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보험 보장성 확대, 갈 길 멀다
고용보험 보장성 확대, 갈 길 멀다
  • 임혜진 기자
  • 승인 2023.10.03 18:53
  • 수정 2023.10.03 18: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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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보험 가입자 수, 전 국민 고용보험 정책 목표치에 못 미쳐
특고·플랫폼노동자, 자영업자 등 적용 범위 확대 노력 필요

[리포트] 전 국민 고용보험,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지난 7월 ‘시럽급여’가 뜨거운 화두로 떠올랐다.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원회 의장의 발언이 시발점이었다. 7월 12일 국민의힘 노동개혁특별위원회의 ‘실업급여 제도개선 공청회’에서 박대출 의장은 일부 수급자들이 실업급여를 과도하게 수급하거나 구직활동보다 샤넬 선글라스 쇼핑 등에 사용하고 있다며 실업급여를 달콤한 보너스라는 의미의 ‘시럽급여’라고 표현했다.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은 현행 고용보험제도가 구직자의 취업 의욕 감소, 단기간 취업과 구직급여 수급이 반복되는 계약 관행 등의 문제를 야기하고 있어 제도 개편이 필요하다고 했다. 주로 실업급여 중 구직급여의 하한액 감소 또는 폐지, 수급 자격 강화를 위한 피보험 단위기간 연장 등의 논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현재 구직급여는 퇴직한 날 직전 3개월간 평균임금의 60%로 산출되는데 하한액은 최저임금액의 80%로 올해의 경우 소정근로시간 8시간 기준 하루 6만 1,568원이다. 수급을 위한 피보험 단위기간은 고용보험 가입기간으로 퇴직 이전 18개월 동안 고용보험 가입기간이 180일 이상이어야 한다.

이 같은 논의는 지난해 12월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이 연구책임자로 발표한 ‘2022~2026 국가재정운용계획 지원단 보고서(고용 분야)’에서도 언급됐다. 보고서는 구직급여 하한액 기준이 전일제노동자였던 1인 가구 최저생계비를 상회하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최저임금액의 60% 수준으로 기준을 하향 조정할 것을 제안했고, 지난 5월 고용노동부 산하 소득기반 고용보험 제도개선 TF에서도 해당 내용이 검토됐다. 또한 보고서는 피보험 단위기간은 10개월로 늘릴 것을 권고했는데, 이는 지난 5월 홍석준 국민의힘 의원이 대표 발의한 고용보험법 개정안 내용에 포함됐다.

아직 확정된 내용은 아니지만, 정부·여당에서 논의되고 있는 안들이 노동시장 취약계층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 노동·시민사회에서 나왔다. 구직급여 하한액이 낮아지면 저임금 노동자들의 생계 유지가 더 어려워질 수 있고, 비정규·불안정 고용이 만연한 노동시장에서 일자리를 구하는 노동자들은 늘어난 피보험 단위기간을 충족하지 못해 구직급여 수급조차 힘들어질 수 있다는 이유다.

실직으로 소득 감소의 충격이 큰 노동자들이 사회안전망 혜택에서 배제될 수 있단 우려가 나온 것이다. 그러면서 제도 밖 사각지대에 있는 노동자들을 고용보험 적용 대상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정부의 고민은 상대적으로 보이지 않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8월 말 고용보험 가입자 1,522만 4,000명
‘전 국민 고용보험’ 목표치에 못 미쳐

그간 고용보험제도는 적용대상 범위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제도가 점차 개선돼왔다. 대표적으로 2020년 12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전 국민 고용보험’ 정책이 있다. 취업형태와 관계없이 일정 소득 이상의 취업자는 모두 실업급여로 보호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등장했다.

고용보험 설계 당시에는 적용 대상자가 고정된 사업장에서 일하는 임금노동자로 한정됐다. 1인 이상의 노동자를 고용하는 사업주가 의무적으로 고용보험에 가입해야 한다는 규정에 따라 사업주 신고로 고용보험 가입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갈수록 하나의 사업장에 대한 종속성이 약한 고용형태가 늘고 이직이나 전직, 두 개 이상 일자리를 병행하는 경우도 늘어나면서 다양한 형태의 취업자들을 사회안전망에 포괄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커졌다. 이에 따라 고용노동부는 예술인, 특수고용노동자(이하 특고), 플랫폼노동자, 프리랜서, 영세 자영업자 등 단계적으로 적용대상을 늘려가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2020년 12월부터 예술인 복지법에 따라 문화예술용역 관련 계약을 체결한 예술인의 고용보험 가입 의무화가 실시됐다. 이후 특고·플랫폼노동자 등 노무제공자로 확대해 2021년 7월부터 2022년 7월까지 보험설계사, 신용카드모집인, 대출모집인, 학습지교사, 교육교구 방문강사, 택배기사, 대여제품 방문점검원, 가전제품 배송·설치기사, 방문판매원, 건설기계조종사, 방과후학교강사(초·중등), 퀵서비스기사, 대리운전기사, 소프트웨어 프리랜서, 관광통역안내사, 골프장캐디, 어린이 통학버스 기사, 화물차주(시멘트, 철강재, 위험물질, 수출입컨테이너, 택배 지・간선기사, 자동차운송, 곡물가루・곡물・사료운반기사), 유통배송기사(대규모 점포 등 유통사업자 상품의 운송・배송, 음식점・주점 식자재・식품운송・배송, 기관구내식당 식자재・식품 운송・배송)가 적용 대상으로 포함됐다. 

지난 8월 말 기준 고용보험 상시가입자 수는 1,522만 4,000명이다. 고용노동부는 2019년 기준 1,367만 명에서 2022년 1,700만 명, 2025년 2,100만 명으로 가입자 수를 늘릴 계획을 내놓은 바 있는데, 현재는 해당 목표치에 못 미치는 수준이다.

고용노동부가 매달 발표하는 고용동향 통계는 예술인, 노무제공자(특고, 플랫폼종사자), 자영업자, 일용직 등을 가입자 수에서 제외하고 있다. 대신 지난해 8월 통계청이 발표한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 결과를 참고해보면 비정규직(한시적·시간제·비전형노동자) 815만 6,000명 중 54%가 고용보험에 가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가운데 특고는 56만 1,000명 중 79.7%의 비교적 높은 가입률을 보였다. 2006년부터 10%를 밑돌던 가입률이 전 국민 고용보험 정책 추진에 따라 2021년부터 급격하게 증가한 것이다. 한편 특고와 파견·용역·일일 노동·가정 내 노동 등을 포괄하는 비전형노동자 경우 213만 1,000명 중 49.5%가 가입했다.

특고 일부만 포괄하는 통계 개선하고
노무제공자 적용 범위 넓혀야

고용노동부가 특고·플랫폼노동자들의 고용보험 가입을 늘리기 위한 구체적인 로드맵을 세우고 관련된 정책을 추진함에 따라 특고의 가입률이 증가한 것은 명확해 보인다. 하지만 통계청 조사는 특고를 취업자 중 임금노동자1)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어 특고가 과소 추정되는 한계도 있다. 이에 따라 실제로 특고의 고용보험 가입률은 더 낮을 가능성이 존재해 더 많은 노무제공자를 포괄하는 제도 개선이 요구된다.

이와 관련해, 정흥준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통계청이 조사 과정에서 지나치게 적은 정보로 특고를 판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흥준 교수는 “특고 종사자의 상당부분은 스스로를 1인 자영업자로 인지할 수 있기 때문에 경제활동인구 부가조사에서 임금 근로자만을 대상으로 특고 종사자의 규모를 파악한다면 이는 비임금근로자인 독립 자영업자를 원천적으로 제외하게 된다는 것”이라고 했다.2)

지난해 12월 한국고용정보원이 발간한 ‘특수형태근로종사자 현황과 사회 보험 확대를 통한 보호 방안’ 연구보고서도 “특고는 연속적이지 않고 단속적인 일의 성격 때문에 일시적으로 비경제활동인구가 되거나 여러 개의 일자리를 갖고 있을지도 모른다”며 상당수의 특고가 통계에서 누락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보고서는 한국고용정보원의 국가 일자리 정보 플랫폼(MDB) 자료를 인용하며 “지난해 6월 기준 산재보험에 가입한 특고의 일자리 수는 중도 이탈자를 제외하면 132만 개”라며 “이를 개인 단위로 환산하면 가입자 수는 67만 명으로 계산돼 통계청의 56만 명보다 규모가 크다”고 밝혔다.

이처럼 정부 통계는 모든 특고·플랫폼노동자들을 포괄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플랫폼노동희망찾기는 “정부가 특고·플랫폼노동자들의 업종별 고용보험, 산재보험 가입 현황 등을 조사·분석해 이들이 행정통계에서조차 배제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며 실태조사를 바탕으로 일부 직종에만 한정된 고용보험 적용 범위를 넓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영업자 적용 확대 부족 등도 한계
대상자별 소득 적시 파악하는 체계 필요

향후 자영업자의 가입률을 높이는 것도 과제로 꼽힌다. 플랫폼 경제가 확산되면서 자영업자로 분류되지만 실질적으로 종속노동을 수행하는 경우가 늘어나 이들도 고용보험 혜택을 받아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돼왔다. 또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위기 등 자신의 책임이 아닌 사유로 매출이 감소할 경우 영세 자영업자의 생계를 보호해줄 사회안전망으로서 고용보험 적용 범위가 넓어져야 한다는 문제의식도 있어왔다.

이에 따라 자영업자 고용보험이 2012년부터 도입돼 임의가입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2021년 9월 구자근 국민의힘 의원이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에서 받은 ‘자영업자 고용보험 가입 촉진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12월 말 기준 자영업자 고용보험 가입자 수는 총 3만 1,391명으로 전체 자영업자(2020년 8월 기준 약 555만 명)의 0.57% 수준으로 매우 낮다.

당초 고용노동부는 임의가입 방식이 가입률을 낮추고 있다고 판단하며 사회적 대화를 통해 가입률을 높이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일반적으로 노동자는 고용보험료를 사업주와 50%씩 부담하는데 자영업자는 보험료 전액을 부담해 가입을 기피하는 경우가 있다. 지난해 6월 고용노동부는 ‘소득기반 고용보험 확대 연구회’를 구성해 자영업자의 고용보험 적용에 대한 세부 논의를 진행 중이다.

소득기반 고용보험은 취업형태에 관계없이 일정 소득 이상의 취업자를 모두 보호할 목적에서 고용노동부가 검토 중인 정책이다. 국세청에서 수집한 소득 정보 등을 이용해 보험료 부과 등에 활용한다는 의미가 있다. 그러나 자영업자 소득은 본인의 소득세 신고에 의존해 실시간으로 소득을 파악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이와 관련해, 지난 7월 경제인문사회연구회가 발행한 한국노동연구원의 ‘소득기반 사회보험 혁신’ 연구보고서는 “자영업자는 장기간 실시간 소득 파악에 난점이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근로자・노무제공자・예술인과는 다른 소득, 보험료 관리 시스템을 구축할 필요성이 있다”고 제언했다.

1) 통계청이 정의하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란, 독자적인 사무실, 점포 또는 작업장을 보유하지 않았으면서 비독립적인 형태로 업무를 수행하면서도, 다만 근로제공의 방법, 근로시간 등은 독자적으로 결정하면서, 개인적으로 모집․판매․배달․운송 등의 업무를 통해 고객을 찾거나 맞이하여 상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하고 그 일을 한만큼 소득을 얻는 근무 형태를 뜻한다.

2) 경제사회노동위원회(2019), 사회적 대화 5·6월호 중 ‘특수형태고용종사자의 현황과 실태’