끼리는 간증 집회하는 것 같다는 말도 했었다. 순간순간 어려움들을 겪을 때 당장 해결책이 나오지 않더라도 나누고 공유하면 헤쳐 나갈 수 있는 힘이 생긴다. 못한다고 했던 조합원이 노동조합 지부장으로 나갈 수 있는 힘을 받고, 집회 같은 데 나가서 발언을 하면 스스로 뿌듯해지는 것 아닌가. 그런 과정을 같이 했다는 것 자체가 나에게 감동적이다. 조직에서 나갈까 말까 고민하는 상태에 있었던 사람들이 ‘그래도 조금 더 함께할 수 있겠네’ 이렇게 마음이 돌려진 사례도 우리 조직발전 워크숍에서 꽤 있었던 것 같다.

- 스트레스 관리 프로그램들도 있는 것으로 아는데.

이주환 :  놓치지 않고 계속 해왔던 교육 주제다. 아로마, 돌봄, 요가 등을 끊임없이 공부했다. 초창기에는 우리도 전투적으로 활동하지 않았나. 그러다가 번아웃이 오는 선배들을 보면서 이런 운동이 지속가능하지 않구나 생각했다. 우린 아이를 과감하게 둘씩 낳았다. 결혼해서 출산을 하고 아이를 둘이나 낳았다는 건 여성운동 조직에서 당시엔 획기적인 거였다. 걱정을 많이 받았는데 정말 활동을 지속하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더라. 그러면서 자기돌봄이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조직에도 꼭 필요한 일이고, 조직도 그런 것들을 왜 놓치면 안 되는지를 체험적으로 알은 것 같다. 우리가 그랬기 때문에 교육 참여자를 만났을 때 그런 프로그램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안내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이원아 : 50여 명이 함께하는 여성 활동가 명상 모임도 있다. 팬데믹 기간에는 줌으로 모여서 명상을 했다. 여성 활동가들이 충전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지금은 거의 정착시킨 것 같다. 또 이런 프로그램에서 일상적인 연대의 장이 마련된다. 서명이 필요하면 같이 하고, 필요한 교육이 있으면 정보도 나누고 한다.

이원아 원장과 이주환 대표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활동가들 바쁘지만
‘총론’ 고민할 때

- 지금의 고민은 뭔가?

이주환 :  (교육생) 모집이 확실히 어렵다. 아카데미를 만들 때만 해도 여성 노동자 그룹을 전문적으로 교육하는 단체가 없었고, 교육 기회도 적었다. 그런데 지금은 교육을 하는 곳이 워낙 많고 제도권으로 흡수된 교육은 무료료 진행된다. 우리는 단체 운영을 해야 하니까 완전 무료로 할 수는 없다.

이원아 : 충분한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 점도 고민이다. 아카데미는 참여 학습을 주로 하는데 한 번 교육하면 3시간 정도 했다. 내용도 공유하고 서로 토론도 하고 발표도 하면 그 정도가 필요하다. 그런데 3시간은 도저히 못 내겠다고 하는 곳들이 많고, 심지어는 1시간 안에 해 줄 수 없냐는 요구들도 온다. 그럼 컨셉이 완전히 바뀐다. 참여 학습이 아니라 강의 중심으로 할 수밖에 없고 성찰할 수 있는 시간도 줄어든다. 우리가 기존에 알고 있던 사람들을 넘어서 더 많은 여성 노동자들에게 다가가야 하는데 그것도 어렵다.

이주환 :  의뢰하는 조직들에 교육 담당자가 별도로 없어졌다는 점도 이전과 달라졌다. 예전에 교육을 전담하는 사람이 있었을 땐 같이 현장에 맞는 교육을 기획했다. 교육 대상들이 어떤 상태인지, 무엇을 요구하는지 같이 논의해서 주제를 잡고 맞춤형으로 설계해 교육을 했다. 당연히 효과가 좋아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지금은 전담 인력도 없고 사람들이 너무 바쁘다보니까 우리에게 메뉴판을 달라고 해서 구미에 맞는 교육 딱 하나만 하겠다고 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면 우리의 만족도도 떨어지는 경우가 있다. 아니면 본인 직무와 연관된 능력을 향상할 실용적인 교육을 찾는다. 그것 하기도 바쁜 거다. 딜레마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부탁한다.

이원아 : 우리가 직장 내 성희롱 예방 교육, 성인지 감수성 훈련을 하는데 관련된 센터들이 윤석열 정권에서 없어지고 있다. 예산이 없어지면서 여성 단체들의 기반이 도미노처럼 흔들린다. 같은 여성 단체로서 존립할 수 있을까, 존립하기 어렵다면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활동을 전환해야 하나 고민이 된다. 여성 단체들만의 문제뿐 만은 아니다. 외국인들을 지원했던 센터, 마을 만들기 센터도 없어지고 있는 상황이라 단순히 개별의 문제들이 아니다. 각자 도생하거나 흩어지면 금방 깨질 거고, 함께 대안을 모색하는 것이 정말 중요한 때라는 생각을 한다. 참여와혁신도 그런 메시지를 전달해주면 참 좋겠다.

이주환 :  지금 시기가 각론만 가지고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과거 30년 전에 이뤄놨던 것이 회귀되는 상황에선 우리가 이 사회를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가에 대한 활동가 그룹의 진지한 고민이 있어야 하는데, 활동가 정체성을 가진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잘 모르겠다. 운동은 꿈꾸는 자의 움직임이라고도 하지 않나. 시대적인 변화들은 계속 있을 것이다. 그럼 이제는 어떤 꿈을 우리가 다시 꿀 것인가를 고민하는 기로에 있다고 생각한다.

일하는여성아카데미 교육문의 및 신청
▶ kwacademy@hanmail.net

*참여와혁신은 7월호에 소개한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에 지난 8월 21일 후원금 30만 원을 전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